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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720화 (718/1,050)

720화

눈사람 캐릭터가 그려진 공을 가만히 보던 김소희가 그것을 가 지고 계곡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공 가지고 물놀이하면 무척 재 밌습니다.”

김소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는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작게 웃고 는 주위를 보다가 군인 귀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말을 걸자 아까 봤던, 북한군 중년 남자 귀신이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이리 앉으세요.”

강진이 자리에 앉자 남자 귀신 은 남아있던 소주를 마시고 빈 잔을 내밀었다. 강진이 그 잔을 받자 남자 귀신이 소주를 따랐

다.

쪼르륵!

“이렇게 저희를 위해서 자리도 마련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강진은 소주를 마시고는 말했 다.

“저야 늘 하는 일인걸요.”

“저승식당이라……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이런 분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박령이시죠?”

“어디 다른 곳을 가지 못하 니…… 지박령이 맞습니다.”

남자 귀신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 다.

“저승식당은 처음이시죠?”

“저희야 여기에 묶여 있었으니 처음입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재차 고개 를 끄덕이다가 흘리듯 말했다.

“제가 여기에서 죽은 북한군 귀 신 한 분 아는데.”

같은 북한군이고 이곳에서 같이 죽었으니 정복남을 알지 않을까 싶어 말을 꺼낸 것이었다.

강진의 말에 남자가 놀란 눈으 로 물었다.

“혹시 서울 저승식당 사장님이 십니까?”

“네.”

“아! 복남이에게 이야기 들었는 데 사장님이 그 사장님이셨군 요.”

“정복남 씨를 아세요?”

“얼마 전에 동생하고 여기에 왔 더군요.”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 었다.

“반가우면서도 씁쓸했습니다. 그때 전투에서 어떻게든 도망쳐 서 잘 살았으면 했는데…… 이렇 게 우리처럼 이승을 떠도는 귀신 이 되다니.”

“죽는 것을 보지는 못하셨나 보 군요.”

“지휘관으로서 부하들 챙겨야

하지만…… 그때는 전투가 산발 적으로 진행이 되어서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젓던 남 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녀석은 여전히 잘생 겼더군요.”

침울해지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정복남의 외모로 화제를 돌리 는 남자 귀신을 보며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잘생기셔서요.”

“그때 복남이 얼굴 보겠다고 인 근 처녀들이 부대 근처를 계속 돌아다니곤 했었지요. 그 덕에 우리 부대원들이 여자 구경은 많 이 했습니다.”

남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복립이 그 작은 녀석이 그렇게 노인이 되어서 나타날 줄 은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정복립 어른도 아세요?”

“복남이가 동생 혼자 둘 수가 없다고 해서 저희 부대에서 같이

살게 했었던 터라 알고 있습니 다. 그 녀석, 어디서 구해 왔는지 미국 음식들도 자주 구해오기도 하고…… 후후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웃는 남자 를 보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혹시 부대 대장이세요?”

“맞습니다.”

남자가 자신의 어깨에 걸린 계 급장을 눈짓으로 가리켰지만, 강 진은 그것이 어떤 계급인지 알지 못했다.

남한 계급도 아니고 북한 계급 장인데다 생긴 것도 조금 특이하 니 말이다.

계급장을 손으로 쓰다듬은 남자 가 쓰게 웃으며 부하들을 보았 다.

“이 녀석들이라도 고향으로 보 내 줬어야 했는데…… 너희 부모 님들께 미안하구나.”

남자의 말에 부하들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 부모님들이야 이미 하늘

나라 가셨을 건데…… 괜찮습니 다. 그리고 저희만 남은 것도 아 니고 대장님도 남으셨는걸요.”

부하들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일 때, 강진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정복남 씨에게 들으니 부대원 들이 모두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 이라고 하던데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 덕였다.

“통일되고 만주에서 의병 활동

을 하던 부대들이 북한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중 많은 부 대가 북한에 편입되었습니다.”

남자는 기억을 더듬다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서울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쫓겨서 만주로 간 뒤 다시 평양으로 내려와서 독립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만주 쪽 부대들과 인연이 있어서 이렇 게 이 부대 대장이 된 겁니다.”

말을 하는 남자에게 강진이 잔 을 내밀었다. 남자가 잔을 받자

강진이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잘들 지내시는 것 같네요.”

강진이 남한군을 보며 하는 말 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살아서야 적이지, 죽어서까지 적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는 남한군 귀신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신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 고 아버지가 있는 건 저 친구들 이나 저희나 같으니까요.”

부모란 말에 남한과 북한 군인 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금세 침 울해지는 그들의 표정을 보던 남 자는 고개를 젓고는 강진을 보았 다.

“소윤이라고 합니다.”

“이강진입니다.”

인사를 나눈 소윤이 소주를 마 시고는 강진에게 잔을 내밀었다.

“혹시 담배는 없습니까?”

소윤의 말에 군인들이 초롱초롱 한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다들 담배를 피우시나 보네 요?”

“사장님은 담배 안 피우십니 까?”

“네.”

강진의 말에 소윤이 그를 보다 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시대에는 담배를 많이들 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닌가 보군요.”

“담배 피우면 몸에 안 좋아서 요.”

“그래요?”

담배가 몸에 안 좋다는 이야기 를 처음 들어 보는 듯한 소윤의 반응에 강진이 웃었다.

“하긴, 그때는 담배가 몸에 안 좋다는 인식이 없었죠?”

“저는 처음 들어 봅니다.”

소윤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옛날에는 담배를 그저 기호 식품 정도로 생각했고, 몸 에 나쁘다는 인식은 거의 없었으 니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 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유해는 발 굴이 되었나요?”

강진의 말에 소윤이 고개를 저 었다.

“아닙니다.”

“음…… 그럼 유해 찾아서 양지 바른 곳에 이장을 해 드릴까요?”

말을 하던 강진이 남한군을 향 해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은 국군에 말을 하면 유 해 찾아서 현충원에 이장해 드릴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남한군들이 서로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희 다 썩어서 많이 안 남았습니다.”

“TV 보니 유골이 조금만 남아 있어도 잘 수습하더라고요. 유골 수습하는 부대도 있는 것 같고.”

강진은 일전에 보았던, 전쟁에 서 희생된 참전용사들의 유골을

찾아 발굴하는 부대를 다룬 다큐 멘터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강진의 말에 남한군이 슬며시 소윤을 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는 가야지.”

소윤의 말에 남한군이 간절한 얼굴로 강진을 보았다.

“그럼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희……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 지는 않겠지만, 유골이라도 엄마 곁에 돌아갔으면 합니다.”

“저…… 저도요.”

두 귀신은 지금이라도 집에 가 고 싶었다.

한편, 두 남한군의 말에 북한군 셋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어렸다.

남한군이야 유골이 수습되면 돌 아갈 곳이 있지만…… 자신들은 북한군이라 인도될 것 같지 않았 으니 말이다. 소윤은 그런 부하 들의 어깨를 두들겼다.

“소윤 대장은 부산 사람이니, 고향에 이장되면 되지 않습니

까?”

남한군의 말에 소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부대원들이 여기에 있는데 나 혼자 어떻게 가겠나. 자네들 이라도 고향, 아니 가족들에게 갈 수 있을 때 가는 것이 좋지.”

소윤은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 다.

“자식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 아니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가슴 이 타들어가는 심정일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자식, 남편, 형제 가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지요.”

잠시 말을 멈춘 소윤이 계곡물 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그건 자식이 전사했다 는 통지를 받고 나서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시체라도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거지요?”

소인명을 떠올리며 강진이 말을 하자, 소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녀석들 모두 집을

나올 때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잘 갔다 올게. 그리고 가족들은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몸 건강 히 잘 와야 한다.”

소윤이 군인들을 보자, 그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집을 나올 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엄마, 걱정하지 마. 건강하게 돌아올게.

-살아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

-갔다 올게.

지금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 어 버렸지만……

“부모님들은 그 약속을 떠올리 며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랄 겁니 다.”

잠시 말을 멈춘 소윤이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부모님들은 승천을 해서 귀신

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혹 시라도 아직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이렇게라도 약 속이 지켜질 수 있을 겁니다.”

소윤은 남한군들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최소한 돌아온다는 약속은 지 키는 것이니까요.”

소윤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알겠습니다. 시신이 있는 곳을 이야기해 주시면 제가 두 분 유

골 찾을 수 있도록 국군에 연락 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환하게 웃은 소윤은 소주를 마 시고는 강진에게 잔을 내밀었다.

소윤에게 잔을 받으며 강진은 그와 북한군을 보았다. 북한군들 은 남한군들에게 소주를 따라주 며 잘 됐다는 말을 해주고 있었 다.

그런 북한군들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젓다가 문득 물었다.

“부산이 고향이시면 가족들도 부산에 계시지 않나요?”

강진의 물음에 소윤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립운동한다고 타지 생활을 하느라 챙기지 못한 아내와 자식 들이 있습니다.”

“자식이 있으세요?”

“저희 때야 일찍 혼인을 하니 물론 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매국노 죽이고 도망칠 때 애가 아홉 살이었으니……

소윤이 쓰게 웃으며 소주를 한 모금 마시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말했다.

“독립하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 셨어요?”

“철책선이 생겼고…… 이미 부 대를 책임지고 있던 때라서 남한 으로 올 수가 없었습니다.”

소윤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종종 남한으로 사람을 보내 서

신을 주고받기는 했습니다.”

“간첩요?”

강진의 말에 소윤이 웃었다.

“그때는 철책선이 다 쳐지지 않 은 상황이라서 사람들이 오가고 는 했습니다.”

“그럼 그렇게라도 가족을 데려 오.. ”

말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소윤이라고 왜 그런 마음이 없었겠는가. 다만 가족을 데려오 지 못할 사정이 있으니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말을 잇지 못하는 강진을 보던 소윤이 남쪽을 보았다.

“전쟁이 이기든 지든…… 살아 있으면 만날 거라고 생각을 했는 데…… 이렇게 되었군요.”

소윤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북한군들을 보았다. 그러 고는 잠시 있다가 물었다.

“세 분은 어디에 묶여 계신 건 가요?”

강진의 물음에 북한군 중 가장

어려 보이는…… 고등학생 정도 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저는 사진입니다.”

“사진?”

“저희 어머니와 찍은 사진입니 다.”

“그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나 요?”

강진의 물음에 남자가 쓰게 웃 으며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세요?”

“땅에 묻혀 있어서……

남자가 자신의 손을 보며 말했 다.

“귀신이라 땅을 팔 수가 없어서 요.”

“아……

“하지만 남아는 있습니다. 제가 거기에 묶여 있는 것이 느껴지거 든요.”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옆을 보

자, 조금 살집이 있는 남자가 말 했다.

“저는 칼입니다.”

“칼요?”

“저희 아버지가 남자는 칼 하나 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요.”

두 사람 다 의미가 있는 물건에 묶여 있다는 사실에 강진은 그나 마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땅에 묶여 있지 않고 물건에 묶

여 있다면 이곳을 벗어나도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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