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07화 (705/1,050)

707화

강진은 직원들과 물놀이를 하며 여러 물귀신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이 해수욕장에서 죽은 이들이었고, 몇은 먼바다에서 죽 은 귀신들이었다.

“육지에서 죽었으면 저승식당이 라는 곳에 가서 음식도 먹고 했 을 텐데…… 바다에서 죽어서 그 런 것도 못 하네.”

“귀신이 된 것부터가 재수가 없

는 거지.”

귀신들의 투덜거림을 듣던 강진 은 한 귀신을 보았다. 그는 낚시 꾼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도 낚시를 하러 바다에 나갔다가 죽은 모양이었다.

“바다에는 저승식당이 없죠?”

“그거야 당연하지.”

말을 한 귀신이 강진을 보았다.

“사장님이 바다에도 저승식당 배라도 하나 만들라고 위에다가 말을 좀 해 줘요. 육지 귀신만

귀신이고 물귀신은 귀신도 아닌 가? 이것도 차별이지.”

“그러게 말이야.”

물귀신들의 투덜거림에 강진은 쓰게 웃으며 물속에 머리를 담갔 다가 급히 밖으로 나왔다.

‘놀래라!’

물속에서 여자 물귀신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카락을 휘날린 채 자신을 보며 웃던 여자 귀신을 떠올리며 강진이 몸을 떨 때, 여자 귀신이

슬며시 물 밖으로 나왔다.

스르륵!

미역줄기 같은 머리카락을 늘어 뜨린 여자 귀신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저 때문에 놀라셨죠. 죄송해 요.”

귀신이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모습에 강진이 고개 를 저었다.

“조금 놀라기는 했네요. 그런데 물속에 그렇게 계셔도 되나요?”

“말 그대로 물귀신인걸요.”

여자 귀신이 쓰게 웃는 것에 강 진이 그녀를 보다가 주위에 모여 있는 귀신들을 보았다.

해수욕장에 있는 물귀신들이 여 기 다 모여 있어서 그런지 강진 이 있는 곳 주위로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창 물놀이하기 좋은 시간인 오전 11시라 해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강진의 주위만 한 적한 것이다.

‘이러고 있으니 내가 해수욕장 전세 낸 것 같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배용수 의 등을 향해 훌쩍 몸을 날렸다.

철썩!

물살을 튀기며 자신의 등에 매 달리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놀라 뒤를 보았다.

“야! 뭐하는 거야?”

“밖에서는 이러고 다니면 사람 들이 이상하게 보지만, 물속이라 안 보이잖아.”

“그래서 어쩌라고. 내려와.”

몸을 뒤척이는 배용수에게 강진 이 더 매달리며 말했다.

“그냥 업은 김에 해변까지 좀 업어 주라. 놀았더니 힘들다. 한 걸음도 못 걷겠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한 번 보고는 천천히 해변으로 걸음 을 옮겼다.

그런 배용수의 등에 업힌 강진 이 허리를 감싸고 있던 다리를 풀고는 팔로 그의 등을 잡았다.

그렇게 배용수에게 의지한 채 강진은 몸에 힘을 풀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 눈에는 내 가 물에 떠 있는 걸로 보이겠 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해변으로 두 둥실 떠가던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이제 내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다리를 내렸다. 바닥을 딛고 일어나니 허벅지 정도밖에 물이 닿지 않았

다.

“더 놀다가 와.”

“너는?”

“나는 물 끓이고 있을게. 한 이 십 분쯤 있다가 귀신들하고 와.”

배용수는 이혜미에게 강진의 말 을 전하고는 다시 해변으로 나왔 다.

“왜 따라와? 더 놀지?”

“귀신 몸으로 물놀이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겠냐? 그냥 물놀이한

다는 기분만 내는 거지. 같이 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해변을 서성이는 김소희 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점심을 준비하려고 하 는데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 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선글라 스를 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점심에 무엇을 먹으려 했나?”

“점심에는 매운 라면을 간단하

게 끓이려고 했습니다.”

“그럼 나도 그것으로 하겠네.”

“다른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걸로 드리겠습니다.”

“괜찮네. 이런 곳에 나와서까지 내 먹고 싶은 것을 고집하는 사 람이 아닐세.”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는 김소희 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사람이 아니니 드시고 싶은 것 드셔도 되는데……

하지만 이건 농으로라도 하지 않았다. 강진이 가끔 농을 하기 는 하지만 귀신에게 이런 농은 나쁜 농담이니 말이다.

“준비되면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은 푸드 트럭 으로 돌아왔다. 캠핑장에서는 사 람들이 음식을 만드는 냄새가 솔 솔 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노는 人}이 남편이나 아내가 남아 음식을 만 들고 있는 것이다.

“해수욕장 옆에서 취사라…… 좋네.”

“그래?”

“막혀 있는 주방에서 하는 요리 하고는 다르지. 여기서는....

배용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이 양념이 되고, 주위 경 치가 재료가 되니까.”

“말 멋지게 하네.”

“좋아서 그렇지.”

말을 하던 배용수가 미소를 지

었다.

“가끔 요리 방송할 때는 막힌 주방 말고 경치 좋은 곳에서 음 식을 했거든. 그런 곳에서 음식 을 하면 맛이 좋아.”

“소풍 온 기분에 먹으면 컵라면 에 김치도 맛있지.”

“그건 또 그렇지.”

배용수가 바다를 보며 말했다.

“바닷가에서 먹는 라면이 또 죽 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푸드 트럭 캡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커다 란 수통에 물을 붓고는 불을 켰 다.

촤아악!

“물이 많아서 끓는 데 오래 걸 리겠다. 미리 끓여 놓을 것을 그 랬나?”

“가스 켜 놓고 자리 비우는 것 아니다.”

배용수의 주의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물은 끓이고 라면도 따로 끓이자.”

강진은 삼겹살이나 떡볶이를 할 때 쓰는 불판 위에 휴대용 버너 를 두 개 올렸다. 그러고는 냄비 에 물을 올리며 말했다.

“세 개씩 끓이면 되겠지?”

“가장 맛있게는 하나씩 끓이는 거지만…… 저 귀신들 그렇게 먹 이려면 하루 종일 걸리니 세 개 씩 끓이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를 꺼내 자르기 시 작했다. 그렇게 강진이 준비를 할 때, 지나가던 사람 몇이 다가 왔다.

“음식 파시는 건가요?”

“아니요. 오늘은 휴가 와서 저 먹으려고 하는 겁니다.”

“아……

강진의 말에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푸드 트럭을 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배용수가 웃었다.

“푸드 트럭이 신기한가 보다.”

“시장이나 행사장 가면 꽤 있기 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안 보이 니까.”

강진은 물이 끓어오르자 라면을 뜯어 냄비에 넣고는 배용수를 보 았다.

“가서 귀신들 좀 모셔 와라.”

“오케이.”

배용수가 귀신들을 데리러 해변

으로 뛰어가더니 소리쳤다.

“귀신 여러분들 라면 드시러 오 세요! 라면 드시러 오세요!”

배용수의 외침에 귀신들이 이쪽 을 보고는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 작했다.

“라면을 준대.”

“이야, 라면.. 이거 얼마 만

에 먹는 거야.”

라면이라는 말에 귀신들이 흥분 해서 뛰어오자 강진이 웃으며 배 용수를 보았다.

“귀신들 일단 줄을 세워라.”

“알았어.”

배용수는 귀신들 줄을 세우기 위해 손을 들었다.

“다들 이쪽으로 와서 줄을 서세 요. 라면은 다들 드실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만 끓이는 시간이 있어서 조금 기다려 주세요.”

배용수의 말에 귀신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라면 면발을 들었다 놓았 다 하며 익은 것을 체크하고는

국그릇에 면과 국물을 덜어서는 푸드 트럭 앞에 있는 선반에 하 나씩 놓았다.

“하나씩 가져가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라면 그 릇을 하나씩 들고 갔다.

화아악! 화아악!

귀신들의 손에 라면 그릇이 들 려지더니 다들 한쪽에 서서 라면 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은 다시 물을 붓고는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쪽에 따로 서 있는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는 선글라스를 낀 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왜 아가씨 안 오셔?”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말했 다.

“이따가 귀신들 식사하고 난 후 에 천천히 드시겠대.”

‘밥 못 먹고 다니는 귀신들 먼 저 먹으라고 배려를 해 주시나 보구나.’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작게 고 개를 끄덕이고는 귀신들이 먹을 라면에 파를 넣었다.

라면을 끓이는 것이 두 화구밖 에 되지 않아 귀신들은 오래 기 다려야 했다.

하지만 다들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그저 라면이 끓여 지는 것을 뚫어지게 보거나 먼저 라면을 먹고 있는 귀신들을 볼 뿐이었다.

“맛있겠다.”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기다리는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물을 보다가 힐끗 푸드 트럭 선반을 보았다.

푸드 트럭에 붙어 있는 선반 위 에는 라면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 다.

물론 다 귀신들이 가져가고 남 은 라면들이었다.

‘다행히 귀신들이 몰려 있어서 선반에 놓여 있는 라면을 사람들

이 못 알아보는구나.’

먹지도 않는 라면들이 선반에 주르륵 놓여 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다. 게다가 처 음에 만든 라면들은 이미 퉁퉁 불어서 먹지 못할 상태이고 말이 다.

“강진아, 귀신들 많아서 사람들 여기 쳐다도 못 보는데 내가 도 와줄까?”

배용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하는 말에 강진도 주위를 보았다. 그 의 말대로 사람들은 이쪽으로는

시선 하나 주지 않고 있었다.

이쪽으로 올 일이 있는 사람들 도 크게 빙 돌아서 가거나, 이쪽 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해변 쪽 을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주위에 귀신들이 많다 보니 한 끼식당에 귀신들이 많을 때처럼 이곳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그럼 여기 앞에 귀신들이 먹은 라면들은 좀 버려라. 라면 그렇 게 쌓여 있으니 기분 이상하다.”

“오케이.”

배용수가 비닐장갑을 끼자, 강 진이 통과 체를 내밀었다. 체로 면발을 걸러서 국물만 통에 담으 라는 의미였다.

배용수는 통을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체를 얹은 뒤 귀신들이 이 미 먹은 라면을 부었다.

촤아악! 촤아악!

라면들이 버려지는 모습에 강진 이 입맛을 다셨다. 음식을 버리 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버리는 게 아니고 귀신들 이 먹고 남은 제삿밥을 버리는 거니까.’

그러고 보면 그동안 현신을 하 지 않은 귀신에게도 음식을 주기 는 했지만, 귀신이 먹은 음식들 은 강진이 다 먹거나 돼랑이가 먹었었다.

이렇게 생으로 음식을 버리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마음이 좋지 않은 강진이었다. 그것도 꽤 많 이 버려야 하니 말이다.

배용수가 라면을 버리는 것을 보며 새로 라면을 끓이던 강진은 고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학 생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물에 빠진 거야?”

“네? 아…… 네.”

‘부모님 많이 슬퍼하셨겠네.’

어떻게 죽든 자식이 죽으면 부 모님은 다 슬퍼하겠지만…… 놀 러 갔던 아들이 죽었으니 더 슬 펐을 것이다.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을 때, 학생이 슬며시 말했다.

“귀신하고 정말 이야기를 하시 네요.”

“지금 여기 있는 분들 라면 끓 이는 것 보면…… 당연히 정말이 겠지?”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학생 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 저희 집에 이야기 좀 전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 야기?”

“바다에... 그만 오시라고요.”

“ 바다‘?”

강진의 물음에 학생이 잠시 있

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희 부모님…… 매일 바다에

나와서 저 기다리세요.”

“기다리……셔?”

“제가 부모님에게 못 돌아갔거

든요.”

“아......"

‘시체를…… 못 찾았구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