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3 화
황민성과의 통화를 끝낸 강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옆을 보고는 웃었다. 어느새 배용수와 최호철 이 다가와서 통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 형하고 혜미 씨 결혼하는 거야?”
배용수가 묻자 강진이 웃으며 최호철을 보았다.
민성 형이 좋은 펜션하고, 혜
미…… 아니, 형수 입을 웨딩드 레스 준비해 주신대요.”
“웨딩드레스……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미소를 지었다.
“민성 씨한테 너무 고맙네. 내 가 고마워한다고 꼭 말씀드려.”
“그거야 형이 나중에 민성 형 오면 고맙다고 하세요. 감사 인 사는 자기가 직접 해야죠.”
“그래. 고맙다고 꼭 내가 인사 를 드려야겠다.”
최호철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내일 결혼식 할 때까지 비밀로 할 거니까 너도 입 다물고 있 어.”
“호오! 결혼 이벤트라. 좋구만. 그런데……
배용수는 심각한 얼굴로 강진을 보았다.
“그건 어쩔 거야?”
“뭐가?”
의아한 듯 보는 강진을 보며 배 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세상에 어느 신부가 혼자 입장 올 하냐.”
“그……
말을 하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 다. 그 말대로…… 신부가 식장 에 입장할 때는 그녀를 에스코트 해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버지 말이다.
물론 아버지가 안 계신 신부도 있다. 강진이나 문지나처럼 부모
님이 안 계시거나, 사정상 식장 에 모실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 이다.
그럴 땐 보통 오빠나 신랑 아버 지가 대신 신부를 에스코트하며 신랑에게 손을 내어준다. 그것도 아니라면 신랑과 함께 동시에 입 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혜미는 아버지가 있었 다. 다만…… 손을 잡아 줄 수가 없을 뿐이었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입 을 다물었다. 그런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내일...... 결혼식에…… 많이 울겠다.”
“왜 울어?”
최호철이 보자, 배용수가 고개 를 저었다.
“살아서 행복하게 결혼식을 하 는 신부들도 결혼식 날 아버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할 때는 다 눈물을 홀리는데…… 혜미 씨는 그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런 혜미 씨 보는 선영 씨나 정숙 씨
도 가슴이 많이 아플 테고……
“아……
배용수의 말에 최호철이 작게 침음을 홀렸다. 죽기 전 경찰 생 활을 했던 그는 지인들 결혼식에 한두 번 참석해 본 것이 아니었 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대부분 의 신부들은 결혼식 날 부모님에 게 인사를 드릴 때면 눈물을 홀 렸다.
살짝 눈물짓는 신부도 있었지 만, 펑펑 울어 화장이 지워지는 바람에 급히 화장을 고쳐 받는
신부도 있었다.
“방법이 없겠어?”
“부모님을…… 저승식당에 모실 수는 없어요.”
“그건 알지. 그래도…… 뭔가 방법이 없을까?”
최호철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 었다.
“너무 안쓰럽잖아.”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좀 생각을 해 볼게 요.”
“그래. 고맙다.”
입맛을 다신 최호철이 가게 안 으로 들어가자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어떻게 할 거야? 저승식당에 모실 수는 없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말했다.
“모시는 건 안 되지만……
“뭔가 생각이 있구나.”
“두 분이 내 음식을 어떻게 맛 있게 드셨는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야?”
“일단 나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하니... 이따가 이야기해 줄
게.”
말을 하던 강진은 푸드 트럭을 보았다.
“차는 좀 어때?”
“괜찮은 것 같은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운전할 때만 해 도 이상한 건 없었고, 하루 만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었 다.
애초에 밖으로 나온 진짜 이유 는 황민성에게 전화를 하려고 한 것이니 차는 슬쩍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시 가게로 들어온 강진은 슬 며시 여직원들 옆에 앉으며 말했 다.
“여러분들은 입고 싶은 드레스
있어요?”
“드레스요?”
“결혼식 할 때 입는 웨딩드레스 요.”
“갑자기 드레스는 왜요?”
“민성 형이 형수님 임신 기념으 로 드레스를 선물해서 웨딩 사진 을 찍고 싶은 모양이에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미소를 지었다.
“어쩜…… 민성 씨 너무 로맨틱
하다.”
“내 친구 중에도 배부르고 난 후에 웨딩 사진을 다시 찍은 애 들이 있었는데.”
“너무 좋겠어요.”
세 여자가 부럽다는 듯 말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민성 형이 남자 눈에는 예쁜 드레스를 못 고를 것 같다면서 여러분들이 보고 골라 달라고 하 셨어요.”
“저희가요?’’
“이따 드레스 책자 보낸다고 했 으니 여러분들이 그거 보고 한번 골라 보세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저희야 좋죠.”
“그러게. 재밌겠다.”
직원들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배용수가 슬쩍 뒤로 몸을 빼며 혀를 쭈욱 내밀더니 손가락으로 혀 위에 선을 긋는 시늉을 했다.
거짓말을 자주 하니 혀에서 농 사를 짓게 될 거라는 제스처였 다. 그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진에게는 그것 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 상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이승보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 저승이니, 저승에서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서라도 혓바닥에 농사짓는 것만은 피할 생각이었다.
혓바닥에 쟁기질을 해서 농작물 을 심고, 그 농작물이 뿌리를 내 리면…… 혓바닥이 무지 아플 테 니 말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탁자에 놓인 음식들을 보았다.
“어떻게, 음식 좀 더 드릴까 요?”
“아뇨. 괜찮아요. 많이 먹었어 요.”
“그리고 음식은 저승식당 영업 시간에 먹어야 제대로죠.”
두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이혜미를 보았다.
“부모님이 제가 해 준 음식 마 음에 들어 하시던가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맛있게 드셨어요. 저희 아빠는 강진 씨가 만들어준 반찬 으로 맥주도 드셨어요.”
“기분이 좋으셨나 보네요.”
“그런 것 같았어요. 환한 얼굴 로 정말 맛있게 드셨어요.”
“다행이네요. 아주 다행이야.”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 었다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호 의를 가졌을 테니 다행이라는 의 미였다.
하지만 이혜미는 자신의 부모님 이 음식을 맛있게 먹어 다행이라 는 걸로 받아들였다.
그에 이혜미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강선영을 보았다.
“선영 씨 부모님은 음식 맛있게 드셨어요?”
“강진 씨 음식 솜씨인데 당연하 죠. 저희 부모님도 맛있게 음식 드셨어요.”
“다행이네요.”
이건 진심이었다. 강선영의 부 모님이 드신 음식도, 강선영이 기억하는 ‘부모님과 자신이 좋아 하는 음식’이었으니 말이다.
그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딸과 함께 식사를 했던, 평범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순간을 온전히 떠올렸을 것이었다.
강진과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가게 문이 흔들렸다.
띠링! 띠링!
닫힌 문이 흔들리며 풍경 소리 가 들리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 나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앞에 는 젊은 아가씨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서 있었다.
“강남 웨딩 플라워에서 왔습니 다.”
아가씨가 예의 있게 말을 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강진이 급히 가게 문을 닫았다. 자세한 사정 을 모르는 웨딩 직원이 결혼식에 대해 언급할 수도 있고, 그 이야 기를 들으면 이혜미가 의심할 수 도 있으니 말이다.
“민성 형이 보내셨나요?”
“네.”
말을 하며 아가씨가 가게 문을 보았다. 안에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작게 속삭였다.
“이거 서프라이즈라서요.”
“아!”
아가씨는 가게 쪽을 보며 강진 처럼 작게 속삭였다.
“혹시 신부 되실 분이 안에 계 시나요?”
“네.”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런 웨딩드레스는 신 부가 직접 입어보고 수선할 곳
있는지 보는 것이 좋은데요. 그 러지 마시고 신부님 모시고 저희 매장에 들러 주세요.”
“그게 좀 거동이 불편해서요.”
“거동? 아!”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거동이 힘든 분과 결혼을 하려 고 하다니…… 대단하시구나.’
귀신이라 나서기 힘들다는 걸 말할 수 없어 둘러댄 것인데, 몸 이 불편한 분과 결혼을 하려 한
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럼 제가 안에서 설명이라도 좀 해 드릴까요?”
말을 하며 아가씨가 웨딩 사진 이 있는 책자를 꺼냈다.
“완전히 비밀로 하고 싶어서 요.”
“그렇군요.”
아가씨는 책자를 내밀었다.
“신부님께서 좋겠어요. 이렇게 세심하고 배려심 많은 신랑이 있
어서요.”
“고맙습니다. 드레스는 저희가 선택하면 오늘 받을 수 있나요?”
“그에 대한 건 황민성 사장님께 말씀 들었는데, 오늘 신랑님께서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사이즈를 말씀해 주시면 따로 사람 보내서 가져가신다고 했습니다.”
“민성 형이요?”
“네.”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민성 형이 가져가지?’
자신이 받아서 내일 들고 가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 던 강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 다.
황민성의 생각이야 이따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되니 말이다.
“그리고 신랑님의 턱시도 책자 도 있습니다. 이거 보시고 마음 에 드시는 턱시도를 정하시 면……
아가씨는 강진을 위아래로 훑어
보고는 말을 했다.
“사이즈는…… 음……
“아! 전 신랑이 아닙니다.”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신랑이 아니세요?”
“신랑 동생입니다.”
“아…… 그럼 신랑분은요?”
“형도…… 거동이 좀 불편해서 요.”
“아…… 어쩜
신랑 신부 둘 다 몸이 불편하다 는 것에 아가씨가 안쓰러운 듯 한숨을 수!자, 강진이 말했다.
“신랑은……
강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 을 이었다.
“살짝 키가 크고 몸에 근육이 좀 있습니다.”
최호철의 체형을 설명하던 강진 은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을 가 리켰다.
“저런 몸하고 비슷해요.”
강진이 가리키는 남자를 본 아 가씨가 잠시 그를 주시하더니 고 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 도 사이즈 측정이 가능하세요?”
“실측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약간 의 오차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 도 오래 이 일을 하다 보니 사이 즈 대충 나와요.”
“알겠습니다.”
사이즈를 메모한 아가씨는 명함
을 꺼내 강진에게 주었다.
“신부님 사이즈 이쪽으로 알려 주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책자 에 노란 스티커 붙여 놓은 건 요 즘 신부님들이 좋아하는 스타일 입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가 가게를 떠나자, 강진 이 책자를 들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책자 왔어요.”
강진이 책자를 식탁에 펼쳐 두
자, 직원들이 내용을 펼쳤다. 책 자에는 화사한 웨딩드레스를 입 은 모델 사진이 있었다.
“와…… 예쁘다.”
여자 직원들이 웨딩드레스 책자 를 보고 웃는 것을 보던 강진이 최호철을 보았다.
“우리는 이거 보죠.”
강진이 턱시도 사진이 담긴 책 자를 들어 보이자, 이혜미가 그 것을 보았다.
“그건 뭐예요?”
“이건 남자 턱시도요.”
“아! 저희도 그거 볼래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생각을 해 보니…… 최호철이 입 을 것이기는 하지만, 굳이 최호 철이 볼 필요는 없었다.
최호철이 마음에 드는 옷은 그 냥 그의 취향일 뿐이다. 결혼식 의 주인공은 신부이니 신부의 눈 에 차야 좋은 옷이었다.
“그럼 혜미 씨가 봐 보세요. 남 자 옷이라고 남자가 고르라는 법
은 없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혜미 씨 결혼식 날에 신랑이 입었으면 하는 옷 한번 골라 보 세요.”
배용수의 말에 속으로 철렁한 강진이 발끝으로 그를 툭 쳤다. 그에 배용수가 아차 싶어서는 급 히 말했다.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에……
배용수가 급히 말을 잇는 것에
이혜미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 그 를 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귀신 한테 결혼식이란 말을 한 거에 미안해서 저러는 것이라 여긴 것 이다.
이혜미는 턱시도 책자를 보다가 문득 최호철을 보았다. 그러고 다시 책자를 보더니 또 최호철을 보는 것에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 렸다.
‘형이 입으면 어떤 모습일까 생 각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