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695화 (693/1,050)

695 화

빌라 앞에서 강진은 위를 올려 다보고 있었다. 빌라 한쪽에서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그곳이 이강혜의 집인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손에 들린 커피 캔을 보았다.

“잘 된 일이겠지?”

충동적으로 이강혜에게 커피를 마시게 한 것이 잘한 일인지, 못 한 일인지를 잠시 생각하던 강진

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일 이었다.

“내일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오늘 일을 걱정하면 뭐 하겠어. 그리고 오늘은 오늘대로 해피한 데.”

최소한 이강혜는 오혁을 보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집 창가에서 그림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오혁과의 식 사를 위해 음식을 하는 모양이었 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함께 먹는 저녁밥. 비록 하루뿐이라도 이강혜에게는 충분히 행복한 시 간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집으 로 걸음을 옮겼다.

이강혜가 한 음식과 배달로 시 킨 돼지껍데기와 닭발로 차려진 밥상을 보던 오혁이 말했다.

“당신하고 이렇게 닭발을 같이 먹게 될 줄 몰랐네.”

오혁은 웃으며 닭발을 들었다.

스르륵!

불투명한 닭발이 그의 손에 잡 히는 것에 이강혜가 신기한 듯 그것을 보았다.

“음식을 그렇게 먹는 거야?”

“귀신, 아니 영혼은 진짜 손발 이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음식 을 직접 들고 먹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어.”

오혁이 웃으며 닭발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렇게 닭발만 허공에 두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보일 텐데.”

“신기하다. 귀신, 아니 영혼도 진짜 밥을 먹는구나.”

이강혜는 웃으며 그의 앞에 놓 인 잔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쪼르륵! 쪼르륵!

그녀는 자신의 잔에도 소주를 따르고는 잔을 들었다.

“우리 건배해.”

“그래. 건배하자.”

오혁도 소주잔을 들어서는 가볍 게 이강혜의 잔에 가져다 댔다. 불투명한 소주잔과 이강혜의 소 주잔이 서로 살짝 붙었다가 떨어 졌다.

한 잔씩 마신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보았다.

이강혜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짓던 오혁은 옆에 앉아 있는 자 신의 몸을 보았다.

“이놈■아, 빨리 건강해져서 눈을 뜨고 진짜 잔으로 짠해야지.”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웃었다.

“그놈이 당신이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오혁은 다시 이강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움직 여서…… 너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나는 당신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

로도 너무 행복해.”

이강혜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오혁이 물었다.

“내가 이렇게 있어서 힘들지 않 아?”

“안 힘들어.”

“내가 이렇게 있어서 외롭지는 않아?”

“외롭지 않아. 당신이 있으니 까.”

“나는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이

렇게 누워만 있는데…… 그래도 외롭지 않아?”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다.

“그냥 당신은 잠이 든 숲속의 왕자님일 뿐이야. 왕자님이 있으 면 공주는 외롭지 않아.”

왕자와 공주라는 말에 오혁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잠에서 빨리 깨어나야겠다.”

“꼭 그렇게 해야 해. 당신이 누 워만 있어도 힘들지도 않고 외롭

지도 않은데……

“않은데?”

“심심하단 말이야.”

이강혜의 말에 오혁이 웃었다.

“내가 잘못했네. 우리 강혜 심 심하게 하면 안 되는데 말이야.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어!”

개구쟁이처럼 과장 섞어 말을 하던 오혁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 알았어. 오늘부 터 건강해지도록 노력! 하겠어!”

웃으며 말한 그는 소주잔을 가 리켰다.

“이거 비우고 새로 따라줘야 해.”

“아! 알았어.”

이강혜는 그의 소주잔에 담긴 소주를 자신이 마시고는 새로 따 라주었다. 그녀는 잔을 채워주면 서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잠 깐 궁금했지만, 남편의 부탁이라 그냥 따랐다.

새로 채운 잔을 테이블에 내려

놓던 이강혜는 문득 오혁을 보았 다.

“ 잠깐.”

“왜?”

“그럼 나 화장실에 있을 때도 내 옆에 있었어?”

“화장실?”

오혁이 무슨 말이냐는 듯 보자 이강혜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 볼일 볼 때 말이야.”

“나를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해. 강진이한테 물어봐.”

“강진이?”

“당신 일하러 가거나 밖에 나갈 때에는 절대 당신 안 따라다녔 어.”

“안 따라다녔어?”

“그럼 당연하지. 당신도 프라이 버시가 있는데 내가 당신 따라다 니면 안 되잖아. 그래서 당신 화 장실 갈 때도 절대 안 따라 들어 갔어.”

“ 진짜야?”

눈을 찡그리며 묻는 이강혜를 보며 오혁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살며시 말했다.

“당신 혼자 들어갈 때는 안 들 어갔는데…… 나 데리고 들어갈 때는 들어갔어.”

“ 무슨......"

말을 하던 이강혜의 얼굴이 아 까보다도 더 붉어졌다.

“당신 목욕시킬 때 따라 들어온 거야?”

“그건 어쩔 수 없지. 나 목욕시

키는데 나도 봐야지.”

오혁의 말에 이강혜는 손부채질 로 얼굴의 열을 식혔다. 알몸으 로 남편 목욕시키던 자신의 모습 을 오혁이 봤다고 하니 부끄러운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이강혜를 보며 오 혁이 웃었다.

“부부인데 뭐 어때. 그리고 우 리 같이 씻기도 했잖아.”

“그건 같이 씻는 거고. 이 건……

이강혜는 차마 말을 끝까지 하 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 같이 씻는 것과 목욕을 시켜 주는 건 다른 것이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마.”

“부끄러워?”

“몰라.”

대답을 회피한 이강혜가 소주를 마시자 오혁도 웃으며 소주를 마 셨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을 보 았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한 몸으로 있어야겠다. 절대 안 나갈 거니 까. 나 내보내지 마라. 이놈의 몸 뚱이야.’

이강혜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강혜와 이런 좋은 시간 을 더 많이, 가능하다면 평생 보 내고 싶었다.

*  *  *

새벽 1시, 저승식당 영업이 끝 나자 귀신들이 하나둘씩 가게를 나섰다.

“또 올게요.”

“잘 먹고 갑니다.”

웃으며 가게를 떠나는 귀신들을 배웅하던 강진은 데이비드를 보 았다.

“음식 어떠셨어요?”

강진의 말에 데이비드가 웃으며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가리켰 다. 그곳에는 소스만 남아 있는

빈 접시가 여럿 놓여 있었다.

“이거면 답이 될 것 같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강진의 말에 데이비드가 배용수 를 보았다.

“음식이 정말 좋네요.”

“손님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입 니다.”

“특히 햄버거...... 와...... 정말 먹는 순간 제 혈관이 꽉 막힐 정 도로 맛이 좋았습니다.”

혈관이 꽉 막힐 것 같다는 표현 에 강진이 웃었다.

‘하긴, 엄청나기는 했지.’

소금과 허브로 양념을 해 베이 컨처럼 만든 대패 삼겹살을 잔뜩 넣고 만든 햄버거는 고칼로리에 고지방이었다. 거기에 치즈도 여 럿 들어갔으니....

강진에게 먹으라고 하면 반절도 못 먹고 김치를 꺼내 먹을 만큼 기름진 햄버거였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그것을 두

개나 먹고는 맛있다고 엄지를 추 켜세운 것이다.

“미국 음식이 고기만 잘 만들면 반은 성공이죠.”

원래라면 ‘미국 음식 뭐 어렵습 니까? 그냥 굽고 튀기면 끝이 지.’라고 할 배용수지만 손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그렇게 말할 수 없기에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두 귀신과 강진이 이야기를 나 눌 때, 2층에서 허연욱이 슬며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러 고는 최임수와 함께 밑으로 내려

왔다.

“이야기 잘 하셨어요?”

최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의 어깨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요즘 어깨가 안 좋았는데 허연 욱 교수님에게 침을 맞았더니 아 주 좋습니다.”

“침을 맞으셨어요?”

“직접 맞아 보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으니까요. 여기저기 오 늘 침 많이 맞았습니다.”

최임수의 말에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수술을 시작하면 끝나기 전까 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의사 들만큼 몸이 안 좋은 사람들도 없지요. 스트레칭 자주 하시고 가끔 침을 좀 맞으십시오.”

허연욱은 끼고 있던 비닐장갑을 벗어 강진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허연욱이 내미는 비닐장갑을 받 은 강진은 그것을 배용수에게 주

고는 최임수를 보았다.

“아직도 귀신이 보이세요?”

“지금은 보이기는 하는데 목소 리가 살짝 희미하게 들리는 것이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 네요.”

혹여 JS 음식을 먹은 게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던 강진은 안심한 얼굴로 작은 비닐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이미 귀신을 알고 있 고, 귀신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 고 오히려 안쓰러워하시니 이걸

드리겠습니다.”

“이건‘?”

강진이 건넨 것은 묶여 있는 비 닐장갑이었다. 손가락 부분마다 사탕 같은 것이 들어 있었고, 그 사탕들이 빠져나오지 않게끔 손 바닥 부분을 하나로 모아 묶은 것이었다.

“일하시다 보면 귀신이나 영혼 을 봐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 비닐은 JS 비닐이 아니라 일반 비닐장갑이니 뜯어 서 쓰시고 버리시면 됩니다.”

최임수가 비닐장갑을 받자 강진 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사람이 귀 신에 대해 아는 건 좋지 않습니 다. 모르는 편이 가장 좋은 세상 이니까요.”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말라는 말씀이군요.”

“네.”

강진의 말에 최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사람이 귀신에 대해 알면 안 좋다 생각하는 쪽입니다.”

자신이야 귀신보다도 더 무섭고 끔찍한 모습으로 실려 온 환자들 을 많이 봤기에 별 상관이 없지 만, 일반인들은 버티기 힘들 것 이라 생각했다.

뉴욕 소재의 병원에서 근무할 때 봤던 귀신 중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있는 자신마저도 오금을 저리게 만든 귀신들도 있었고 말

이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최임수가 가게를 나가자 데이비 드가 강진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이강혜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

다.

‘매형과 좋은 시간을 보냈나 보 구나.’

물론 오혁의 상태가 상태인 만 큼 일반적인 남녀 간의 좋은 시 간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사랑 하는 사람과 대화를 했으니 좋은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강진은 이강혜 의 뒤에 서 있는 오혁을 보며 고 개를 갸웃거렸다.

‘왜 같이 오시지?’

이강혜가 일을 할 때에는 따라 다니지 않던 그가 낮 시간에 곁 에 있으니 의아한 것이다.

‘어제 봐서 그런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 강혜가 가게를 보며 말했다.

“지금이면 점심시간 끝난 거 지?”

“네.”

“그럼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이강혜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밖에 놓아둔 아 크릴판을 챙기러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가게 앞에 도원규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안 들어 오시……

말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하긴, 귀신에 대해 물어보려 오 셨을 텐데 실장님이 들어오시면 곤란하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도 원규가 말했다.

“긴한 이야기를 할 게 있다고 자리를 피해 달라 하셔서요.”

“그럼 시원한 음료라도 하나 드 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들어가 보세 요.”

도원규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크릴판을 챙겨 가 게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가 게 문을 잠근 강진이 이강혜 옆 에 앉았다.

“어제 좋은 시간 보내셨어요?”

“좋은 시간이었어. 정말 오랜만 에.”

이강혜는 웃으며 옆을 보았다. 정확하게 오혁이 있는 곳을 보는 것에 강진이 걱정스러운 듯 그녀 를 보았다.

“설마 지금도 매형이 보이는 거 예요?”

강진의 물음에 이강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보여.”

“그런데 어떻게 혁이 형 있는

곳을 정확하게 보세요?”

“내가 내 왼쪽에 있으라고 했거 든 ”

“아……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거 야?”

이강혜의 물음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정말 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두 분 이야기만 하셨 나 보네요.”

“당연하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이야기하고 싶 었으니까.”

미소를 짓는 이강혜의 모습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

“잘 하셨어요. 즐거운 시간은 금방 지나가니 최대한 즐겁게 보 내야죠.”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래서 어 떻게 된 거야?”

강진은 이강혜에게 저승식당에 대한 것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

었다. 물론 저승에 관한 것은 최 대한 짧고 모호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귀신을 본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걸 알게 된 상황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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