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7화
“끄웅!”
목발을 짚고 정자에서 일어난 오혁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이강혜가 한 발 옆으로 가서는 그를 지켜보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오혁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내가 너무 느리지?”
“느리기는요.”
강진은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보았다.
“어디 급하게 가는 것도 아니 고, 가끔은 이렇게 천천히 주위 보면서 걷는 것도 힐링이죠.”
“후! 말 예쁘게 하네.”
“예쁘게는요. 바쁜 일도 없는데 굳이 빠르게 걸을 필요 없잖아 요. 늦게 가나, 빠르게 가나…… 집에 간다는 건 같으니까요.”
“그래. 집에 가는 건 같은 거 니…… 늦든 빠르든 가기만 하면
되지.”
오혁은 걸음을 옮기는 데에 집 중하며 말을 했다.
“엄마한테 전화 한번 해 봐.”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 았다.
“어머니에게요?”
“아들 일어났는데 왜 이리 안 오냐고 투정이라도 해야겠어.”
‘어머니?’
오혁의 말에 강진이 굳은 눈으
로 이강혜를 보았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떻게 전화를 하나 싶 어서였다.
그런 강진의 시선에 이강혜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핸드폰을 꺼 냈다.
‘어?’
그리고 번호를 누르는 것에 강 진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 다.
‘진짜 전화를 거는 건가? 어쩌 시려고?’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볼 때, 이강혜가 통화를 스피커 모드로 바꿨다.
띠리! 띠리!
통화 연결음이 나오는 것을 들 으며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어쩌려고요?’
강진의 시선에 이강혜는 말없이 핸드폰을 오혁의 옆으로 내밀었 다.
[여보세요.]
‘어?’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는…… 분명 오혁의 어머니 목소 리였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 다.
식당에 왔었던 할머니의 목소리 가 확실하자 강진이 놀란 눈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엄마, 왜 안 와.”
웃으며 말을 하는 오혁의 모습 에 강진은…… 가슴이 아팠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엄마를 기 다리는 건 다 똑같았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강진이 오혁을 안쓰럽게 볼 때,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도 가고 싶지. 그런데 엄 마 몸이 안 좋아서 여기 의사들 이 지금은 비행기를 탈 수 없대. 아들,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십 년이나 누워 있던 아들이 일어났는데 보고 싶지도 않아?”
[보고 싶지. 그래서 영상 통화 도 했잖아.]
“직접 보는 거하고 같아?”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빨리 몸 회복해서 갈게.]
“나 일어났는데 엄마하고 바로 보지도 못하네.”
오혁의 투덜거림에 할머니의 목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정말 미안해. 엄마 몸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까 곧 들어 갈게. 아니면 아들이 빨리 재활
해서 엄마 보러 와.]
“알았어. 엄마하고 국수 빨리 먹고 싶다.”
[엄마도 아들하고 빨리 국수 먹 고 싶어.]
“그럼 쉬어.”
[응. 아들도 쉬어.]
그렇게 통화를 끝내는 오혁의 모습에 강진이 의문 어린 눈으로 이강혜를 보다가 어떻게 된 일인 지 눈치챘다.
‘VR 기술이구나.’
VR 기술을 이용해 죽은 할머니 의 목소리와 영상으로 캐릭터를 만든 모양이었다.
그 프로그램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영상 통화도 한 것일 테고 말이다. 이영수와 친구들의 음성 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원리였 다.
강진이 이강혜를 볼 때,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수술은 잘 되신 거지?”
“그럼요.”
두 사람의 대화에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외국에 수술 받으러 가신 걸로 한 건가?’
외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갔다고 하면 오혁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몸 상태가 안 좋고 노령 인 분은 비행기를 타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리고 오혁 또한 몸이 안 좋아 비행기를 타기 어렵고 말이다.
공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 에 오혁이 타자, 이강혜가 강진 을 보았다.
“이따 전화할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하세요.”
이강혜까지 탄 차가 출발을 하 자, 강진이 손을 흔들었다.
“혁이 형은 아직 어머니 돌아가
신 것 모르나 보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말을 하기 쉽지 않지. 이해가 돼.”
강진의 말에 배용수도 동감이라 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데…… 언제까지 감 출 수도 없고. 알게 되면 형 충 격이 크겠다.”
“그래도…… 이제 몸 좀 많이 좋아지셨으니 말을 하시겠지.”
강진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걸 음을 옮겼다.
* * *
오혁은 목발의 도움 없이 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끄응!”
천천
신음을 토하는 오혁을 부축한 재활 치료사가 조심히 말을 했 다.
“조금만 더 걸어 볼게요.”
재활 치료사의 말에 오혁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발을 내 밀었다.
재활 치료사가 부축을 한다고 해도 그저 넘어질 때를 대비한 것이라, 지금 오혁은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걷고 있는 것이었 다.
신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기는 오혁에게 이강혜가 다가왔다.
“오빠, 나 회사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왜?”
“부사장님이 발열 우의 개량형 나왔다고 지금 확인 좀 해 달라 네.”
“그래. 다녀와. 사장님이 일을 열심히 해야지.”
“점심 혼자 먹을 수 있겠어? 아 니면 나하고 같이 회사 갈까?”
이강혜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모습 직원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그래. 알았어. 점심 맛있는 거 먹어.”
“알았어. 다녀 와.”
이강혜는 웃으며 오혁의 손을 한번 잡아 주고는 몸을 돌려 재 활 치료실을 나갔다.
그런 이강혜를 보며 웃어 주던 오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환자분, 다시 한 발……
재활 치료사의 말에 오혁이 한 손을 가볍게 들었다.
“오늘은 그만하시죠.”
“힘드셔도 조금 더 하셔야 하는 데……
“제가 볼일이 있어서 그렇습니 다.”
잠시 머뭇거리는 재활 치료사를 보며 오혁이 미소를 지었다.
“오후에 보강 훈련 하겠습니 다.”
오혁의 말에 재활 치료사가 고 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제 비서 좀 불러 주시겠습니 까?”
“알겠습니다.”
재활 치료사가 목발을 건네주자 오혁은 그것을 짚고 섰다. 그제 야 재활 치료사가 밖으로 나가 삼십 대 정도의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자신의 앞에 와서 고개를 숙이
는 남자를 보며 오혁이 손을 내 밀었다.
“핸드폰 주시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수행비서가 핸드폰을 주자 오혁 이 그것을 받아서는 전화를 걸었 다.
“삼촌, 고마워요.”
[고맙기는. 그런데 무슨 이벤트 를 해 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런 것이 있어요. 아! 그리고
강혜에게는 말하지 마시고요.”
[녀석 하고는……. 그래. 알았 어.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 빨리 나아서 회사 다시 들어와야지. 공적인 자리에서는 내가 깍듯하게 사장님, 사장님 해 주마.]
“저 복귀할 때 되면 삼촌도 앞 에 부 자 떼셔야죠.”
[이야! 말만 들어도 좋네. 빨리 복귀해야겠다.]
“그러고 싶어도 십 년을 잠만 잤으니 저도 몇 년은 놀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말고 빨리 복귀해. 그 래야 나 부 자 떼고 사장이라고 만 불리지.]
“삼촌 고맙습니다.”
[아니다. 그리고 나아서 좋고.]
통화를 마친 오혁은 핸드폰을 보았다. 방금 통화한 사람은 L전 자 부사장이었다.
피로 이어진 친척 관계는 아니
었지만, 아버지와 오래 일을 한 측근이라 오혁이 사적인 자리에 서는 삼촌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혁이 L전자를 맡았을 때, 옆에서 도와주라며 아버지가 보낸 사람이기도 했다.
잠시간 핸드폰을 보던 그는 수 행비서를 보며 말했다.
“시간 없으니 휠체어로 갑시 다.”
“알겠습니다.”
수행비서가 휠체어를 가지고 오
자, 오혁이 앉으며 말했다.
“한끼식당에 갑시다.”
“네.”
수행비서가 조심히 휠체어를 밀 기 시작하자 오혁은 굳은 얼굴로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있는 엄마 사진을 보 던 오혁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엄마……
북적거리는 점심시간이 거의 끝 나갈 무렵, 강진은 빈자리를 정 리하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도 맛있게 잘 먹 었습니다.”
“오늘도 팔아 주셔서 감사합니 다.”
웃으며 손님에게 돈을 받아 아 크릴 통에 넣은 강진이 식탁을 마저 정리했다.
띠링!
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 진은 고개를 돌렸다.
“어서…… 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오혁의 모 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식당에 밥 먹으러 오지, 뭐 하 러 오겠어.”
웃으며 답한 오혁이 천천히 의 자에 앉는 것에 강진이 문을 보 았다.
“누나는요?”
“나 혼자 왔어.”
“형 혼자요?”
“정확히는 비서가 모는 차를 타 고 나 혼자 들어온 거지.”
“비서님 식사는요?”
“나보다 맛있는 거 먹으라고 했 어.”
그러고는 오혁이 가게를 둘러보 다가 말을 했다.
“형 잔치국수 줘라.”
“국수요?”
“어묵 넣고…… 고춧가루하고 김 가루 좀 가져다줘.”
“근데 밀가루 괜찮겠어요?”
아직 몸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 았는데 국수를 먹어도 되는가 싶 은 것이다. 밀가루는 소화도 잘 안 되니 말이다.
“요즘 내가 먹는 거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잔치국수를 참 맛있게 하 셨는데…… 오늘 그게 먹고 싶
다.”
오혁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 리세요.”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오혁 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뉴 스를 보기 시작했다.
요즘 오혁은 재활 훈련을 하면 서 옛날 뉴스들을 보고 있었다.
몸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누워 있는 10년 동안 세상에 무슨 일
이 생겼는지 궁금한 것이다.
뉴스를 보고 있던 오혁의 앞에 국수 두 그릇이 놓였다.
“국수 나왔습니다.”
“오! 맛있어 보이네.”
오혁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 의 앞에 국수를 놓고는 자신의 앞에도 두었다.
“형 혼자 먹기 심심할 것 같아 서 제 것도 했습니다.”
“밥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지.”
오혁은 김 가루를 잔뜩 덜어서 는 국수에 올리고는 고줏가루도 한 숟가락 올리며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오리라며?”
“오리요?”
“도널드.”
“아……
“나 쓰러지기 전에 미국에서 그 양반 한 번 본 적 있는데…… 허!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미국이 참 특이한 나라기는 해.”
“직접 보기도 했어요?”
“그 사람도 사업가고, 우리도 사업하고…… 그러다 보니 미국 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지. 그 사 람이 대통령인 거 보고 가짜 뉴 스인 줄 알았다.”
웃으며 국수를 비벼 김 가루와 고춧가루를 섞이게 하는 오혁을 보고 강진이 물었다.
“근데 정말 괜찮겠어요?”
국수 먹어도 되냐는 강진의 물
음에 오혁이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젓가락으로 국수를 휘저은 오혁 이 크게 한 젓가락 뜨고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크게 먹은 오혁은 잠시 멈칫했다가 웃으며 강진을 보았 다.
“맛있죠?”
강진의 말에 오혁은 대답 대신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셨다. 그 러고는 피식 웃었다.
“강혜가 너 음식 진짜 잘한다고 칭찬을 그렇게 하더니…… 진짜 잘하는구나.”
“음식 장사 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다시 국수 를 한 번 떠먹고는 웃었다.
“엄마가 해 준 국수 맛이야. 너 무 맛있어.”
‘한국 어머니의 손맛은 역시 미 원인가?’
할머니가 잔치국수를 만들었을 때처럼 미원을 넣었으니 말이다.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오 혁이 국수를 크게 떠서 입에 넣 고는 국물을 마셨다.
“크윽! 좋다.”
“너무 급하게 드시지 마세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오혁은 돌연 손을 떨었다.
“형 괜찮아요?”
강진이 걱정스럽게 보자, 오혁 이 떨리는 국수 가락을 잠시 보
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
잠시 말을 멈춘 오혁을 보던 강 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잔치국수 국물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 고 있었다.
톡톡!
국수에 머리를 박을 것처럼 고 개를 푹 숙인 오혁이 작게 입을 열었다.
“돌아……가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