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1 화
강진은 오택문에게 오혁의 말을 대신 해 주었다.
“그래서 난 깨어나려고 노력을 할 거야. 그러니까 아빠가 자주 나 보러 와.”
“알았다. 내가 아들 깨어날 때 까지 매일매일 보러 갈 테니 너 는 몸 회복에 신경 쓰거라.”
웃으며 오혁이 있는 곳을 보는 오택문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다가 망설이듯이 오혁을 보았다. 잠시 오혁이 있는 곳을 보던 오 택문이 입을 열었다.
“혹시…… 나도 저승식당 영업 시간에 올 수 없겠나?”
현신을 한 아들이 보고 싶은 모 양이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승식당 시간에 사람은 올 수
없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들어가셨는 데……
“그것은 소희 아가씨께서 허락 을 하셔서입니다.”
“소희 아가씨?”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신 분이 김소희 아가씨입니다.”
“그분은 대체 누구인가?”
“어린 나이에 여자의 몸으로 의 병 활동을 하며 왜구와 싸우신
임진왜란의 영웅이십니다.”
“임진왜란?”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놀란 눈 으로 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승에 남아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귀 신이기 이전에 조선 제일의 무신 이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일반 귀신과는 조금 다르십니 다.”
강진의 말에 자신이 오늘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생각을 하던 오 택문이 물었다.
“나도 그 여…… 아니, 아가씨 를 만날 수 없겠나?”
“귀신은 가까이해서 좋은 일이 없습니다.”
“그……
뭔가 말을 하려던 오택문은 한 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애초에 귀신이나 저승식당에 대
해 설명을 하지 않으려 했던 강 진이니 말이다.
“혁아.”
오택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 혁이 있는 곳을 보았다.
“어서 몸에 돌아가거라.”
“나하고 조금 더 있기 싫어요? 난 오랜만에 영감님하고 같이 이 야기하니 좋은데?”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깨어나면 많은 시간을 같 이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때 이야기 많이 하자 꾸나. 그러니 일찍 들어가거라.”
오택문이라고 오혁과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 만 몸에서 오래 나와 있으면 안 좋다고 하니 어서 가라고 하는 것이다.
“알았어. 그럼…… 나 깨어나면 같이 여행도 가고 하자.”
“그래. 그러자꾸나.”
“그럼…… 영감님 먼저 가.”
오혁이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걸 그대로 전해 준 강진은 조금 민 망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혁에게는 아버 지에 대한 애칭이고, 아버지에게 는 아들의 애교였다.
그리고 영감님이라는 말에 오택 문은 미소를 지었고 말이다. 그 래서 강진은 오혁의 조금은 버릇 없어 보이는 말투를 그대로 오택 문에게 전했다.
“같이 나가자꾸나. 아니, 내가 집까지 태워다 주마.”
“아니야. 먼저 가.”
“그럼 차까지는 같이 가자꾸 나.”
오택문이 가게를 나서자, 오혁 과 강진이 그 뒤를 따랐다.
가게 앞에는 이종범이 서 있었 다.
“가서 차 가져오게나.”
“알겠습니다.”
서둘러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 간 이종범은 차에 타려다가 한끼 식당이 있는 곳을 슬쩍 보았다.
차를 세워 둔 곳에서 한끼식당 은 잘 보였다.
‘정말 귀신에 홀린 것 같네.’
이렇게 잘 보이는 한끼식당이 아까는 전혀 보이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 종범은 차를 끌고 한끼식당 앞으 로 향했다.
식당 앞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내린 이종범이 뒷좌석을 열었다. 그에 오택문이 이종범을 보았다.
“차에 타 있게.”
오혁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데 아무리 심복인 이종범이라고 해도 이상하게 볼 것이니 말이 다.
이종범이 고개를 숙이고는 운전 석에 타자, 오택문이 차 문을 닫 고는 말했다.
“오늘 고마웠네.”
“아닙니다. 그리고…… 저승식 당 이야기는 비밀로 해 주십시 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피식 웃 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겠 나. 걱정하지 말게.”
오택문은 정말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 다.
잘못하면 치매 걸린 노인 취급 받을 수도 있고,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 다.
L그룹 회장의 정신 상태가 이상 하다? 바로 회사 주식이 출렁일 것이다.
주가가 떨어질 수도 있고, 오를 수도 있다. 떨어진다면 회장의 정신 상태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었고, 만약 오르게 된다면 L 그룹 후계자들의 지분 확보 때문 일 것이었다.
어쨌든 그룹 입장에선 주가가 출렁이는 건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강진은 오 택문의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고 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한 것은 나지.”
그러고는 오택문이 주위를 보았 다.
“여기에 있습니다.”
강진이 오혁이 있는 곳을 가리 키자, 오택문이 그곳을 지그시 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 었다.
“혹시…… 내가 강혜를 대하는 것에 서운했니?”
오택문의 말에 오혁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좀 잘 해줘요. 내가 사랑하는 여자인데…… 나도 없는데 아빠 라도 잘 해 줘야지. 서운해. 암 서운하고말고.”
오혁의 투덜거림에 오택문이 미 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너처럼 잘 대해주 마.”
“그래요. 그리고 자주 같이 식 사 좀 해 주세요.”
“식사?”
“강혜 저녁에 보통 나하고 둘이 먹어요.”
멍하니 있는 오혁과 함께 식사 를 한다는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 식사도 자주 하 고 시간도 자주 보내마.”
“그럼 가세요.”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그가 있 을 방향을 잠시 보다가 차 문을 열었다.
“꼭…… 건강하게 깨어나야 한 다. 아빠하고…… 약속이다.”
“알았습니다.”
오혁의 답에 오택문이 허공을 잠시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대 충 아들의 얼굴이 있을 법한 곳 을 손으로 쓰다듬은 오택문이 차 에 타고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
다.
“건강해야 한다.”
그 말을 끝으로 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에 오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차가 멀어지자 슬며시 손을 내 린 오혁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강진을 보았다.
“정말 저승식당 시간에 사람은 못 오니?”
“현신해서 못 만나니 아쉬우세 요?”
“조금……. 그리고……
오혁은 가게를 보며 말을 이었 다.
“조금만…… 일찍 가게에 들어 오셨으면 엄마하고 아빠…… 만 날 수 있었는데.”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못 들어와요. 그리고 어르신은…… 그 경우에 해당이 안 돼요.”
“그러니?”
“만나도 상관이 없다면……
강진 또한 가게를 보며 말을 이 었다.
“저희 가게에 있는 직원들 부모 님과 사랑하는 분들을 왜 안 모 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입맛을 다 셨다. 강진의 말대로였다. 자신만 부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 는 것은 아니었다.
강진의 가게에 오는 귀신들 모 두 부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지.”
오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이제 들어가세요. 그리고 다음 에 볼 때는…… 형 깨어나고 난 후겠네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그를 보다 가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볼 때 형이 너를 기억 못 해도 서운해하지 말아라.”
“서운해하지 않아요. 대신 지금
처럼 저하고 친해지셔야 해요.”
강진이 자신의 손을 잡으며 하 는 말에 오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당연하지. 형이 또 사람 하고 친해지는 건 정말 잘하거 든. 형이 깨어나면 정말 너하고 많이 친해질게.”
웃으며 강진과 악수를 한 오혁 이 그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럼 형 일어나면 보자.”
마치 자고 일어나서 보자는 듯 가볍게 말을 한 오혁이 뛰어가자
강진이 그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 쳤다.
“늦잠은 적당히 자세요!”
강진의 외침에 몸을 돌린 오혁 은 손을 머리 위로 크게 흔들고 는 다시 집을 향해 뛰어가기 시 작했다.
그런 오혁을 보고 있을 때 배용 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찍 일어나면 좋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겠지 만…… 최대한 빨리 일어나는 것 이 좋지.”
“그런데 정말 혁 씨 아버지에게 말을 편하게 하더라?”
조금은 버릇없다고 느낄 정도로 말을 가볍게 하던 오혁을 떠올리 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피식 웃었다.
“남이 보기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게 두 사람의 애정 표현인 거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확실히 아들보다는 딸 같 더라.”
“확실히 그건 그렇더라.”
무뚝뚝한 부자지간이라기보다는 부녀지간처럼 보이는 오택문과 오혁이 었다.
배용수가 먼저 가게 안으로 들 어가고, 강진은 잠시 오혁이 간 곳을 보다가 가게로 들어왔다.
가게 안에서는 임정숙이 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왜 혼자 하세요. 저 들어오면 같이 하지.”
“늘 하는 일인걸요.”
“그래도 같이 해요.”
강진이 쟁반을 가져다가 그릇들 을 정리하자, 배용수도 와서는 같이 그릇들을 정리했다.
토요일 아침, 강진은 공원에서 아이들에게 사료를 챙겨주고 있 었다.
“저기 온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강혜가 휠체 어에 탄 오혁과 함께 오고 있었 다.
“오셨어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다가왔다.
“일찍 나왔네.”
“일찍은요. 늘 나오는 시간에 나왔죠.”
이강혜와 인사를 나눈 강진이 오혁을 보았다.
“형, 오늘 날씨 좋네요.”
오혁은 눈동자를 살짝 움직여 강진을 보았다. 하지만 말을 하 거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몸에서 꼼짝도 하지 않 기로 마음먹은 이후, 오혁은 강 진을 만나도 말하거나 고개를 돌
리지 않았다. 그저 눈동자만 움 직여 강진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것이 오혁의 노력이었다. 지 금 자신의 몸에서 아무런 움직임 도 하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런 오혁을 보던 강진이 이강 혜를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들고 다니면 안 무거우세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자신의 가방을 보았다. 원래 이강혜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거기에 사
료와 물을 담아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강진의 말대로 오혁과 아침 산책에 같이 나오면서 수레 를 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방 에 사료와 물을 넣고 다니는 것 이다.
“무거워도 어쩔 수 없지.”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는 제가 여기 애들 사료 챙길게요. 누나는 그냥 아침 산 책 나와서 애들 잘 있나만 보세
요.”
“아니야.”
“누나 힘들잖아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들 밥 주고, 애들이 먹는 것 을 보는 게 나한테는 힐링이야.”
“그래요?”
“사람들이 산을 힘들게 왜 올라 가겠어. 힘들어도 오르다 보면 그게 힐링이 돼서 오르는 거잖
아. 산을 오르는 거에 비하면 이 건 힘든 것도 아니지.”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일리가 있었다. 힐링하려고 산을 힘들게 오르는 것에 비하면 등산 가방 메고 공원 한 바퀴 도 는 것 정도야…….
“아버님하고는 요즘 어떠세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다.
“요즘 점심에 아버님이 오셔서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어.”
“구내식당에서요?”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전에 내가 식사를 차 려 드린 것이 마음에 드셨나 봐. 요즘 자주 전화도 하시고…… 좋 아.”
이강혜가 환한 얼굴로 말하는 것에 강진이 살며시 웃으며 오혁 을 보았다.
“아버님도 잘 해 주시고, 이제 형만 깨어나면 되네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오혁의 어깨를 손으로 주물렀다.
“꼭 깨어날 거야. 나하고 아버 님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까.”
이강혜의 목소리에 오혁은 반드 시 깨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손가락 끝에 정신을 집중했다.
‘꼭! 꼭! 깨어날 거야.’
그 순간, 오혁의 검지가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너무 미약한 움직임이라 오혁 본인도, 강진과 이강혜도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