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62화 (760/1,050)

762화

“또 움직인다!”

이혜미의 외침에 강진은 급히 오혁의 손가락 쪽을 보았다. 희 미하지만 오혁의 오른손 검지가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있었다.

“누나!”

강진은 급히 이강혜를 부르고는 오혁의 손가락 끝을 가리켰다. 그에 오혁의 손가락을 확인한 이 강혜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털썩!

눈이 쌓인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은 이강혜는 오혁의 손가락에 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오혁은 여전히 손가락을 위아래 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 직 이것 하나뿐이라는 것처럼 말 이다.

“오빠!”

오혁의 손가락이 까닥거리는 것 에 이강혜가 급히 그의 얼굴을

보았다.

“오빠, 정신 들어?”

이강혜의 외침에도 오혁은 말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 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강혜는 오혁 의 손을 잡아당겨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그의 손가락을 자근자근 물기 시작했다.

“누나?”

갑자기 오혁의 손가락을 무는 모습에 강진이 놀라 말리려 하

자, 이강혜가 말을 했다.

“중국에서 뇌사한 남편 손가락 하고 발가락을 매일 이렇게 자근 자근 물어 주니 깨어났대.”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오혁의 나머지 손을 잡아서는 손톱으로 자근자근 눌러 주었다.

“병원에 모셔야 하지 않겠어 요?”

“아! 그래야지.”

이강혜가 휠체어를 밀려고 하 자, 강진이 대신 휠체어 손잡이

를 잡았다.

“제가 밀 테니 누나는 형 앞에 계속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혁의 앞에서 계속 말을 걸며 그의 손을 주물렀다.

“오빠, 정신이 드는 거지? 나 너무 좋아. 빨리 깨어나서 나 엄 청 기쁘게 해 줘야 해. 나 너무 좋아서 막 울게 해 줄 거지? 오 빠. 오빠. 오빠.”

이강혜는 오혁이 손가락을 움직

이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 려는 듯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런 이강혜를 보며 강진은 조 심히, 하지만 빠르게 휠체어를 밀었다.

세 사람이 공원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던 도원규는 뭔가 이상함 을 느낀 듯 그들에게 급히 다가 갔다.

“사장님?”

급히 다가온 도원규를 보며 이

강혜가 말을 했다.

“오빠가 손가락을 움직였어요.”

“실장님이?”

놀란 눈을 하는 도원규에게 이 강혜가 빠르게 말을 했다.

“병원으로 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도원규는 서둘러 차로 가서 문 을 열었다. 오혁을 태우고 다니 는 벤의 문이 스르륵 열리자 도 원규가 휠체어를 조심히 밀어 넣

고는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운전석으로 가자, 이 강혜가 차에 타며 강진을 보았 다.

“병원 가서 연락할게.”

“그래요. 누나.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고마워.”

인사를 한 이강혜가 자리에 앉 자 벤의 문이 자동으로 스르륵 닫혔고, 곧 차가 출발했다.

차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 던 강진은 허연욱을 불렀다.

“허연욱, 허연욱, 허연욱.”

강진의 부름에 허연욱이 모습을 드러냈다.

“혁이 형 손가락이 움직였어 요.”

설명 없이 곧장 말을 하는 강진 의 모습에 허연욱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좋은 증상입니다.”

“그런가요?”

“일단 뭐라도 반응을 보였다는 거니까요.”

“혹시 괜찮으시면…… 병원에 가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알아 봐 주시겠어요?”

강진의 부탁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L 그룹 일가라면…… 알겠습니 다.”

거대 기업 일가들은 평소에 다 니는 병원으로만 가기에 어디로

갔을지 짐작이 된 허연욱이 강진 을 보았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점심 되 기 전에 불러주십시오.”

“이런 부탁 드려서 죄송합니 다.”

“아닙니다. 저도 혁 씨가 어떻 게 회복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것도 의학의 일이니까요.”

웃으며 허연욱이 걸음을 옮기자 강진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직원 들을 데리고 가게로 걸음을 옮겼

다.

점심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강 진은 허연욱을 불렀다. 오혁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 것이다.

화아악!

모습을 드러낸 허연욱이 웃으며 자신을 보는 것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토했다.

“후우! 잘 된 건가요?”

“병원에서 뇌파 변화를 찾았습

니다.”

그 말-으2”

“이때까지 자고만 있던 뇌가 깨 어나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럼......"

강진이 보자 허연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좋은 증상입니다.”

“그럼?”

다시 한번 그럼이라는 말을 하 는 강진을 보며 허연욱이 말을

이었다.

“언제 깨어날지는 확신할 수 없 지만…… 머지않아 깨어날 것입 니다. 물론 깨어난다고 해도 오 랜 기간 몸을 움직이지 못했으니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해야 일상생 활이 가능하겠지만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깨어나시는 거군요.”

“하지만 아직 언제인지는 모릅 니다.”

“자그맣게 피운 불이 활활 타올 라 큰 모닥불이 되는 것처럼, 이 작은 징조가 큰 변화로 이어졌으 면 좋겠네요.”

강진은 미소를 짓다가 문득 허 연욱을 보았다.

“회장님도 와 계시던가요?”

“회장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다 모여 있더군요.”

말을 하던 허연욱이 웃었다.

“L그룹 일가가 다 모여서인지 병원 원장부터 이사장까지 모두

모이고 병원 교수라는 교수도 다 모이더군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 때문에 병원에 가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이렇게 환자가 호전되는 것 보면 좋습니다.”

허연욱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말을 했다.

“오늘 저녁에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잠시 생 각하더니 말했다.

“전에 김밥에 계란 입혀서 구운 것이 맛있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는 김밥전을 만들어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말을 하며 허연욱이 가게를 나 서자, 강진은 그를 배웅해 주고 는 점심 장사를 준비하기 시작했 다.

그날 저녁, 이강혜가 가게에 찾 아왔다. 그녀는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 했다는 말과 함께 얼 마 동안은 자신이 아침에 애들 밥을 못 챙겨 줄 것 같으니 대신 챙겨달라며 부탁한다는 말을 하 고 있었다.

“그럼 누나는?”

“내가 혁이 씨 옆에 있으면 뇌 파 반응이 강하게 나와. 그래서 당분간은 혁이 씨 옆에 있으려고 해.”

“그럼 회사도 쉬시겠네요?”

“우리 회사 경영진 유능해서 나 없어도 잘 돌아갈 거야.”

“그래도 사장이 있어야 중심이 잡히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부사장님 이 일을 참 잘하셔.”

“누나 없으면 막 회사 내 권력 다툼 같은 거 생기는 것 아니에 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피식 웃 었다.

“드라마를 너무 자주 봤다.”

“그런가요?”

“부사장님이나 나나 그냥 월급 사장이야. 부사장님이 욕심이 많 다고 해도 회사를 먹을 지분도 없고. 지분 없는 건 나도 마찬가 지지만.”

“그렇군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그럼 오빠한테 가야겠다. 오빠 심심할 거야.”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일어날 때, 주방에서 배용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반찬 가져가시라고 해!”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이강혜 를 보았다.

“누나, 반찬 좀 가져가요.”

“ 반찬?”

“병원에서 밥 먹기 힘들잖아

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병원 밥이 맛이 없다는 건 VIP 병실과는 상관이 없는 내용 이었다. 게다가 병원 밥이 정 먹 기 싫으면 근처 음식점에서 배달 시켜 먹어도 되고 말이다.

하지만 강진의 마음을 알기에

이강혜는 따로 시켜 먹어도 된다 는 말 대신 고맙다고 한 것이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반찬 통 에 음식을 담고 있는 배용수를 볼 수 있었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고 그저 김 치와 밑반찬이었다. 반찬 중엔 오이와 도라지를 같이 넣고 무친 오징어 초무침도 있었다.

“오징어 초무침 맛있겠다.”

“새콤해서 입맛을 돋게 해 주 지.”

“누나 입맛 없을까 싶어서 한 거야?”

“혹시나 해서.”

배용수의 배려에 씨익 웃은 강 진은 다 담은 반찬 통을 쇼핑백 에 담은 뒤 가지고 나왔다.

“누나, 여기요.”

“고마워.”

“형한테 말 많이 걸어 주세요.”

“그래. 알았어. 그리고 고마워.”

이강혜가 쇼핑백을 들어 보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을 했다.

“애들 사료는 걱정하지 마세 요.”

“걱정 안 해. 강진이가 알아서 애들 잘 챙겨 주겠지. 이만 가 볼게.”

이강혜가 손을 흔들고는 가게를 나가자, 그녀를 배웅해 주던 강 진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말 에 멈칫했다.

‘뇌파가 움직였다고 했지?’

뇌파가 움직였다는 허연욱의 말

을 떠올린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 다.

“누나.”

“응?”

“잠시만요.”

강진은 카운터에 있는 옥난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전에 제가 드린 옥난, 집에 있 죠?”

“그렇지.”

일전에 강진은 이강혜에게 옥난

하나를 선물해 준 적이 있었다.

오혁의 몸에 좋을지 안 좋을지 는 몰라도 정신을 맑게 해 주니 뇌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물한 것이었다. 치매인 조순례 에게도 확실히 효과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거 가져가서 형 옆에 두세 요.”

“고마워.”

“꼭 형 옆에 두세요. 꼭이에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옥난을 받았다.

“꼭 오빠 옆에 둘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꼭 옆에 두세요. 형한테 도움 이 될 거예요.”

“그래?”

“그럼요. 이게 정신을 아주 맑 게 해 주는 향을 내거든요.”

“그럼 꼭 오빠 옆에 두고 매일 맡게 해야겠다. 고마워.”

이강혜가 옥난을 챙겨 가게를 나가자 강진이 그녀를 배웅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형 누나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 고 있으니까 곧 깨어나실 거예 요.”

이강혜가 탄 차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은 문득 입맛을 다셨다.

“형하고는 다시 인연을 쌓아가 야 겠네.”

영혼인 상태로 겪은 일은 깨어

나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 니…… 오혁이 깨어나면 새로 인 사를 하고 친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강진은 친해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다.

강진이 걱정하는 것은…… 오혁 이 깨어났을 때의 상황이었다.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그의 어 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가슴이…… 하아.’

오혁이 깨어나서 느낄 슬픔이 얼마나 클까 생각을 하던 강진은

재차 입맛을 다셨다.

그 슬픔은 설명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강진 자신도 어 머니의 죽음을 겪었지만…… 그 저 슬프고 그립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오혁을 생각하던 강진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어쨌든 오혁이 깨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물론…… 언제 깨어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깨어나면 슬픈 현실을 받아들 여야겠지만, 그래도 간절히 기다 려온 사람이 있으니 어서 깨어나 요. 제가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 가루 잔뜩 올린 잔치국수 말아 드릴게요.”

작게 중얼거린 강진은 고개를 젓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 *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강진은 황

민성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혁 씨가 깨어날 거라……

황민성이 중얼거리는 것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노력해서 이제 결실이 열 리는 거죠.”

“살려고 하는 의지라는 것이 정 말 대단하구나.”

“마음만큼 대단한 것이 없으니 까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

민성은 목을 비틀었다.

우두둑!

“끄응!”

작게 신음을 토하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요즘 피곤하시죠?”

“조금 그런데…… 오늘은 다행 히 우리 마마님께서 12시 전에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서 푸욱 잘 수 있겠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재차 웃

으며 말했다.

“잘 해 주세요.”

“평생 잘 해 줄 거 지금 다 하 는 것 같아.”

“왜요. 행복이, 사랑이 나오면 더 잘 해 줘야죠.”

태명인 쌍둥이 아이들의 이름이 언급되자 황민성의 얼굴에 미소 가 어렸다.

“빨리 봤으면 좋겠다.”

“저도 빨리 보고 싶어요.”

주방에서 나오며 이야기에 끼어 든 배용수는 황민성에게 쇼핑백 을 내밀었다.

“주문하신 매운 해물찜입니다.”

“고마워.”

“아! 그리고 김밥전도 넣었어 요. 해물찜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있을 거예요.”

“그래. 고맙다.”

웃으며 쇼핑백을 받아든 황민성 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형 간다.”

“네. 조심히 가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쇼핑백을 들어 보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