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배용수가 순대와 돼지 내장들이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세요.”
“그런데 장이 초장이네?”
“지방마다 찍어 먹는 것이 다르 죠. 어디는 된장, 어디는 간장, 어디는 소금, 그리고 전주는 초 장.”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시와 초장을 들고 홀로 나왔다.
“이슬 씨 이거 좀 드세요.”
황민성의 말에 옥난의 향을 맡 던 김이슬이 고개를 들어 순대를 보고는 웃으며 다가왔다.
“맛있겠다.”
“먹어 봐요.”
황민성이 젓가락을 주자, 김이 슬이 순대를 하나 집어 초장에 찍은 뒤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 었다.
“맛있어요.”
“전주는 초장에 찍어 먹는다면 서요?”
“다 초장에 찍어 먹는 건 아니 고 소금에도 찍어 먹어요.”
순대를 하나 더 찍어 먹으며 미 소를 짓는 김이슬을 보며 황민성 이 웃었다.
“집에서는 음식 냄새 때문에 하 나도 못 먹더니 여기선 잘 먹네 요. 이거 집밥이 싫어서 그런 것 아니에요?”
황민성의 농에 김이슬이 웃었 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자주 밖에 모시고 나와서 식사해야겠네요.”
“어머니 혼자 있는데 그럴 수는 없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강진이 말했다.
“이따가 가실 때 옥난 몇 개 드 릴게요. 형수님 방에도 하나 놓
고 식탁에도 하나 놓으세요.”
“그래도 돼? 이거 구하기 쉽지 않은 것 아니야?”
옥난이 저승에서 온 것임을 아 는 황민성이 묻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나요.”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물었다.
“이거 비싼 거였어요?”
구하기 쉽지 않다는 말을 비싸
다는 말로 들은 것이다.
“비 싸다기 보다는. 구하기 가
조금 어렵죠.”
“아…… 그렇구나.”
김이슬이 옥난을 보다가 말했 다.
“그럼 그냥 두세요. 제가 따로 구해 볼게요.”
“형수님은 구하기 어려우세요.”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웃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면서요. 그리고 저도 돈 많 아요.”
괜히 돈 자랑을 하려고 하는 말 이 아니라, 실제로 김이슬은 부 유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현금으 로는 대한민국에서 따를 자가 없 다는 사채 대부이니 말이다.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 으며 말했다.
“구하던 사람이 구해야죠. 옥난 은 제가 형수님 임신 축하 선물 로 드리는 걸로 할게요.”
“아…… 선물이면 돈으로 사기 어렵겠네요.”
마음이 담긴 선물은 돈이 아무 리 많아도 사기 어려우니 말이 다.
“그럼 고맙게 받을게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 어떻게 되는지 보고 올게 요.”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주방 쪽 을 보며 말했다.
“용수 씨 괜찮으면 인사 좀 드 리고 싶은데 말 좀 전해 주세 요.”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난감한 듯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 진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용수가 정말 낯을 많이 가려서 요. 다음에 인사시켜 드릴게요.”
“정말 낯을 많이 가리나 봐요?”
“마음이 여려서 그래요. 사람을 새로 만나는 걸 불편해해요.”
“알았어요. 대신……
김이슬은 주방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용수 씨, 민성 씨한테 좋은 동 생이 되어 주셔서 고마워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다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배용수는 홀 쪽을 보 고 있었다.
“너한테 고맙대. 좋은 동생 돼 줘서.”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나야말로 고맙지. 귀신인 나를 동생으로 삼아 줘서.”
그러고는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 다.
“나도 형수한테 인사드리고 싶 다.”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를 보다가 말했다.
“나중에 형수님 아기 낳으
면…… 그때 이야기하자.”
진짜?”
“귀신이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 니고…… 앞으로 민성 형하고 우 리 같이 지낼 시간을 생각하면 형수님도 아시는 게 좋겠지.”
황민성과 평생 같이 갈 형 동생 사이니 차라리 사실대로 이야기 를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귀신에 대해 안다고 해서 미치거 나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도 아 니니 말이다.
“하지만 일단 애 낳은 후에 말 하자.”
웃으며 배용수에게 말을 한 강
진이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고…… 동생 삼아 준 민성 형이 고마우면, 너를 마누라 삼 아 준 나에게는 더 고맙겠네?”
“너는 이 감동적인 순간에도 이 런 농을 하고 싶냐?”
배용수가 눈을 찡그리자, 강진 이 얼굴을 굳혔다.
“농? 나는 너를 만나고 한 번도 진실이 아닌 순간이 없었다. 너 에게 한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가 내 진심이었고 내 고백이었
다.”
강진의 진지한 목소리에 배용수 가 유심히 그의 입 쪽을 보았다.
“왜 그래?”
“나중에 네 혓바닥에서 무슨 농 작물이 자랄까 생각을 좀 해 봤 어. 아주 거짓 기름이 철철 넘쳐 서 뭘 심어도 풍년은 확정이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혓 바닥을 움직여 쩝쩝거리다가 말 했다.
“그래서 얼마나 걸려?”
“금방 돼. 당면 순대라서 너무 오래 끓이면 퍼져 버리니까.”
수저로 순대와 내장들을 누르던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쟁반에 순댓국과 반찬들을 올려서는 홀 로 가지고 나왔다.
“순댓국 나왔습니다.”
강진이 음식들을 식탁에 올려놓 자, 황민성이 냄새를 맡고는 김 이슬을 보았다.
“ 괜찮아요?”
순댓국 냄새에 속이 울렁거릴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먹고 싶어서 부탁한 건데 당연히 괜찮죠.”
김이슬은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어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맛있어요.”
“학교 앞에서 먹던 순댓국 맛이 나세요?”
“무슨…… 그것보다 더 맛있어
요.”
“이런......"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안타까운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세요?”
“대학가에서 파는 것 같은 맛을 내게 하려고 했는데…… 용수 실 력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더 맛 이 좋아져 버렸네요.”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며 주방을 향해 외쳤다.
“잘 먹을게요!”
그러고는 순댓국 건더기를 집어 초장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잘 먹는 아내의 모습을 만족스 럽게 보던 황민성이 강진에게 살 짝 엄지를 들어 주었다. 그에 미 소로 답한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래. 잘 먹을게.”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에 들어왔다. 주방에
서는 배용수가 다시 음식을 만들 고 있었다.
“뭐해?”
“음식 만들어.”
“저녁 장사할 반찬들 있잖아.”
저승식당 때 먹을 음식은 오픈 전에 하지만, 반찬들이야 오늘 낮에 만든 것으로도 족하니 말이 다.
“형수님 왔을 때 음식 좀 만들
어서 보내 드리려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가 하는 음식들을 보았다. 그러다 고기 메뉴가 하 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물 었다.
“고기는?”
“고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속 에서 안 받을 수도 있어. 그래서 향이 많이 없는 야채들로 반찬을 만들 거야.”
“좋은 생각인데…… 단백질은? 애 잘 크려면 단백질도 충분히 섭취해야 하지 않아?”
“두부 있잖아.”
말을 하며 배용수가 냉장고에서 두부를 꺼냈다.
“두부로 전을 할 거야. 그리고 반찬으로 먹을 수 있게 두부 튀 겨서 양념간장 올릴 거고.”
“넌 이미 계획을 다 세웠구나.”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임산부들 먹는 반찬들 오 더가 들어올 때가 있어서 만든 적이 있거든.”
“운암정에서 그런 것도 만들 어?”
“특별 주문 들어오면 만들지.”
“특별 주문?”
“며느리나 딸이 임신을 하면 주 문이 들어와.”
“그런 것도 주문을 받아?”
“돈 준다는데 안 할 이유가 없 지.”
“운암정도…… 돈 보고 장사를 하기는 하는구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일반 손님들만 상대했다가는 운암정 망해. 이런 거라도 해야 수익이 나는 거야.”
“그래?”
“당연하지. 운암정 부지만 해도 얼마고 관리비만 해도 얼마인데. 거기에 직원들 월급까지 하면 어 지간한 중소기업보다 돈이 더 들 어가.”
“그 정도야?”
“그럼. 그러니 손님 차별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금액이 비싸 서 그렇지, 일반 손님도 오더 하 면 파니까.”
“얼마에 파는데?”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알면 다친다.”
“비싼가 보네.”
“몰라.”
음식을 비싸게 파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지 배용수가 고개 를 젓고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 자 강진이 그 옆에서 그를 따라 음식을 만들었다.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순댓국을 먹던 김이슬 이 주방을 보았다. 그러고는 미 소를 지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강진 씨하고 용수 씨가 저 줄 반찬을 만드나 봐요.”
“그런가 보네요. 두 녀석이 당
신 임신하고 나서 음식 해 준다 고 했거든요.”
황민성의 말에 주방을 보던 김 이슬이 말했다.
“강진 씨를 어떻게 알게 됐다고 했죠?”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또 듣고 싶어서요.”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티슈로 입술을 닦고는 말했다.
“그날 사업 미팅 끝내고 차를
타고 가던 중에 이 가게가 보이 더라고요. 마침 배가 고팠던 터 라 들어갔죠. 그러곤 라면을 주 문했는데, 강진이가 제가 좋아하 는 취향 그대로 라면을 끓여서 줬어요.”
“김치 국물 넣고 계란 노른자는 반숙으로요?”
“네.”
미소를 지은 황민성이 말을 이 었다.
“보통 그렇게 주문하면 주인들
이 안 좋아하는데 강진이는 웃으 면서 아주 맛있게 끓여 주더라고 요. 그래서 다음에 또 오게 됐 고…… 그러다 보니 친하게 지내 게 됐어요.”
“그날이 당신에게는 행운이었네 요.”
행운이라는 말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날 라면이 먹고 싶지 않았다면 강진 이를 알지 못했을 테니까요.”
황민성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 했다. 강진을 알아서 용수도 알 게 됐고, 김소희도 알게 되었으 니 말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마음도 알게 되었고…….
강진을 만나고 난 후 인생이 너 무나도 좋게 변한 것이다. 그래 서 황민성은 강진에게 정말 고마 웠다.
“좋은 동생이 생겨서 좋겠어 요.”
“좋은 동생이 아니라 좋은 동생 들이에요.”
“그러게요.”
웃던 김이슬이 주방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강진 씨는 정말 여자 만나고 싶은 생각 없대요?”
“아직은 아닌 모양이에요.”
“여자 만나는 것에 때가 어디 있나요. 강진 씨 여자 친구 생기 면 저희하고 같이 만나서 데이트 도 하고 놀면 좋잖아요.”
그러고는 김이슬이 웃었다.
“나도 강진 씨 덕에 좋은 여동 생 하나 생기고요.”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주방 쪽을 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어려 있었다.
‘여자라……
황민성도 강진이 여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강진의 사정을 잘 아는 황민성이니…… 그가 여자를 만
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 고 있었다. 귀신을 상대하는 식 당의 사장이니 말이다.
황민성이 주방을 볼 때, 김이슬 이 물었다.
“상식 씨는 여자 분하고 잘 되 신대요?”
“아직까지는 썸인 것 같아요.”
“아직도요?”
“상식이가 그런 쪽으로는 좀 둔 하더 라고요.”
“음…… 아무래도 자리를 한 번 마련해야겠어요.”
“자리요?”
“머뭇거릴 때는 앞으로 한 발 나가게 해 줄 계기가 필요한 법 이죠.”
그러고는 김이슬이 황민성을 보 았다.
“상식 씨한테 전화해서 한번 나 와 보라고 하세요.”
“지금요?”
“전화해서 나올 수 있으면 나오 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죠.”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상식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