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화
강진의 이야기를 들은 이강혜가 놀란 눈을 한 채 물었다.
“그럼 네가 귀신에게 밥을 주는 요리사라는 말이야?”
“맞아요.”
“대단하다.”
“대단하기는요. 그냥 사람 손님 도 받고 귀신 손님도 받는 거예 요.”
“그래도 대단하지. 귀신한테 밥 을 준다니……
말을 하던 이강혜가 문득 그를 보았다.
“전에 VR 모델 고등학생들 혹 시?”
“맞아요. 그 아이들도 저희 가 게 손님들이었어요.”
“그런데 왜…… 그 부모님들에 게 아이들 보게 해 주지 않았어? 그분들도 자식들을 보면……
이강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죽
은 자식을 본 부모는 기쁠까, 아 니면 슬플까.’하는 생각이 든 것 이다.
오혁은 죽은 것처럼 숨만 쉬고 있기는 하지만, 죽은 것은 아니 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말 죽었으 니…… 그런 자식을 보는 부모들 의 마음이 어떨지 감이 오지 않 지 않았다.
애초에 귀신이 된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신을 본다는 게 좋기만 한 일은 아니라서요.”
“그렇겠지?”
“그리고…… 애들 보면 그리움 만 더 커질 것 같기도 하고, 자 식이 귀신 된 것 보면 얼마나 더 가슴이 아프시겠어요.”
“그 말이 맞네. 하지만 나는 강 진이가 오빠 보게 해 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
웃는 이강혜를 보던 강진이 오 혁을 보았다. 오혁도 고맙다는
둣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런 오 혁을 잠시 보던 강진이 말했다.
“저 매형하고 잠시 이야기를 좀 했으면 하는데요.”
“나 들으면 안 되는 말이야?”
“조금요. 이쪽 계통 일이라서 누나는 들어서 좋을 것이 없어 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 잠깐만 나가 있어.”
오혁이 한 말을 지금의 이강혜 는 듣지 못했다. 커피를 마신 효 과는 아침에 사라졌으니 말이다.
강진이 오혁이 한 말을 전해 주 자 이강혜가 의아한 듯 그를 보 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진은 이강혜에게 잠시 기다리 라 하고는 주방에 들어가 맥주잔 에 시원한 오미자차를 따라서 가 지고 나왔다.
“실장님하고 잠시 드시고 계세 요.”
“알았어.”
이강혜가 잔을 들고 나가자 강 진이 문을 열어주고는 다시 닫았 다. 그러고는 오혁에게 다가간 강진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 요?”
강진의 물음에 오혁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어제 느낀 건데…… 너 내 생 각을 알고 있니?”
“네.”
“그렇구나.”
오혁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 다.
“그래서 강혜에게 저승 음식을 준 거니? 나를 설득하라고?”
오혁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그리고 설득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럼?”
“누나가 형을 보고 웃어 주면
형은 살고 싶어 할 테니까요. 아 니에요?”
강진의 물음에 오혁이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었다.
“맞아. 어제 강혜가 나한테 미 소를 지어 주니…… 정말 죽고 싶지 않더라. 저승사자가 쫓아오 면발로 뻥 차버려서라도 살고 싶었어.”
오혁은 이강혜를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강혜하고 같이 온 이유
는…… 너한테 고맙다는 말과 다 음에 깨어나서 다시 보자는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야.”
“작별 인사요?”
“형 오늘부터는 몸에 붙어 있을 거야. 그리고 최대한 살려고 노 력할 거야. 어떻게든 이 빌어먹 을 몸 다시 깨어나도록 집중하고 또 집중할 거야.”
오혁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 었다. 다행히 살려는 의지가 불 타오르고 있었다.
“제가 아는 분이 그러는데 환자 한테는 살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 하대요.”
“살 거야. 반드시 꼭 살아서 우 리 강혜 닮은 딸도 낳고 나 닮은 아들도 낳고 애들 목마 태우고 소풍도 갈 거야.”
단호한 오혁의 말에 강진이 그 를 보다가 말했다.
“소풍 갈 때 도시락은 제가 싸 드릴게요.”
“하하하! 그래! 꼭 네가 도시락
을 싸 줘라.”
“그럼 다음에 볼 때 다시 인사 를 해야겠네요.”
“우리 사이에 인사는 무슨.”
“아니, 인사를 해야죠. 처음 보 게 될 텐데.”
“처음?”
무슨 소리냐는 듯 보는 오혁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영혼이었을 때의 기억은 깨어 나면 없어져요.”
“그래?”
“영혼일 때 뵈었던 분이 있는데 깨어나서는 저를 못 알아보더라 고요.”
“아……
강진의 말에 오혁이 아쉽다는 듯 그를 보았다.
“너를 오랫동안 본 건 아니지 만, 이 좋은 기억이 사라진다는 게 아쉽네.”
“그 아쉬움 정도는 날려 버릴 좋은 기억을 다시 만들면 되죠.”
“그것도 그러네.”
작게 웃은 오혁이 강진을 보았 다.
“형이 나중에 깨어나면 너 좋은 선물 하나 해 줄게.”
“선물이라…… 좋죠. 저는 참고 로 작지만 비싼 거나, 크지만 비 싼 것들을 좋아합니다.”
강진의 말에 오혁이 피식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형이 깨어나면 크고 굴 러 가면서 비싼 걸로 선물해 준
다.”
“설마 차요?”
“기대해. 그럼 형 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혁의 모습 에 강진이 물었다.
“누나하고 같이 안 가시고요?”
“하루라도 빨리 몸 회복하려면 몸에 들어가 있어야지. 강혜한테 는 먼저 간다고 이야기해 줘.”
스르륵!
문을 뚫고 가 버리는 오혁의 모
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가서 열심히 몸 회복 하겠다는 생각만 하세요. 그럼 몸이 형 용서해 줄지도 모르죠.”
그동안 영혼을 밀어냈던 몸이 쉽게 오혁을 받아줄지 모르겠지 만 열심히 빌고 용서를 구하면 언젠간 받아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잘못 저 지른 남편이 아내에게 용서 구하 는 것 같네.”
집에서 쫓겨난 남편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집에 돌아가는 그 런 것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이강 혜에게 오혁이 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에 살짝 놀라던 이강혜는, 몸 을 빨리 회복시키려고 그러는 것 이란 강진의 이야기를 듣고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행동력이 있기는 해.”
“형 옆에서 이야기 자주 해 주 세요. 누나 목소리만큼 형한테
가장 좋은 치료제는 없을 겁니 다.”
“목소리라…… 알았어. 내가 자 주 이야기하고 많이 안아주고 할 게.”
이강혜는 강진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도원규와 함께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살짝 웃었다.
“형, 꼭 잠에서 깨어나세요.”
* * *
일요일 아침, 강진은 식당 직원 들과 함께 행복 보육원으로 가고 있었다.
이번엔 강상식과 황민성 둘 다 일이 있어서 빠졌다. 두 사람 다 미안해했지만 강진은 웃으며 말 했다.
-놀러 가는 것이 아무리 좋아 도 일을 다 해야 놀러 갈 수 있 는 겁니다. 일에 지장이 될 정도
로 놀면 되겠어요? 일 잘 보시고 다음 주나 다다음 주에 시간 될 때 같이 가요.
자신의 일을 미루면서까지 봉사 하러 가는 것은 과한 것이니 말 이다.
한편으론 그 두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면 그만큼 혜 택을 받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 었다.
이러한 탓에 오늘은 강진과 한
끼식당 식구들만 보육원에 들어 서고 있었다.
부릉!
보육원 안에 차를 몰고 들어가 자 곧 아이들이 다가왔다.
“와! 푸드 트럭 왔다.”
“아저씨!”
아이들이 모여드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얘들아 안녕.”
네!”
“오늘은 뭐해 줄 거예요?”
“오늘은 순대하고 어묵꼬치, 그 리고 떡볶이야.”
“오늘은 통닭 없어요?”
한 아이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너희들이 통닭을 얼마나 좋아 하는데. 당연히 통닭도 있지.”
“와!”
아이들이 웃으며 좋아하는 것을 보던 강진은 재료들을 하나씩 꺼 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 몇이 다가왔다.
“저희가 도울게요.”
“그래? 그럼 여기에 물 좀 담아 다 줄래?”
“더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 괜찮아.”
강진이 물통을 주자, 아이들이 그것을 들고는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왔다.
물을 필요한 곳에 부은 강진이 푸드 트럭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
게 말했다.
“놀다가 이따가 부르면 와.”
“네.”
아이들이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 자 강진이 한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헛개와 웃으며 이쪽을 보는 감초 어른이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감초 어른이 고 개를 끄덕였다.
“자주 오면 좋겠는데…… 바쁜 가?”
감초 어른의 말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제가 봉사 다니는 곳이 세 곳 이라서요. 여기에만 매주 오기가 힘드네요.”
“아…… 그렇구먼. 좋은 일 하 네.”
감초 어른의 말에 강진이 헛개 를 보았다.
“헛개 씨도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발로 땅을 툭툭 치는 시늉을 하 는 헛개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여기 올라오세요.”
“ 나?”
“헛개 씨 주려고 제가 초콜릿을 가져왔습니다.”
“초콜릿?”
그게 뭐냐는 듯 보는 헛개를 보 며 강진이 웃었다.
“안 드셔 보셨을 것 같아서 가
져왔는데, 역시 그러셨군요.”
“그럼 여기서 먹으면 되지, 뭘 거기까지 올라오라고 해?”
헛개는 퉁명하게 말을 하면서도 슬며시 푸드 트럭 위로 두둥실 올라왔다. 그런 헛개를 보던 강 진이 주위를 한 번 보고는 말했 다.
“죄송한데 몸을 좀 낮춰 주시겠 어요?”
“낮춰? 여기서 더?”
좁은 푸드 트럭 안이라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여기에서 몸을 더 낮추려면 엎드리거나 눕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제가 초콜릿을 가져왔는데…… 이거 드시는 거 사람들이 보면 안 돼서요.”
“귀신이 음식을 먹는데 그걸 어 떻게 사람이 보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헛개를 보고 강진이 웃으며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 있는 초콜릿을 꺼냈다.
“이건 귀신들이 먹는 거라서 귀
신이 만지고 직접 먹을 수 있거 든요.”
강진은 슬쩍 초콜릿을 뜯어서는 내밀었다.
“아 해 보세요.”
헛개가 초콜릿을 보고는 입을 벌리자 강진이 그것을 입에 넣어 주었다.
초콜릿을 입에 넣은 헛개의 얼 굴에 놀람이 어렸다.
“이건......"
“맛있죠.”
“너무 달고…… 달아.”
헛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초콜릿 중 카카오가 많이 첨가 가 되어 있는 것은 단맛보다 쓴 맛이 강하지만, 카카오가 조금 들어 있는 것은 보통 초콜릿 맛 이었다.
“맛있죠?”
“너무 맛있어. 세상에 이런 맛 이 있다니. 말 그대로 입에서 녹
는 맛이야.”
“그야 초콜릿이니까요.”
강진은 초콜릿을 그의 손에 쥐 여 주었다.
스윽!
자신의 손에 초콜릿이 들리는 것에 헛개가 놀란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직접 초콜릿을 만질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 기 때문이었다.
“초콜릿 조금 내려 주실래요?
애들이 볼 수 있어서요.”
강진의 말에 헛개가 급히 초콜 릿을 밑으로 내렸다가 감초를 보 았다.
“아……
잠시 입맛을 다신 헛개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도 이거 드셔 보셨소?”
헛개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 는 것에 감초가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 먹는 건 봤지만 먹어 본 적은 없구나.”
“아이들이 먹는다고? 이 맛있는
“자주는 안 먹지만 가끔씩 사서 먹더구나.”
“이거 엄청 비싼 것 아니오?”
“그리 안 비싼 것 같던데?”
“이렇게 맛있는 것이 안 비싸다 고?”
“비싸면 여기 아이들이 어떻게 먹겠니?”
감초의 말에 헛개가 초콜릿을
물끄러미 보았다.
“내 새끼들도…… 이 시대에 태 어났다면 이 맛있는 것을 먹었을 텐데……
헛개의 말에 감초가 그를 보다 가 말했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맛있게 먹 고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소. 나처럼 무능 하고 천한 아비 만나지 말고
한숨을 쉬는 헛개의 모습에 감
초가 입맛을 다셨다. 헛개의 말 은 자신에게도 통하는 말이었다. 헛개도 천한 노비 부모를 만나 이렇게 된 것이니 말이다.
감초가 미안함과 안쓰러운 눈으 로 헛개를 볼 때, 그가 말했다.
“아버지도 이리 올라 오슈.”
“ 나?”
“아버지도 안 먹어 봤다면서.”
헛개는 초콜릿을 반으로 부러뜨 리고는 옆을 보았다.
“이리 오슈.”
헛개의 말에 감초가 미소를 지 으며 그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 다.
“자세 낮추라고 합니다. 애들이 우리 먹는 것 본대요.”
“알았다. 그렇게 먹으마.”
감초가 자세를 낮추자, 헛개가 초콜릿을 아래로 내밀었다. 그에 감초가 고개를 숙인 뒤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그렇게 초콜릿을 먹은 감초는
미소를 지으며 헛개를 보았다.
“맛이 아주 좋구나.”
두 귀신이 초콜릿을 맛있게 먹 는 것을 보던 강진은 웃으며 음 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