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 화
우우웅! 우우웅!
싸늘한 얼굴로 강상식을 보는 김소희와 그 옆에서 검명을 토하 고 있는 귀검을 본 강진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음식 좀 더 가져올게요.”
“이거면 되는데?”
“오징어가 좀 먹고 싶어서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몸을 부르르 떨 었다.
“그런데 좀 싸하지 않냐?”
“네?”
“이상하게 몸이 좀 떨리고 그러 네. 등골도 오싹하고.”
강상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감기가 오려나?”
강상식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것 에 강진이 주방 쪽을 보았다.
‘주방 쪽도 난리겠네.’
지금 김소희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서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주방 직원들은 사시나무 떨 듯이 바들바들 떨고 있을 것이었다.
“추워?”
“좀 춥네요.”
강상식이 몸을 부르르 떨자, 황 민성이 자신의 외투를 내밀었다.
“이거라도 등에 걸치고 있어.”
“고맙습니다.”
강상식이 외투를 등에 걸치는 것을 보던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 다. 그녀는 여전히 싸늘한 얼굴 로 강상식을 보고 있었다.
‘이건 패딩을 입어도 감당이 안 되지.’
그냥 걸어만 가도 사람들이 좌 우로 물러나는 게 김소희다. 그 런 그녀가 싸늘하게 주시를 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강진은 슬쩍 황민성의 발을 툭 쳤다. 그에 황민성이 보자, 강진 은 강상식의 뒤를 눈짓으로 가리 켰다.
‘아가씨 와 있어?’
황민성이 눈빛으로 묻자, 미세 하게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어서 아부를 좀 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는 일단 카운터로 걸음을 옮겼 다.
“오징어 굽는다며?”
강진이 카운터로 가는 것에 강
상식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모기가 있는 것 같아서요.”
“모기? 아직 모기 나올 때 아닌 데?”
“요즘 모기야 눈 그치면 나오는 거죠.”
“그런가…… 어라?”
말을 하던 강상식이 허공을 향 해 입김을 후 불었다.
화아악!
하얀 입김이 뿜어지는 것에 강
상식이 눈을 찡그렸다.
“무슨 사월에 입김이 다 보여?”
“그러게……요.”
입맛을 다시던 강진은 작게 숨 을 토해 보았다. 강상식과 달리 자신은 입김이 보이지 않았다.
강상식만 지금 김소희에게 영향 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일단 향수부터 빨리 뿌려야겠 다.’
강진이 카운터에서 향수를 찾을
때, 황민성이 말했다.
“일단 그분은 무척 아름다우신 분이야.”
김소희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 해 황민성이 아름답다 말하자, 강상식이 그를 보았다.
“그분? 아! 아까 그 황소……
“이게 죽으려고! 황소 아니라니 까!”
황민성이 버럭 화를 내자 강상 식이 움찔하고는 말했다.
“무슨 죽는다고까지 해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내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소희 아가씨한테 죽을까 봐 그런 다.’
속으로 중얼거린 황민성이 말을 했다.
“농으로도 황소라는 말 하지 마. 정말 꽃처럼 아름다운 분이 시니까.”
“꽃요?”
“때로는 백합 같고, 때로는 장
미 같고, 때로는 들꽃 같으시지.”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의 차가운 표정이 조금은 사라졌다.
“호오! 백합, 장미, 들꽃이 라…… 내가 그래 보이나?”
카운터에서 향수를 들고 다가온 강진에게 김소희가 물었다. 그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그 꽃들하고는 모르겠지만…… 개나리하고는 닮은 것 같기는 하 네요.’
개나리는 예쁘다기보다는 귀여
운 색감이니 말이다. 속으로 중 얼거린 강진은 김소희에게 살며 시 향수를 뿌렸다.
치이 익 ! 치이익 !
김소희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향수를 맞는 人}이, 강상식이 눈 을 찡그렸다.
“여기 음식 있는데 모기약을 뿌 리면 어떻게 해.”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먹어도 되는 거라서 괜찮
아요.”
“먹어도 되는 살충제가 어디 있 어?”
강진은 보란 듯이 입안에 향수 를 뿌렸다.
“ 봐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의아한 듯 향수를 보았다.
“정말 먹어도 된다고?”
“그럼요.”
“성분이 뭔데?”
오성화학에서 만드는 제품 중에 는 살충제와 같은 것도 있으니 관심이 가는 것이다.
“성분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 요.”
“어디서 만드는 거야?”
“왜요?”
“먹어도 되는 살충제면 인체에 무해하다는 거잖아.”
“이거 외국에서 직구한 거라 저 도 잘 몰라요.”
“뭔지도 잘 모르는 것을 먹어?”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니까요.”
“먹어도 된다고 먹을 필요까지 야 없지.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페인트 중에도 인체에 무해한 친 환경 제품도 있지만 일부러 몸에 바르진 않으니까.”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향수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저는 오징어 구워 올게 요.”
말을 하며 강진이 김소희를 보
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기에서 내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강상식을 보았다. 강상식 이 말실수라도 해서 김소희가 검 을 뽑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민성 형이 있으니 잘 컨트롤하시 겠지.’
강진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 다. 오징어를 최대한 빨리 구워 서 나가야 하기도 했고, 김소희
의 기운에 노출되었던 직원들을 살펴보기도 해야 했다.
주방 안에 들어간 강진은 한쪽 에 축 늘어져 있는 귀신들을 볼 수 있었다.
“괜찮아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한숨을 토했다.
“오랜만에 소희 아가씨 기운을 직격으로 맞았더니...... 온몸이 쑤시네요.”
“오늘 소희 아가씨가 기분 안
좋게 와서 조금 더 과했을 거예 요. 여기 주방에 불편하게 계시 지 마시고 2층에 올라가서들 누 워 있으세요.”
“하아 하아 좀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꼼짝도 못 하겠어요. 조금 있다 가 올라갈게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들을 보다가 한쪽 싱크대에 기대고 서 있는 배용수를 보았다.
“너는 괜찮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한 숨을 쉬고는 말했다.
“조금 숨쉬기 힘들기는 한데 쓰 러질 정도는 아니다.”
“그래?”
“그리고 예전보다 소희 아가씨 기운에 막 몸이 떨리고 하지는 않네.”
전에는 김소희가 멀리서 다가오 기만 해도 힘들어하던 배용수가 버틸 만하다고 하자 강진이 의아 한 듯 물었다.
“버틸 만하다는 거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승식당이 나를 주 방장으로 인정을 해 줘서 그런 것 같아.”
“하긴, 일리 있네. 주방장이 귀 신 무서워서 부들거리고 있으면 음식을 못 하니 말이야.”
저승식당에는 총각귀신도 처녀 귀신도 온다. 그런데 저승식당 주방장이 그런 귀신들 올 때마다
부들거리며 음식을 못 한다면 사 실상 영업 정지다.
그러다 보니 저승식당의 주방장 은 김소희의 영향을 덜 받는 모 양이었다.
마른 오징어를 꺼낸 강진은 그 것을 물에 담그고는 배용수를 보 았다.
“직원들 힘 빠져 있는데 오징어 를 구워야 하다니.”
“지금은 이승 식당이니까. 내가 직원들 챙길 테니 너는 소희 아
가씨 다독여.”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물에서 꺼낸 오징어를 구 웠다.
그런 강진의 모습을 보던 배용 수는 오징어에 어울리는 소스를 만들었다.
간장에 매실액을 살짝 타고 그 위에 마요네즈를 넣은 배용수는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올렸다. 그 사이 오징어를 다 구운 강진 은 쟁반에 오징어와 소스를 담고 는 주방을 나갔다.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 있는 사 이, 강상식이 황민성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선 사람이 예쁜지 아 닌지 형이 어떻게 알아요?”
“응‘?”
“실제로 본 건 아니지 않아요? 초상화라도 남아 있는 건가?”
“아.. ”
강상식의 물음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 당시 소희 아가씨……
“응? 소희 아가씨요? 아까 그분 하고 이름이 같아요?”
“이름이 같아.”
“신기하네요. 조선 의병장과 같 은 이름을 쓰는 아가씨라.”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 다.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지. 어 쨌든…… 그때 아가씨와 함께 싸 웠던 의병 중에는 양반도 있었던 모양이야. 그중에 임성렬이라는
분이 당시 있었던 일을 적어 집 에 보낸 서신이 발견이 됐어.”
“성렬 오라버니가 나에 대한 글 을 남기신 것인가?”
김소희는 호기심과 그리움이 어 린 눈으로 황민성을 보았다.
당시 김소희가 이끄는 의병에는 아버지의 제자들이 있었다. 아버 지가 전사하던 그 싸움에서 많은 제자들이 같이 죽었지만, 그래도 몇은 남아 김소희와 합류를 하고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 제자들은 성별과 나이 상관 없이 김소희의 휘하에서 싸워 나 갔다.
물론 그때는 누가 누구를 이끌 어 나간다기보다는 같이 싸우는 전우들이었지만…… 어쨌든 김소 희의 지시에 따라 싸우는 동지들 이었다.
그 동지 중 한 명이 임성렬이었 고 말이다.
김소희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그때 임성렬 선생께서 집에 보 낸 서신에는 소희 아가씨에 대한 내용들이 꽤 많이 발견이 됐어. 그중에……
<……그 아이는 백합과 같습니 다. 백합처럼 순수하며 티 없이 하얀 모습은 사랑스럽기 이를 데 가 없습니다. 때로는 서구의 장 미와도 같습니다. 왜구와 싸우는 그 모습은 마치 붉은 장미와 같 습니다. 아름답지만 가까이하기 에는 가시가 있는 위험한 아름다
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 장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은 힘들 고 지친 백성들을 다독이는 들꽃 의 모습입니다. 백합처럼 순수한 그 아이가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들꽃이 되어 스스럼없이 다가가 미소를 보여줍니다. ……〉
서신에 있는 내용을 황민성이 말을 하자, 강상식이 웃었다.
“내용에 꿀이 뚝뚝 떨어지네 요.”
“그렇더라.”
“그런데 그런 내용을 적어서 집 에 보내요?”
“임성렬 선생의 형님에게 가는 편지였어. 형한테 자기 걱정하지 말라는 것과 함께 연애 상담을 한 거였지.”
“형한테 상담이라…… 형제가 사이가 좋았나 보네요.”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상식이 물었다.
“전장에서도 사랑이 꽃 핀 거군
요.”
“아마 임성렬 선생께서 소희 아 가씨를 좋……
황민성은 말을 멈추고는 강상식 뒤를 살폈다. 그곳에 김소희가 있는 것을 아니 이런 남녀 지사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다.
그리고 김소희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고 말이다.
“괜찮으니 이야기하게. 성렬 오 라버니가 나를 좋아…… 했음은 나도 알고 있으니.”
갑자기 귀에 들리는 김소희의 목소리에 황민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김소희가 귀신 상태로 자신에게 말을 건 적이 있어 놀라지는 않았다.
김소희의 허락에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좋아하셨던 것 같아.”
“전장에서 사랑이라……. 역시 우리 선조님들은 전쟁터에서도 할 것은 다 하시는군요.”
“사랑 이야기이기는 한데, 마지
막은 좀 슬프지.”
“왜요?”
“아가씨도 죽고, 임성렬 선생께 서도 죽으셨으니까.”
“아……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럼 그 백합, 장미, 들꽃을 노 래하신 임성렬 선생께서 남자 주 인공인가요?”
“맞아. 근데 남자 주인공이 하
나 더 있어.”
“하, 하나 더?”
남자 주인공이 둘이라는 말에 김소희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처녀 귀신인 자신과 엮 인 남자가 둘이나 있다니 말이 다.
“한 명은 임성렬 선생이고, 한 명은 가상인물인 종사관으로 할 생각이야.”
“종사관요?”
“사극을 보면 남자 주인공들은
보통 종사관으로 시작하잖아.”
“그런가요?”
“그렇다고 하더라.”
황민성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가상인물로 양반 종사 관을 하나 넣을 생각이야. 소희 아가씨 제자 중에 무과에 급제해 종사관이 된 사람으로 말이야. 그리고 그 종사관이 아가씨를 많 이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지. 멀리서 그녀를 걱정해 주며 음지 에서 도와주는 역할 말이야.”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흐뭇하 게 미소를 지었다.
“둘이라…… 그때 나를 사모하 는 양반가 자제들이 꽤 많기는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