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4화
기분이 좋은 것 같은 강상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그렇게 줬으면 다음 권이 궁금 했겠네요?”
[그러니 보고 싶으면 다시 선생 님에게 가야겠지. 그리고 그 선 생이 자신이 봤던 소설 중에서 정말 재밌는 것들만 줬으니 더 보고 싶어서 찾아갔대.]
“학생이 책을 받으러 오니 책을
봤는지 아닌지도 확인을 할 수 있었겠네요.”
[그렇지. 책을 봤으니 다음 권 받으러 올 테고 말이야. 그렇게 책을 보다가 어느 날 선생님이 이렇게 재밌는 소설 너도 써보고 싶지 않느냐고 했었대. 그랬더니 학생이 웃은 거지. 저 같은 애가 무슨 소설을 쓰냐면서. 그래서 선생님이 뭐라고 했게?]
“글쎄요? 너도 할 수 있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웃었다.
[비슷한데…… 거기에 도가 빠 졌어.]
“넌 할 수 있어?”
[그렇지. 너도에서 도 하나 뺐 을 뿐인데 느낌이 많이 다르지.]
“그건 그러네요.”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 그 애가 본 무협 소설, 바로 그 선생님이 쓴 거였어.]
“아! 선생님도 작가였군요.”
[조사하면서 안 건데, 이런 소
설 쪽은 진입 장벽이 낮은 모양 이야. 학생들도 인터넷에 연재해 서 인기 좋으면 책으로도 나오고 하나 보더라고. 어쨌든 선생님이 그랬대. 글이라는 건 어렵지 않 다. 그저 네가 쓰고 싶은 이야기 를 네가 상상하는 대로 써 보는 것이 글이다. 그리고 그 소설을 많은 사람이 안 보면 또 어떠니. 네가 쓴 이야기가 이렇게 남는데 말이야.]
잠시 말을 멈췄던 강상식이 말 을 이었다.
[그 이야기 듣고 자신이 쓰고 싶은 소재가 생각나서 글을 썼다 고 하더라.]
“그럼 조폭은 그만두고요?”
[그만뒀으니 훈훈한 사제지간 이야기로 끝나는 거지. 그 학생 지금은 잘나가는 무협 소설 작가 됐어.]
“잘 됐네요.”
[고등학생이 조폭 생활을 하면 이미 학교에서는 내놓은 놈이고, 학교에서 격리시키려고 하는 애
일 텐데…… 그런 애를 잡고 작 가로 만든 선생님도 있는데…… .]
강상식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말을 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네요.”
[좋은 선생님이지. 최소한 감옥 갈 인생 구제한 거니까. 아니, 그 뿐이 아니지…… 감옥 가려면 나쁜 짓을 해야 하니 그 학생한 테 피해를 볼 사람들도 구제를 한 거네.]
“오! 그렇게 생각하니 형 말이 맞네요.”
-아주 맞는 말이지. 나쁜 놈 한 명이 한 백 명 괴롭힐 텐데…… 사기라도 쳐 봐라. 사기당한 가 족 인생이 얼마나 처참하겠어. 사기뿐만 아니라 폭행도 마찬가 지고.]
“한 사람을 구해서 수십 명을 도운 거네요.”
[그래서 선생이라는 직업이 중 요하고 존경을 받는 거겠지. 학 생의 인생을 변화시키니까.]
이번에 좋은 선생님 사연을 모 으면서 강상식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보는 눈이 변한 모양이었 다.
그냥 월급 받고 애들 가르치는 직업에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 키는 ‘스승님’으로 말이다.
잠시 말이 없던 강상식이 말을 했다.
[이번 주에 미소한테 갈 거지?]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선 생 때문에 미소 많이 기분 안 좋
을 테니까요.”
[나는 이번 주는 못 가니까 다 음에 같이 가자.]
“그렇게 하세요.”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잠 시 핸드폰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 다.
“나쁜 사람.”
선생을 생각하니 짜증이 난 강 진은 고개를 젓고는 저녁 장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당근을 손질하던 배용 수가 강진의 표정이 안 좋은 것 을 보고는 말을 했다.
“표정 안 좋네?”
“미소하고 통화했는데 선생이 짜증나네.”
강진이 황미소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하자, 배용수가 한숨을 쉬 며 고개를 저었다.
“음식 만들 때 그런 이야기 하 지 말자. 기분 나쁠 때 음식을 하면 맛도 쓴 법이야.”
그러고는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 다.
“가서 이빨 닦고 와라.”
“이빨?”
“혀 깨끗이 닦고 오라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에 가서 이빨 을 닦고 들어왔다. 그는 배용수 가 씻고 있는 당근을 보며 말을 했다.
“그런데 당근 손질된 것도 많은 데 왜 우리는 늘 흙당근만 사는
거야?”
씻어져서 나오는 당근도 가져오 면 손질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씻을 필요는 없으 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으며 말을 했다.
“홁 털어내고 씻겨 나온 당근들 은 나오는 순간부터 신선도가 떨 어지는 거야.”
“씻어 나온 것도 신선하던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다가 말을 했다.
“지금 씻어 놓은 당근이 없어서 비교를 못 하는데, 나중에 당근 주스하고 당근 케이크 만들어 줄 테니 두 개 먹고 비교해 봐. 맛 의 차이가 확 날 거야.”
“그렇게 차이가 나?”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당근을 씻으며 말을 했다.
“제주도에 유명한 당근 케이크 집이 있는데, 당근 밭에서 캐 온 당근으로 케이크를 만들거든. 그
래서 맛이 아주 좋아.”
그러고는 배용수가 다시 강진을 보았다.
“우리 맛집 탐방도 좀 다니고 해야 하는데. 요리사는 음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 이 한 음식을 많이 먹어 보는 것 도 중요해.”
“그건 그런데…… 시간이 좀 그러네.”
지방에 있는 맛집 가는 건 일요 일이나 해야 할 텐데…… 강진은
일요일마다 음식 봉사를 하러 다 니니 말이다.
그래서 일요일이라고 해도 강진 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없 었다.
“다음에 한번 시간 내서 내가 아는 곳으로 몇 곳 다녀 보자.”
“요리 선생님이 그렇게 말을 하 는데 시간 한번 정해 봐야지.”
강진은 당근을 만지작거리며 말 을 했다.
“밭에서 바로 캔 걸로 만들면
맛있기는 하겠다.”
“맞아. 사과도 나무에서 바로 따서 먹으면 진짜 맛있다.”
“그래?”
“우리 운암정에서 운영하는 사 과 농장이 있는데 거기서 사과 따서 바로 먹으면…… 완전 꿀이 야, 꿀.”
웃으며 입맛을 다신 배용수가 말을 이었다.
“밭에서 바로 캔 것만은 못 해 도 흙 묻어 있는 걸로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배용 수가 웃으며 말을 했다.
“숙성시켜서 먹는 식재가 아닌 이상, 식재는 뭐든 신선해야 가 장 맛있는 법이야.”
“그 말이 맞지. 좋은 식재가 음 식의 반이니까.”
“반은 무슨…… 시작과 끝이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에게는 반이야.”
배용수가 무슨 말이냐는 듯 보 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실력 있는 요리사가 음 식을 하면, 같은 식재라도 더 맛 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 나올 테 니까. 그러니 너에게는 오 대 오 인 거지.”
그러고는 강진이 당근을 씻으며 말했다.
“나 같이 배우는 사람이나 식재 덕을 많이 보는 거고.”
“내 실력을 인정하는구먼.”
“그럼. 우리 마누라 음식 솜씨 는 내가……
마누라라는 말에 배용수가 물 묻은 손을 강진을 향해 세게 털 었다.
파앗!
“아 차가!”
강진이 급히 얼굴에 묻은 물방
울을 닦아내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입은 그만 놀리고 손은 빨리 움직여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당근을 씻기 시작했다.
“근데 오늘 뭐하려고 당근을 이 렇게 많이 씻어?”
사실 당근은 음식에 많이 쓰는 식재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배용수는 흙 묻은 당근을 두 상 자나 주문해서 손질을 하고 있었
다.
강진의 질문에 배용수가 웃으며 답했다.
“전에 형수가 입이 궁금해서 자 주 샐러드를 먹는다고 했잖아.”
“그랬지. 야채도 먹고 과일도 먹고 하려고.”
“그래서 당근라페 좀 만들려 고.”
“당근라페?”
“채 썬 당근으로 만드는 초 샐
러드라고 생각을 하면 돼. 그냥 반찬으로 먹어도 되고, 식빵 구 워서 거기에 넣고 먹어도 맛있 어.”
“그래?”
“그리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 서 만들어 두고 먹으면 좋지. 거 기에 몸에도 좋고.”
“하긴, 당근이 몸에 좋기는 하 지. 눈에 좋잖아.”
“눈에만 좋겠어? 비타민 C 도 있어서 피로 회복에도 좋고, 노
화 방지에도 좋고 피부 재생에도 좋고. 어쨌든 두루두루 좋지. 그 리고 태아에도 좋아.”
“오! 몸에 좋은 거네.”
“좋지. 근데 임산부는 많이 먹 으면 안 좋아.”
“태아한테 좋다며?”
“비타민 A가 태아 세포랑 눈, 심장 발달에 도움도 되고 이래저 래 좋기는 한데…… 너무 많이 먹으면 태아한테는 안 좋아. 특 히 초기에는 피해야지.”
“그래서 먹어도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임신 초기도 아니고 지금은 먹 어도 돼. 대신 한 통 크게 먹으 면 안 되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당근을 보다가 말을 했다.
“위험한 거 아니야? 큰일 나.”
“내가 무슨 독약을 만들겠냐. 그리고 당근을 엄청 많이 먹는 것 아니면 괜찮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민성을 위하는 건 배용수도 마찬가지인데 태아한테 안 좋은 것을 먹이지는 않을 것 이다.
“많이 안 먹어도 되는데…… 뭘 이렇게 많이 했어?”
“이왕 하는 거 많이 해서 단골 손님들 선물하면 좋잖아.”
“선물?”
“이거 하루 정도는 지나야 먹거 든. 내일 마트에 가서 유리 병…… 잼 같은 것 담는 병을 좀
사. 작은 쇼핑백에 담아서 우리 가게 단골들한테 한 병씩 선물하 자.”
“오…… 너 그런 생각도 했어?”
“우리 가게도 이제 햇수로는 삼 년이잖아. 봄 되니 상큼하게 이 런 것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아 서.”
배용수가 웃으며 당근을 문대며 말했다.
“그리고 이거 그리 어렵지 않으 면서 이름이 폼 나잖아.”
“당근라페라…… 하긴, 서양 음 식 같고 이름 좀 있어 보이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배 용수가 씻어 놓은 당근을 싱크대 에 올리며 말했다.
“일단 세척해라.”
말을 하며 배용수가 검수림 식 칼을 잡고는 당근 표면을 긁어낸 뒤 썰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타탓!
단단한 당근을 얇게 써는 것에 강진이 검수림 식칼을 보았다.
‘확실히 검수림 식칼이 날카로 워. 당근도 두부처럼 썰어 버리 네.’
식칼을 보던 강진은 당근을 마 저 씻었다. 그러다 당근을 다 씻 은 강진은 배용수와 함께 당근을 썰었다.
가느다랗게 채 썬 당근을 통에 넣은 배용수가 소금을 적당히 넣 고는 버물리며 설명을 했다.
“김치 담그는 것처럼 소금 좀 넣고 십 분 후에 식초하고 올리 브유, 화이트 와인, 레몬즙 하고
후추, 그리고 홀그레인 머스터드 넣고 하루 숙성해서 먹으면 돼.”
배용수의 설명에 강진이 물었 다.
“다른 야채는 안 들어가?”
“안 들어가.”
“그럼 소스 맛으로 먹는 건가?”
“그건 아니고 음…… 뭐라고 할 까. 좀 상큼하면서 아삭한 맛이 라고 해야 하나?”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빵에 넣어서 샌드위치로 먹어 도 맛있다. 아니면 치킨 무 대신 해 먹어도 좋고.”
십 분쯤 기다리던 배용수는 당 근을 꺼내 다른 그릇에 넣고는 물을 짰다.
주르륵!
물을 쫘악 짠 배용수가 그 안에 소스를 넣고는 버무렸다. 그러고 는 통 뚜껑을 닫고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이렇게 했다가 두세 번 정도
뒤섞어 주면 끝이야.”
“간단하네.”
“간단하고 맛있어. 아! 그리고 소금 양은 조금 적게 넣어야 해. 잘못하면 짜.”
“그럼 얼마나 넣어야 하는데.”
“그거야 적당히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적당히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네.”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린 배용수가 말을 이었다.
“근데…… 몇 그램 몇 그램 하 기엔 음식 만들기 너무 어렵지. 많이 해 보면 적당히를 알게 될 거야.”
배용수가 강진을 보며 말했다.
“엄마가 음식 만들 때 무게 재 면서 만들지 않잖아.”
“그건 또 그러네.”
강진의 답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무장갑을 물에 씻 으며 말했다.
“자, 이제 저녁 장사 준비하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저녁 장 사에 낼 반찬들을 준비하기 시작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