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35화 (733/1,050)

735 화

“꼭 회장님과 통화를 하고 싶습 니다.”

[정말 무리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밖에는 말을 드릴 수가 없습니 다.]

이종범이 완곡히 거절하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회장님께 말을 전해 주기 만이라도 해 주실 수 있나요?”

[음…… 말씀하십시오.]

“새벽 한 시 전까지 최대한 빨 리 저희 가게에 오시면 회장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둘이 행복하 다고 전해 주세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이종범 이 뒤늦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그렇게 전해 주세요. 그 리고…… 그 두 사람은 잔치국수 에 김과 고춧가루, 그리고 어묵 을 넣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요.”

[저기 사장님,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혹시 가게에 저희 회

장님이 아는 분들이 와 계신가 요? 누구입니까? 누군지 알아야 저도 회장님에게 말을 전하지 않 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밖에 는 말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 냥…… 제가 한 말 그대로 회장 님에게 전해 주세요.”

잠시 답이 없던 이종범이 한숨 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강진 또한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오시려나?”

걱정스레 핸드폰을 보던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할 수 있 는 건 여기까지였다.

핸드폰을 물끄러미 보던 이종범

은 눈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힐 끗 서재 쪽을 보았다.

이종범은 오택문의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오택문 이 가는 곳 어디든 같이 가고 같 이 지내는 최측근 비서였다.

그의 아버지도 오택문의 비서였 고, 그도 대를 이어서 오택문의 비서가 된 것이었다.

잠시 서재를 보던 이종범이 다 시 핸드폰을 보았다.

<11:35>

“하아! 어쩐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전 화였다. 하지만 무시하기에는 강 진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전언도 마음 에 걸렸다.

‘회장님이 가장 사랑하는 두 사 람이 라?’

잠시 고민을 하던 이종범이 강 진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동안 살펴본 바로, 강진은 친 분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받아 내 거나 부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미 황민성 이나 강상식에게 이것저것 받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런 것이 없었다. 그저 일요일에 봉사활동이나 같이 가는 것이 전 부였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이종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파악한 강진의 성정을 생각했을 때, 그

가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몰 라도 회장님에게 전하는 것이 맞 을 것 같았다.

‘판단은 회장님이 하시겠지. 다 행히 아직 주무시지 않으시 니……

톡톡톡!

문을 두들기고 잠시 기다린 이 종범은 대답이 없었음에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답이 없 다는 것은 들어오라는 신호였으

니 말이다.

안으로 들어간 이종범은 오택문 이 서류를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오택문을 보며 이종범 이 공손히 말을 했다.

“한끼식당 이강진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강진이라는 이름에 서류를 보 던 오택문이 그를 보았다.

“이강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전화를 했냐는 것이었다. 그 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말이 다.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새 벽 한 시 전까지 최대한 빨리 자 신의 가게로 와 달라는 이야기였 습니다.”

이종범의 말에 오택문의 얼굴에 의아함과 황당함, 그리고 불쾌함 이 어렸다.

“지금.. 나 보고 오라고 했다

고? 그것도 이 시간에?”

오택문의 불쾌함을 느낀 이종범 이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전언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 다. 최대한 빨리 오면 회장님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 행복할 거라 고 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

의아한 듯 이종범을 보던 오택 문이 입을 열었다.

“가게에 이 사장이 가 있나?”

“이강혜 사장님 평소 스케줄을 생각한다면 지금 집에 계실 시간

입니다.”

대답하던 이종범은 강진이 했던 말을 더 떠올리고는 말을 이었 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잔치국수에 김과 고춧가루를 넣어서 먹는 것 을 좋아하고 어묵을 좋아한다 했 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사 랑하는 두 사람이 잔치……

말을 하던 오택문이 입을 다물 었다. 그리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다른 말은?”

“이렇게밖에는 말을 할 수 없어 서 죄송하다 했습니다.”

“이렇게밖에 말을 할 수 없어 죄송하다?”

“네.”

이종범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 던 오택문이 몸을 일으켰다.

“차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설마 지금 나가실 생각이십니 까?’라는 물음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결정을 하는 사람도, 조 언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보고 들은 것을 있 는 그대로 전하고, 손과 발이 되 어 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손과 발, 그리고 눈과 귀가 사람에게 지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 다.

이종범이 밖으로 나가자, 오택 문은 창문가에 서서는 밖을 내다 보았다. 창 너머로 정원을 비추

는 조명과 보기 좋게 심어진 나 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나무 밑에는 작은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티 테이 블을 보던 오택문이 작게 중얼거 렸다.

“김과 고춧가루가 들어간 잔치 국수를 좋아하는 두 사람…… 그 리고 어묵이라.”

오택문의 눈에 티 테이블에 앉 아서 잔치국수를 먹는 아내와 아 들의 젊고 어렸을 때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여러 자식 중에 혁이만 아내처 럼 국수를 좋아했다. 다른 자식 들은 국수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 는데, 혁이는 아내와 함께 저기 티 테이블에서 국수를 먹는 것을 좋아했었다.

“아내와 혁이가...... 잔치국수를 좋아했는데……

두 사람은 방금 들었던 것처럼 김과 고춧가루, 그리고 어묵을 넣은 잔치국수를 좋아했었다.

오택문이 창밖을 보며 옛 추억 에 잠겨 있는 사이,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 다.

“가게에서 혁이가 잔치국수를 먹고 있나 봐요. 당신이 가면 저 도 맛있게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겠네요.”

할머니는 상황을 어느 정도 짐 작하고 있었다. 다만…… 강진이 이 시간에 자신을 급하게 오라고 하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 * *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울리는 소리에 당황한 이종범이 급히 유턴했다. 그에 오택문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지금 계속 도는 것 같은데

“그게…… 한끼식당이 보이지가 않아서.”

“쯔쯔쯔 J”

작게 혀를 찬 오택문이 말했다.

“벌써부터 밤눈이 어두워진 건 가? 내일 병원 가서 눈 검사라도 받게. 몸은 건강할 때 챙기는 것 이야.”

“죄송합니다.”

작게 답을 하며 운전을 하던 이 종범은 또다시 경로를 이탈했다 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제기랄!’

이종범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분명 맞는 길이고, 틀리게 갈 수 도 없었다. 일직선인 강남대로에 서 무슨 길을 잃는다는 말인가?

오택문에게 재차 죄송하다는 말 을 한 이종범은 경로에 따라 다 시 유턴을 한 뒤 길가를 유심히 보며 차를 몰았다.

하지만…….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다시 한끼식당을 찾지 못하고 지나쳐가자 이종범의 얼굴이 굳 어졌다.

‘이게 무슨……

분명 길은 어긋나지 않았다. 게 다가 내비게이션에도 분명 한끼 식당이 뒤에 있었다. 그런데도 한끼식당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평소의 그라면 감히 이런 혼잣 말을 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뒤에 오택문이 타고 있으니 말이 다. 하지만 너무 당황스러운 나 머지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린 것이다.

이종범의 중얼거림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귀신에 홀린 것 같 군.”

“네?”

“차 세우게.”

오택문의 말에 이종범이 차를 길가에 세웠다. 그에 차에서 내

린 오택문은 지나온 길을 보았 다. 분명 몇 번이나 지나친 길이 맞았다.

길가에 있는 상가를 둘러보던 그는 익숙한 핸드폰 가게를 발견 하고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길을 헤매는 동안 몇 번이고 보 았던 핸드폰 가게였다. 그런 데…… 정작 그 옆에 있는 한끼 식당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다.

잠시 길을 유심히 보던 오택문 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이종범

을 보았다.

“전화 걸어 보게.”

“알겠습니다.”

이종범이 전화를 거는 것을 보 던 오택문이 걸음을 옮겼다. 한 끼식당이 있던 위치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기던 오택문은 이종범 의 부름에 멈춰 섰다.

“회장님.”

이종범이 내민 휴대폰을 보던 오택문은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분명 길 쪽을 보며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시선이 도로 쪽으로 옮겨져 있었 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시선이 왜 도로 쪽으로 옮겨졌는지, 언제 옮겨졌 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허허허! 정말 귀신에 홀린 것 같군.’

당황스러움에 속으로 웃음을 터 뜨린 오택문이 잠시 있다가 손을 내밀었다.

“이 사장인가.”

[회장님.]

“지금 자네 가게 근처인데

말을 하며 오택문이 고개를 돌 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한끼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핸드폰 가게도 보이는데…… 그 옆에 있어야 할 한끼식당이 보이 지가 않는 것이다.

“자네 가게가 보이지를 않는 군.”

[아…… 제가 나가겠습니다.]

잠시 후, 오택문의 앞에 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

강진이 앞에 나타난 것에 오택 문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분명 자신은 인도를 보고 있었 다. 그런데 갑자기 강진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치 순간이동이 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오셨어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힐끗 인

도를 보았다. 말없이 인도를 보 고 있는 오택문의 모습에 강진이 입을 열었다.

“한 시까지 시간이 얼마 없어서 죄송합니다.”

“설명은 안 해 주는 건가?”

“설명은…… 제가 할 수가 없습 니다.”

“그럼 나를 왜 오라고 한 것인 가?”

오택문은 화가 난 얼굴이 아니 었다. 그저 이 상황이 좀 당황스

러울 뿐이었다.

강진은 주위를 보다가 옆을 가 리켰다.

“여기 옆에 노래방 있거든요? 거기서 잠시 앉아 계세요.”

“지금 나더러 노래방에 가 있으 라는 건가?”

“한 시까지요.”

강진의 말에 이종범이 급히 말 했다.

“이 사장님, 지금 그게 무

스.. ”

나서려는 이종범을 오택문이 한 손으로 제지하며 물었다.

“노래방 말고 다른 곳은 안 되 는 건가?”

“거리상…… 너무 멀면 안 돼서 요.”

“멀면 안 된다, 라……

강진을 보던 오택문은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한끼식당은 보이 지 않았다. 분명 위치상 바로 코 앞이어야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던 오택문이 이종 범을 보았다.

“들어가세.”

“회장님.”

오택문이 말없이 앞장서서 노래 방으로 들어가자, 당황스러운 눈 으로 그를 보던 이종범은 강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강진이 허공을 보며 뭐 라고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뭐야?’

강진을 보던 이종범은 급히 몸 을 돌려 노래방으로 뛰어들어갔 다.

강진이 왜 저러는지 의아하기는 하지만, 회장님 혼자 노래방에 들어갔으니 어서 따라 들어가야 했다.

오택문과 이종범이 노래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힐끗 본 강진이 말했다.

일단 저희 가게로 가시죠.”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노래방을 보았다.

“우리 회장님 이런 곳 처음일 텐데……

“이종범 씨 있으니 걱정하지 마 세요. 그리고 시간이 많이 없어 서요. 어서 들어가시죠.”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한끼식당으로 걸음을 옮 겼다.

“지금은 저승식당 시간인가요?”

“그렇습니다.”

강진이 가게 문을 열자, 할머니 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입구에 선 아들이 웃으며 자신 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어서 와.”

오혁의 말에 할머니가 그를 따 뜻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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