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24화 (722/1,050)

724화

강진은 계곡물에 몸을 담근 채 씻고 있었다. 산에 올라갔다 오 느라 온몸이 땀투성이라 계곡에 들어간 것이다.

물이 여전히 차갑기는 했지만, 햇살이 따스해서 그런지 어제보 다는 괜찮았다.

마음 같아서는 비누로 몸을 씻 고 싶었지만, 자기 깨끗하자고 계곡을 더럽힐 수는 없는 일이었

다.

물속에 들어가 씻고 나온 강진 이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는 옷 을 갈아입었다.

“갈아입을 옷을 많이 가져와서 다행이네.”

작게 중얼거리며 옷을 갈아입는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사진하고 위치 보냈어.”

“민성 형이 뭐래?”

강진이 씻고 있는 사이에 배용

수가 유골들의 위치와 사진을 황 민성에게 보낸 것이다.

“군에 아는 사람한테 이야기했 더니 바로 사람 보내서 확인하겠 대.”

“ 바로?”

생각보다 빠른 일처리에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배용수가 말했 다.

“참전 용사 유골 찾는 일에 군 에서도 힘을 많이 쓴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좀 나라에서 잘하네.”

“유골 찾는 부대도 운영을 하 니…… 신경을 쓰는 거지. 검색 해 보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유골 찾는 부대 만들었다 고 하더라.”

머리에 묻은 물기를 떨어낸 강 진은 귀신들을 보았다. 계곡에는 군인 귀신들과 한끼식당 직원 귀 신들이 모여 있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강진의 물음은 두루뭉술했지만, 소윤과 북한군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그에 소윤이 남한군을 보자, 남 한군 귀신들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와 여기에서 수십 년 있었 잖습니까. 바깥세상도 좀 보고 그러세요.”

남한 귀신의 말에 소윤이 그들 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강진을 보았다.

“남한 군인들은 언제 오는 겁니

까?”

“제가 아는 분에게 이야기를 했 는데 바로 사람이 온다고 했습니 다. 바로 온다고 바로 발굴이 이 뤄지지는 않겠지만…… 조사하다 보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소윤이 잠시 있다 가 물었다.

“부산은 언제 가는 겁니까?”

“이번 주에는 제가 일을 해야 해서요. 일요일에 가려고 합니

다.”

“ 일요일.. ”

잠시 고민하던 소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는 이곳에 있겠습니 다.”

“이곳에요?”

“수십 년 있었던 곳입니다. 며 칠 더 있으면서 이 녀석들 떠나 는 것 배웅하고 싶습니다.”

소윤의 말에 남한군이 그를 보

았다.

“대장.”

남한군의 시선에 소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에야 너희 총알에 내 부하 들이 죽었을 것이고, 우리 쪽 총 알에 너희 전우들이 죽었겠지 만…… 너희와 함께 한 지도 벌 써 칠십 년 가까이 된다.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가족이 가는 길 마지막은 배웅하고 싶 다.”

“고맙습니다.”

남한군의 말에 소윤이 둘의 어 깨를 두들겨 주고는 강진을 보았 다.

“죄송하지만 일요일에 한 번 더 저희를 데리러 와 주시겠습니 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 서울 가면 복남이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다음 주에 시간이 되면 같이

한번 오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소윤이 미소를 지 으며 고개를 숙였다.

“음식도 고마웠고, 저희 애들 챙겨 주신 것도 너무 감사했습니 다.”

강진은 마주 고개를 숙이고는 직원들과 함께 자신들이 놀았던 계곡 주위를 돌아다니며 쓰레기 를 치웠다. 쓰레기라고 해 봐야 어제 귀신들이 먹고 홀린 음식 정도가 다였다.

강진은 그것을 모두 모아 봉투 에 넣어서는 자동차에 실었다. 그러고는 상자 하나를 들어 보이 며 소윤에게 물었다.

“이건 어디에 둘까요?”

소윤과 북한군이 묶여 있는 유 품이 든 상자였다. 원래는 가지 고 서울로 가서 정복남을 만나게 해 줄 생각이었는데, 둘이 여기 남는다고 하니 두고 가야 했다.

“여기 땅 파서 묻어 두십시오.”

소윤의 말에 강진이 녹슨 삽으

로 땅을 파서는 상자를 넣었다. 그러고는 흙으로 덮은 강진이 소 윤을 보았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복남이에게 안부 잘 전해 주십 시오.”

소윤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에 귀신들도 차 지붕 위에 올라갔 고, 배용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귀신들이 모두 타자 강진이 창 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들 다 탔죠?”

“다 탔어요!”

이혜미의 외침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쳤다.

“자! 그럼 집으로 갑시다!”

강진이 웃으며 차 시동을 켜고 는 산을 천천히 내려가자, 배용 수가 웃었다.

“집에 갈 생각하니 좋은가 보 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해도 내

집보다 편한 곳은 없지.”

강진은 슬쩍 계곡 쪽을 보았다.

“이런 휴양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런 곳은 가끔 와야 지.”

“그 말이 맞다.”

“집에 도착해서 한숨 푹 자고 저녁 장사 시작해 보자.”

“그러자.”

* * *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강진은 네 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밑으로 내려온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잘 잤어?”

“역시 집에서 자는 것이 가장 편해.”

“호텔에서 잠자는 것보다도 내 집에서 자는 것이 더 좋기는 하 지.”

“오! 호텔에서도 잠을 자 봤

어‘?”

강진이 웃으며 자리에 앉자 이 혜미가 시원한 오미자차를 내주 었다.

“고마워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배용수가 말을 이 었다.

“이 몸이 이래보여도 미국, 일 본, 중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호텔에서 숙식을 해 본 몸 아니 겠냐.”

“그래‘?”

“한식을 세계화하려면 여러 나 라에도 가 봐야 하니까. 숙수님 모시고 여러 나라 다녔지.”

“좋았겠네.”

“한두 번은 한국하고 다른 문화 에 신기하고 재미도 있는데, 자 주 가다 보면 딱히 재미도 없어. 그리고 일하러 가는 거지, 놀러 가는 건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배용수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뿌

듯한 표정이 차 있었다.

그런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가게를 둘러보았 다.

“나는 외국에 못 나가 보겠지?”

일주일에 하루 쉬는 저승식당이 니 외국에 나갈 정도로 시간을 오래 뺄 수가 없었다.

나간다고 해도 당일치기나, 아 침에 가서 다음 날 오후에 오는 1박 2일이 최대였다. 그마저도 가고 오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공

항에서 시간을 다 보내야 할 것 이었다.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그 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식당 사장인 놈이 어딜 놀러 다니려고 해. 식당은 하루만 쉬 어도 손님이 빠지는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식당 사장이 쉬 면 손님들 밥은 어디에서 먹겠 냐.”

강진은 오미자차를 한 번에 마 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저녁 준비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도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일어났다.

“준비하자.”

강진과 배용수가 주방으로 들어 가자 직원들이 홀을 정리하고 식 탁을 닦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한가한 저녁 시간, 강

진은 손님들의 음식을 살피고 있 었다.

언제부터인가 저녁에 늘 혼자 와서 식사를 하고 가는 중년인에 게 강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늘 음식 어떠세요?”

“한끼식당이야 늘 맛이 좋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늘 혼자 오셔서 저녁을 드시네요?”

강진의 말에 중년인이 웃으며 말을 했다.

“저녁에 대리운전을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퇴근을 할 때 저 는 줄근을 하는 셈이죠.”

“그러시구나.”

강진의 말에 손님 한 명이 웃으 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새벽에는 장사 안 합니 까?”

“새벽요?”

“새벽에 출출할 때 여기 문 열 면 든든하게 식사를 할 텐데 말 입니다.”

손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돈 벌려면야 아침 손님, 점심 손님, 저녁 손님, 거기에 야식 손 님까지 받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 게 마음처럼 되나요. 저도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새벽 장 사까지 하면 제 몸이 버티지를 못하죠.”

강진의 말에 손님이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작게 웃던 손님은 콩나물 김칫 국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어릴 때는 능력 없는 아버지 때문에 가난해서 어머니가 고생 많이 하셨던 터라 아버지가 싫었 는데…… 제가 나이를 먹어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손님은 미소를 지으며 김칫국을 한 숟가락 더 떠먹었다.

“아버지도 그때는 최선을 다한 거였는데……

손님의 뜬금없는 이야기에 강진

이 그를 보았다. 뜬금없는 말이 기는 해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는 되었다. 그냥 아무 이야 기나 남에게 하고 싶을 때가 있 으니 말이다.

“오늘 일이 힘드셨나 보네요.”

말을 하며 강진이 물을 따라주 자 손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 이상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 이 많이 나는군요.”

손님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사장님한테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가끔 말을 하고 싶 을 때가 있는 법이죠. 저에게 해 주셔서 오히려 기분이 좋네요. 다음에 소주 한잔할 수 있는 날 오세요. 제가 좋은 안주 대접하 고 말상대 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손님이 미소를 지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아들하고 둘이 한번 와

야겠습니다.”

말을 한 손님이 웃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자기 단골집 이라고 대폿집에 데려가서 소주 를 한 잔 따라 준 적이 있었는 데…… 그때 아버지 마음이 이해 가 되네요.”

“그러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가게를 아들 에게 보여 주면서 이야기도 나누 고…… 그렇게 아들에게 의지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작게 웃은 손님이 자리에서 일 어나 오천 원을 꺼내 내밀었다.

“늘 맛있게 먹으면서도 돈 낼 때는 미안하네요.”

“맛있게 드셨으면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강진의 말에 손님이 고개를 숙 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그 손님 이 나가는 것을 강진이 볼 때, 손님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 자가 입맛을 다셨다.

“방금 손님 오늘 일이 참 힘들

었나 봅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 다. 그 시선에 남자가 입맛을 다 시다가 물을 마시고는 말했다.

“남자는 일이 힘들 때 아버지 생각이 나니까요.”

그러고는 남자가 한숨을 쉬었 다.

“어릴 때 아버지는 정말 못 하 는 일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었는데……

말을 하던 남자가 고개를 작게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 덕에 아버지 생각도 나 고…… 후! 오늘 기분 묘하네요. 다음에 그 손님 오면 밥값 제가 낸 걸로 하겠습니다.”

남자가 만 원을 꺼내 내밀자 강 진이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먹고 갑니다.”

남자가 손을 들어 보이고는 가 게를 나서자 강진이 입맛을 다시 며 손에 쥔 만 원을 보았다. 그

러다 그것을 아크릴 통에 넣고는 가게 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남자는 힘들 때 아버지를 생각 한다, 라……

“오늘은 좀 감성적인 분들이 오 셨네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 가끔......"

잠시 말을 멈췄던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아빠 엄마 생각나는 날이 있잖 아요.”

“그건…… 그렇죠.”

“저 두 분도 그런 날인가 보죠. 아빠도 엄마도 그냥 보고 싶은 날.”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맛을 다셨다.

“나도…… 아빠, 엄마가 보고 싶네요.”

이야기를 하며 그릇들을 정리하 던 강진이 다시 이혜미를 보며

말했다.

“세 분 부모님 보러 갈까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그를 보 았다.

“저희 부모님요?”

“생각을 해 보니까.”

강진은 자신을 보는 여직원들을 보았다.

“세 분이 여기에 계신 건 귀기 때문에 부모님의 몸이 상할까 봐 서인데…… 저희 향수 있잖아

요.”

“아……

이혜미는 자신도 그 생각을 하 지 못했다는 듯 강진을 보았다. 그저 여기가 집이라 생각을 하고 살다 보니, 여기에 있게 된 이유 를 잊고 지낸 것이다.

부모님 몸이 상할까 싶어 가까 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보 고만 왔었는데, 향수가 있으 면…….

‘엄마…… 아빠를 안아 볼 수

있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