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화
오혁이 가슴에 종이를 안고 있 는 와중에 강진은 손에 들린 또 다른 종이를 보았다.
할머니는 총 두 장의 편지를 보 냈다. 하나는 아들에게, 그리고 하나는 강진에게 보낸 것이다.
〈사장님, 우리 아들과 마주 앉 아 음식을 먹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들, 며느리와 좋은 사이로 남아 주세요.
가끔 혁이가 철없이 행동하는 때가 있는데 그건 귀엽게 봐 주 세요.
그리고 회장님께선 갑자기 불려 나와서 화가 나 있을 수 있어요.
혹시 화를 내시면 맛나 제빵에 서 단팥빵을 좋아하던 여고생이 회장님을 모셔 달라고 부탁했다 하세요.
그럼…… 앞으로도 우리 아들하
고 친하게 지내주시기 바랍니 다.〉
친구 엄마가 앞으로도 자기 아 들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것 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던 강 진이 수표를 보고는 입맛을 다셨 다.
‘부자는 천국 가기 어렵다는 말 도 다 적용되는 건 아닌 모양이 네.’
할머니가 보낸 수표에는 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이렇게 큰돈을 자신에게 보낼 정 도라면…… VIP 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강진이 다시 편지를 볼 때, 귀 신들이 하나둘씩 현신이 풀리며 원래대로 돌아갔다.
화아악! 화아악!
1시가 되자마자 현신이 풀린 것 이다. 현신이 풀린 귀신들은 자 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서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오혁에게 다가가서는 국수가 담겨 있는 그릇에 대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씩 절을 하거나 묵념하는 것으로 조의를 표하는 귀신들의 모습에 오혁이 눈가를 닦으며 몸 을 일으켜서는 양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오혁의 말에 귀신들이 그를 향 해 고개를 숙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귀신들의 예에 오혁이 고개를 마주 숙였다.
귀신들은 바닥에 놓인 국수 그 릇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들도 마음이 안 좋았다.
누군가는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 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자신 때 문에 슬퍼했던 어머니를 떠올렸 다.
각자 떠올리는 사람은 달랐지 만, 애도를 표하는 순간만큼은 국수 그릇의 주인이 자신의 어머 니 였다.
고개를 작게 저은 귀신들이 하 나둘씩 가게를 나가자, 그들을 보던 강진이 오혁을 보았다.
“형 괜찮으세요?”
“후우!”
오혁은 작게 한숨을 토하고는 강진을 보았다. 그렇게 잠시간 쳐다보던 그는 양팔을 벌려 강진 을 안았다.
“형?”
“정말…… 네가 고맙고…… 고 마운데……
오혁은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밉기도 하다.”
오혁의 말에 강진이 그의 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 알아요.”
자신이 오택문을 불러 오혁과 할머니가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할머니가 승천을 했다.
그리고…… 오혁은 엄마를 다시 는 못 보게 되었고 말이다.
“후우!”
작게 숨을 토하며 강진을 강하 게 안은 오혁이 몸을 떼며 말했 다.
“하지만 너무 고마워. 네가 자 리를 마련해 준 덕에…… 엄마는 더 좋은 곳으로 가셨으니까.”
오혁은 고개를 들어 천장 쪽을 보았다.
“저기가 더 좋은 곳이 맞겠지?”
“그럼요. 여기보다 더 좋은 곳 이에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미소를 지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 고맙다. 형은 이제 정말…… 오늘부터 살아나 기 필승 공략에 들어간다.”
“죽은 적도 없는데 살아나기 필 승 공략이 무슨 필요예요. 잠에 서 깨어나기 공략을 해야죠.”
“그것도 맞지.”
재차 고개를 끄덕이는 오혁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생각이 든
건데요.”
오혁이 보자 강진이 말을 다.
이었
“가위에
눌려 보셨어요?”
“가위?
데?”
난 눌려 본 적이
없는
눌려 본 사람들
말이,
“가위에
정신은 깨어 있는데 몸이 움직이
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나하고 비슷하네?”
“그렇죠. 그럴 때는 손가락 끝
이나 발가락 끝에 정신을 집중해 서 막 움직이려고 노력을 한대 요.”
“손가락? 발가락?”
“전체를 움직이려 하는 것이 아 니라 한 부분에만 정신을 집중해 서 깨어나려고 하는 거죠. 손가 락이나 발가락 끝이 살짝이라도 움직이면 몸이 파악! 하고 일어 나진대요.”
“호오! 나도 그런 이야기는 들 어 봤……
띠링!
말을 하던 오혁은 뒤에서 들리 는 풍경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영감님.”
가게 안으로 오택문과 이종범이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오며 내부 를 둘러본 이종범은 테이블마다 음식들이 있고, 비어진 술병과 잔들이 가득한 것에 눈을 찡그렸 다.
‘손님 받느라…… 회장님을 밖 에서 기다리게 했다고?’
가게 내부는 단체 손님이라도 왔다 간 듯한 모습이었다.
“오셨어요?”
강진이 다가오자, 오택문이 가 게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설명을 해 줄 수 있겠 나?”
오택문의 딱딱한 목소리에 강진 이 그를 보다가 한쪽을 가리켰 다.
일단 앉으시죠.”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자리를 지그시 보았다. 그 상태로 움직 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 오택문을 보며 강진이 다시 자리를 가리켰 다.
“여기 일단 앉으세요.”
강진이 가리킨 자리는 오혁과 할머니가 식사를 했던 자리였다. 그래서 그 자리의 테이블에는 둘 이 먹던 국수와 쏘야가 남아 있 었다.
그것을 빤히 보던 오택문이 자 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오혁이
비운 국수 그릇을 보고는 말을 했다.
“혹시 자네가 말한 두 사람이 여기에 앉았나?”
“네.”
“ 누군가?”
오택문의 물음에 강진이 자리를 보다가 말했다.
“일단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 요?”
강진의 말에 이종범이 그를 보
았다.
“이 사장님, 회장님이……
이종범이 나서려는 찰나, 오택 문이 손을 들었다. 그에 이종범 이 급히 입을 다물고 물러나자, 오택문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더 기다리지.”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육수에 국수를 말아서 는 가지고 나왔다.
강진이 가지고 나온 국수는 계 란 지단도 없는 평범한 잔치국수 였다. 그나마 다른 잔치국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묵이 들어가 있는 것 정도였다.
강진이 잔치국수를 오택문 앞에 놓자 이종범이 다시 눈을 찡그렸 다. 테이블을 치우지도 않고 음 식을 놓았으니 말이다.
이종범은 무언의 항의를 했지 만, 강진은 뒤로 물러날 뿐 상을 치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에 이종범이 오택문의 눈치를 보
았다.
‘나라도 치워야 하나?’
이종범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오택문은 말없이 국수를 보고 있 었다.
살짝 색깔이 있는 국물에 국수 가 말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어묵이 썰려 있었다.
국수를 보던 오택문은 문득 그 앞에 있는 오이겉절이와 쏘야를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기만 하던
오택문이 젓가락을 꺼내 국수를 집으려 했다.
“영감님, 김 가루 넣어서 드셔 야죠.”
오혁의 말에 강진이 나섰다.
“옆에 김 가루와 고춧가루가 있 습니다.”
강진을 힐끗 본 오택문은 김 가 루가 든 통을 잡더니 안을 확인 했다.
“얼마 없군.”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김 통을 보았다. 오혁과 할머니가 김 가 루를 많이 넣고 먹었던 터라 얼 마 남아 있지 않은 것이었다.
“채워 오겠습니다.”
강진은 통을 들고 주방에 가서 는 김 가루를 채워 왔다. 강진이 김 통을 다시 테이블에 놓자, 오 택문이 말했다.
“방금 먹고 간 손님이 김 가루 를 좋아하나 보군.”
“많이 넣고 드시더군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국수를 보다가 김 가루를 넣었다.
그 또한 할머니와 오혁처럼 김 가루를 수북이 넣었다. 그러고는 고춧가루를 반 스푼 정도 넣고 잘 풀어지도록 뒤적거리더니 면 발을 건져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입에 넣은 오택문이 잠 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말없이 국수를 한 번 더 입에 넣은 오택 문이 오이겉절이를 집어 입에 넣 었다.
아삭! 아삭!
국수와 오이를 함께 먹던 오택 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말이다.
한편, 오택문의 모습을 지켜보 던 이종범의 얼굴엔 당황스러움 이 어렸다.
‘누가 먹은 건지도 모르는 걸 드시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오택문이 남 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고 있으 니 말이다.
이종범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 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오택문 은 다시 국수를 집어 입에 넣었 다.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크게 입에 넣고 씹은 오 택문이 남은 음식 중 소시지 하 나를 집어먹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국수 와 쏘야를 먹던 오택문은 마지므]' 남은 국물까지 다 먹고서야 그릇 을 내려놓았다.
탓!
가벼운 소리와 함께 그릇을 내 려놓은 오택문은 빈 그릇을 보다 가 강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진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전화로 설명을 할 수 없다 했 던가?”
“네.”
“그리고 내가 와야 내가 사랑하 는 두 사람이 행복할 거라 했 지?”
“네.”
“전화가 아니고 내가 직접 왔으 니 설명을 할 수 있나?”
“설명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종범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지금 이게 무슨……
다른 사람도 아닌 L그룹 총수를 한밤중에 불러 놓고, 부른 이유 를 설명할 수 없다니…….
이종범이 이 일을 어찌하나 싶
어 할 때, 오택문이 비어 있는 국수 그릇을 보며 말했다.
“설명 대신 국수를 주는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 입니다. 혹시라도 기분이 상하셨 다면 죄송합니다.”
잠시 말이 없던 오택문이 천천 히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나를 무 릎에 앉히고 옛날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네.”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지금 생각하면 전설의 고향에 나 나올 이야기였는데, 할아버지 가 참 재밌게 이야기를 해 주셨 지.”
오택문은 젓가락으로 쏘야를 하 나 집어 입에 넣으며 잠시 음미 하듯 씹었다. 그것을 삼킨 오택 문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이건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며 하신 이야기 가 있네.”
오택문은 강진을 보다가 이종범 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넨 잠시 나가 있게.”
오택문의 말에 이종범이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이종범 이 나가자 오택문이 다시 강진을 보았다.
“할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는 귀 신들에게 밥을 해 주는 식당 이 야기 였네.”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그런 강진을
보며 오택문이 말을 이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는 귀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고 했었지.”
“할아버지께서 요?”
“자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안은 독립운동을 했었네. 아 나?”
“알고 있습니다.”
L그룹 선조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 자금을 댔다는 건 유명 한 이야기니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께선 독립운동 조직에 자금을 대려고 밤길을 나 섰다가 순사들에게 잡힐 뻔한 적 이 있었네. 조심히 약속을 잡고 길을 나섰는데, 돈을 받기로 한 쪽에 밀정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러세요?’’
오택문은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 켰다.
“이야기가 길 것 같으니 앉게.”
강진이 앞에 앉자, 오택문의 이 야기가 이어졌다.
“그때 허겁지겁 도주를 하는데 ‘이쪽으로 오게나.’라며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는군.”
“이쪽으로 오게나, 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오택문 이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는 데…… 어쨌든 할아버지가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이쪽으로 오게 나.’라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는 군.”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진의 머
릿속에 그런 말투로 말을 하는 여자가 한 명 떠올랐다.
‘설마 소희 아가씨?’
그 시대 땐 ‘오게나.’라는 말투 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을지도 모 르겠지만, 강진에게 있어 그런 말투를 쓰는 젊은 여자는 김소희 뿐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