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01화 (699/1,050)

7()1 화

곤룡포를 보던 김소희가 헛개를 보았다.

“자네는 곤룡포를 입어 보게.”

“곤룡포…… 전하가 입는 옷인 데 어찌 제가……

헛개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곤룡포로 다가갔다. 가슴에 용이 수놓아져 있는 곤룡포를 보 며 김소희가 말했다.

“백성은 물이라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를 흔들어 뒤집어 버리지. 이 시대의 백성들은 그 말과 같이 왕을 갈아엎고 자신들 의 의지로 왕을 뽑으니…… 이 시대의 백성은 왕과 다를 바가 없네.”

김소희는 다시 헛개를 보았다.

“그러니 자네 역시 왕이라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헛개를 보다가 사장을 보며 곤룡포를 가 리켰다.

“저것도 대여할게요.”

“저건 삼만 원입니다.”

“가격 차이가 있네요?”

“인기가 많은 거라서요.”

강진이 삼만 원을 꺼내 내밀자, 사장이 의아한 듯 말했다.

“일행분들 대여비하고 같이 계 산하시지 않고요?”

“일단 하나씩 할게요.”

“그러세요.”

강진이 곤룡포를 꺼내 들자 김 소희가 옷을 잡아당겼다.

스르륵!

불투명한 곤룡포를 손에 쥔 김 소희가 그것을 헛개의 몸에 둘러 주었다.

스르륵!

그러자 헛개의 몸에 곤룡포가 그대로 입혀졌다.

“헉!”

순식간에 곤룡포가 입혀지자 헛

개가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헛개의 모습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왕이 되었군.”

김소희의 말에 헛개는 멍하니 자신이 입은 곤룡포를 보다가 피 식 웃었다.

“왕이…… 별것 아니었군요.”

그러고는 헛개가 한숨을 쉬었 다.

“이런 옷 하나 입었다고 귀천을 나누는 그런 자를 만나러 수많은 형님이 죽었다니…… 하하하!”

고개를 젓던 헛개가 감초를 보 았다.

“내가 왕이 됐으니 아버지도 옷 한 번 골라 보소.”

헛개의 말에 감초가 그를 보다 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반 옷을 골랐다.

“그럼 나는 이걸로 입겠어.”

강진이 대여비를 또 치르고는

옷을 꺼내자 김소희가 다시 옷을 잡아당겨 그것을 감초에게 입혀 주었다.

스르륵!

양반 옷을 입은 감초는 웃으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헛개 를 보았다.

“어떠냐?”

“잘 어울리오! 양반이 별건가! 왕이 별건가! 그저 옷 안에는 다 똑같은 몸뚱인데 말입니다. 하하 하!”

헛개가 웃으며 가게를 나가는 사이, 감초가 김소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아니네. 우리도 나가세.”

김소희가 양손을 모아 얼굴을 가리고는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김소희의 뒤로 길게 늘어진 치 맛자락이 땅을 훑으며 가고 있는 것이다.

작은 체구의 김소희다 보니 옷

이 바닥에 끌리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은 대여점에서 옷핀으 로 사이즈를 줄여 주겠지만, 귀 신이다 보니 그런 것도 못 받아 서 그냥 질질 끌고 다녀야 했다.

‘그래도 저렇게 다니니 더 귀여 우시네.’

김소희가 들으면 바로 옷을 벗 어 버릴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들고 있던 한복들을 사장 에게 내밀었다.

“이건 맡겨 놓을게요.”

“응? 안 갈아입으십니까?”

대여비도 냈는데 왜 안 갈아입 나 싶어 보자 강진이 말했다.

“이따가 제 친구들 올 겁니다. 그 친구들 오면 그 녀석들한테 주세요.”

“아…… 하지만 대여 시간은 지 금부터 입니다.”

“알겠습니다.”

강진이 몸을 돌릴 때, 김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벌 남았네.”

“네?”

강진이 뒤를 돌아보자 김소희가 차지연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은 아, 하고는 차 지연의 옷을 골라서 입혀주고 계 산을 했다.

계산을 마친 강진은 직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여러분들도 옷 골라 보세요.”

“저희도요?”

“여러분들도 이런 옷 안 입어 보셨잖아요. 온 김에 기분 내 보 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숙수 옷 을 가리켰다.

“그럼 나 이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강진의 은근한 목소리에 배용수 가 눈을 찡그렸다.

“너 또 눈 왜 그렇게 요상하게 떠?”

“커플룩이 네.”

“커…… 됐다. 다른 옷……

배용수가 질색했지만, 강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숙수 옷 을 잡아 내렸다.

“너는 이 옷.”

“다른 옷 할래.”

“아니야. 너는 대령숙수의 후계 자니까 이걸 입어야 해.”

그러고는 강진이 다른 직원들을 보았다.

“골라들 보세요.”

“나는 여기 의녀복요. 대장금 보니까 예쁘더라고요.”

직원들도 옷을 고르자 강진이 그만큼 또 계산을 했다. 그 사 이, 직원들은 김소희의 도움으로 하나둘씩 한복으로 갈아입기 시 작했다.

한편, 계산을 마친 강진은 입맛 을 다셨다. 한복을 여러 벌 빌리

다 보니 가격이 제법 되는 것이 었다.

‘쓰라고 버는 돈…… 쓰고 싶을 때 쓰는 거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옷을 다 입은 일행들을 데리고 가게를 나왔다.

“내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형은 다른 것들 사면 됩니다. 간식도 사고 음료도 사고 입장료

도 내고.”

강진의 말에 문지나가 말했다.

“한복 입으면 무료입장이에요.”

“그래요?”

“네.”

문지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강상식을 보았다.

“그런데 형 안 더워요?”

“응?”

“이 한여름에 새카만 무복이라 니……

강상식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근데 왜 안 덥지?”

“안 더워요?”

“안 덥네?”

강상식은 의아한 듯 옷을 손으 로 쓸어 보다가 웃었다.

“오늘 별로 안 더운 날인가 보 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도로 쪽 을 보았다. 햇살에 달궈진 아스

팔트가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 아 지랑이가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아까 여기 올 때는 정말 더웠 는데 날씨가 좀 선선해졌나 봐 요.”

문지나도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웃었다.

‘귀신들하고 같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네.’

김소희와 직원들에게 향수를 뿌 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 모여 있는 귀신만 아홉이었다.

평소라면 사람들은 이쪽을 보지 도 못할 것이었다.

‘여름에 안 더우면 그걸로 된 거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직원들 을 보았다. 직원들은 모두 한복 을 곱게 입고 있었다.

물론 배용수는 칙칙한 숙수 옷 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나도 이거 입고 있으니까.’

“자, 그럼 가죠!”

강진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일행들이 그 뒤를 따라 경복궁으 로 움직였다.

강진 일행은 근정전에 들어서고 있었다. 주위에는 외국 관광객들 도 있었고 일반 관광객들도 있었 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 고 있었다.

“외국 사람들이 많네.”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말 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오면 한 번은 들르는 곳이니까.”

“그래?”

“서양 사람들 눈에는 동양의 전 통 건물이 신기할 테고, 중국이 나 일본 사람에겐 익숙하면서도 다를 테니까.”

걸음을 옮기던 배용수가 헛개를 향해 말했다.

“아저씨.”

배용수의 부름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헛개가 그를 보았다.

“저기 돌로 된 비석 보여요?”

헛개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 았다.

그곳에는 돌로 된 작은 비석 같 은 게 땅에 박혀 있었다. 그것은 궁 앞에 좌우 두 줄로 주르륵 세 워져 있었다.

“저게 뭐요?”

“저건 품계석이라고, 관리들이 직급에 따라 서던 자리예요. 한

쪽에는 정품 관리들, 한쪽은 종 품 관리.”

배용수는 비석들을 향해 뛰어가 서는 근처의 비석을 보다가 마음 에 안 든다는 듯 다른 비석 앞에 가서 서고는 말했다.

“여기가 종 6품 자리.”

“왜 종 6품으로 가? 이왕 갈 거 면 정 1품이나 그런 쪽으로 가 지.”

“대령숙수는 종 6품부터 종 9품 까지거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김소희를 보았다. 김 소희는 비석들 사이에 난 길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세요?”

“이 길을 어도라 부르네.”

“어도요?”

“왕만이 걷는 길이지. 문무백관 그 누구도 이 길을 걸을 수 없 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한 번 걸어 보시죠.”

김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살던 시대의 전하께 지금 도 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래도 이 길을 걷는 것은 내키지 않는군.”

김소희는 고개를 돌려 헛개를 보았다.

“헛개야.”

김소희의 부름에 곤룡포를 입은 헛개가 다가왔다.

“예, 아가씨.”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헛개의 모습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만나고 싶어 했던 왕 이 일하는 곳이 바로 저 건물이 네.”

김소희의 말에 헛개는 눈앞에 있는 궁을 보다가 감초를 보았 다.

“저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요?”

“그…… 언문은 배웠지만 한문

O.. ”

감초가 입맛을 다시자 김소희가 그 둘을 보다가 말했다.

“그 시대 백성으로서 한글을 배 운 것만으로도 장한 일이네.”

“송구합니다.”

“아닐세. 한문은 수가 많고 외 우기 어려워 해 뜨면 밭에 가 일 하고 해 져도 짚을 꼬던 백성들 이 배우기 힘든 것이 당연하네. 그러하니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것이 아니겠는가.”

감초가 고개를 숙이자 김소희가 궁에 있는 현판을 보았다.

“저곳이 바로 왕이 일하는 곳, 근정전일세.”

“근정전……

근정전을 보던 헛개가 감초를 보았다.

“이리 오소.”

“왜?”

헛개는 대답 대신 어도로 올라 갔다.

탁!

가볍게 한 걸음 어도에 발을 디 딘 헛개는 잠시 말이 없다가 피 식 웃더니 어도의 중심에 서서는 근정전을 보았다.

“어서 이리 오소.”

헛개의 말에 감초가 어도를 잠 시 보다가 슬며시 발을 내밀었 다. 그러고는 조심히 어도를 밟 았다. 아무래도 왕만 걸었던 길 이라는 말에 조심스러워지는 모 양이었다.

탁!

조심스레 어도에 발을 올리는 감초를 보며 헛개가 웃었다.

“그저 땅일 뿐이오.’’

“ 땅?”

헛개는 땅을 발로 몇 번 밟으며 말했다.

“내가 살던 고향 땅이나, 여기 임금만이 걸었다는 땅이나 그냥 다 땅일 뿐이오.”

감초는 근정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형님들! 내가 드디어 왕이 사 는 곳에 왔소! 형님들하고 그렇 게 오고 싶어 했던 곳 말이오!”

뚜벅! 뚜벅!

걸음을 옮기며 말하는 헛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근데 막상 와 보니 그냥 조금 큰 건물이다 이 말이오! 왕이라 고 똥 안 싸는 것 아니고! 왕이 라고 밥 안 먹는 것 아니고! 개 똥 형님이나! 개놈이 형님하고

다 같은 사람이란 말이오! 나 좀 보시오! 나도 이렇게 곤룡포인지 뭔지 하는 임금만 입는 옷을 입 고 있지 않소!”

헛개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크 게 말하는 것을 보던 감초가 그 뒤를 따라갔다.

“형님들! 그리고 이 세상은 왕 이 백성이랍니다! 백성이 왕도 뽑고! 현령도 뽑고! 왕이 지랄하 고 현령이 염병하면! 감옥도 가 고! 욕도 먹고! 다 한답니다!”

어느새 근정전 바로 앞에 도착

한 감초가 무릎을 꿇고는 절을 했다.

“이건 조선의 왕에게 하는 절이 아니오. 이건 이 나라를 위해 싸 운 내 형님들을 위해 하는 절이 오.”

한 번 더 절을 한 감초가 하늘 을 보았다.

“형님들…… 이 좋은 세상에 다 시 만나면 그때는 통닭도 먹고, 김밥도 먹고 합시다.”

하늘을 보던 감초가 미소 지었

다.

“그리고! 곤룡포를 입은 김에 형님들에게 다시 절을 하겠소. 형님들, 이 왕의 절을 받으시오.”

감초가 땅에 머리를 대며 절을 하는 순간, 그의 몸이 희미한 빛 과 함께 사라졌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 며 감초를 보았다. 그는 아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그시 보다가 미 소를 지으며 그가 사라진 곳에 가서 섰다.

그러고는 김소희에게 고개를 숙 였다.

“아가씨, 이 노복 먼저 가겠습 니다.”

“자네는 노복이 아니네. 자네 는…… 감초라는 이름을 가진 사 람일세.”

김소희의 답에 감초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아가씨도 성불하시기를 빌겠습 니다.”

“다음에 태어나게 되면 좋은

집…… 아니, 화목한 가정에 태 어나게나.”

“그리하겠습니다.”

감초는 재차 고개를 숙이고는 강진을 보았다.

“지연이에게 안부 전해 주게 나.”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초는 자신이 입고 있는 양반 옷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이 옷 고맙네.”

화아악!

말과 함께 감초의 모습이 사라 지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 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종이들이 몇 장 떨어졌다. 바로 헛개와 감초 가 남긴 편지와 수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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