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21화 (719/1,050)

721 화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은 문득 두 북한군이 무척 어려 보이는 것에 물었다.

“그런데 두 분 어려 보이시는데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독립운동을 했다기엔 좀 나이가 어려 보이는 것이다. 강진의 말 에 소윤이 웃었다.

“독립운동에 나이나 성별이 무 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나라를

사랑하고 독립을 원하는 사람이 라면 눈이 안 보이고 말을 하지 못해도 다 애국지사고 독립운동 가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소윤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알고 지내던 여사님은 나 이도 많고 눈도 보이지 않는데도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눈이 안 보이시는데 독립운동 을요?”

“눈이 안 보인다고 해도 독립을

향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고, 위태로운 조국과 일제의 탄압에 신음하는 동포들이 안 보이는 것 은 아니니까요.”

그러고는 소윤이 웃으며 말을 했다.

“그분은 유능한 정보원이었습니 다.”

“정보원?”

“눈이 안 보이셔서 순사들도 여 사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눈 도 안 보이는 병…… 흠!”

작게 헛기침을 한 소윤이 말을 이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무슨 독립운동을 하겠냐고 우습게 본 것이죠.”

“그렇겠네요.”

사지 멀쩡한 사람들도 목숨 걸 고 하는 독립운동을 몸이 불편한 사람이 할 것이라 생각을 못 했 을 것이다.

“여사님이 알려 준 정보로 조국 의 독립이 한 걸음 정도는 더 나

아갔을 겁니다.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러 애국지사들 의 걸음이 한 발 한 발 모여서 독립이 된 것입니다.”

소윤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며 그의 잔에 소주를 따랐 다.

어떤 사람들은 핵에 일본이 무 너졌다고 하지만, 독립을 바라는 선조들이 있었으니 독립이 된 것 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물러 난 뒤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많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소윤의 답에 강진은 한번 웃어 주고는 귀신들이 먹는 음식들을 살피다가 계곡에 다가갔다. 계곡 안에는 어느새 한끼식당 식구들 이 모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까는 춥다고 했던 배용수도 위통을 벗어 버리고는 맨몸으로 물에서 첨벙거리고 있었다.

“야! 안 춥냐!”

강진의 외침에 배용수가 웃었 다.

“놀다 보니 안 춥다.”

배용수는 몸을 타고 흐르는 물 을 손으로 훔치고는 말했다.

“그리고 추우면 뭐 어때. 나가 서 숯불 좀 쬐면 금방 따뜻해지 는데.”

배용수는 근처에 떠 있던 비치 볼을 집어 힘껏 던졌다.

부응!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강 진이 받자 배용수가 말했다.

“너도 들어와.”

그에 강진이 웃으며 들어가려고 하자, 배용수가 말했다.

“너도 위통 벗고 들어와.”

“위통?”

“몸에 옷 달라붙으니 불편하더 라. 그리고 물 묻으면 입으나 안 입으나 춥기는 마찬가지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피식 웃고는 상의를 벗어서 는 숯불 근처에 놓은 뒤 그대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첨벙! 첨벙!

물을 거칠게 튀기며 안으로 뛰 어들던 강진의 얼굴이 순간 굳어 졌다. 호기롭게 뛰어들기는 했지 만 물이 엄청 차가운 것이다.

냉기에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강진에게 배용수가 달려들 었다.

“으랏차!”

강진의 몸을 붙잡은 배용수가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렸다.

첨벙!

“어푸! 어푸!”

차가운 물에 잠겼다가 수면 위 로 나온 강진은 급히 물을 뱉으 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제 덜 춥지?”

배용수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몸을 이리저리 털다가 물속

에 몇 번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 복했다.

첨벙! 첨벙!

머리까지 담갔다가 나오기를 반 복하자 여전히 춥기는 했지만 버 틸 만했다.

그렇게 약간이나마 적응한 강진 이 배용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많이 안 춥다!”

강진이 달려들자 배용수도 마주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물에서 이리저리 힘 겨루기를 하며 서로를 자빠뜨리 려고 할 때, 나른한 목소리가 옆 을 스치며 지나갔다.

“물 튀니 조심하게.”

그에 강진이 보니 옆에 김소희 가 도넛 모양 튜브에 올라탄 채 소주를 마시며 떠다니고 있었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시고 있 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 다.

“아가씨, 안주하고 같이 드시

죠.

강진의 말에 나른한 얼굴로 두 둥실 물 위에 떠다니던 김소희가 말했다.

“안주라면 저기에 있지 않나.”

김소희는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을 가리켰다.

“시간이 흘러 세상 많은 것이 변했지만, 저 달빛만은 변하지 않으니…… 저 달빛에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않군.”

김소희는 달에 건배라도 하듯

소주잔을 들어 보이고는 입에 가 져다 댔다.

꿀꺽!

한 모금을 마신 김소희가 스스 로 잔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오백 년 전 달과 지금의 달이 같으니…… 지금이 오백 년 전 조선인지 오백 년 후의 한국인지 알 수가 없군.”

술에 취한 듯 감성적인 말을 하 는 김소희를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드시는 술이 소주인 것을 보면 오백 년 후 한국이 맞는 것 같습 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한 번 보고는 소주병을 보았다.

“변해서 좋은 것 중 하나가 바 로 이 소주지.”

김소희는 새로 채운 잔을 강진 에게 내밀었다.

“어? 저 주시는 겁니까?”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조금 더 들자 강진이 웃으

며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는 소 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아가씨께서 나를 편히 생각하 시는구나.’

자신이 마시던 잔으로 술을 나 눠 주니 말이다. 같은 잔을 쓰는 행동은 예전이라면 절대 하지 않 올 일이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소주를 마 시고는 그녀에게 잔을 내밀었다. 강진이 건네주는 잔을 받은 김소 희가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계 곡물에 담가서는 휘저었다.

물에 잔을 씻어내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아직…… 그 정도로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그녀가 쥐고 있던 소주병을 잡았다.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김소희가 잔을 내밀자, 강진이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강진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은

김소희는 물끄러미 달을 보다가 물가 근처에서 타오르는 숯불을 보았다.

불이 피어오른 뒤로 제법 시간 이 지났지만, 여전히 맹렬하게 불길을 뿜어내는 숯불을 보던 김 소희가 말을 했다.

“복래와 함께 물놀이를 하던 것 이 생각나는군.”

“복래 여사님도 물놀이를 좋아 하셨군요.”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아이

들이 있는 부모는 놀이라는 것을 피할 수가 없는 일이지. 아이들 이 좋아하니까.”

“신수 형제를 말하는 거군요.”

“그 녀석들도 아이였을 때가 있 으니까.”

계곡을 보던 김소희가 말을 이 었다.

“그때는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나름 즐거움이었는 데……

“그때는 계곡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했을 때니까요. 하지만 지 금은 그걸 하면 안 되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아쉽다는 듯 숯불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즐거움이 하나 줄기는 했지만 자연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니……

고개를 끄덕인 김소희가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참 술을 좋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생전에도

술을 좋아하셨나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이 양반가에서 교양을 배 우고 예의를 배운 규수가 술을 좋아할 일이 있겠는가.”

말을 하던 김소희가 피식 웃었 다.

“내 어머님은 가끔 아버님 몰래 한 잔씩 하시던 것 같지만…… 후! 혼례를 하지도 않은 처녀가 술을 즐긴다니 불호령이 떨어질

일이지.”

“그럼 언제부터 술을 즐기신 건 가요?”

강진이 보자 김소희가 소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피 냄새를 잊는 데엔 술만 한 것이 없더군.”

“피 냄새요?”

강진이 눈을 찡그리며 보자 김 소희가 자신의 손을 보았다.

“나와 등을 마주 대고 싸운 전

우들의 상처를 닦으며 묻은 피, 내 손에 죽은 적들의 피…… 씻 어도, 씻어도 손과 몸에 묻은 피 의 향은 사라지지 않았네.”

김소희는 천천히 물에 손을 담 갔다.

스르륵! 스르륵!

강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 만, 김소희는 자신의 손에서 흐 르는 피에 물이 붉게 물드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다.

잠시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김

소희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 다.

“그래도 술을 마시면 피 냄새가 좀 잊어지더군. 그때부터 술을 마시게 되었네.”

옅게 미소 지은 김소희가 손으 로 수면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뒤 로 젖혔다.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떠내려가 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 진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어렸다.

‘아가씨께서 많이 힘드셨구나.’

하긴, 안 힘들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인 자들이 죽고, 적이라고 해도 사 람을 죽여야 했다.

거기에…… 자신의 오라버니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다.

그런 기억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김소희를 안타깝게 보던 강진은 고개를 돌려 물놀이를 하는 귀신 들을 보았다.

첨벙! 첨벙!

“꺄아악!”

“이 바보들아! 다이빙 좀 하지 마!”

“하하하! 아가씨들도 올라와서 좀 뛰어! 재밌다고!”

“미친! 우리 치마 입고 있거든! 그만 좀 뛰어 !”

첨벙!

“자, 받아!”

“오빠! 이리 와요. 여기 물고기 있어요.”

“내가 물고기 잡아 줄게!”

다이빙을 하는 남자 귀신, 질색 을 하는 여자 귀신, 공을 던지고 노는 귀신들…….

그리고 한쪽에서는 최호철이 이 혜미와 물고기를 잡겠다고 돌을 뒤집고 있었다.

지금은 다들 밝은 얼굴로 놀고 있지만, 모두가 가슴에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고통이나 슬 픔을 잊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부모들이 애들 데리고 놀러 다니는 모양이구나.’

놀이공원이든 해수욕장이든……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어른들 입 장에서는 피곤하고 힘들기만 하 다.

그럼에도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서였다. 지금 강진이 즐겁게 노 는 귀신들을 보며 기분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휴가 오기를 잘 했네. 매주는 어렵겠지만, 분기마다 한 번씩 놀러 가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귀신분들께는 미 안하지만 우리 식구들끼리 가야 겠어.’

모처럼 놀러 왔는데 다른 귀신 들 대접하느라 노는 것 반에 일 하는 것 반이었으니 말이다.

‘가을 되면 지리산이나 강원도 산도 괜찮겠다.’

지리산 단풍 여행을 가면 장태 풍과 총각 귀신들을 볼 수 있고,

강원도 산에는 할머니들이 있으 니 괜찮을 것이다.

‘하긴, 가을이면 강원도에 김장 하러 한 번은 가야……

생각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이런. 요즘 내가 너무 뜸했다.”

강진의 중얼거림에 비치볼을 머 리 뒤에 댄 채 배영을 하는 것처 럼 뒤로 누워 떠다니던 배용수가 말했다.

“뭐가 뜸해?”

“강원도 말이야.”

“강원도?”

“요즘 내가 통 안 갔네.”

“하긴…… 요즘 네가 안 가기는 했다.”

“그러게 말이야.”

강진이 미안한 듯 북쪽을 보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노느라 못 간 것도 아니 고…… 아침에 장사하지, 저녁에 는 저승식당 하지. 주말에는 보

육원 다니면서 음식 하지. 바빠 서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맛을 다셨다. 사실 바쁜 것도 있지만 생각을 하지 못해서가 컸으니 말이다.

언제든 문 하나 통과하면 강원 도 산골 마을에 갈 수 있는데도 못 간 것이다.

‘이거…… 미안하네.’

달래 누나와 만복 형에게도 미 안했다. 자신들이 떠나고 심심해

할 할머니들에게 강진이 찾아가 는 것이 위로가 될 텐데 말이다.

“내일이라도 잠시 다녀와야겠 다.”

“같이 가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바위 쪽을 보았 다.

바위 위에서는 여전히 남자 귀 신들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것 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바위 위 로 올라가자 배용수가 웃었다.

“누가 위험하게 저기서 뛰어내 리느냐고 하지 않았냐?”

“설마 죽기야 하겠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슬쩍 주위 귀신들을 보았다. 설 마 죽기야 하겠어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여기 있는 것이다.

바위 위에 올라온 강진에게 장 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확 뛰어 버려.”

바위 위에 선 강진은 살짝 침을 삼켰다. 밑에서 볼 때는 몰랐는

데 위에서 보니 생각보다 높은 것이다.

“사장님 파이팅!”

“사장님 멋져요!”

“오빠, 화끈하게 뛰어 버려!”

바위 위에 서 있던 강진은 여자 직원들과 이혜선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하는 것에 입맛을 다셨 다.

마음 같아서는 슬쩍 다시 내려 가고 싶은데 다들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하니…….

‘이런…… 제기랄.’

속으로 욕을 뱉으며 강진이 그 대로 바위에서 물로 뛰어내렸다.

첨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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