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9화
막걸리를 마신 강진이 막걸리 그릇을 내려놓고는 국수 그릇을 들었다.
“그럼 이제 국수 좀 먹겠습니 다.”
국수 먹으러 왔다가 막걸리만 연달아 마셨던 터라 안주를 먹어 야 할 타이밍이었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국수를 집어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그 역시 술만 마셨을 뿐 안주를 안 먹어서 속이 좀 불편한 것이 다.
신수호가 국수를 먹기 시작하자 강진도 국수를 크게 집어서는 입 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따뜻한 국수를 크게 먹은 강진 은 자신이 버무려 놓은 김치를 집어서는 고명으로 올려진 고기 를 감싸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아삭하게 씹히는 생김치의 식감 과 함께 고소하고 달콤한 돼지기 름이 입에 퍼지자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도 김치로 국수를 감싸듯 이 집어서는 입에 넣고 있었다.
“용수야, 국수 맛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수가 잘 삶아졌다.”
“고기가 잘 삶아졌어.”
“많이 먹어라.”
“너도 많이 먹어라.”
둘의 모습을 보던 신수호가 강 진에게 작게 말했다.
“배용수 씨와 아주 친하게 지내 는군요.”
“제 마누라니까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저도 군대에 있을 때 저를 마
누라라고 부르던 동기가 있었 죠.”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신수호 씨를 마누라라고 부르 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떤 간 큰 놈이 신수호에게 마 누라라고 했는지 강진은 감이 오 지 않았다.
이렇게 차갑기만 한 신수호를 마누라라고 부르다니 말이다. 물 론 강진의 생각을 배용수가 들었
다면 ‘그 이상한 놈이 바로 너 야.’ 했을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 녀석이 있었습니다.”
국수를 슬쩍 본 신수호는 다시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제 첫 고객이 그 녀석이었습니 다.”
“첫 고객요?”
신수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에서의 첫 고객이 그 녀석이 었죠.”
“아……
잠시 하늘을 보던 신수호는 다 시 강진을 보았다.
“잘 해 주십시오. 나중에 후회 하지 않도록.”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웃으며 옆에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 다.
잠시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신 수호를 보았다.
“신수호 씨도 친하게 지내던 귀
신이 승천한 경우가 많지요?”
“많습니다.”
있음을 넘어 많다는 말에 강진 이 입맛을 다셨다.
“어떠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그를 보다가 말을 했다.
“소희 아가씨께서 사람이나 귀 신에게 정을 주지 않는 이유 아 시지요?”
“네. 알고 있습니다.”
강진의 대답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가씨만큼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는 이를 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 다.”
강진이 보자 신수호가 말을 이 었다.
“저승을 오고 갈 수 있다 보니 승천한 분들을 찾아가서 만날 수 는 있지만…… 이승에서 같이 있 을 수 있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 다.”
“그렇겠죠.”
같이 살던 사람이 가까운 곳으 로 이사를 가도 서운하고 그런 감이 있으니 말이다.
강진이 맞장구치자 신수호가 고 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가게 일을 도와주던 누나였습니다.”
“누나요?”
“강진 씨에게 배용수 씨나 이혜 미 씨가 있는 것처럼, 저희 어머 니한테도 일을 도와주는 귀신들
이 있었습니다. 저와 친하게 지 내던 누나였는데…… 어느 날 승 천을 했습니다.”
말을 하며 신수호가 고개를 저 었다.
“그때 처음 귀신이 승천하는 것 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귀신들이 저승에 가서 재판을 받는다는 것 을 알았죠. 그래서 누나와 같은 분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법 공부 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신 거군 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보았다.
“나는 강진 씨의 지금 이 모습 이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변할 것 같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한숨을 쉬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친한 귀신이 승천을 하면 마음 이 많이 흔들립니다.”
그러고는 신수호가 강진을 보았 다.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처럼 변하지 마십시오.’
속으로 뒷말을 중얼거린 신수호 는 재차 고개를 젓고는 고기 국 수를 후루룩! 먹으며 말을 했다.
“맛이 좋습니다.”
“용수가 음식을 잘해요.”
“압니다. 어머니 계실 때도 용 수 씨가 가끔 음식을 했으니까 요.”
“아! 그렇죠.”
김복래가 살아 있을 때 일을 도 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배용수를 잠시 보 다가 신수호에게 말했다.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국수를 먹으며 말했다.
“배용수 씨 변호 문제라면 제가 맡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 오.”
신수호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말하자 강진이 반색을 하
며 그를 보았다.
“정말인가요?”
“어머니 가게에서 일하시는 직 원인데 모른 척하지는 않습니 다.”
신수호는 배용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배용수 씨는 심성이 좋 은 사람이니 변호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재판을 잘 넘어갈 겁니 다.”
“고맙습니다.”
신수호가 국수를 후루룩 먹는 것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가련한 중생아, 내가 너를 지옥 에서 건져내었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웃으며 국수를 크게 집어 입에 넣었다.
후루룩!
강진은 뒤이어 김치를 집어 입 에 넣었다.
아삭! 아삭!
* * *
늦은 저녁, 강진과 신수 형제는 김치가 담긴 통들을 창고에 옮기 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김장 김치들을 창고에 넣은 강 진과 신수 형제는 몸에 나는 땀 을 수건으로 닦았다.
“후우! 올해도 수고들 하셨습니
다.”
강진의 말에 신수 형제가 얼굴 에 난 땀을 닦으며 말했다.
“강진 씨도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눈 강진은 땀을 닦으며 창고를 나왔다. 창 고 앞에서는 돼랑이 가족들이 나 무에 몸을 비비며 놀고 있었다.
부욱! 부욱!
나무에 등을 비빌 때마다 마치
사포를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나 는 것에 강진이 돼랑이에게 다가 갔다.
“안 아프냐? 껍질 벗겨지겠다.”
푸르륵!
시원하다는 듯 소리를 낸 돼랑 이가 다시 등을 나무껍질에 문대 자 강진이 그것을 보다가 문득 물었다.
“너네 벼룩 있고 하는 건 아니 지?”
강진의 말에 나무에 몸을 비비
던 돼랑이가 그를 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나무에서 몸을 떼어냈다.
“뭐야, 정말 벼룩 있는 거야?”
강진이 자신의 손을 바지에 문 지르며 말을 하자, 돼랑이가 거 칠게 숨을 토했다.
푸루룩!
뭔가 변명을 하는 것처럼 숨을 토하는 돼랑이의 모습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그 등을 쓰다듬었 다.
“산에 사는 놈이 어떻게 벼룩이 없을 수 있겠어. 그냥 농담이야.”
웃으며 돼랑이를 쓰다듬은 강진 이 신수 형제를 보았다.
“자, 이제 저승식당 오픈하러들 가시죠.”
말을 하며 강진이 돼랑이 등에 올라타자, 신수조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돼랑이를 왜 타요?”
“돼랑이 안 타 보셨어요?”
“네.”
신수조의 말에 강진이 돼랑이 등을 토닥이며 말을 했다.
“돼랑이 타고 달리면 재밌어요. 신수조 씨도 돼순이나 애들 타 보세요.”
“애들한테요?”
“재밌어요.”
강진은 나머지 형제들을 보며 말했다.
“세 분도 타 보세요.”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끼들을 보자, 새끼 들이 하나둘씩 신수 형제 곁에 가서 섰다.
이때까지야 강진을 태운 건 돼 랑이뿐이지만, 새끼들도 아빠가 강진을 등에 태우고 달리는 것을 봐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었 다.
자신들 앞에 자리를 잡고 몸을 숙이는 새끼들의 모습에 신수 형 제가 당황해할 때, 신수조가 새 끼를 보다가 말했다.
“안 떨어져요?”
“여기 올 때마다 탔지만 한 번 도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걱정 하지 마시고 타 보세요.”
강진의 말에 신수조가 슬며시 새끼 등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안정적인데요?”
신수조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목의 털을 잡으세요. 그리고 좀 거칠게 움직여도 걱정하지 마 세요. 달리면서 균형 잡아 줘서
떨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신수조가 목의 털 을 살짝 잡자, 강진이 나머지 형 제들을 보았다. 그에 신수귀와 신수용이 슬며시 새끼들의 등에 타자 강진이 신수호를 보았다.
“저는 차를 끌고 가야 하니 차 타고 가겠습니다.”
“차야 내일 아침에 가지러 오면 됩니다. 타 보세요.”
“그래, 오빠. 타.”
신수조까지도 타 보라는 듯 자
신이 탄 멧돼지 엉덩이를 토닥이 며 권하자, 신수호가 멧돼지를 보다가 입맛을 다시고는 그 위에 앉았다.
형제 모두 멧돼지 등에 타자 강 진이 최호철과 식당 직원들을 보 았다.
“여러분들도 타세요.”
“저희도요?”
“전에 용수도 타 보고는 재밌다 고 했어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멧돼지를
보다가 한 마리 위에 올라타고는 손을 내밀어 이혜미를 잡고는 뒤 에 태웠다.
멧돼지 등에 탄 이혜미는 최호 철의 허리를 양손으로 껴안았다.
그 모습에 강선영과 임정숙도 멧돼지 한 마리 등에 같이 올라 탔다. 둘씩 타기는 했어도 귀신 은 무게가 없으니 멧돼지들은 전 혀 무거운 티를 내지 않았다.
다들 타자 강진이 돼랑이 목털 을 잡고는 말했다.
“그럼 꼭 잡으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돼랑이 등을 두들겼다.
“애들한테 사람 안 떨어지게 조 심하라고 좀 해 줄래?”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슬쩍 뒤 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사람과 귀신을 태운 새끼들을 향해 작게 울음을 토했다.
아마도 등에 태운 사람들 떨어 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는 모양 이었다. 그에 새끼들이 작게 울
음으로 답하자, 돼랑이가 고개를 돌려 강진을 보았다.
이제 가도 되냐는 의미였다. 그 에 강진이 목털을 움켜쥐었다.
“ 가자.”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허공을 향해 크게 울음을 토했다.
꾸이이 익!
큰 울음과 함께 돼랑이가 앞으 로 쏘아져 나갔다.
파앗!
그 모습에 돼순이와 새끼들도 그 뒤를 따라 빠르게 앞으로 뛰 어나갔다.
“으아악!”
“꺄아악! 너무 재밌다!”
“우와아악!”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강진이 힐끗 뒤를 보았다. 신수 형제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멧돼지 등에 최대한 붙도록 몸을 바짝 숙인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만 신수조는 재밌다는 듯 한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비명과 같 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무 섭긴 해도 재미는 있는 모양이었 다.
그리고…… 사람뿐만 아니라 귀 신들도 비명을 지르며 연신 멧돼 지들의 털을 움켜쥐고 있었다. 귀신이라 다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 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재밌죠!”
강진의 외침에 신수호가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게 휘청인 신수호는 급히 멧돼 지 목을 더욱 끌어안았다. 그 모 습에 강진이 웃으며 앞을 보았 다.
신수호가 자신을 노려본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두두두! 두두두!
우렁차게 들리는 멧돼지 발소리 를 들으며 강진이 소리쳤다.
“돼랑아 달려라!”
꾸이 익!
강진의 외침에 돼랑이가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달리자, 그 뒤를 따르던 새끼들이 더욱 속도를 높 였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비명 이 더욱 크게 들려왔다.
“으아아악!”
“으악!”
비숫한 시각, 배용수는 할머니 들과 함께 부침개를 만들고 있었 다.
귀신에게는 저승식당 주인인 강 진의 손맛이 최고의 조미료지만, 현신을 하는 저승식당 시간에는 배용수가 만들어도 맛있는 음식 이 나온다.
물론 강진이 손을 대면 조금은 더 맛있지만, 지금 자리에 없다 보니 배용수가 일단 음식을 만드 는 것이다.
치이 익 ! 치이익 !
밀가루 반죽이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지은 배용수 는 그 위에 오징어와 조갯살들을
뿌리고는 파를 올렸다. 오늘 저 승식당 메뉴는 파전이었다.
“꺄아아악!”
“으아악!”
부침개를 뒤집개로 뒤집으려던 배용수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