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화
계곡 주위에 의자들을 모두 배 치한 뒤, 귀신들은 트럭 앞에 모 여서 11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 었다.
“모닥불이라도 있으면 놀다가 추우면 불이라도 쬘 텐데.”
“불 피우면 안 된다고 해서 음 식도 밑에서 해 왔는데 여기에서 불 피우기는 좀 그렇지 않냐?”
“그러게 말이다.”
강진은 입맛을 다셨다. 계곡에 서 불 피우지 말라고 해서 불 안 쓰려고 밑에서 음식을 해 왔다. 그런데 춥다고 가스 불도 아니고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모닥불을 피우면 그 흔 적도 남는다. 아까 자신이 안 좋 다고 생각한 쓰레기 버리고 가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놀러 왔으면 최소한 거기서 하 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아야 했 다.
강진이 입맛을 다실 때, 푸드 트럭에서 강두치가 내려왔다.
“수박 왔습니다.”
강두치의 말에 그를 보던 강진 은 전에 본 인턴이 그의 뒤를 따 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인턴도 손에 무언가를 묵직하게 든 채였다.
“같이 오셨네요?”
이것저것 사다 보니 혼자서는 못 들고 올 것 같아서요. 그래서 데려왔습니다.”
강두치는 봉투를 들어 보였다. 봉투에는 참외와 포도 같은 과일 이 들어 있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인턴을 보고는 말했다.
“인턴한테 이렇게 개인적으로 일을 시켜도 되는 겁니까?”
“하하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서 괜찮습니다.”
“개인적인 일 같은데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저었다.
“저승식당 사장님들은 모두 저 희 JS 금융의 VIP입니다. 그러니 평소 도울 일 있으면 돕는 것이 다 저희 영업입니다. 그러니 저 와 같이 오늘 한끼식당 야유회를 돕는 것도 엄연한 업무인 겁니 다.”
강두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이승의 좋은 점은 잘 못 따라가도 나쁜 점은 아주 잘 따라갑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일 몇 가지 시킨다고 해도…… 하하 하! 이승의 룰을 따를 뿐이니 아
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너무 안 좋은 일을 너무 당연하 다는 듯 웃으며 말을 한 강두치 가 계곡물을 보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이 물 차가워서 어떻 게 물놀이가 되겠습니까? 귀신들 도 현신하면 추위 느끼는 건 사 람하고 같으니 말입니다.”
“저도 그게 걱정이네요.”
강진이 물을 보며 중얼거리자, 강두치가 웃으며 계곡물에 자신 이 사 온 수박과 과일들을 담그
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하나 또 챙겨 온 것이 있습니다.”
강두치는 인턴을 보았다.
“가방 줘 봐.”
강두치의 말에 인턴이 가방을 내밀었다.
‘저승이나 이승이나…… 인턴은 고생이구나.’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인턴을 볼 때, 인턴이 그 시선을 느꼈는
지 쓰게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말 을 하는 듯한 씁쓸한 미소에 강 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 사이, 강두치는 가방에서 붉 은 바탕에 검은 불꽃 그림이 그 려져 있는 봉투를 꺼냈다.
“짠!”
강진은 강두치가 웃으며 꺼낸 봉투를 보았다.
〈화탕지옥 열화숯〉
“화탕지옥 열화숯? 숯이에요?”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탕지옥에서 사용하는 숯입니 다. 이걸로 집채만 한 솥을 달구 고 그 안에……
더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지 않 느냐는 듯 쳐다보는 강두치를 보 고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숯 봉투를 보았다.
그에 강두치가 웃으며 말을 이 었다.
“이걸로 고기 구워 먹으면 정말 기가 막히죠. 이승에 숯 만드는 곳에서 하는 삼초 삼겹살도 이것 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됩니다.”
강두치가 봉투를 찢으려 하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여기서 그거 불붙이시려고요?”
“네.”
“계곡은 취사 금지 구역인데 요.”
“아까 보니 음식은 다 해 오신 것 아닙니까?”
“네.”
“그럼 이걸로 고기 구워 먹을 일은 없으니 취사는 아니죠.”
“그건 그래도 잘못하면 불이 날 수도 있는데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이승의 물건은 태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산불 걱정은 하지 마세 요.”
“그래요?”
“물론입니다. 대신……
강두치가 배용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승의 것은 태우니…… 귀신 들이 닿으면 큰일 납니다.”
강두치의 말에 배용수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희 타는 겁니까?”
“하하하! 닿지 않으면 괜찮습니
다. 닿지만 않으면요.”
그 말은 닿으면 큰일이 난다는
말이었다. 무서운 말을 웃으며 한 강두치가 인턴을 보았다.
“인턴, 가서 돌들 모아와.”
“알겠습니다.”
인턴이 서둘러 돌을 주워 오자, 강진과 배용수도 돌들을 주워 왔 다.
귀신들이 돌을 주워 오자 강두 치가 그 돌들을 계곡 군데군데에 동그랗게 쌓았다.
“숯을 여럿 가져오셨어요?”
“아뇨. 이거 하나만 가져왔습니 다.”
“그럼 불 자리는 왜 이렇게 많 이 만드셨어요?”
숯은 작은 봉투 하나 정도라서 불 자리는 하나만 만들어도 될 것 같아서 묻는 것이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으며 숯을 하나 꺼냈다. 숯은 아기 주 먹만 한 크기였는데, 강두치는 그것을 돌이 쌓여 있는 곳 가운 데에 놓고는 뒤로 물러났다.
“강진 씨와 용수 씨도 뒤로 물
러나세요.”
그에 둘이 뒤로 물러나자, 강두 치가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서 는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불붙 은 성냥개비를 숯에 툭 하고 던 졌다.
그러자…….
화르르륵!
순간 사람 키만 한 거대한 불꽃 이 솟구쳤다.
“허억!”
“우와!”
강진과 배용수가 뒤로 물러나자 주위에 있던 귀신들도 놀란 눈으 로 이쪽을 보았다.
“와! 뭐야, 캠프파이어인가?”
“와! 불꽃 봐.”
“ 따뜻하다.”
멀찍이 있는 귀신도 온기를 느 끼는 듯 한마디씩 할 때, 강진도 후끈한 열기를 느끼고는 놀란 눈 으로 불이 뿜어지는 숯을 보았 다.
‘저 작은 숯에서 무슨 불길이 이렇게……
게다가 보통 숯에 불을 붙일 때 는 한창 불을 대야 하는데, 성냥 불 하나에 바로 불길이 치솟기까 지 했다.
강진이 놀란 눈으로 숯에서 솟 구치는 불을 볼 때, 강두치가 말 했다.
“화탕지옥에서는 저런 숯을 한 세 가마니 밑에 놓고 불을 지피 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침을 삼 켰다. 숯 한 알도 이런 무시무시 한 불꽃을 뿜어내는데 세 가마니 나 넣고 달구면…….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강 두치가 강진에게 말했다.
“귀신들에게 주의하라고 하세 요. 이 불길에 닿으면 많이 아픕 니다.”
강두치의 말에 배용수가 급히 뒤로 한 발 더 물러났고, 강진은
다른 귀신들에게 이 불에 닿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화르륵! 화르륵!
그 사이 강두치가 여러 숯에 불 을 붙이자 주위가 밝아졌다. 불 을 모두 피운 강두치가 가방에서 작은 소화기를 꺼냈다.
“이따가 끌 때는 이걸로 한 번 씩 뿌려주면 됩니다. 소화기 쓸 줄은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소화기 쓰는 방법이야 안전핀
뽑은 다음에 손잡이를 누르면 되 니 말이다.
강두치는 소화기를 강진에게 내 밀었다.
“물 뿌려도 꺼지지 않는 불길이 니 꼭 이걸로 끄세요.”
“네.”
강진이 소화기를 받으며 답할 때, 김소희가 손을 들었다.
스르륵!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검이 그
녀에게 다가왔다. 검을 한 손에 쥔 김소희는 핸드폰을 검에서 떼 어내고는 강두치에게 던졌다.
숯불로 주위가 환하니 더 이상 핸드폰 플래시를 켤 이유가 없었 기 때문이었다.
“이크!”
김소희가 던지는 핸드폰을 강두 치가 급히 받았다.
“누님, 아직 할부 안 끝났다니 까요.”
강두치가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
냐는 듯 보자, 김소희는 그런 것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를 보 다가 말했다.
“내 하나 사 주랴?”
김소희의 말에 강두치가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손으로 닦았다.
“아닙니다.”
그는 더 칭얼대는 대신 숯불 옆 에 쪼그려 앉아서는 손을 내밀며 불을 쬐었다.
“누님도 이리 와서 불을 좀 쬐 십시오.”
“되었다.”
“이 불은 저승의 것이라 귀신도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따뜻하고 좋을 텐데요.”
김소희가 불을 힐끗 보자, 강두 치가 웃으며 말했다.
“이리 오세요.”
강두치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있다가 그 옆에 와서는 손을 내 밀었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온 기에 김소희는 옅게 미소 지었 다.
“ 따뜻하군.”
“현신해서 느끼는 온기와 귀신 일 때 받는 온기의 느낌은 좀 다 르시죠?”
“그렇군.”
고개를 작게 끄덕인 김소희가 가만히 손을 내밀고 있자, 강두 치가 말했다.
“저도 오랜만에 물놀이군요.”
“같이 하시게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서운하다
는 둣 그를 보았다.
“과일도 사 왔는데 쫓아내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오늘은 일이 없으신가 해서요.”
“반차 쓰고 왔습니다.”
싱긋 웃는 강두치를 보며 강진 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턴을 보 았다.
“ 인턴분은?”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인턴을
보았다.
“너도 놀래?”
“아닙니다. 저는 가서 일해야 죠.”
“그래? 그럼 가서 일해.”
강두치의 말에 인턴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아…… 알겠습니다.”
인턴이 시무룩한 얼굴로 몸을 돌리려 하자, 강두치가 혀를 찼 다.
“됐어. 너도 같이 놀아.”
“아! 그래도 될까요?”
“내가 나오면서 회사에다가 너 한끼식당 영업하러 간다고 했어. 한끼식당 음식 맛있으니 오늘 많 이 먹어라.”
“감사합니다.”
인턴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이 고는 옆을 가리켰다.
“너도 이리 와서 불멍이나 때 려.”
“불멍요?”
“불 보면서 멍하니 있는 것 말 이야. 이게 또 정신 건강에 좋거 드 ”
강두치가 옆을 손으로 톡톡 치 자, 인턴이 와서는 그 옆에 쪼그 리고 앉았다. 그에 강두치가 가 방에서 음료를 하나 꺼내 내밀었 다.
말없이 음료수를 주는 것에 인 턴이 감동한 얼굴로 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잘 먹겠습니다.”
인턴의 말에 강두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저 숯의 불길을 바 라보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속 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챙겨주시기는 하네.’
그런 둘을 볼 때, 강두치가 그 시선을 느끼고는 민망한 듯 시계 를 보았다.
“오 분 남았네요. 슬슬 준비하 셔야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시간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배식 준비할게요. 모 이세요!”
강진의 외침에 주위에 흩어져 있던 귀신들이 하나둘씩 음식이 있는 곳으로 모였다. 그런 귀신 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몇 가지 주의사항 알려 드리고 시작할게요. 저 불에 너무 가까 이는 다가가지 마시고 조금 떨어 져서 불멍을 하시든 불을 쬐시든 하세요. 그리고 새벽 한 시에는 영업 마감합니다. 그러니 12시
59분쯤에 제가 신호를 주면 드시 던 음식과 컵은 내려놔 주세요. 들고 있다가 현신이 풀리면 컵 깨지거든요.”
귀신들은 강진이 일러 주는 주 의사항을 대강 들으며 앞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관심은 음식이었지, 주의 사항이 아니었다.
놀이공원에서도 사람들은 놀이 기구에 관심을 주지, 주의사항은 그저 한 번 보고 지나치니 말이 다.
그런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숯 에서 솟구치는 불길을 보았다.
‘하긴, 날파리도 아니고 저 불길 을 보고 다가가지는 않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은 귀신 들이 현신하는 것을 보았다.
화아악! 화아악!
“허억! 내가 사람이 됐어.”
“내가…… 사람이라니.”
“아아악! 몸이 느껴져.”
“시원해. 바람이 너무 시원해.”
몸이 만져지는 것에 놀라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보던 강진은 남한 군과 북한군 군복을 입은 귀신들 을 보았다.
‘역시 전쟁터는 전쟁터구나.’
군인 귀신들이 서로를 보고 놀 라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육이오 이후 여기에 계속 묶여 있는 귀신들을 보니 안쓰러운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