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화
“잘 먹고 갑니다.”
정학봉이 붉어진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하자 강진은 그가 잡고 있는 킥보드를 보았다.
“킥보드 두고 내일 가지러 오시 죠?”
“아닙니다. 이 녀석도 집에 데 려가서 밥을 먹여야 합니다.”
정학봉은 킥보드를 손으로 툭툭
두들겼다.
“사람만 밥을 먹을 수 있나요. 저하고 같이 일을 하는데 이 녀 석도 밥 먹여야죠.”
“충전을 자주 해야 하나 보네 요?”
“하루 타면 하루 충전해야죠. 아무튼, 저희 때문에 늦게 문을 닫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조심히 가세 요.”
작별인사를 하는 사이, 정인섭
이 킥보드를 잡았다.
“내가 들을게.”
“그래라.”
부자가 웃으며 몸을 돌리는 것 을 지켜보던 강진이 중얼거렸다.
“부모님 사진을 받아야겠어.”
자신이 가진 사진 말고도 여러 모습이 담겨 있을 부모님의 사진 을 생각하던 강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 산책을 한 강진은 오혁과 이강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먼저 공원을 떠나는 두 사람을 배웅한 강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종범 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침 일찍 죄송합니다. 제 친 척들 연락처 좀 보내 주시겠어
요?〉
문자를 보내고 잠시 기다리자 번호들과 함께 이종범의 문자가 도착했다.
〈친척들을 만나실 생각이십니 까?〉
〈받아야 할 것이 있어서요.〉
〈회장님께서 도울 것이 있으면 돕겠다 하십니다.〉
〈저희 부모님 사진만 좀 받으려 는 거라서 도와주실 것까지는 없 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걸로 연락을 끝낸 강진은 핸 드폰에 적힌 번호들을 보았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전화번 호였다. 강진은 두 번호를 보며 망설였다.
큰아버지는 좀 엄격한 편이었 고, 작은아버지는 비교적 유한
사람이었다.
잠시 핸드폰을 보던 강진은 숨 을 고르고는 문자를 적어서 보냈 다.
〈저 이강진입니다. 제가 보육원 에 갈 때 정신이 없어서 부모님 사진을 한 장도 챙기지 못했습니 다. 혹시 보관하고 계신 사진이 있다면 받고 싶습니다. 연락 부 탁드리겠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낸 강진은 잠시 핸드폰을 보다가 입맛을 다 셨다.
“요즘 핸드폰은…… 너무 좋 아.”
예전에는 문자를 보내면 그걸 상대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 인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안 읽었나?’하는 생각을 할 수는 있 어도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문자도 톡처럼 상대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표
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문자 를 본 두 아버지는 답을 하고 있 지 않았다.
그에 한숨을 쉰 강진은 핸드폰 을 손에 쥐고는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강진의 옆을 따라 가던 배용수가 걱정스러운 얼굴 로 말을 했다.
“ 괜찮아?”
“뭐가?”
자신을 보는 배용수를 보며 강
진이 피식 웃었다.
“모르겠다.”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답 이라도 하지.”
“그러게.”
강진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싸이나라에서 받아 놓 은 사진들 있으니 엄마 아빠 얼 굴 잊어버리지는 않겠다. 정말 다행이야. 그거라도 없었으면 정 말 부모님 얼굴 기억도 못 할 뻔
했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두 분 사진 선명하고 좋 더만. 굳이 옛날 사진 가지고 있 을 필요 있겠어?”
말을 한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보육원에 갈 때 얼마나 급하게 갔기에 부모님 사진 하나 못 챙겼어?”
“그러게…… 정말 급하게 가기
는 했나 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그를 보았다.
‘급하게 간 것이 아니라 급하게 보내진 거지. 진짜 너무들 하네.’
짐을 정리할 시간이라도 좀 주 지,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젓 던 배용수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부모님 재산은 좀 없었 어?”
“재산?”
“저금이나 보험…… 아니면 집 이라든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우리 집 부자 아니었어. 집도 전세였고.”
“서울에서 전세면 그래도 꽤 돈 있던 거 아니야?”
“그냥 작은 빌라라 얼마 안 됐 을 거야. 그리고 저금하고 보험 은 잘 모르겠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
그렸다.
“혹시 너희 친척들이……
배용수가 뒷말을 흐리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럴지도 모르지.”
배용수가 흐린 뒷말은, 혹시 저 금이나 보험금 안 주고 자신들이 꿀꺽 하려고 보육원에 보낸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럼 알아봐서 찾지 그랬어.”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어. 그리고 대학 가 서는 사느라 생각을 안 했고.”
“힘들었으니 더 그 돈이 필요하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그 돈을 찾기 위해 그 사람들을 다시 보는 것이 불편했던 것 같 아.”
“불편?”
“좋은 모습 본 사람들도 아닌데
다시 보는 건 불편하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 일에는 그렇게 잘 나서면서 정작 내 일에는 그렇게 바보 같냐.”
“후! 그건 남의 일이라 할 수 있는 거지.”
작게 고개를 젓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을 했다.
“내가 승천하면 네 부모님 찾아 서 네가 두 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꼭 전해 줄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 절은?”
“절? 물론 해야지. 친구 부모님 처음 뵙는데 꼭 할게.”
“그래. 꼭 해라. 두 번 해.”
“두 번? 하긴, 두 번 해도 되기 는 하겠다. 알았어. 두 번 할게.”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니 두 번 절을 해도 상관없기는 할 것이었
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길 때,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 다. 그에 강진이 급히 핸드폰을 보았다.
〈찾아보고 연락하마.〉
큰아버지의 문자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예 답신이 없 을 줄 알았는데, 답신이 온 것이 었다. 뒤이어 작은아버지에게서
도 문자가 왔다.
〈강진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신대 들어갔다 는 이야기는 들었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
작은아버지의 문자에 강진이 작 게 미소를 지었다. 큰아버지와 달리 그래도…… 답이 길게 온 것이다.
하지만 강진은 이야기를 나눌
생각까지는 없었다.
〈부모님 사진만 받았으면 합니 다.〉
〈그래…… 음…… 일단 집에 사 진이 있는지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확인해 보고 연락할 게.〉
〈네.〉
그걸로 문자를 끝낸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확인을 해야 된다, 라……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막 냇동생 사진이 어디 있는지 확인 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 면…… 그동안 아버지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생각을 했다면 사진을 한 번이 라도 들여다봤을 테고, 그럼 어 디에 있는지도 알 것이니 말이 다.
“아빠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잘
지냈잖아요. 왜…… 이렇게 된 거죠? 우리 아빠 돈 많은 사람도 아니잖아요.”
아버지가 돈이 수억 있는 부자 라 그 돈에 욕심이 나서 자신을 보육원으로 보냈다면 이해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강진의 집은 그냥 평범 한 맞벌이 집안이었다. 저금도 하고 대출도 있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은 강진 이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안쓰러운 눈으로 강진을 보고 있
었다.
“나는 괜찮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내가 뭐라고 했나.”
“그러니까. 우리 그릇이나 보러 가자.”
강진이 애써 밝은 얼굴로 앞장 서자 배용수의 얼굴에 안쓰러움 이 어렸다.
‘정도 많은 녀석인데……
정 많은 강진이 친척들에게 이 런 일을 당하니 마음이 좋지 않 았다.
“안 가?”
앞장서서 가던 강진이 돌아보자 배용수가 밝은 얼굴로 뛰어갔다.
“간다!”
배용수가 기분 전환을 시키려는 듯 밝은 얼굴로 뛰어오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 다.
차를 타고 강진과 배용수는 경 기도의 한 동네에 들어서고 있었 다.
〈도자기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
동네 입구에 적힌 간판을 보며 강진이 말을 했다.
“마을 전체가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야?”
“맞아. 전주 한옥 마을하고 비 숫한 거지.”
“한옥 마을?”
“한옥 마을에 사람들이 살기는 하지만, 대부분 관광 온 사람들 을 상대하잖아. 여기도 비슷해.”
말을 하며 배용수가 차에서 내 리자 강진도 내렸다. 그러고는 주위를 보았다.
도자기 만드는 마을이라 그런지
주차장 곳곳에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항아리도 만드나 보네?”
“항아리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 고…… 가자.”
배용수가 기분 좋은 얼굴로 서 둘러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갔다.
도자기 마을이라는 것을 입증하 듯, 집마다 도자기 그릇과 항아 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예쁜 그릇들을 보며 걸음을 옮
기던 중 배용수가 한 그릇 앞에 멈춰 섰다.
“이거 예쁘다.”
검은색 그릇을 배용수가 이리저 리 보는 것에 강진이 그것을 하 나 집어 들었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난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는데 깔끔 한 스타일이었다.
“생선 올려놓으면 예쁘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위아래로 살짝
흔들어 보았다.
“무거운데.”
“도자기인데 무게가 있지.”
배용수가 그릇을 보다가 말을 했다.
“두 개만 사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릇 두 개를 집어서는 계산을 하고는 나 왔다.
신문지에 싸인 그릇을 쇼핑백에 담은 강진은 배용수와 함께 여기
저기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배용수가 웃으며 한 쪽 가게를 가리켰다.
“여기가 우리 운암정에 그릇 만 들어 주는 곳이야.”
웃으며 배용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손님들 몇이 그릇 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노트 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가게 내부를 슥 둘러본 강진은 진열되어 있는 그릇들을 보았다.
가정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릇 부터 감상용으로 진열하는 그릇 들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그릇들을 보던 강진은 힐끗 한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한 복을 입은 할아버지 귀신이 미소 를 지으며 사람들을 보고 있었 다.
“어르신!”
할아버지 귀신을 본 배용수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자네, 용수 군이 아닌가.”
“안녕하세요.”
배용수의 인사에 할아버지 귀신 이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 었다.
“자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 었는데…… 이렇게 귀신이 돼 만 나는군.”
“반갑다고 해야겠지만……. 언 제 돌아가신 거예요?”
귀신으로 보게 될 줄 몰랐는지 배용수가 한숨을 쉬자 할아버지 가 웃으며 말을 했다.
“나이 들면 다 가는 거지.”
“그래도 정정하셨던 것 같은 데.”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을 하고 밥 잘 먹으니 건강은 했는 데, 작년에 감기가 좀 크게 걸려 서 말이야…… 허! 사람이 감기 로도 죽더군.”
“아……
말을 하던 할아버지는 고개를 젓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잘 지내나?”
“저는 저승식당에 취직해서 음 식 만들고 있습니다. 저기 저 녀 석이 저 있는 서울 저승식당 사 장이에요.”
“취직?”
배용수의 말에 할아버지가 의아 한 듯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숙이자, 할 아버지가 신기한 듯 말했다.
“귀신을 보는군.”
“저승식당 사장이니까요. 아! 저 승식당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여기 오가는 귀신한테 들은 적 이 있네. 귀신한테 밥을 주는 곳 이라고?”
“네.”
“자네는 죽어서도 음식을 만드 는군.”
배용수를 보는 할아버지의 얼굴 에는 흐뭇함이 어려 있었다.
“변하지 않아 보기 좋구먼.”
흐뭇한 얼굴로 배용수를 보던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카운터 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러더 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