688화
운동장을 전력 질주 하고 싶다 는 남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으로 앞으로 운동도 열 심히 하세요.”
“지금 마음으로는 몸만 나으면 바로 헬스장 끊어서 막 몸 움직 이고 싶습니다.”
“저희 동네에 뛰기 좋은 공원 있습니다. 몸 회복되시면 가족하
고 같이 산책도 하시고 저희 식 당에서 식사도 하세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남자가 불편한 목 을 간신히 위아래로 끄덕이며 답 을 했다. 그런 남자를 보던 강진 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혹시 사고 나셨을 때 따로 기억이 나시는 것 없으세 요?”
“기억요?”
“저와 대화를 나눴던 것 기억나
시나 해서요.”
영혼으로 나와 있을 때 나눈 대 화를 기억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다.
강진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작게 저으려다가 눈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답을 했다.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사고 날 때 그저 뒤에서 쿵 하는 소리 가 들렸고 차가 밀린다 생각한 순간까지만 기억이 납니다.”
“그렇군요.”
남자의 답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허연욱을 보았다. 진맥 을 해 보겠냐는 시선이었다.
허연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맥을 해 보지 않아도 환자 얼굴이 밝은 것을 보니 회복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끄덕이고는 남자를 보았다.
“그럼 몸 회복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와주
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진은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는 아주머니에게도 고개를 숙였 다. 그에 아주머니가 마주 고개 를 숙이자 강진이 병실을 나섰 다.
강진은 자신을 배웅하러 따라 나온 아주머니에게 문득 물었다.
“그날 치료해 준 의사분은 여기 분인가요?”
“최임수 선생님요?”
누군지 바로 알고 묻는 아주머
니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성함이 최임수 선생님이군요.”
“네. 여기 외과 선생님이세요.”
말을 하던 아주머니가 웃었다.
“재밌는 분이세요.”
“재밌는 분요?”
“외국에서 오래 계셨대요.”
아주머니는 주위를 한 번 보고 는 말했다.
“별명이 수혈팩이에요.”
“수혈팩요?”
“선생님들 피 뽑아서 환자들 치 료한다고 해서 수혈팩이에요.”
“여기 피가 모자라나요?”
강진의 물음에 아주머니가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고, 선생님들 피 말 리게 돌리면서 환자 돌보게 한다 고 해서 수혈팩이에요.”
“아…… 좋은 선생님이네요.”
같이 일하는 의료진들이 고생은
하겠지만, 환자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말이다.
“좋은 선생님이기는 해요.”
“말에 뼈가 있네요?”
“환자하고 가족들한테는 참 잘 해 주시는데, 의사들한테는 정말 엄청 무섭게 대하시거든요.”
“그래요?”
“선생님한테 혼나는 다른 선생 님들 보면 참 딱해요.”
“그래도 사람 몸 치료하는 건데
혼나서라도 잘 배워야죠. 그래야 나중에 사람을 잘 치료하지 않겠 어요.”
“그건 그렇죠. 아, 그 선생님은 8층 외과 가시면 계실 거예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빨리 완쾌되시기를 빌겠습니 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이자, 강 진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엘
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가려다 가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2층 정도는 계단으로 오를 생각이었 다.
“그럼 저는 중환자실 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영혼 상태인 사람들이 많은 곳은 위중한 환자들이 있는 중환자실일 테니 말이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많이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제 생각에는 딱히 얻을 것이 없 을 겁니다.”
“그래도요.”
“알겠습니다. 그럼……
허연욱이 중환자실이 있는 곳으 로 걸음을 옮기자, 강진은 8층으 로 올라갔다. 그런 강진의 뒤를 따라가던 배용수가 물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만나보고 가려고?”
“그분한테도 수호령 붙어 있잖
아. 이야기 좀 들어 볼 수 있으 면 들어 보고, 도울 수 있으면 돕고. 그게 아니면 선생님 우리 가게에서 식사라도 하고 가게 하 려고.”
의사 옆에 붙어 있던 미군 수호 령을 떠올리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미국 음식 할 줄 아는 것 있 어?”
“미군이라고 해도 한국 사람이 라고 했잖아? 그럼 한국 음식 먹 지 않겠어?”
“한국 사람이라고는 안 했지. 그냥 동양인이고 한국말 잘하는 거지.”
“그럼 교포인가?”
“그럴 수도 있고.”
“어쨌든 한식이면 돼.”
자신감 있는 배용수의 말에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모르잖아. 외국에서 오래 살았으면 한국 음식보다 그 나라 음식이 더 입에 맞을 수도 있지. 그리고 아예 안 먹어 봤을 수도
있잖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식 요리사기는 하지만, 외국 요리를 아예 놓은 건 아니 지.”
“할 줄 알아?”
“외국 음식이라고 뭐 대단한 줄 알아? 서양 음식은 의외로 간단 해.”
“그래?”
“거기 뭐 조리법 특별한 것 있 나? 그냥 굽고 튀기지.”
“그래도 외국 음식 방송 같은 것 보면 이런저런 요리 방법 많 던데?”
“한식으로 따지면 양념 치는 거 지. 하지만 딱 그 정도야. 한식의 조리 방법과 양식의 조리 방법은 비교할 수 없어. 한식이 최고야.”
한식 조리사로서 자부심이 느껴 지는 말에 강진이 더는 말을 하 지 않았다.
양식도 한식처럼 조리 방법이 엄청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 하고 친한 요리사는 한식 조리사 인 배용수이니…… 당연히 배용 수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어떻게 한식하고 양 식을 비교하겠어.”
강진이 편을 들어주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아네.”
“그래서 미국 음식 좀 할 수 있 어?”
“그게 뭐 어렵나. 미국 하면 바 비큐이니 고기 좀 굽고, 옥수수 나 버터 발라서 굽고, 닭고기 수 프나 좀 만들면 되지.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자신감 넘치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8층 비상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 다.
복도를 오가는 환자들과 의료진 들을 보던 강진이 힐끗 한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환자복을 입은 귀신
하나가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허 공을 보고 있었다.
‘지박령이 네.’
병원이다 보니 확실히 다른 곳 에 비해 귀신들을 보는 일이 많 았다. 아까 비상구에도 귀신들 몇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 다.
강진은 주위에 있는 귀신들을 보다가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다 가갔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간호사가 그를 보았다. 피곤해 보이는 간호사에 게 강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혹시 최임수 선생님 좀 뵐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시죠?”
“얼마 전에 저희 가게 앞에서 교통사고가 난 환자를 최임수 선 생님이 응급처치하시고 가셨거든 요. 그래서 오늘 그 환자 병문안 왔다가 인사라도 드리려고요.”
간호사는 옆에 있는 동료 간호
사와 작게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 니 다시 강진을 보았다.
“혹시 임현기 환자?”
“맞습니다.”
“아! 그 식당 사장님이시구나.”
“저를 아세요?”
“임현기 환자 처음에는 저희 과 에 있었거든요. 사장님 이야기 보호자분에게 많이 들었어요. 사 장님이 초동 조치를 아주 빨리해 서 환자가 살았다고 하시더라고 요.”
“제가 한 것이 뭐가 있나요. 그 냥 신고만 한 것뿐이죠.”
“그 신고가 살린 거예요. 그때 임현기 환자 정말 위험했거든요. 조금만 늦었거나, 그날 간 분이 최임수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정 말……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미소 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
기분이 좋네요.”
“기분 좋으셔도 돼요. 골든타임 놓쳐서 결과 안 좋으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간호사의 말에 강진이 웃다가 그녀를 보았다.
“그런데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 요.”
“여기야 늘 바쁘니까요. 선생님 께 연락은 해 보겠는데 워낙 바 쁘신 분이라 시간이 안 되실 수 도 있어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은 들고 온 쇼핑백을 그녀 에게 내밀었다.
“이건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온 김밥인데…… 여기 있는 선생님 들 보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네 요.”
“김밥요?”
“제가 만든 겁니다. 드셔 보세 요.”
“그래도 선생님 드리려고 온 건 데……
“양 많으니 이따가 선생님 오시
면 나눠 드세요.”
의사 선생님 한 명 먹으라고 싼 것이 아니라서 양이 꽤 많았다.
“그럼 고맙게 먹을 게요.”
강진의 말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여기 임현기 환자 사 고 때 신고했던 식당 사장님이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오셨습니 다. 네…… 아…… 네.”
통화를 끝낸 간호사가 강진을 보았다.
“지금 진료 중이시라 삼십 분 정도는 걸린다는데요.”
“아,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
고
강진은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김밥 입에 맞으시면 저희 가게 에 식사하러 오세요. 고생들 하 시는데 제가 몸보신 음식으로 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 진짜요?”
“그럼요. 그리고 저희 식당 인 터넷에 조금은 소문난 맛집입니
다.”
강진은 명함을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려 보이고는 한쪽에 있는 의 자에 가서 앉았다. 그에 간호사 가 그를 한 번 보고는 명함을 보 았다.
그러다가 슬며시 핸드폰으로 검 색을 하고는 옆에 있는 간호사들 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마도 강진의 가게 이름을 검색해 서 보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은 주위를 보다가 아까 의자에 앉아 있던
귀신의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귀신은 강진을 힐끗 보고는 주 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 줄 안 것이다. 그런데 주위에 아무도 없자 놀란 눈으로 다시 강진을 보았다.
강진은 직접 설명하는 대신 배 용수를 빤히 보았다. 그에 배용 수가 한숨을 쉬고는 강진에 대한 것을 설명해 주었다.
“아! 저승식당.”
“들어 보셨나 보네요?”
“여기 오고 가는 귀신들 중에 저승식당 다니는 분이 있어서 들 어 봤습니다. 귀신한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고 하던 데……
“귀신한테도 사람한테도 맛있는 음식을 합니다. 다만…… 선생님 은 여기 지박령이라 저희 가게에 는 오지 못하실 것 같네요.”
강진의 말에 귀신이 작게 한숨 을 쉬었다.
“죽어도 참 지랄 맞게 죽어서 느.. ”
그런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말 했다.
“그래도 여기에는 장례식장이 있으니 식사는 하실 수 있잖아 요.”
“매일 먹는 그거……
맛이 있겠냐는 듯 고개를 저은 귀신이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사장님은 여기에 왜 온 겁니까? 누구 병문안 왔습니까?”
“네.”
“누구요? 내가 여기 오래 있다 보니 병원 사정은 누구보다 빤하 거든요. 아! 담당의가 누구입니 까?”
“담당의요?”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마찬가지 지만 여기에도 실력 없는 사람 많거든요. 실력 없는 의사가 담 당이면 환자가 고생 많이 하지. 누군지 말하면 내가 실력 있는 의사인지 아닌지 말해 줄게요.”
“최임수 선생님요.”
“아! 수혈팩.”
귀신도 수혈팩이라 부르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실력이 아주 좋은 선생님이던 데요.”
“실력은 아주 좋지요.”
“실력은? 무슨 문제가 있나요?”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아 강진이 묻자, 귀신이 피식 웃으며 말했 다.
“성격에 문제가 있어요.”
“성격요?”
“의사라면 가져도 되는 성격이 기는 한데…… 의사도 직장인이 잖아요.”
“그건 그렇죠.”
직접 개업하지 않는 이상은 병 원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니 의 사도 엄연한 직장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