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화
학생을 보던 강진은 라면을 덜 어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라면 먹어.”
“감사합니다.”
학생 귀신이 고개를 숙이고는 라면을 집어 가자, 강진은 다른 귀신들에게도 라면을 건넸다.
그렇게 모든 귀신들에게 라면을 돌린 강진은 라면 한 그릇을 들
고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신들은 푸드 트럭 주위에 옹 기종기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었 다. 그런 귀신들 사이에 다가간 강진이 학생 귀신 옆에 자리를 하고는 라면을 내밀었다.
“한 그릇 더 해.”
“아니요. 저는……
사양을 하려는 학생을 보고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집어간 다음에 내가 먹으 면 도fl. 어차피 형도 먹어야 하니
까. 그리고 네 나이 때는 늘 배 고프잖아.”
귀신이 아니더라도 늘 배고플 나이가 이 나이 때였다.
강진의 말에 학생은 잠시 머뭇 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학생이 라면 그릇을 받자 불투 명한 라면 그릇이 그의 손에 잡 혔다. 그것을 확인한 강진이 본 격적으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살짝 꼬들꼬들하게 끓여진 라면 을 먹으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조금 더 삶을 걸 그랬나?”
강진은 꼬들꼬들한 면발보다는 조금 더 삶아진 면발을 좋아했 다.
강진의 중얼거림에 어느새 그 옆에 자리를 한 배용수가 바닥에 앉으며 말을 했다.
“라면 여럿 삶을 때는 조금 꼬 들꼬들하게 끓이는 것이 좋아.
그래야 먹을 때 완전 퍼지지 않 거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알지.”
그래서 살짝 꼬들꼬들하게 끓였 으니 말이다. 면의 익힘이 조금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차가운 바다에서 놀다가 따뜻하고 얼큰 한 라면을 먹으니 확실히 속도 풀리고 맛이 좋았다.
게다가 경치가 일단 좋으니……
바다 쪽을 보며 라면을 먹던 강 진은 문득 푸드 트럭 앞에 놓인 음식물 쓰레기통을 보았다. 통에 는 버려진 라면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저거 보니 양심이 아파온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버려진 라면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있겠냐? 너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라도 좀 줄 걸 그랬 나?”
“그러면 좋기는 하지만…… 사 람들은 이곳에 오지도 못하잖아. 그렇다고 네가 일일이 라면 배달 을 해 줄 수도 없는 거고. 가다 가 다 퍼지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음식 버리는 것 같아서 아까워서 그렇지.”
“사람들이 먹지는 않았지만 대 신 귀신들이 먹었잖아. 음식을 그냥 버린 건 아니지.”
배용수의 답에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는 해변 한쪽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 라면을 먹 고 있었다.
라면을 우물거리며 먹고 있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후루룩! 라면을 먹으며 학생을 보았다.
학생은 라면을 크게 집어 입에 넣고 있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요. 형 라면 정말 잘 끓이시네요.”
학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다가 물었다.
“나는 이강진인데 너는 이름이 뭐야?”
“소인명이요.”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라면을 먹은 강진은 소인명이 라면을 다 먹고 나자 말을 걸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바다에 안 왔으면 좋겠어?”
강진의 말에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던 소인명이 입맛을 다시
며 한쪽을 보았다. 그 시선을 따 라간 강진은 한 노부부가 텐트에 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 다.
“설마 저 두 분이 부모님이셔?”
“네.”
“너 늦둥이야?”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것에 강진이 놀라 묻자 소인명이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제가 죽고 나서 시간이 오래 흐른 거예요.”
소인명은 노부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살았을 때는 두 분 모두 머리가 검었는데…… 지금은 머 리가 하얗게 셌네요. 그리고 주 름도 깊어지시고.”
슬픔이 느껴지는 소인명의 목소 리에 그를 보던 강진이 노부부를 보았다. 그러다 노부부가 머무는 텐트를 보던 강진은 위에 널어져 있는 빨래를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부모님 설마 저기에서 사시는 거야?”
강진의 물음에 소인명이 부모님 을 보다가 말했다.
“아빠 은퇴하기 전에는 저녁에 와서 자고 아침에 출근했다가 다 시 여기로 퇴근하고 하셨어요.”
“여기에서?”
캠핑장이기는 하지만 불편한 것 이 한둘이 아닐 거라 생각하던 강진은 주위를 보았다. 물과 텐 트를 칠 수 있는 곳이 있다 뿐이 지 그냥 땅이었다.
강진이 주위를 보는 것에 소인
명이 말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예요. 예전에는 화장실도 더럽고…… 엄마가 참 힘들어했는데.”
“그랬구나.”
강진이 노부부를 볼 때, 소인명 이 말했다.
“저희 부모님이 집에서 쉬셨으 면 해요. 집에서 샤워도 편하게 하고…… 여기 밤에는 무척 시끄 러워요.”
“그렇겠지. 사람들이 놀러 오는
곳이니까.”
“그리고 겨울에는 엄청 추워 요.”
소인명의 말에 강진이 바다를 보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니까.”
“그래서 밤에는 조용하게 자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잤으면 좋겠 어요.”
부모님을 보며 작게 중얼거리는 소인명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부모님 생각 많이 하는구나.”
“제가 두 분 생각하는 것보 다…… 엄마하고 아빠가 제 생각 을 더 많이 하세요.”
소인명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그런 강진을 소인명이 불렀다.
“우리 부모님, 정말 좋은 분이 세요. 더 나이 드시기 전에 편하 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좀…… 도와주세요.”
소인명의 말에 강진이 아이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강진이 푸드 트럭에 다가가자 배 용수가 말을 했다.
“저승식당 사장의 운명인가?”
배용수가 소인명을 보며 작게 중얼거리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내 운명이라기보다는 안 불쌍 한 귀신이 없어서겠지.”
“그것도 그러네.”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는 것에
강진이 라면이 버려진 통을 보다 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한쪽에 있는 음식 쓰레 기를 넣는 통을 발견하고는 그쪽 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식 쓰레기통도 있고 좋네.”
“각자 가져가면 가장 좋겠지만, 사람들이 어디 그러나. 옆에 숲 도 있겠다, 거기다 음식 쓰레기 묻으면서 이런 생각까지 하겠 지.”
“무슨 생각?”
“이건 음식 쓰레기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거름 주는 거다. 이런 생각 말이야. 그럼 양심에 걸리지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고?”
“진짜 그런 생각을 한다기보다 는 그냥 합리화하는 거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 다.
“이런 곳에서 그렇게들 묻기 시 작하면…… 순식간에 음식 쓰레 기 냄새만 나는 거지. 그리고 파
리 꼬이고…… 깨끗해지게 하는 건 오래 걸려도 더럽히는 건 순 식간이 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정도는 땅 파서 음식 쓰레기 묻어도 별 지장은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그 한 명이 되어 버리면 여기는 음 식 쓰레기 냄새가 나는 곳으로 변해 버리고 말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 쓰레기를 버린 강진이 푸드 트럭에 있는
그릇들을 모두 모아서는 설거지 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후다닥 마친 강진이 그릇들을 푸드 트럭에 싣고는 직 원들을 보았다.
“저 마트 좀 다녀올게요.”
“정말 음식 사다가 하려고요?”
이혜미의 물음에 강진이 주위에 모여 있는 귀신들을 보았다. 귀 신들은 라면을 먹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얼굴로 푸드 트럭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고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손님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 게 안 하겠어요.”
“하지만 또 음식 쓰레기 많이 나올 텐데……
라면처럼 음식을 버리면 어쩌나 하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 를 저었다.
“백숙하고 삼겹살을 좀 할 겁니 다.”
“백숙하고 삼겹살요?”
“귀신들 먼저 먹게 하고 주위에 있는 텐트에 좀 가져다주면 음식 버리지 않아도 될 겁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여기 사람들 귀신 덕에 몸보신하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 오르자, 배용수도 조수석에 올라 탔다.
“됐어. 너는 더 놀아.”
“같이 가.”
“아니야. 나 혼자 갔다 오면 돼.”
강진의 말에 배용수는 결국 차 에서 내렸다. 배용수가 내리자 강진은 오는 길에 봤던 마트로 차를 몰았다.
마트에서 삼겹살과 술을 잔뜩 사 온 강진은 귀신들을 모아 놓 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촤아악! 촤아악!
귀신들은 선반 근처에서 고기를
집어먹으며 배용수가 따라주는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익어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힐끗 선반 위 를 보았다.
“다 먹은 거야?”
배용수는 선반에 놓인 삼겹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 O ”
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선반 위 에 놓인 고기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고기 가 아직도 따뜻하네.”
강진은 푸드 트럭에서 훌쩍 뛰 어내리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그래도 조심해.”
“ 알았다.”
배용수가 푸드 트럭 위로 올라 가자 강진은 삼겹살을 쟁반에 담 아서는 아까 자신에게 말을 걸었 던 남자가 있는 텐트 쪽으로 걸 음을 옮겼다.
‘일단은 여기부터.’
“안녕하세요.”
캠핑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강진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숙였 다.
“아......" 네.”
“이것 좀 드시라고 가져왔습니 다.”
“삼겹살이네요?”
“제가 좀 많이 해서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었다.
“정말 많이 하셨네요.”
쟁반에는 고기가 여러 접시 담 아져 있었으니 말이다.
“제가 음식 나눠……
말을 하던 강진은 문득 텐트 안 을 보았다. 텐트 안에서 희뿌연 할머니 영혼이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 영혼 할머니네?’
강진이 할머니를 보자, 남자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뭐 이상한 것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냥 이런 텐트가 처음이라 신기해서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말 했다.
“요즘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아 서 안에 보면 별것이 다 있죠. 어떻게, 안에 구경시켜 드릴까 요?”
“다른 분들에게 고기 나눠 드리 고 오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아! 고기
잘 먹을게요.”
남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다가 문득 주위를 보았다.
“그런데 아까 보니 가족들과 같 이 오셨던데?”
“지금 안에서 한숨 자고 있습니 다.”
“벌써요?”
“물놀이하고 점심 먹었으니 한 숨 자야죠.”
“그런데 왜 안 주무세요?”
강진의 물음에 남자가 웃으며 허공을 보았다.
“애가 잠을 좀 자야 그나마 여 유 시간을 즐기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남자는 캠핑 의자에 몸을 깊게 눕히다가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하나 꺼냈다.
“한 캔 하시겠어요?”
“저는 제가 많이 구운 이 고기 들 주위에 좀 나눠 드리고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그 를 보다가 말했다.
“오늘 선생님 덕에 기분 좋은 분들 꽤 많겠네요.”
“기분요?”
“생각지 못한 선물이니까요. 그 리고 음식만큼 좋은 선물도 없 죠.”
남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럼 혼자만의 여유 즐기세 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었다.
“애가 일어나면 끝날 여유지만 좀 즐기겠습니다.”
남자는 맥주 캔을 따서 시원하 게 마시고는 삼겹살을 손으로 집 어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숙이 고는 주변 텐트에 삼겹살을 더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두 접시 가 남자 소인명의 부모님이 있는 텐트로 걸음을 옮겼다.
노부부는 텐트 앞 캠핑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뛰어다니는 아 이들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