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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734화 (732/1,050)

734화

부탁할 것이 있다는 오혁을 보 며 강진이 말했다.

“강혜 누나라면 제가 잘 챙길게 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었다.

“그거야 당연히 동생인 네가 잘 해야 하는 거고. 내가 할 부탁은 다른 거야.”

“다른 거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오혁이 말했다.

“우리 영감님하고 좀 친해져 라.”

“오택문 회장님요?”

“응.”

오혁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말했다.

“제가 회장님하고 친해질 그런 것이 없는데……

이강혜와 친하게 지낸다고 하지

만, 그룹 재벌 회장님하고는 딱 히 엮일 일이 없었다.

오택문이 가게로 찾아온다면야 손님과 사장님으로서 친해질 수 도 있겠지만, 오택문이 이런 백 반집에 자주 올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좀 친 해져 봐.”

“아버님이 외로울까 걱정되세 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피식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영감님 걱정은 무슨……. 자기 만의 왕국에서 왕처럼 지내시는 데.”

고개를 저은 오혁이 미소를 지 었다.

“영감님 말고 우리 엄마.”

“어머니요?”

“우리 어머니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영감님 옆에 계시잖아. 영감님이 여기 자주 오시면 함께 와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이야기 상대도 있고 얼마나 좋겠 어.”

잠시 말을 멈춘 오혁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몸에서 안 나가면…… 우 리 엄마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

국수를 지그시 보던 오혁이 한 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나라도 찾아가서 이야 기도 하고 영감님 흉도 같이 보 고 그랬는데…… 내가 안 가면 우리 엄마 얼마나 심심하고 외롭

겠어.”

“흉요?”

“남 흉보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또 어디 있나?”

웃으며 말을 한 오혁이 작게 고 개를 저었다.

“그런데 내가 없으면…… 우리 엄마 너무 심심하고 외롭지 않겠 어?”

귀신인 할머니 걱정을 하는 오 혁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 다.

“매형은 효자네요.”

“효자는 무슨…… 부모님 두고 이러고 있는데. 천하의 불효자 지.”

고개를 저은 오혁이 강진을 보 았다.

“그래서 부탁 좀 하자. 영감님 하고 친해져서 여기 좀 자주 오 게 해 줘. 여긴 우리 엄마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너도 있고 용 수도 있고, 그리고 맛있는 밥도 있으니까.”

오혁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L그룹 회장과 친하게 지낸다? 쉬운 일 이 아니었다.

아니, 쉽지 않은 걸 넘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대 그룹 회장을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 다.

“회장님 저희 음식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으니…… 알겠습니 다.”

“그래. 고맙다.”

말을 하며 오혁이 가게 밖으로 나가자 강진이 그를 배웅하기 위 해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온 강진이 손을 들어 잘 가라고 하려 할 때, 오혁이 줄 서 있는 귀신들 뒤에 가서 섰 다.

마치 줄을 선 듯한 모습에 강진 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형…… 뭐해요?”

“뭐하기는. 줄 서지. 요즘 시대

에 줄을 안 서는 사람이 어디 있 냐?”

“그.. 안 가세요?”

다시는 몸에서 안 나온다던 사 람이 줄을 서고 있다니. 강진의 시선에 오혁이 웃었다.

“온 김에 밥은 먹고 가야지. 하 하하!”

기분 좋게 웃는 오혁의 모습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맞네요. 밥집에 왔으면 밥은 먹고 가야죠.”

“그래! 오늘까지만 잘 먹고, 새 벽 한 시 이후에는 꼭 몸에 붙어 있을 거다.”

오혁의 말에 강진이 재차 웃었 다. 마치 다이어트하는 친구가 ‘오늘만 실컷 먹을게.’하는 느낌 이었다.

‘방금 전까지 어머니 걱정하던 분이……

강진은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 어가다가 오혁을 향해 고개를 돌 렸다.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그를 보다 가 미소를 지었다.

“전에 닭발하고 돼지 껍데기는 먹었으니 오늘은 국수가 먹고 싶 어.”

“국수요?”

“잔치국수 좀 많이 먹고 싶다. 아! 김 가루 엄청 많이 넣어서. 아! 고춧가루도! 아! 어묵도!”

오혁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고 는 귀신들을 보았다.

“잔치국수 드실 분?”

귀신들 몇이 손을 들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육수를 꺼냈다. 멸치와 다시마를 베이스로 만든 육수는 늘 준비해 두고 있었는데, 여기에 물을 좀 섞으면 잔치국수 국물이 되는 것 이다.

“어묵은 뜨거운 물에 살짝 돌려 서 기름기 빼고 넣으면 되겠지.”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잔치국수 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승식당 영업이 시작됨과 동시 에 귀신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 다. 귀신들이 들어오자 미리 주 문한 음식들 앞으로 임정숙이 안 내를 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 두 분은 여기요.”

셋이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해서 조금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배

용수가 옆에서 같이 거들어 주어 그리 혼잡하지 않게 손님들을 안 내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귀신들도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보이면 알아서 자리에 앉 았고 말이다.

귀신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 에 앉는 사이 오혁이 들어왔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방금 전에 봤으니 이건 농이었 다. 강진의 농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 몸이 되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오혁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 가 주먹을 들어서는 힘을 주었 다. 주먹에 우락부락하게 튀어나 오는 핏줄을 보며 오혁이 미소를 지었다.

“꼭 다시 깨어나겠어.”

오혁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 다.

‘식사만 하려는 건 아니었구나.’

지금 보니 오혁은 현신을 해서 사람이 됐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려고 한 모양이었다. 이 기 분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깨어나려고 노력할 수 있 을 테니 말이다.

오혁을 보던 강진이 자리를 가 리켰다.

“이쪽으로 오세요.”

강진이 자리를 가리키자, 오혁 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잔치국수가 놓여 있었다.

“김 가루하고 고춧가루는?”

“제가 넣으려다가 취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옆에 따로 뒀어 요.”

강진이 옆에 놓인 통들을 가리 키자, 오혁이 통을 열어서는 김 가루를 잔뜩 넣었다. 거기에 고 춧가루도 제법 많이 넣은 오혁이 국수를 휘휘 젓다가 한 입 크게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그러고는 엄지를 세웠다.

“맛있다.”

“많이 드세요.”

고개를 끄덕인 오혁은 어묵을 집어서는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 었다. 그런 오혁에게 강진이 소 주를 한 잔 따라 주었다.

“고마워.”

오혁은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는 다시 국수를 크게 집어 입에 넣었다.

강진은 오혁의 앞자리에 앉아 그가 잔치국수를 먹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오혁의 옆에는 빈 그릇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정말 잔치국수를 좋아하나 보 네요?”

“아주 좋아해. 면을 흡입하는 식감도 좋아하고, 이렇게……

오혁이 어묵을 들어 보이며 말 했다.

“잔치국수에 어묵 먹는 것도 좋 아하고, 김도 좋아해.”

국물에 풀어져 흐물흐물해진 김 을 수저로 떠서 먹는 오혁을 보 며 강진이 물었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거예요?”

강진의 물음에 오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국수하고 김을 많이 좋 아하거든. 그래서 자주 해서 드 셨지.”

“부잣집인데 음식 해 주는 분들 있지 않아요?”

있지. 근데 엄마는 자기가 해

서 먹는 국수를 좋아하셨거든. 우리 엄마가 국수를 정말 잘 말 기는 했어.”

오혁의 말에 강진이 국수를 보 다가 말했다.

“많이 드세요. 많이 드시고 다 음에는 대낮에 형 진짜 몸으로 오시면 제가 다시 말아 드릴게 요.”

“그래. 고맙다.”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다 시 국수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배가 불렀지만 오혁은 계속 먹었 다. 현신이 풀리면 배부른 것도 사라질 터인데 음식을 참을 이유 가 없었다.

그리고 이 국수가 영혼 상태에 서 마지막으로 먹는 저승식당 음 식일 것이었다.

후루룩!

국수를 먹는 오혁의 눈가에 살 짝 눈물이 고였다.

‘엄마…… 미안해.’

맛있는 국수를 먹으면서 오혁은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 는 여자가 둘이 있었다. 한 명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이강혜,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인 엄마였 다.

그런데 지금 오혁은 두 명의 여 인 중 한 명을 포기해야 했다. 바로 엄마였다.

자신이 육체에 깃든 채로 깨어 나는 순간……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었다.

영혼 상태가 돼서 그나마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것은 엄마를 보 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었다.

그런데... 이제 못 하는 것 이

다. 그래서 오혁은 가슴이 아팠 다.

맛있게 잘 먹다가 갑자기 눈물 을 흘리는 오혁의 모습에 강진이 국수를 힐끗 보았다.

‘어머니 생각이 나신 건가?’

그는 깨어나기 전까지는 돌아다

니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어머니를 부탁했고 말 이다.

생각을 이어나가던 강진은 문득 오혁을 보았다.

‘아!’

오혁이 왜 우는지 알 것 같았 다.

‘매형은…… 앞으로 어머니를 못 만나는구나.’

오혁이 말했던 대로 평소 그는 오택문 회장에게 가서 어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앞으로 몸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오혁은 오택문 회장이 자신을 보러 올 때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 오혁은 깨어나기 위 해 몸에 붙어서 온갖 노력을 할 것이다. 물론 혼이 노력을 한다 고 해서 몸이 깨어날지 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깨어나 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통해서 정말 깨어난다면 어머니를 다시는 보

지 못하는 것이다.

‘하아! 엄마를 다시 보지 못하 는 것이니……

죽어 귀신이 된 엄마라고 해도 다시 만나 기뻤을 텐데…….

오혁의 마음을 안 강진은 한숨 을 쉬며 그를 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조용히 가게 밖으로 나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은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명함에는 오택문의 비서인 이종

범의 이름과 번호가 있었다.

강진은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 를 걸었다. 그러자 잠시 후 이종 범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 합니다. 저 한끼식당 이강진입니 다.”

강진의 말에 이종범은 잠시 말 이 없었다. 그는 사실 강진의 전 화번호가 핸드폰에 저장이 되어 있어서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누구인지 알았다.

다만…… 이 늦은 시간에 자신 에게 왜 전화를 했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강진이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 합니다.”

[확실히 늦은 시간이기는 하네 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혹시 회장님과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강진의 말에 이종범의 의문은 더 깊어졌다.

이 늦은 시간에 왜 회장님과? 게다가 강진이 회장님과 무슨 관 계라고? 그저 이강혜가 다니는 식당의 사장일 뿐인데?

이러저러한 의문을 품고 이종범 이 말했다.

[저희 회장님은 통화를 하고 싶 다고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시간에는 더욱 그렇 습니다.]

이종범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당연한 거지.’

말을 전하려는 것이 회장이 아 니라 일반 집이라고 해도 이건 정말 무례한 일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으 니 말이다. 그리고 강진도 그것 을 알고 있었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뱉은 강진이 힐 끗 자신의 식당을 보고는 말했

다.

“꼭 회장님과 통화를 하고 싶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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