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5 화
소방관 귀신을 보던 강진은 아 이스박스에 담겨 있는 밥을 꺼냈 다.
“여기 오셔서 식사라도 좀 하세 요.”
“여기도 밥은 있는데……
소방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귀신에게는 제 손맛이 최고의
조미료거든요. 그래서 종석이 먹 이려고 밥을 챙겨 왔습니다.”
강진은 전자레인지에 밥을 넣고 는 전원을 켰다. 밥 데워질 동안 강진은 음식들을 덜어 놓으며 말 했다.
“김치찌개 끓일 건데 이따가 같 이 드실래요?”
“지금도 맛있어 보입니다.”
말을 하며 소방관 귀신이 자리 에 앉자 강진이 김치찌개를 끓일 식재를 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갔
다.
전에 와 본 적이 있기에 주방 구조는 알고 있었던 터라 곧장 찌개를 끓일 준비를 하던 강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은 주방에 아무도 없네.”
저번에 왔을 때는 점심 준비해 주러 온 이모님이 계셨는데 오늘 은 없었다.
비어 있는 주방을 둘러보던 강 진은 뚜껑이 닫혀 있는 냄비를 열어 보았다. 냄비에는 콩나물국
이 담겨 있었다.
“일찍 오셔서 음식을 하고 가신 건가?”
“이모님이 오늘 일이 있다고 아 침에 와서 음식들 만들어 놓고 갔습니다.”
중얼거린 말을 들었는지 소방관 귀신이 답을 해 주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는 이강진입니다.”
“윤태진입니다.
“그런데 수호령이세요?”
“후배 놈이 못 미더워서인지 그 녀석에게 붙어 있게 됐군요.”
“후배요?”
“전에 오셨을 때 능글맞게 웃으 며 말을 하던 근육 돼지 한 명 있잖습니까.”
윤태진의 말에 강진이 그때를 떠올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 좋으신 분?”
“맞습니다.”
말을 한 윤태진이 웃으며 고개 를 저었다.
“수호령이 될 거면 부모님이나 여자친구한테 붙지…… 시커먼 근육 돼지한테 붙다니.”
참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젓는 윤태진의 모습에 강진이 그 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끼는 후배여서 그런 모양이 네요.”
“아끼기는요. 그런 바보를 누가 아끼겠어요.”
“ 바보요?”
“불만 보면 환장해서 뛰어들거 든요. 아주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어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젓 는 윤태진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 다.
‘후배가 걱정이 돼서 남으신 모 양이네.’
“불을 끄려고 열심히 하시는 모 양이죠.”
“이 바닥에 열심히 안 하는 사
람은…… 저기 윗대가리들뿐입니 다.”
윤태진이 손으로 위를 가리키는 시늉을 하자 강진이 물었다.
“윗대가리요?”
강진의 말에 피식 웃은 윤태준 은 천장을 보며 말을 했다.
“이상하게 현장에 있을 때는 열 심히 하던 분들이 위로 가서 배 에 살 붙기 시작하면…… 현장 생각보다는 자리에 더 연연하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 필요 없는
장비들이나 어디서 만들어서 보 내고.”
“그래요?”
강진이 냄비에 고기를 넣고 가 스레인지 불을 켜며 묻자, 윤태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십몇 억 투자해서 만든 소방 로봇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이 들어가기 힘든 곳에 로봇을 들여보내서 생존자가 있는지 확 인하려는 거였죠.”
“취지는 좋은데요.”
“그렇죠. 사실 불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확인하는 것은 정말 힘 들거든요. 게다가 사람이 들어가 기 힘든 곳은 더더욱 확인이 어 려우니…… 좋은 취지는 맞습니 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나 보네 요?”
“불난 곳에서 작동하라고 만든 건데 이게 불이 난 곳에서는 작 동을 안 하더군요.”
“불난 곳에 들여보내는 장비인 데 불난 곳에서는 작동을 안 해
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윤태진 이 씁쓸하게 웃었다.
“불에 안 타게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현장이라는 곳이 연구실 에서 만든 환경과 같을 수 없죠. 그래서 작동을 안 하고…… 결국 은 그거 안에서 다 타버렸죠.”
“아…… 돈 날렸네요.”
“돈 날린 거죠.”
말을 하던 윤태진이 입맛을 다 셨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현장에 나와 있던 윗대가리가 저거 꺼내 와야 한다면서 대원을 들여보내 라고 했던 겁니다.”
“불난 곳에요?”
“그러니까요. 그때 우리 대장님 이 욕하면서 나는 못 들여보내니 필요하면 그쪽이 직접 가서 꺼내 오라고 방화복을 집어던졌던 것 이 생각나네.”
“멋진 분이네요.”
강진의 말에 윤태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었다.
“멋진 분이죠. 나도…… 그런 대장이 되고 싶었는데.”
윤태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충분히 멋진 분이세요.”
“그런가요?”
그냥 하는 말이라 생각을 한 윤 태진이 웃으며 묻자, 강진이 말 했다.
“정말 멋진 분이세요.”
말을 하는 강진의 눈빛을 보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안 윤태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 다.
“진심이시네요?”
“입고 계신 방화복…… 누군가 를 구하기 위해서 입으신 거잖아 요. 그리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 해…… 죽으신 거고요.”
강진의 말에 윤태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미 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성한 곳이 없는 방화복과 신발, 검게 그을린 손……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불 과 싸우다가 죽었을 것이다.
“남을 위해 이렇게 되셨으니 정 말 멋지고 훌륭하신 분입니다.”
강진의 말에 윤태진이 그를 보 다 고개를 저었다.
“바보인 거죠.”
“바보라니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바보예요.”
윤태진은 다시 자신의 몸을 보 다가 말을 했다.
“제가 후배들한테 가장 강조하 는 것이, 사람 구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내 몸을 먼저 챙기라는 거였는데…… 제가 그걸 못 지켰 으니 바보입니다.”
“불을 뚫고 사람을 구하는 직업 을 가지고 계신데…… 똑똑하면 안 하셨겠죠.”
“하! 그 말도 맞네요.”
똑똑했다면 다른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직업 말 고 다른 직업을 말이다.
윤태진은 옳다는 듯 고개를 끄 덕이다가 김치찌개를 보았다.
“맛있어 보이네요.”
“아주 맛이 좋을 겁니다.”
강진이 웃으며 물을 붓고는 윤 태진을 보았다.
“여기 지내시는 건 괜찮으세 요?”
“괜찮고 말고 할 것이 있겠습니 까. 그냥 후배 놈 출동하면 따라 가서 현장 보고, 퇴근하면 후배 놈 따라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거죠.”
윤태진과 대화를 나누며 강진이 김치찌개를 끓일 때, 사람들이 주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
“김치찌개인가?”
“이모님이 오늘 콩나물국 끓였 다고 했는데?”
“아! 오늘 전에 음식 봉사를 하 러 오신 분이 오신다고 했는데 그분이…… 아! 안녕하세요.”
들어오던 직원들은 주방에 강진 이 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숙 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에 음식 봉사하 러 왔던 이강진입니다.”
자신의 말을 응용해 인사하는 강진의 모습에 직원이 웃으며 다 가왔다. 그는 전에 본 그 덩치 좋은 남자였고, 윤태진이 붙어 있는 수호 대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소방관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강진이 웃으며 김치찌개를 보았다.
“김치찌개 되려면 조금 기다리 셔야 하는데.”
“그래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 죠?”
“한 십 분 정도요.”
“아…… 그럼 저희는 김치찌개 는 나중에 먹어야겠네요.”
“좀 기다리시면 되는데?”
“저희는 시간 될 때 먹어 둬야 하는 직업이라서요. 끼니 때 맞 춰 밥 먹으려고 했다가는 굶고 출동해야 합니다.”
남자가 웃으며 말을 하고는 배 식구 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정의섭입니다.”
정의섭의 말에 윤태진이 웃으며 말을 했다.
“제 못난 후배입니다.”
윤태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정의섭을 보았다. 윤태진이 못났 다고는 하지만 생긴 것이나 체격 이나 천상 소방관이라고 할 정도 로 다부진 모습이었다.
“그럼 제가 반찬들 가져온 것 있거든요? 저기 식탁에 있으니 덜어서 드세요. 아! 여기 이모님 이 콩나물국 끓여 놓고 가셨습니 다.”
강진의 말에 윤태진과 들어온 직원들이 식판을 챙기더니 알아 서 착착 음식을 덜고는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윤태진 을 보았다.
“식사하시는 것이 상당히 힘든 일인가 보네요.”
강진의 말에 윤태진이 웃으며 말을 했다.
“불이나 다치는 분들이 끼니 때 피해서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먹다가도 출동 신호 울리 면 바로 뛰어나갑니다.”
윤태진이 밥을 먹고 있는 소방
관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보세요. 먹을 때는 후다닥 먹 잖습니까.”
윤태진의 말에 강진이 소방관들 을 보았다. 소방관들은 밥을 콩 나물국에 말아서는 후루룩 마시 듯 먹고 있었다.
“언제 나갈지 알 수가 없으니 식사는 최대한 빠르게 하는 편입 니다.”
“직장인들은 밥 먹는 시간이 낙 인데…… 그 낙을 못 즐기는군
요.”
“그래도 퇴근하고 나면 나름 잘 살고 있습니다. 후! 물론 술은 다음날 생각해서 많이는 먹지 못 하지만요.”
“술도 자제를 하세요?”
“저희는 몸이 최고의 안전장치 이니…… 과음으로 몸이 상하게 두지는 않죠.”
일리가 있는 말이라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과음을 한 다음 날 사고가 터졌을 때, 출동했다
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 다.
윤태진과 작게 이런저런 이야기 를 나누던 강진은 어느새 식사를 다 한 소방관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진짜 빨리 드시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 벌써 먹고 일어나는 소방관들 을 볼 때, 윤태진이 말을 했다.
“오늘은 운이 좋네요.”
강진이 보자 윤태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밥 먹을 때 출동이 안 터졌으 니까요.”
“자주 터지나 보네요.”
“사람들이 소방관은 불만 끄는 줄 알지만, 국민의 안전에 관련 된 일에는 모두 동원됩니다. 그 러니 화재가 아니더라도 출동할 일이 많습니다.”
말을 하던 윤태진이 피식 웃었 다.
“집 열쇠가 없다고 집 문 따 달
라는 전화도 오거든요.”
“그런 전화를 왜 소방서에?”
윤태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 다.
“그런 전화뿐만 아니라 별의별 전화가 다 옵니다. 핸드폰이 하 수구에 떨어졌다고 꺼내달라는 전화도 오고……
“정말 별의별…… 전화가 다 오 는군요.”
“불 껐는데 집이 물바다라고 항 의하는 집들도 있는걸요.”
“물을 안 붓고 어떻게 불을 꺼 요?”
“그건 그분들도 알죠. 다만…… 조금 조심히 끄면 안 되는 거냐 는 거겠죠.”
말을 하던 윤태진이 미소를 지 었다.
“하지만…… 고맙다고 하는 분 들이 더 많아서 이 직업이 아직 은 할 만한 것 같습니다.”
“이상한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좋은 분들이 아직은 더 많죠.”
“맞습니다.”
윤태진은 강진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전에 말벌집 제거하러 갔을 때……
“말벌집 제거도 하세요?”
그런 것도 하나 싶을 때, 윤태 진이 고개를 저었다.
“말벌집 제거는 저희들이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일반인이 하다가 쏘이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말벌집이 있다고 하면 저
희가 출동을 해서 제거를 합니 다.”
“아…… 그렇군요.”
“어쨌든 말벌집 제거하고 철수 하려는데 신고를 했던 분이 없더 라고요. 후배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고 투덜거리는 데…… 후! 차로 가는데 그 사람 이 막 뛰어오더라고요.”
윤태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양손에 콜라와 사이다를 두 개
씩 들고 와서는 이거 좀 드시라 고 주더군요. 저희가 말벌집을 거의 다 제거한 듯해서 집에서 음료를 가지고 나오신 거였습니 다.”
“아…… 기분 좋으셨겠네요.”
“저희도 음료수야 사 먹을 수 있지만 생각해서 주시는 마음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죠.”
윤태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여기저기 불에 타고 숯검 정이 잔뜩 묻은 얼굴을 한 윤태 진…….
‘남을 위해 불속에 뛰어드시는 부.. ’
잠시 윤태진을 보던 강진이 물 었다.
“다른 소방관 귀신분들도 있나 요?”
기회가 된다면 이런 분들을 모 셔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강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