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73화 (771/1,050)

773화

기분 좋은 얼굴로 막걸리를 마 시는 정학봉을 보며 강진은 미소 를 지었다.

‘나도 아버지와 이런 시간을 가 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술을 따라 드릴 수 없었다. 자신의 아 버지도 자신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정학봉처럼 좋아했 을 것이었다.

‘아빠......"

아빠를 떠올리던 강진은 잠시 있다가 입맛을 다셨다.

‘한 번은…… 만나야겠네.’

친척들을 생각하지 않고 살려고 했다. 하지만…… 한 번은 만나 야 할 것 같았다.

강진은 보육원에 보내질 때 정 신이 없어서 부모님 사진을 한 장도 챙기지 못했다. 그리고 보 육원을 나와서는 친척들을 어떻 게 봐야 할지 몰라서 찾아가지

못했다.

물론 엄마와 아빠 사진은 강진 이 가지고 있기는 했다. 작년에 싸이나라에서 부모님 계정을 찾 아서 두 분의 사진을 다운로드해 프린트해 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진 말고, 부모님 의 손길이 닿은 사진을 가지고 싶었다.

‘양심이 있다면…… 사진은 남 겨 뒀겠지.’

독사진은 몰라도 아빠와 엄마가

함께 찍혀 있는 가족사진은 있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은 정학 봉에게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좋은 아들을 두셨네요.”

“하하하! 이게…… 평범한 것 아니겠습니까.”

강진이 보자 정학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빠를 봤으면 아는 척을 하 고, 친구를 소개해 주는 것이 당 연한 일이니까요.”

정학봉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했다.

“이런 자리는 역시 부자간에 마 셔야 기분이 좋을 겁니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진 을 보며 정학봉이 미소를 지었 다.

“고맙습니다.”

정학봉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인섭을 보았다. 아 니, 정확히는 정인섭의 옆에 있 는 젊은 아가씨 귀신을 보았다.

정학봉에게는 귀신이 안 붙어 있었는데 정인섭의 옆에는 수호 령이 있었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다 컸 어.”

기특하다는 듯 정인섭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에 강진은 작게 갸웃거렸다.

‘아내가 있다고 했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학봉이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 러 오겠다고 했던 말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젊은 아가씨가 정인섭을 아들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별을 하고 재혼을 하신 건 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정인섭 을 보던 강진은 아가씨를 손으로 가볍게 툭 쳤다.

툭!

강진의 손길에 아가씨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사람이 자 신의 몸을 터치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강진은 대답 대신 눈짓으로 주 방 쪽을 가리키고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천천히 즐거운 시간 되세요.”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라면이 왜 이리 늦어?”

“끓이기는 아까 끓였는데 대화 가 신중해서 너 오라고 못 하겠 더라.”

배용수가 푹 퍼진 라면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라면은 된 것 같다.”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지금은 정을 안주로 먹고 있으 니까. 저거면 될 것 같아.”

“이거 아까워서 어쩌냐?”

배용수가 라면을 보는 것에 강 진이 입맛을 다셨다.

“뭘 어떻게 해. 네가 저승 가서 먹어야지.”

“내가?”

“이승에서 남긴 음식 저승 가서 다 먹어야 한다잖아.”

“이건…… 네가 하라고 한 거잖 아.”

“만든 건 너잖아.”

강진은 웃으며 냄비를 잡아서는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 후루룩 먹었다.

“면이 불기는 했는데 먹을 만하 다.”

“불었는데 그냥 먹지 마.”

“우리 마누라 저승에서 불은 라 면 먹게 할 순 없지.”

웃으며 강진이 라면을 먹는 것 에 배용수가 고개를 젓고는 홀을 보았다.

“어린 녀석이 기특하네. 철이

훌쩍 들었어.”

“그러게. 나 어릴 때는 안 저랬 던 것 같은데.”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아가씨 가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저......"

그에 배용수가 쳐다보자, 아가 씨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귀, 귀신.”

“ 그쪽도요.”

배용수가 장난스럽게 받아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오신 김에 식사 좀 하세요.”

강진은 대충 건더기를 집어먹은 라면을 음식 쓰레기통에 버리고 는 냄비를 싱크대에 담갔다.

“식사? 저요?”

“여기 배고픈 귀신은 그쪽밖에 없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흠칫하며 물었다.

“저를 보세요?”

믿을 수 없어 하는 아가씨를 보 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저쪽 부자간은 오래 먹지 않을 것 같으니 어머니 드 시고 싶은 것 말씀하세요.”

“제가 먹고 싶은 거요?”

“음식 먹어야죠. 뭐 좋아하세 요? 제가 또 귀신을 보는 사람이 라 귀신 취향에 맞게 아주 맛있 는 음식을 만들어요.”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잠시 머 뭇거리다가 홀을 보았다.

“저도 두부김치요.”

“아!”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홀을 보 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도 저 자리에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다.

“그럼 제가 먹던 자리에 앉아서 드세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저건 내가 만들었잖아. 네가 따로 해야지.”

“아! 그렇겠네.”

강진은 아가씨를 보았다.

“제가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홀에서 막걸리하고 드시고 계세 요.”

“감사합니다.”

주방을 나가려던 아가씨는 잠시 멈춰 서더니 강진을 보았다.

“저희 남편이 여기 이야기 몇 번 했어요.”

“그래요?”

“강남에 아주 싸고 맛있는 가게 가 있는데 사장이 참 착하고 열 심히 산다고요.”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셨네요.”

“우리 남편 편하게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가씨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강진은 작게 손사래 쳤다.

“저희 가게 좋아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 나가서 가족끼리 한잔하세요.”

“네.”

아가씨가 주방을 나가자 강진이 빠르게 김치를 볶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배용수가 말을 했 다.

“내가 가서 사연 좀 물어볼까?”

“됐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이때까지 가게 에 온 수호령들을 따로 불러 사 연들을 물어보고 도와줄 수 있으 면 도와주었던 사람이 바로 강진 이었으니 말이다.

의아한 듯 보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인섭이가 우리 가게 왔으니 강 남 올 일 있으면 여기서 술도 마 시고 밥도 먹으러 오겠지. 그때 물어보면 돼.”

말을 하며 김치를 볶던 강진은 홀을 보았다. 아가씨는 강진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아들과 남편 을 보고 있었다.

“저렇게 두자. 얼마나 좋겠어. 아들이 아빠를 존경한다는데.”

강진은 일부러 말을 걸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저 공간과 저 분 위기가 더 즐거울 테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홀을 보 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그리고 다음 기회라고 해도 토 요일이다.”

토요일에 식사를 하러 오기로 했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 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강진은 김

치를 마저 볶고 두부를 따뜻하게 데워 홀로 가지고 나왔다.

“리필해 드릴게요.”

“아직 많이 남았는데요.”

“따뜻하게 드시라고요. 그리고 남은 건 제가 싸 드릴 테니 가져 가 반찬으로 드세요.”

“그럼 저희야 감사하죠. 고맙습 니다.”

“아닙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명함을 하나

꺼내 정인섭에게 내밀었다.

“우리 가게 꽤 맛집으로 유명하 거든? 홍보 좀 해 줘.”

명함을 받는 정인섭을 보며 강 진이 말을 이었다.

“점심때는…… 학교에서 멀어서 안 올 것 같고. 저녁에 강남 놀 러 오면 와서 밥 먹고 가. 우리 가게는 오천 원 정도밖에 안 하 니 잘 먹고 갈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정인섭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으며 말을 했다.

“아! 그리고 학교 후배기도 하 고 사장님 아들이라고 해서 나도 모르게 말을 놨는데…… 싫으면 지금이라도 올릴까…… 요?”

강진의 말에 정인섭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 다.”

“하하하! 그래. 성격이 참 좋 네.”

웃으며 강진이 그의 잔에 막걸

리를 따라 주고는 말을 했다.

“형이 특별히 너 오면 십 프로 싸게 해 줄게.”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정학봉을 보았 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이자 아가씨가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음식을 가리켰다.

“맛있게 드세요.”

정학봉에게 하는 말 같지만, 아 가씨에게 하는 말이었다.

강진은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렇게 주방에 들어온 강진은 쇼핑백을 하나 챙기고는 반찬 통을 꺼내 놓았다. 이따가 먹고 남은 것을 싸 주려고 말이 다.

통을 꺼내 놓던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배용수를 보았다.

“우리 그릇 좀 사야겠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배 용수는 그릇들이 있는 곳을 보며 말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우리 그릇을 넘긴 것 이 많아서 좀 줄기는 했어. 몇 개 새로 사기는 해야겠어.”

음식들 나눠 줄 때마다 통을 주 다 보니 밀폐용기들이 하나둘씩 행방불명돼 버린 것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들을 보다가 말을 했다.

“내일 마트 가서 그릇 좀 사야 겠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반 짝이며 말을 했다.

“그릇 사러 갈 거야?”

“필요한 거니 사야지.”

“그럼 나 아는 곳에 가자.”

“아는 곳?”

“내가 좋아하는 곳이 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을 했다.

“비싼 데 아니야?”

“아니야. 안 비싸.”

배용수는 그릇 이야기에 신이 나는지 밝아진 얼굴로 말을 했 다.

“도자기로 접시하고 그릇들 만 드는 곳인데……

“ 스톱.”

강진은 손을 들어서 배용수의

말을

“도자기 그릇 같은 건 무거워서 설거지하기도 어렵고, 깨지기도 쉽잖아. 그런 거야 운암정 같은 곳에서나 쓸 만하지, 우리 가게 에서는 쓰기 어렵지 않겠어? 그 리고 우리는 이런 밀폐용기 사려 는 거잖아.”

강진이 밀폐용기를 손으로 두들 기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밀폐용기도 팔아. 그리고 도자기 그릇들은 사자는 것이 아 니라 구경하자는 거지.”

“구경만?”

“구경하다가…… 좋은 것 있으 면 좀 사서 장사할 때 말고 우리 밥 먹을 때 쓰면 되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사고 싶은 그릇 있 으면 사자.”

“오케이!”

배용수가 웃으며 좋아하자, 강 진이 웃었다.

“그렇게 좋아?”

“좋지.”

“그릇 좋아하는 줄 몰랐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우리 같은 요리사한테 그릇은 군인의 총이고 총알이지.”

“총과 총알?”

“같은 김치라도 그에 어울리는 그릇에 담으면 색감이 더 살고 맛도 더 좋아 보이니까. 이를 테 면 하얀 그릇에는 색감이 강한

김치와 젓갈 같은 것을 담으면 정갈하고 더 맛있어 보이고, 검 은 그릇에는 백김치 같은 것을 담으면 더 좋지. 아!”

말을 하던 배용수가 강진을 보 았다.

“기왓장에 고기 담아서 내놓으 면 예쁘고 운치 있다.”

“기왓장?”

“외국 손님이 와서 스테이크 먹 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 가 음식 담을 때 기왓장에 담아

서 냈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 원더풀! 뷰티풀! 하면서 말이야.”

배용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 며 말을 이었다.

“스테이크는 외국 스타일이지 만, 기왓장은 한국 문화니 한국 과 서양을 잘 버무린 거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가서 그릇 너 사고 싶은 대로 많이 사자.”

“많이 사게 해 줄 거야?”

잔뜩 기대감을 드러내는 배용수 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 는 말을 했다.

“많이 人} 줄게. 대신! 필요한 걸로만.”

“나도 예쁘기만 하고 장식만 하 는 그릇은 안 좋아해.”

잔뜩 기대를 하는 배용수를 보 며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홀 을 보았다.

홀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막걸 리를 서로 따라주며 이야기를 하

고 있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정학봉과 정인섭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부자를 보던 강진은 아가씨를 보 았다.

“당신은…… 또 무슨 사연이 있 는 건가요?”

아가씨를 보던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