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화
강진은 오혁과 이강혜가 이야기 를 나누는 것을 조금 떨어져서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떨 어져 있던 강진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1시가 되기에는 시간이 좀 남아 있었 다.
‘일단 누나 집까지 데려다주 고…… 가게로 가면 시간이 될
것 같다.’
귀신은 어디에도 있다. 길을 가 다가 무섭게 생긴 귀신을 보게 되면 이강혜가 놀랄 것이니 데려 다 주려는 것이다.
‘누나 집이 공원 근처라고 했었 지.’
이강혜 집에 가 본 적은 없지 만, 이 근처라는 말을 들었기에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이강 혜에게 다가갔다.
이강혜는 환하게 웃으며 오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는 좀 하셨어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이야기는 더 해야지. 그동안 못 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죠?”
이강혜는 다시 오혁을 보며 말 했다. 그에 오혁도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그동안
당신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 얼마 나 많았는데.”
귀신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지 금의 상황을 너무나도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는 이강혜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이 상황…… 당황스럽지 않으 세요?”
“많이 당황스러워. 그리고 꿈인 것 같아.”
“무섭지는 않아요?”
“무섭기는. 우리 오빠가 이렇게
있는데.”
이강혜의 표정에 두려움은 없었 다. 그녀는 그저 환하게 웃을 뿐 이었다.
그에 강진이 이강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집에 가시죠.”
“집에? 나는 오빠하고 여기 더 산책하고 싶은데?”
“저 있을 때 집에 가시는 것이 좋아요.”
“왜? 아……
강진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 제야 알아챈 듯 이강혜가 말했 다.
“귀신…… 보니까?”
“네.”
“그럼 이 근처에도 있어?”
말을 하며 이강혜가 주위를 둘 러보려 하자, 강진이 고개를 저 으며 그녀를 잡았다.
“매형만 보세요.”
“귀신…… 많이 무서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슬쩍 주 위를 보았다. 귀신이라고 다 무 섭게 생기지는 않았다. 주위에 보이는 귀신 중에는 평범해 보이 는 귀신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사고로 죽었는지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다니는 귀신도 있었다.
‘확실히 지금 저분은 누나가 보 기 힘들겠다.’
주위를 확인한 강진은 다시 이
강혜를 보았다.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던 이강혜 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귀신 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다가 강 진의 말에 뒤늦게 자각한 것이 다.
“매형 무서워요?”
“오빠는 안 무섭지.”
이강혜가 오혁을 보며 웃는 것 에 강진이 말했다.
“그럼 귀신도 안 무서워요. 그 냥…… 조금 무섭게 생겼을 뿐이
에요.”
“그래?”
“귀신은 그냥 사람이 변한 거예 요. 그러니 무서워하실 필요 없 어요.”
“귀신에 대해서 잘 아는구나.”
“매형이 저에 대해서 말을 안 해 줬어요?”
“우리 둘이 이야기할 것이 얼마 나 많은데 언제 네 이야기까지 하고 있겠어.”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잘 하셨어요. 그럼 가면서 이 야기 나누세요.”
강진이 오혁의 휠체어를 잡으려 하자, 이강혜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할게.”
이강혜의 말에 오혁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걷다 보면 귀신을 보게 될 거 야. 그래도 겁먹지 마. 네 옆에는 내가 있으니까.”
w o ”
흐.
걸음을 옮기던 이강혜가 오혁을
보았다.
“오빠는 귀신 많이 봤어?”
“나도 반은 그쪽하고 비슷해서
많이 보지.”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눈을 찡
그렸다.
“오빠가 무슨 귀신이야. 이렇게
살아 있는데.”
이강혜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자
신의 몸을 턱짓으로 가리키자 오 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네. 나는 살아 있지.”
이강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 누며 걸어가던 오혁이 강진을 보 았다.
“그리고 강진아.”
“네.”
“나 이렇게 강혜하고 이야기하 게 해 줘서 고맙기는 한데…… 너한테 문제 생기는 것 아니냐?”
“문제요?”
강진이 보자 오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보통 영화를 보면 이런 건 불 법이고 뭔가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 같던데, 문제 생기는 것 아니야?”
강진은 한 차례 입맛을 다시고 는 말했다.
“사실 저한테 문제 되는 것은 없어요.”
“문제가 없어?”
“나 걱정할까 봐 없다고 하는 것 아니야?”
이강혜도 걱정을 하는 것에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저에게는 아무런 문제 가 없어요.”
“그럼 이 좋은 걸 왜 사람들이 몰라?”
이강혜의 물음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문제는…… 누나에게 있어요.”
“ 나?”
강진의 말에 오혁의 얼굴이 굳 어졌다.
“뭐야? 우리 강혜에게 불이익이 생긴다는 거야? 그런 거라면 나 를 못 보게 했어야지.”
이강혜에게 문제가 생길까 싶어 오혁이 급히 말을 하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럼 뭐가 문제인데?”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는 거요.”
“귀신?”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일 중 하나가 귀신이니까요.”
“아……
오혁이 눈을 찡그리자,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자고 일어나면 더 이상 귀신을 볼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 나는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 니…… 앞으로의 삶에 영향이 있
을 겁니다.”
“영향이면 어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 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저승이 있 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고요.”
“저승?”
“착하게 살면 천국 가고 나쁘게 살면 지옥 간다고 하잖아요. 그 게 실존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 니…… 앞으로 누나 인생이 지금
과 같지는 않을 거예요.”
“휴우! 난 또 뭐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강혜의 모습에 강진이 의아해하며 물었 다.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
“귀신하고 저승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저승이 있다는 말 들으니 나는
오히려 안심이 되는데.”
“안심요?”
“나 하고 오빠 나쁘게 살지 않 았으니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그 말이 맞네요.”
오혁이 사고 나기 전까지 어떻 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이강혜 는 강진이 보기에 좋은 사람이었 다.
대가를 바라고 아이들 밥 챙겨 주는 것도 아니었고, 사업가로서 도 수입보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기술을 만드니 말이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L전자 사 회봉사와 기부 내용을 봐도…… VIP 까지는 몰라도 저승에서도 배를 곪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이강혜는 오혁을 보았다.
“우리 오빠 보면서 이렇게 이야
기 나눌 수 있다면…… 감당할 수 있어.”
“괜찮겠어?”
“괜찮아. 그리고 귀신 계속 보 는 것도 아……
말을 하던 이강혜가 강진을 보 았다.
“내일 아침이면 귀신을 못 보는 거지?”
“길면 그쯤 되고 짧으면 한두 시간 정도일 거예요.”
“한두 시간……
이강혜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말했다.
“그럼…… 그 후에는 오빠도 못 보는 거……겠지.”
“네.”
“이 커피…… 다시 마시면?”
이강혜가 자신의 손에 들린 커 피를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귀신은 자주 봐서 좋을 것이
없어요.”
“귀신이 아니라 우리 오빠야.”
“정말 보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 을 때…… 그때는 드릴게요.”
‘최임수 선생님은 저승 음식 꽤 드신 것 같은데도 평소엔 귀신을 보지 못하시니 몇 번은 괜찮겠 지.’
최임수는 한 번 먹으면 일주일 정도 귀신을 볼 정도로 JS 음식 을 많이 먹었다. 그러나 JS 음식 을 먹지 않으면 이전과 같이 귀
신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니 캔커피 조금 마시는 정 도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도 자주 먹는 건 안 좋으니 정말 이강혜가 힘들어할 때만 만나게 할 생각이었다.
걸음을 옮기던 강진은 오혁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강혜를 보다 가 물었다.
“그런데 저에 대해서는 안 궁금 하세요?”
“너?”
“제가 어떻게 귀신을 보는지, 그리고 누나가 먹은 것이 뭔지 같은 거요.”
“궁금해.”
“그런데 안 물어보세요?”
“지금은…… 오빠에게만 신경을 쓰고 싶어.”
오혁을 보던 이강혜가 강진을 보았다.
“내일 궁금한 거 다 물어볼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 다가 말했다.
“저기 가로등 앞에 서 있는 분 이 귀신이에요.”
귀신이라는 말에 이강혜가 멈칫 했다.
“그 이야기 왜 해?”
“보시라고요.”
“보라고?”
“저 있을 때 봐야 적응이 되시
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는 숨을 고 르고는 가로등 쪽을 보았다. 그 곳에는 정장을 입은 귀신이 이쪽 을 보고 있었다.
“이 사장.”
자신을 보며 손을 드는 귀신에 게 강진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메뉴 뭡니까?”
“저희야 손님이 원하는 음식 해 드리는데 메뉴가 따로 있나요.”
“하하하! 그것도 그러네. 오혁 씨도 오랜만입니다.”
“그러네요.”
강진과 오혁이 익숙하게 귀신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이강혜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가로등을 지나치더니 힐끗 뒤를 보았다.
그렇게 귀신을 한 번 보고는 강 진에게 물었다.
“귀신……하고 친해?”
“저희 가게 단골 중 한 명이에
요.”
가게 단골이라는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신이 가게 단골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 는 것이다.
하지만 이강혜는 궁금함을 미뤄 두었다.
‘지금은 오빠만……
이강혜가 속으로 생각을 할 때, 강진이 오혁을 보았다.
“그런데 형도 아시는 분이세 요?”
“나야 우리 집 근처라서 오다가 다 자주 봤지. 저 귀신은 저기 근처에서 자주 돌아다니니까.”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 았다.
“왜요?”
“귀신이 돌아다니는데 무슨 이 유 있나. 그냥 저기가 마음에 드 나 봐.”
둘의 대화를 듣던 강진이 이강 혜에게 말했다.
“방금 그분 안 무서웠죠?”
“응? 응.”
방금 있던 귀신은 조금 불투명 하게 보이는 것 빼고는 그냥 일 반 회사원 같았다. 게다가 말하 는 것도 일반 사람 같았고 말이 다.
그래서 강진이 그 중년 귀신을 보라고 한 것이었다. 귀신 중에 서는 그래도 곱게 죽은 편이라 보기에 무섭지 않으니 말이다.
“귀신은 죽었을 때 모습으로 다 녀서 사고로 죽은 사람이 아니면 일반 사람하고 별 차이가 안 나
요.”
“그렇구나.”
이강혜는 가로등에 있는 귀신을 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귀신이라고 해서 두렵다는 생각 이 들었다. 영화에서 보던 귀신 이 떠올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보니 그냥 좀 뿌연 사람의 모습이라 안도한 것이다.
게다가 강진하고 오혁이 친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까지 봐서 더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강진은 무섭게 생기지 않은 평범한 귀신 들을 보여주었고, 무섭게 생긴 귀신이 보이면 이강혜가 최대한 그쪽을 보지 못하게 했다.
초반부터 끝판왕들을 보여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공원에서 가까운 이강혜의 빌라 에 도착한 강진은 집을 보며 말 했다.
“들어가세요.”
“강진아…… 고마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아…… 형 맛있는 것 해 주세 요.”
“밥? 오빠 밥을 먹을 수가 있 어?”
이강혜가 놀란 눈으로 오혁을 보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사상이 괜히 있는 건 아니에 요. 오랜만에 누나가 밥 맛있게 해 주고 같이 한잔하세요.”
“그래도 돼?”
“그럼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오혁을 멍하니 보다가 급히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휘이 익!
하지만 자신의 손이 그의 손을 뚫고 지나가자 아쉬운 듯 오혁을 보며 말했다.
“오빠, 우리 빨리 올라가서 밥 해 먹자.”
“그래.”
오혁이 기분 좋게 웃자, 이강혜 는 휠체어를 밀어 빌라 안으로 들어가다가 강진에게 손을 흔들 어 주었다.
그에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마 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매형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 게끔 만들어 주세요.’
무슨 병이든 낫고 싶다는 생각 과 살고 싶다는 염원이 가장 중 요한 치료제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