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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719화 (717/1,050)

719화

강진과 배용수 그리고 여직원들 은 음식들을 귀신들에게 배식해 주고 있었다.

그냥 자율배식을 해도 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귀신들이 이성을 잃고 식판에 음식을 마구잡이로 덜어 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면 음식을 흘리는 일 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직원들이

배식해 주고, 그다음부터 자율배 식을 하는 것이다.

귀신들이 하나둘씩 음식을 받아 자리에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은 앞에 선 귀신을 보았다.

아까 현신을 하면서 좋아하던, 북한군 복장을 한 중년 귀신이었 다.

“북한에서 오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쓰게 웃으 며 말했다.

“이념이 달라서였지…… 제 고

향은 부산입니다.”

부산 특유의 억양을 약간 섞어 서 쓰는 남자를 보고 강진이 물 었다.

“부산?”

북한군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니 조금 의아한 것이다.

“독립운동을 평양 쪽에서 했는 데…… 그 후에 독립하고 나서 이렇게 됐지요.”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그 시대엔 독립운동하는 사람 들이 아주 많았으니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하는 남 자를 보고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무슨…… 아주 대단한 일이죠. 존경합니다.”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남자가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을 해 주시니…… 감 사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강진은 남자가 들고 있는 식판 에 닭발과 음식들을 올려주다가 말했다.

“닭발이 맵습니다.”

“하하하! 매운 것 좋아합니다.”

웃으며 대답한 북한군 남자가 한쪽으로 가자 강진은 다음 귀신 에게 음식을 덜어 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 만, 강진이 걱정했던 ‘전쟁으로 죽은 귀신’은 몇 되지 않았다.

남한군 둘에 북한군 셋이 전쟁

으로 죽은 귀신들이었고, 그 다 섯 외에는 등산하다가 죽은 귀신 몇과 산 인근에서 몰려온 귀신들 이었다.

물론 다섯이 적은 인원은 아니 었다. 전쟁 이후 이 산에 계속 묶인 채로 있었던 귀신이 다섯이 나 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죽어서는 적이 아닌 모양이다.”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를 보았다. 배용수는 군인 귀신 들을 보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남한군과 북한군 귀 신들이 숯불 옆에 앉아 소주를 나눠 마시는 것이 보였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아 생전과 달리 지금은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었 다.

“살아서야 적이지만, 지금은 그 냥 가족과 떨어져 죽은 불쌍한 귀신일 뿐이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 렸다.

“어머! 우리가 늦었나 봐.”

여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 진은 처녀 귀신들과 총각 귀신들 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이혜선이 웃으며 음식을 보았다.

“오늘은 안주가 좀 부실하네 요.”

“야외에서 하는 것이라서 가게 에서 먹는 것처럼 할 수는 없죠. 조금 부실하지만 최선을 다했으 니 맛있게 드세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 래도 저희가 좋아하는 것도 있고 좋네요.”

웃으며 젓가락으로 닭발을 하나 집어 입에 넣은 이혜선이 미소를 짓다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풍을 올 거면 우리도 불러야지, 왜 안 불렀어 요.”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미안한 듯 그녀를 보았다.

“제가 챙길 식구들이 많다 보니 생각을 못 했네요. 미안해요.”

말 그대로 생각을 못 했다. 이 번 소풍은 직원들을 위한 것이었 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출장 저승식당처럼 되기는 했지만 말 이다.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녀는 물가를 보며 말을 덧붙 였다.

“그리고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알아서 가는 것이 나, 이혜선이 니까요.”

이혜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귀기는 어떻게 한 거예 요?”

보통 처녀 귀신들과 총각 귀신 이 오면 배용수가 바로 알아차리 고 신호를 주는데, 이번엔 그러

질 않아서 이들이 오는 것을 몰 랐던 것이다.

게다가 처녀와 총각 귀신들이 왔는데도 다른 귀신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 다.

“소희 언니가 저희 불러서는 향 수 뿌려주셨어요.”

“아가씨가요‘?”

강진은 의아한 듯 주위를 보다 가 이지선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 가오는 김소희를 보았다.

강진의 시선에 김소희가 향수를 휙 하고 던졌다.

탓!

강진이 그것을 받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좀 썼네.”

“쓰는 것은 괜찮은데……

어떻게 자동차 문을 열었는지를 물으려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소희 아가씨 이즈 뭔들인가?’

김소희라면 무엇을 해도 가능할

것 같았다.

강진은 귀신들의 면면을 보다가 장태풍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장태풍이 웃으며 물을 보았다.

“전라도 오면서 연락도 안 하고 서운해.”

“다음에는 꼭 찾아뵙겠습니다.”

“다음에는 우리 지리산에서

해.”

장태풍은 계곡을 보며 말을 이 었다.

“우리 지리산 계곡이 여기보다 훨씬 좋아. 지리산 오면 내가 산 삼도 몇 뿌리 챙겨 줄 테니 몸보 신도 좀 하고.”

산삼이라는 말에 강진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는 꼭 지리산으로 가겠 습니다.”

강진의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은 장태풍이 몸을 비틀었

다.

우두둑! 우두둑!

우두둑! 우두둑!

근육질의 몸을 이리저리 비틀던 장태풍이 웃었다.

“현신했을 때 이렇게 몸에서 소 리 나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다 니까.”

장태풍은 자신의 팔을 옆으로 잡아당겼다.

우두둑! 우두둑!

우두둑! 우두둑!

어깨에서 소리를 낸 장태풍이

강진을 보며 말했다.

“강진이도 운동 좀 해. 남자는 근육이 있어야지.”

“저도 몸 나쁘지 않은데요.”

“하하하! 그게 무슨 근육이라 고. 이 정도는 있어야지.”

장태풍이 팔에 힘을 주자, 근육 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조선 시대에 헬스장이 있을 리 도 없는데…… 저런 근육은 어떻 게 만든 거야?’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장 태풍이 총각 귀신들을 향해 소리 쳤다.

“일단 한 병씩 마시고 물에 뛰 어들자!”

“그럽시다!”

“놀아보자!”

총각 귀신들은 계곡물로 뛰어가 더니 물에 담가둔 소주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따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와!”

“우와!”

그 모습을 주위에 있던 귀신들 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 리 향수를 뿌리고 와서 그들이 총각 귀신인 줄은 모르지만, 아 무리 귀신이라도 소주 한 병 원 샷을 하니 놀라는 것이다.

총각 귀신들은 소주 한 병을 단 번이 들이켜고는 그대로 계곡물 에 뛰어들었다.

“준비 운동도 없이 저 찬물에.”

강진이 놀라 그들을 볼 때, 배

용수가 웃었다.

“귀신이 심장 마비로 죽겠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이혜선이 고개를 저 었다.

“술 못 먹어서 귀신이 됐나. 짐 승처럼 저게 뭐야.”

이혜선은 동생들과 함께 계곡에 다가가 발을 살짝 담가 보고는 말했다.

“물 너무 차갑다.”

“그래요?”

“너희도 들어가 봐.”

이혜선의 말에 강한나와 조명희 도 물에 들어갔다가 놀라 다시 나왔다. 그러고는 잠시 있다가 숨을 고르고는 물속에 들어갔다.

그 모습에 이혜선이 놀라며 물 었다.

“안 추워?”

“추워요.”

“그런데 왜 들어가?”

“물놀이하러 왔으면 물속에는 들어와야죠. 그리고 놀다 보면 그렇게 안 추울 거예요. 그리고 저 불에 얼은 몸을 녹이는 것도 기분 좋을 거 같고요.”

강한나의 말에 잠시 있던 이혜 선이 제자리에서 몇 번 뛰었다가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귀신들도 하 나둘씩 물속으로 들어갔다.

“여러분들도 들어가세요.”

“여기는요?”

여직원들이 음식들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었다.

“이제는 알아서 자율배식으로 먹어야죠. 그리고 오늘은 우리 놀러 온 거잖아요.”

여직원들이 서로를 보다가 계곡 으로 향하자,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수영복은 안 입어요?”

“어머! 강진 씨, 아침에 그렇게 비키니 입은 여자들 보더니 지금 은 우리도 보고 싶은 거예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선물 받은 건데 왜 안 입나 해서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분들은 수영복 안 입는데 저희만 입기 그래서요. 그리고 아가씨도 안 입잖아요.”

이혜미가 김소희를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살짝 말했다.

“호철 형이 실망하겠네요.”

“네?”

무슨 말이냐는 듯 강진을 보던 이혜미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호철 오빠 그런 사람 아니거든 요!”

“무슨…… 남자는 다 그런 사람 이에요.”

“아니거든요.”

극구 부인한 이혜미가 여자 귀 신들과 함께 물을 향해 뛰어가는 걸 보던 강진은 김소희를 보았 다.

김소희는 이지선과 함께 물속에 서 노는 귀신들을 보며 서 있었 다.

“아가씨도 들어가시죠.”

“이따가 발이나 살짝 담그면 될 일일세.”

그러고는 김소희가 이지선을 보 았다.

“자네는 들어가 보게.”

“아닙니다.”

자신의 옆에 있겠다는 이지선을

보며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니 들어가 보게.”

김소희의 말에 이지선이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물가로 걸어갔 다. 그러고는 살며시 물에 발을 담그고는 천천히 깊은 곳으로 들 어가기 시작했다.

물에 뜨는 치마를 누르며 안으 로 들어가는 이지선을 보던 강진 은 도로 쪽으로 올라가 푸드 트 럭의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조수석 바닥에 있는

쇼핑백을 들고 밑으로 내려왔다.

계곡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강 진이 쇼핑백에서 튜브와 비치볼 을 꺼내서는 불기 시작했다.

푸우욱! 푸우욱!

그러는 사이 배용수가 다가와서 는 같이 공에 바람을 넣었다. 그 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고는 힘껏 숨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잘 부풀린 공을 이혜선 에게 던졌다.

“혜선아!”

파앗!

강진이 공을 던지자 이혜선이 그것을 잡고는 엄지를 치켜들었 다.

“오빠 나이스!”

이혜선이 공을 가슴에 안고는 물로 뛰어들며 첨벙거리자 강진 이 웃으며 다른 공들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푸우우! 푸우우!

배용수도 비치볼을 이혜미 쪽에 던지고는 말했다.

“우리 둘이 이거 언제 다 부 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튜브들을 보다가 귀신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거 가지고 놀고 싶은 분들은 알아서 바람 넣어서 노세요!”

강진이 튜브들을 물 쪽으로 던 지자 귀신들이 튜브들을 주워서 는 서둘러 바람을 넣었다.

물놀이의 묘미는 튜브나 비치볼 에 몸을 맡기고 물에 떠다니는 것이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튜브에 마저 바람을 넣을 때, 귀신 몇이 다 마시고 비어 있는 페트병을 들고는 물속에 뛰어드는 것이 보 였다.

‘저렇게 놀아도 되기는 하겠네.’

빈 페트병도 뚜껑을 닫으면 물 에 뜨니 말이다. 물론 사람 몸을 지탱할 부력까지는 못 얻을 테지 만…… 그래도 첨벙거리며 놀만 은 할 것이다.

“간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강진이 소리 가 들린 곳을 보자, 장태풍이 아 까 본 바위 위에서 물을 향해 휙 하고 뛰는 것이 보였다.

첨벙!

몸을 공처럼 말아서 물에 뛰어 드는 장태풍의 모습에 강진이 작 게 웃었다.

‘위험하게 누가 저기서 뛰나 했 더니……

고개를 저은 강진은 자신이 불 던 비치볼을 마저 불었다. 그러

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자 그것 을 물가로 던졌다.

휘익! 멈칫!

그런데 허공을 날아가던 공이 그대로 멈췄다.

“어?”

허공에 뜬 공을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볼 때, 공이 뒤로 날아가 기 시작했다.

두둥실. 두둥실.

강진이 뒤를 돌아보니, 공이 김

소희 손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 다.

한동안 날아가던 공은 김소희의 손에 내려앉았다. 김소희는 공을 잠시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저런 것을 좋아하시는구나.’

김소희가 들고 있는 비치볼은 얼음 나라의 눈사람 캐릭터 얼굴 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의외 로 저런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었 다.

‘나중에 저 캐릭터 그려져 있는

티셔츠와 신발이라도 좀 사드려

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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