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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740화 (738/1,050)

740화

사발을 손에 쥔 오인호가 쓰러 져 있는 순사들을 보았다. 그런 오인호를 보던 김소희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리 앉게나.”

“아닙니다. 저들이 쓰러졌으니 지금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을 쫓던 순사 둘이 쓰러졌 으니 이 틈을 타 나가면 될 것이 었다.

“지금 나가면 잡히니…… 이리 와 앉게나.”

김소희의 말에 오인호가 가게 밖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여기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 앉은 오인호를 보며 김 소희가 입을 열었다.

“지금 자네를 쫓는 순사들이 많 으니 내일 해가 뜨면 이곳을 나 가게나. 나갈 때 몸에 술이나 좀 묻히고 나가게. 왜놈들도 술 취 해 아침부터 돌아다니는 사람을

독립운동가로는 생각하지 않겠 지.”

김소희의 말이 일리가 있다 생 각한 오인호가 막걸리를 손에 묻 혀 자신의 몸에 묻히다가 물었 다.

“쓰러져 있는 자들을 보면 순사 들이 더 오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사람들이 보지 못 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네.”

“네‘?”

의아해하는 오인호를 보던 김소

희가 주전자를 들었다. 그에 오 인호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공손히 사발을 들어서는 막걸리 를 받았다.

쪼르륵! 쪼르륵!

막걸리를 따라 준 김소희가 입 을 열었다.

“조선 사람들은 모두 조선의 독 립을 위해 싸우네. 그리고 그것 은 조선의 귀신도 마찬가지일 세.”

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주는 이 유는…… 자네가 잡히지 않고 살 려면 여기에 아침까지 있어야 하 기 때문이네.”

“저는 지금 아가씨께서 무슨 말 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귀 신이라니요?”

자연스럽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오인호를 보던 김소희가 고개를 들었다.

“복래야.”

김소희의 부름에 복래라 불린

아이가 일어나 다가왔다.

“예, 아가씨.”

“놀라지 않게 잘 이야기해 주거 라.”

김소희의 말에 복래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복래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걸리를 따라 입에 가져갔다.

그렇게 막걸리를 마시고 사발을

내려놓은 김소희가 오인호를 보 았다.

“지금 자네가 하는 일이 밑 빠 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일 수도 있 네.”

오인호가 보자, 김소희가 그를 지그시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이들이 조선의 백성이니, 언젠가는 독에 물이 차오를 날이 올 것이네.”

김소희의 말에 오인호의 눈빛이

강해졌다.

“백성들이 물을 붓고, 저희와 같은 독립투사들의 시체가 흙과 자갈이 되어 밑 빠진 독을 채운 다면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입 니다.”

오인호의 단호한 눈빛을 본 김 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 옛날 나라가 힘이 들 때면 자네와 같은 이들이 불의와 탄압 에 맞서 싸웠으니…… 역사는 그 들을 의병이라 부르네. 자네와 같은 의로운 이들이 민족을 위해

싸우고 있으니 반드시 그리될 것 이네. 반드시…… 그리될 것이 야.”

그 말을 끝으로 김소희의 모습 이 사라졌다.

“허억!”

갑자기 눈앞에서 김소희가 사라 지자 놀란 오인호가 자리에서 벌 떡 일어났다.

덜컥!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큰 소리 가 났지만, 오인호는 놀란 눈으

로 빈자리를 볼 뿐이었다.

그러던 그는 급히 주위를 보았 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음식을 먹고 있던 여자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이게?”

당황과 놀람에 휩싸인 오인호의 몸에 소름이 쫘악 올라올 때, 복 래가 뒤로 넘어간 의자를 잡아 세웠다.

“다행이다. 안 부서졌네.”

웃으며 의자를 세운 복래가 오

인호를 보았다.

“많이 놀랐죠?”

흠칫!

복래의 목소리에 오인호가 급히 옆을 보았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복래를 발견한 오인호가 주 춤거리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지…… 지금 이게 무슨?”

“한 잔 드세요.”

복래는 막걸리를 잔에 따라 주 고는 오인호를 보았다.

“저승식당에 잘 오셨어요.”

오택문의 이야기에 나오는 ‘복 래’라는 이름에 흠칫한 강진이 그를 보았다.

‘복래? 거기에 서울……. 그럼 그 회장님 할아버지가 간 곳이 우리 한끼식당이었구나.’

강진이 속으로 생각할 때, 오택

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쨌든 그 저승식당이라는 곳 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오니 사람들이 길을 오가고 있어 다행 히 순사들을 피해 달아나실 수 있었네.”

“그렇군요.”

“그리고 며칠 후 할아버지는 다 시 그 가게를 찾아가 봤지만 결 국 가게를 찾지 못하셨네.”

“그러셨습니까?”

“분명 자신이 갔던 길이고, 순

사가 쓰러졌던 곳의 위치도 확인 했지만…… 가게가 보이지 않으 셨다는군.”

이야기를 하던 오택문이 강진을 보았다.

“마치 아까 자네의 가게가 보이 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네. 그래 서…… 할아버지가 해 주셨던 이 야기가 생각이 났었네.”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으며 국수를 가리 켰다.

“국수 한 그릇 더 드시겠어요?”

“한 그릇 더 주게.”

강진은 국수를 한 그릇 더 말아 서 가지고 왔다. 강진이 새 국수 를 내려놓자, 오택문이 그것을 지그시 보다가 말했다.

“한 가지만 묻지.”

“말씀하십시오.”

“혹시 설명을 못 하는 것이 이 국수와 관련이 있는 건가?”

“자세하게 알아서 좋은 것도 있

지만 좋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회장님은 아시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오택문은 잠시 국수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국수에 김과 고춧가루를 넣어 먹기 좋아하던 그 여자는…… 행 복했나?”

“행복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 리고……

강진이 오이겉절이를 가리켰다.

“이 오이겉절이는 여사님이 좋 아하신다고 해서 제가 만들었습 니다.”

“그 여자가 오이겉절이를……

잠시 말을 멈춘 오택문이 한숨 을 쉬었다.

“많이 좋아하지. 여름에는 오이 를 챙겨 다니면서 먹고는 했으 니……

오택문이 이번에는 쏘야를 보았 다.

“이건 그 여자가 한 건가?”

“맞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쏘야를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쩐지…… 아내의 손맛이 느껴졌 었다.

‘정말…… 저승식당인 건가?’

자신의 짐작대로라면 믿기 어렵 지만…… 이곳은 할아버지가 들 려준 이야기에 나왔던 저승식당 일 것이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저승 식당에 관한 건 생각하지 않았 다.

그저 죽은 아내가 좋아하던 음 식 취향을 강진이 그대로 말하자 아내 생각이 와서 와 본 것이다.

그리고 저승식당은 자신과 이종 범이 한끼식당을 왜 찾지 못하는 지 생각하다 우연히 떠오른 것뿐 이었다. 그것 외에는 바로 눈앞 에 있어야 할 한끼식당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 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말씀대로라 면…….

-저승식당은 밤 열한 시에 시 작해서 새벽 한 시에 영업이 끝 난다고 하더구나. 그 시간에는 귀신이 사람처럼 현신을 해서, 사람처럼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 는 것이지. 그리고 가게에 귀신 들이 있으면 사람들이 가게를 알 아보지 못한다고 하더구나.

-그럼 그때 가게에 귀신들이 있어서 순사들이 할아버지를 못

본 거예요?

-그런 셈이지.

강진은 분명 1시까지 밖에 있다 가 들어오라고 했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정말 믿기 어 렵지만 저승식당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잠시 음식을 보던 오택문이 강 진을 보았다.

“확실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에게도 사정이 있는 거

겠지?”

“네.”

“그렇군.”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은 그 이야 기 속 저승식당을 믿으세요?”

“전까지는 재밌는 이야기로만 생각을 했네. 그냥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해 주는 재밌는 이야기 말이네.”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오택문은 음식을 보며 말을 이 었다.

“할아버지가 한 이야기가 진짜 라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이곳에서 나와 그녀가 가장 사랑 하는 사람과 맛있는 식사 데이트 를 했을 테니…… 믿고 싶군.”

사랑하는 여자는 아내고, 그녀 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들인 오혁이 었다.

그래서 오택문이 저승식당이 있 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 는 두 사람이 이곳에서 행복했을 테니 말이다.

“귀신은 안 무서우세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았다.

“자네는 귀신이 무섭나?”

“저는 안 무섭습니다.”

“나 역시 귀신이 무섭지 않네.”

“안 무서우세요?”

“할아버지 말씀대로라면 그들도 조선을 위해 노력을 하는 이들이 었네. 그리고 우리처럼 이렇게 먹지. 그렇다면 내가 무서워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러고는 오택문이 강진을 보았 다.

“내가 무서워해야 하는 것인 가?”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고

는 입을 열었다.

“제가 어르신께 설명을 자세하 게 하지 않으려 한 이유는 사람 이 귀신에 대해 알아서 좋을 것 이 없다는 생각이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어르신이 이렇게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리낌이 없다 면……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오택문에 게 고개를 숙였다.

“저승식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 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입술을 깨물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짐작이 강진의 말에 의해 진실이 되자, 오택문은 자 신의 앞에 놓여 있던 빈 그릇들 이 새롭게 다가왔다.

‘여보…… 여기서…… 밥을 먹 었구려.’

국수를 맛있게 먹었을 아내를 떠올려 보던 오택문의 입술이 떨 렸다.

“아내가 맛…… 맛있게 먹고 갔 나?”

“네.”

“그…… 그동안 이승을 떠돈 건 가?”

“회장님의 옆에 수호령으로 머 무시고 계셨습니다.”

수호령이라는 말에 오택문이 한 숨을 쉬었다.

“못난 내가 걱정이 돼서…… 가 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오택문이 주위를 보았다.

“지금 여기에 있나?”

“매형과 식사를 하시고 웃으며 떠나셨습니다.”

“떠나?”

“숭천하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입술을 깨물었다.

“야속한 사람……. 조금만…… 기다렸다가 인사라도 하고 가 지.”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혹시라도 어르신이 이 상황에 화를 내시면 이 말을 전해 주라 고 하셨습니다.”

오택문이 보자 강진이 말을 이 었다.

“맛나제빵에서 단팥빵을 좋아하 던 여고생이 회장님을 모셔 달라 고 부탁한 거라고……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미소를 지었다.

“맛나제빵에서 처음 그녀를 만

났지.”

미소를 짓던 오택문이 문득 강 진을 보았다.

“혁이는…… 혹시……

오택문이 주저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매형은 죽은 것이 아니니 승천 도 하지 않습니다.”

“ 하아......"

깊게 한숨을 토한 오택문이 주 위를 보았다.

“혁이…… 여기에 있니?”

오택문의 말에 오혁이 앞으로 나섰다.

“아빠, 나 여기 있어.”

오혁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오택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 다.

“혁이 형은 여기에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눈을 감 았다가 한숨을 쉬었다.

“혁아…… 아빠가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

“아빠가 강혜하고 너 결혼 반대 했던 것…… 정말 미안하다. 아 빠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네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그게 무슨 아빠가 반대했다고 그리된 건가? 그냥 내가 운이 나 빴던 거지.”

오혁은 웃으며 오택문을 보았 다.

“나…… 반드시 깨어날 거야. 나 깨어나면…… 강혜하고 영감

님하고 나 이렇게 셋이 여행 가 자.”

“그래. 우리 셋이 여행을 가자. 네가 가고 싶은 데 어디라도 가 자. 그러니…… 우리 아들 꼭 깨 어나야 한다. 아빠…… 네가 영 감님이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너 무…… 그립구나.”

주르륵!

오택문의 눈가에서 눈물이 홀러 내리는 것에 오혁이 그를 가만히 안아 주었다.

“꼭 깨어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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