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3 회
두 사람이 순댓국을 먹고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리며 강상식이 들어왔다.
황민성의 연락에 바로 나온 강 상식은 웃으며 김이슬에게 다가 갔다.
“형수님.”
그는 등 뒤로 숨겼던 손을 앞으 로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장미 꽃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형수님 임신을 축하드리는 제 마음입니다.”
“고마워요.”
김이슬이 꽃을 받자, 강상식이 웃으며 황민성 옆에 앉았다.
“순대네요.”
“먹어 봐.”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순대를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당면 순대라 그런지 쫄깃하네
요.”
말을 하며 강상식이 주방을 향 해 말했다.
“형 왔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머리를 내밀었다.
“지금 음식 만드는 중이라 인사 는 이따 할게요.”
“그래.”
강진의 머리가 주방 안으로 들 어가는 것에 강상식이 소리쳤다.
“형 밥 먹었냐고 안 물어보냐?”
강상식의 외침에 강진이 웃으며 머리를 다시 내밀었다.
“식사 안 하셨어요?”
시간이 거의 여덟 시에 가까운 데 아직 저녁 식사를 안 했나 싶 어 강진이 묻자 강상식이 웃었 다.
“먹었어. 그래도 물어는 봐야 지.”
“서운하셨어요?”
“그래.”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고는 말했다.
“식사하셨어요?”
“그래. 먹었다.”
강상식의 답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강상식은 항상 관심을 받고 싶 어 했다. 특히 강진이나 황민성 에게 말이다.
그가 두 사람에게 더욱 관심받
고 싶어 하는 건 자신에게 아무 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정을 주 는 사람이 둘밖에 없어서이기 때 문일 것이다. 일종의 애정 결핍 이었다.
그런 강상식을 보던 김이슬이 황민성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 시선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 고는 강상식을 보았다.
“지나 씨하고는 어때?”
문지나 이름이 나오자 강상식이 미소를 지었다.
“잘 되고 있어요.”
“그래? 고백은 했어?”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했지요.”
“했어? 그럼 잘 됐나 보네.”
황민성이 웃으며 말하자, 강상 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귀기로 했어요.”
“오! 정말 잘 됐네.”
황민성은 웃다가 눈을 찡그렸 다.
“그런 좋은 소식이 있으면 우리 한테도 이야기를 했어야지.”
“그래요. 우리한테도 말을 했어 야죠.”
강진이 주방에서 나오며 하는 말에 강상식이 웃었다.
“어제 고백했어.”
“어제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그렇게 됐어.”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다가 말했다.
“사귀기로 했으면 지나 씨 만나 야지, 여기 왜 왔어요? 아니, 이 제 형수라고 해야겠네요.”
형수라는 말에 강상식의 입꼬리 가 귀에 걸칠 듯 올라갔다.
“하하하! 그래. 앞으로는 형수라 고 불러.”
그러고는 강상식이 황민성을 보 았다.
“형은 제수씨라고 부르시면 되 겠네요.”
“그래. 앞으로는 제수씨라고 부 르면 되겠다. 그리고 강진이 말 대로 오늘 같은 날은 지나 씨 만 나지, 왜 여기 왔어?”
“지나 씨 오늘 야근해야 한대 요. 놀다가 이따 아홉 시쯤 데리 러 가야죠.”
“야근하신대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입맛을 다셨다.
“그놈의 회사, 야근을 너무 많 이 시키는 것 같아. 마음 같아서 는 그만두게 하고 우리 회사에 데려오고 싶다니까.”
“정말 그러실 것은 아니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럴 수 있나.”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 있나. 너희 회사
에 취직을 시킬 거면……
황민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 으며 말했다.
“집에 앉혀야지.”
“집에......"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가장 나이스네요.”
그런 두 남자의 모습에 김이슬 이 웃으며 말했다.
“사귄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무슨 벌써 집에 앉혀요.”
김이슬은 강상식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너무 조급하게 다가가지 말아 요. 천천히 다가가세요.”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에 요.”
강상식은 입맛을 다시며 순대를 보았다. 그 모습에 김이슬이 웃 으며 말했다.
“이런 좋은 날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죠. 강진 씨, 여기 술 좀
주세요.”
김이슬의 말에 강상식이 급히 말했다.
“형수님 임신하셨는데 제가 앞 에서 술을 마실 순 없죠.”
“임신한 사람 앞에서 술 마시는 것이 뭐 불법인가요? 실수만 하 지 않으면 되죠.”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간단하게 맥주라도 한잔 하자.”
황민성이 일어나서는 맥주와 잔 을 들고 왔다.
“오늘 시원하게 한 잔씩 마시고 다음에 지나 씨하고 자리 한번 하자.”
“그렇게 하죠.”
말을 하며 잔에 따라진 맥주를 보던 강상식이 슬며시 말했다.
“저는…… 안 되겠네요.”
“왜‘?”
“지나 씨 데리러 가야 하는
데…… 대리 불러서 가기는 그렇 잖아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 다.
“하! 사귄 지 하루 만에 잡혀 사는 거야?”
“왜요. 보기 좋은데요.”
김이슬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잡 았다.
“그럼 제가 대신 마시죠.”
강진은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는 웃으며 강상식을 보았다.
“형수하고 잘 되어서 좋네요.”
“나도 좋다.”
강상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문득 그를 보았다.
“너희 집에서는 알아?”
황민성의 물음에 강상식이 피식 웃었다.
“집에서 내놓은 자식이라 이건 편하네요.”
“신경을 안 쓴다는 건가?”
“사실 형들 입장에서는 제가 어 디 그룹 사위가 되는 것보다는 지나 씨와 만나는 게 더 마음에 들 거예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상 식이 그룹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후손 중 하나이니 기회만 된다면 뛰어 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강상식이 다른 재벌가와 결혼을 한다면 가족들이 불안함 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강상식이 평 범한 집안의 여자와 연애하는 걸 오히려 반가워할 터였다. 물론 비웃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황민성 부부와 강진이 안쓰럽게 자신을 보는 것에 강상식이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더 이상 가 족으로 대해주지도 않는 사람들 시선은 신경 쓰지 않으니 괜찮아 요. 오히려 더 좋죠. 지나 씨와 나 만나는 거 반대할 사람도 없 을 테니까요.”
강상식의 말에 담긴 씁쓸함을 느낀 강진은 작게 웃으며 가벼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어지자 네 사람은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이 야기를 나눴다.
아홉 시가 되기 전 강상식과 황 민성, 김이슬은 자리에서 일어났 다. 강상식은 문지나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 황민성은 김이슬이 피곤할까 싶어 일찍 자리에서 일 어난 것이다.
가게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황 민성과 강상식의 손에는 쇼핑백 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김이슬을 위해 만들었던 반찬을 강상식에게도 좀 나눠 준 것이 다. 정확히는 강상식에게 준 것 이 아니라 문지나에게 준 것이지 만 말이다.
문지나도 자취를 하는 여성이라 이런 밑반찬이 도움이 될 것이었 다.
“그럼 잘 먹고 가요.”
“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알았어요.”
웃으며 차에 타고 출발하는 사 람들을 보던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홀을 정리하는 배용수를 보며 말했다.
“상식 형이 드디어 성공했다.”
“그러게. 꽤 걸릴 줄 알았는 데……. 고백할 때 심장 두근두 근했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도 자신에게 호감 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내 마음 을 고백하는 것은 정말 큰 용기 가 필요한 일이었다.
‘엄청 많이 떨었겠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을 하는 강상식을 떠올려 본 강진이 피식 웃고는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만 쉬고 저승식당 오픈 준비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오혁 씨 오는 거 맞 아?”
“누나가 매형한테 이야기했으면 저승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서 오 지 않을까?”
“하긴, 그 양반 먹는 것 좋아하 던데 오픈 시간에 맞춰서 오겠 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TV를 틀 고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 * *
생각대로 오혁은 저승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서 나타났다.
“형 왔다!”
기분 좋은 얼굴로 소리치며 가 게에 들어오는 오혁의 모습에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누나가 말을 잘 전했나 보네 요?”
“저녁에 그러더라고. 강진이가 오빠 보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내가 왔지.”
싱긋 웃는 오혁의 모습에 강진 이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 다.
“상태는 여전하신 것 같네요?”
“보기에는 이래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그래요?”
오혁은 자신의 손을 들어서 보 다가 말했다.
“요즘은 몸에 붙어 있으면 뭔가 내 마음대로 몸이 안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무겁다는
생각도 들고.”
“육신이요? 아니면 영혼이요?”
“내 영혼 말이야.”
오혁은 자신의 불투명한 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전에는 몸에 붙어 있어도 영혼 이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멍하니 누워서 몸 을 움직이려고 하면 가끔이기는 한데 안 움직일 때가 있어.”
“그거 좋은 현상 같은데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미소를 지 으며 그를 보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오혁이 자신의 몸에서 마음대로 빠져나올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어서 죽어 서 이강혜를 편하게 해 주려는 생각이 강해서였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니 몸이 영 혼을 일부러 밖으로 내보내는 것 이다.
그런데 몸에 들어간 영혼이 마 음대로 안 움직일 때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영혼과 몸이 붙으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강진의 추측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어요?”
“네가 불렀다는 말도 있고…… 할 이야기도 있어서 오늘만 마지 막으로 빠져나왔어.”
“할 이야기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들어가면 앞으로는 절 대 몸 밖으로 나오지 않을 거 야.”
“효과가 있는 것 같으니 그러셔 야죠. 반드시 깨어나실 수 있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 덕인 오혁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이 너와 마지막이 야.”
오혁은 강진을 향해 손을 내밀
었다.
“형이 다음에 너를 만나게 되는 날은 내가 눈을 떠서 강혜에게 너를 소개받는 날이거나, 내
오혁이 뒷말을 이으려 하자, 강 진이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덥석!
“제가 다음에 형을 만나게 되는 날은 강혜 누나가 ‘인사해, 매형 이야.’하고 형을 저한테 소개하는 날일 거예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그를 보다 가 손에 힘을 주며 맞잡았다.
“그래. 그날 형이 돈 많은 형이 어떤 형인지 돈 지랄 제대로 보 여줄게.”
강진은 살짝 씁쓸한 눈으로 그 를 보았다.
그가 뒤에 하려던 말은…… ‘내 장례식장일 거야.’라는 말이었다. 강진은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말 을 끊은 것이고 말이다.
“아! 그리고 부탁 하나 하자.”
부탁이라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자기가 깨어나기 전까지 강혜 누나를 부탁하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