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화
음식들을 반찬통에 담은 강진은 보육원 원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귀신들을 차에 태웠다. 조수석에 감초 어른과 헛개를 태우려던 강 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경복궁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 시겠어요?”
“ 경복궁이라……
잠시 말이 없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내 죽고 경복궁을 갔던 적이 있지.”
“그러셨습니까?”
“내가 모시던 왕이 어떠한 분인 지 보고 싶었으니.”
잠시 하늘을 보던 김소희가 말 을 이었다.
“그런데 들어갈 수가 없더군.”
“응? 못 들어가요? 귀신인데? 아! 혹시 초대를 못 받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 경복궁은
음식점도 상점도 아니니…… 하 지만 그보다는 경복궁을 지키는 무신(武神)들 때문이었네.”
“무신? 경복궁을 무신들이 지킵 니까?”
“죽어서도 조선을 지키는 신하 들이 있는 것이지. 그리고 궁엔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끔 진도 설치되어 있네.”
“그럼......"
강진이 감초 어른과 헛개를 보 았다.
“두 분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 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무신이네. 그리고 이미 많은 무신들은 조선을 떠나 승천 을 하였네. 진 또한 많이 파괴되 어 지금은 귀신들도 들어가고 나 올 수 있네.”
“초대는요?”
“주인이 살지 않는 곳이니…… 초대 또한 필요 없네.”
“그렇군요.”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타시지요.”
“나는 그냥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에 올라타 는 김소희를 보고 강진은 미소 지으며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운전석으로 가며 감초 어른에게 말했다.
“두 분은 짐칸에 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지붕에 타고 가겠습니다.”
“경치 구경하기에는 짐칸보다 지붕이 낫겠네요. 그리고 송은실 여사님 집 어디인지 아세요?”
“알고 있습니다.”
“거기 음식 좀 가져다주고 싶은 데요.”
“음식이라…… 제가 앞에서 인 도하지요.”
감초가 두둥실 떠서 앞으로 나 아가자 그 옆에 헛개가 따라붙었 다.
강진은 두 귀신의 뒤를 따르다 김소희를 보았다.
“요즘 저희 가게 왜 안 오세 요?”
“내가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그럴 리가요. 안 오시니 보고 싶어서 그렇죠.”
보고 싶어서라는 말에 김소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에 작 게 웃은 강진은 조수석 글러브 박스를 향해 손을 내밀다가 김소 희를 보았다.
“잠시 글러브 박스에 손을 대겠 습니다.”
혹시라도 그녀의 몸과 닿을 수 도 있어 양해를 부탁한 것이다.
김소희가 다리를 오므리자, 강 진은 글러브 박스 안에 있던 초 콜릿을 꺼냈다.
“이번에 JS 편의점에 새로 신상
이 나왔는데 아가씨 생각나서 사 왔습니다.”
헛개 주려고 가져온 초콜릿 외 에도 강진은 글러브 박스에 초콜 릿을 몇 개 담아 가지고 다녔다. 김소희를 보면 주려고 말이다.
“호오! 못 보던 그림이군.”
초콜릿 포장지 그림을 보며 김 소희가 미소를 짓자 강진이 그것 을 내밀다가 눈을 찡그렸다.
“날씨가 따뜻해서 초콜릿이 녹 은 모양입니다. 제가 나중에 새
로 드리겠습니다.”
포장지 안에서 물렁한 느낌이 난 것이다. 하긴, 이 더운 여름 자동차 안에 있던 초콜릿이니 녹 는 게 당연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손을 내 밀었다.
“괜찮으니 주게.”
“하지만 녹아서 먹기 힘드실 텐 데요.”
김소희는 어서 달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에 강진이 초콜릿을
주자, 김소희가 그것을 살며시 쓰다듬고는 포장지를 뜯었다.
그러자 살얼음이 살짝 끼어 있 는 초콜릿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방금 전까지 물컹하던 초콜릿이 단단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걸 강 진이 놀란 듯 볼 때, 김소희 또 한 초콜릿을 보며 말했다.
“녹았던 것이라 모양이 볼품없 군. 주의하게나.”
“송구합니다.”
자기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날씨 탓이 컸지만, 강진은 그저 송구 하다 하고는 앞을 보았다.
김소희라면 녹아버린 아이스크 림도 다시 얼려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시골길에 들어선 강진은 어떤 집 앞에 서 있는 감초 어른을 발 견했다. 그 앞에 차를 세운 강진 이 내리며 물었다.
“여 기입니까?”
“맞네. 저기 지연이가 있군.”
감초 어른의 말에 낮은 담 너머 로 시선을 돌린 강진은 차지연이 차지혜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차지혜와 차지연 둘 다 책을 보 고 있었다.
“사이가 좋네요.”
“지연이가 살아 있으면 지혜 업 고 다니면서 한글을 가르쳐 줬을 텐데……
감초 어른이 고개를 젓는 것을
보던 강진이 차지혜를 보다가 말 했다.
“어머니가 눈이 불편하시니…… 어디 놀러도 잘 못 가겠네요?”
“그렇지. 나가 봐야 고생만 하 니. 나가도 이 근방이거나 읍에 장 보러 가는 정도인데 그때는 마을 사람들 차 얻어 타고 가 지.”
감초 어른이 안쓰럽다는 듯 보 는 것에 헛개가 입을 열었다.
“며칠 보니 딸이 똘망똘망한 것
이 어머니 잘 챙기고 아주 효녀 더군.”
헛개의 얼굴에도 안쓰럽다는 빛 이 떠올라 있었다. 귀신이라고 해도 사람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 기에 측은지심이 드는 것이다.
두 귀신의 말을 듣고 있던 강진 은 힐끗 차에 타고 있는 김소희 를 보았다.
김소희도 안쓰러운 얼굴로 책을 보고 있는 지혜와 그 언니 귀신 을 보고 있었다.
강진은 슬며시 조수석에 다가가 서는 입을 열었다.
“아가씨.”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는 초콜릿 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 었다.
“내가 무신이고 조선 제일의 귀 신이라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정 해져 있네. 그중에 눈이 안 보이 는 자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고 미리 답하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 였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해서 죄송 합니다.”
“아니네.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 람이라 할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저 안에 들어가서 음식 좀 드 리고 나오겠습니다.”
“그리......"
말을 하던 김소희는 차지혜를 물끄러미 보다가 강진을 보았다.
“문을 열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덜컥!
차 문이 열리자 김소희는 부드 럽게 차에서 내리다가 손에 쥐어 진 초콜릿을 보고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쯤 남은 초콜릿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우물우물!
작은 입에 초콜릿을 하나씩 계 속 넣고 씹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아가씨, 천천히 드시지요. 체……할 일은 없겠지만……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저은 김소 희가 남은 초콜릿을 입에 다 넣 고는 삼켰다. 그러고는 입가를 손으로 살짝 닦아내며 말했다.
“경복궁에 저 또래 아이들이 한 복을 곱게 입고 와서 사진도 찍
고 구경도 하더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차지혜를 보았다.
“같이 가자고 할까요?”
“방학일 텐데 어디 놀러 한 번 못 가 본다면 그것도 서러운 일 일 것이네. 물어보게.”
“아가씨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웃으며 답한 강진이 김소희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말씀 하시려고 한
거면 초콜릿을 다 드시지 않아도 될 텐데요?”
초콜릿을 먹으면서 말을 해도 충분하니 말이다.
“저 아이와 어미를 지붕에 태울 생각인가?”
김소희는 두둥실 떠오르더니 자 동차 위로 올라가서는 앉았다.
송은실이 간다고 하면 두 사람 이 차에 타야 하니 조수석을 비 워 준 것이었다. 그래서 초콜릿 도 후다닥 먹어 치운 것이고 말
이다.
그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 다.
‘좋은 아가씨.’
강진은 집 앞에 서서는 대문을 살짝 두들겼다.
“계세요.”
강진의 말에 책을 보고 있던 차 지혜가 후다닥 나왔다.
“네!”
차지혜는 문을 열다가 강진을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
반갑게 자신을 맞아주는 차지혜 를 보고 강진은 웃으며 순대와 통닭, 그리고 떡볶이가 들어 있 는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오늘 음식 먹으러 안 와서 내 가 가지고 왔지.”
“이따 점심때 가려고 했는데.”
“아저씨 온 줄은 알고 있었어?”
“그럼요. 여기까지 맛있는 냄새
가 솔솔 나는걸요.”
“그럼 일찍 먹으러 오지 그랬 어. 음식은 따뜻해야 맛있는데.”
“엄마 공부 중이라서요.”
차지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신, 아니 정확히는 쇼핑백을 보고 있 는 차지연을 보았다.
차지연은 침을 꼴깍 삼키며 쇼 핑백을 보고 있었다.
귀신인 차지연에게 있어 강진이 만든 음식은 가장 맛있는 음식인
만큼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귀신이라 음식도 잘 먹지 도 못하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강진이 작게 눈으로 웃어 주자, 차지연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차지연과도 인사를 마칠 때, 문 이 열리며 송은실이 조심히 모습 을 드러냈다.
“누구 오셨어요?”
송은실의 목소리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저 푸드 트럭 이강진입니다.”
강진의 말에 송은실은 웃으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숙였 다.
“아…… 사장님 오셨어요?”
“여사님이 안 오셔서 제가 이렇 게 왔네요.”
“제가 공부할 것이 좀 있어서 이따 가려고 했는데.”
“그러시면 좋겠지만 제가 오늘 경복궁에 가기로 해서요. 일찍 음식 하고 나왔습니다.”
“경복궁요?”
“경복궁?”
송은실과 차지혜가 호기심 섞인 목소리로 되묻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가끔 혼자 경복궁 가서 구경하 는 것을 좋아해서요.”
“혼자요?”
“생각할 것이 있을 때 가끔씩 갑니다.”
물론 거짓이다.
‘아…… 내 혓바닥…… 나무는 뿌리가 길게 나니 많이 아프겠 지?’
나중에 저승 가면 자신의 혓바 닥에 어떤 농사가 지어질지 생각 하던 강진은 음식이 담긴 쇼핑백 을 마루에 슬며시 놓으며 말했 다.
“안 오셔서 인사도 드릴 겸 음 식을 가지고 왔는데…… 생각해 보니 혼자 가는 것보다 여럿이 가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네?”
갑작스러운 말에 송은실이 의아 한 듯 말할 때, 강진이 차지혜를 보았다.
“지혜야, 지금 방학이지?”
“네.”
차지혜의 답에 강진이 송은실을 보았다.
“방학에는 어디 구경도 하고 해 야죠. 괜찮으시면 제 차 타고 경 복궁 가지 않으시겠어요?”
“경복궁……
송은실이 당황스러워하자 차지 혜가 급히 말했다.
“거기 서울에 있는 궁궐 말하는 거죠.”
“맞아. 알아?”
“그럼요. TV에서 봤어요.”
차지혜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생각이 깊다고 해도 애는 애 지.’
좋아하는 차지혜를 보던 강진이
송은실을 보았다.
“같이 가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차지혜가 슬며시 엄마를 보았다.
“ 엄마.”
“그게……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요.”
“폐라니요. 저 혼자 가면 심심 한데 같이 가 주시면 저야 재밌 죠.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 는다면 하루 시간 내 주세요.”
“하지만…… 가면 다시 오기도 와야 하는데.”
눈이 안 보이다니 보니 먼 길 가는 것이 어렵다. 게다가 처음 가 보는 길이고 말이다.
그리고 갔으면 다시 돌아오기도 해야 하는데…… 그것까지 강진 에게 신세를 지는 게 미안한 것 이었다.
“다시 오면 되죠. 정말 마음 편 하게 생각하시고 같이 가시죠.”
“하지만……
다시 망설이는 송은실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방학인데 지혜도 놀러 한 번은 가야죠.”
송은실은 차지혜를 떠올리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방학인데 매일 집에서 자기 살피고 책을 보는 딸이 안쓰럽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 알겠습니다.”
“잘 됐네요. 그럼 기다릴 테니 준비하고 나오세요.”
“이야! 그럼 우리 경복궁 가는 거야?”
차지혜가 환하게 웃는 것에 차 지연도 덩달아 웃었다.
“나 경복궁 한 번도 안 가 봤는 데! 너무 좋다.”
차지연도 경복궁을 안 가 봤다 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소희 아가씨가 아이들에게 좋 은 선물을 해 주셨네.’
이들과 함께 경복궁에 같이 가 자고 한 것은 김소희이니 말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