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7화
“황소희 입 니 다.”
황민성의 말에 김성수가 소희라 는 이름을 되새기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이름이 예쁘군. 그런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제가 존경하는 분의 이름입니 다.”
“자네가 존경하는 분의 이름이
라……
김성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희와 황소희라. 우연인지 둘 다 희가 들어가는군.”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고개를 숙였 다.
“좋은 이름 주셔서 감사합니 다.”
“내 손주의 이름을 짓게 해 줘 서 고맙네. 애썼네.”
김성수의 말에 황민성이 쓰게 웃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김성수가 미소를 지었다.
“늦었으면 어떤가. 이렇게 늦게 라도 찾아왔으니 감사하고 또 감 사할 일이지. 어서 빨리 보고 싶 군.”
김성수의 말에 황민성이 동감이 라는 듯 미소를 짓고는 강진과 강상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우리 애 이름 정했다.”
“아버님이 지어 주셨어요?”
“응. 큰애는 황희로 하기로 했 어.”
“황희라…… 황희 정승 이름 딴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기쁠 희라는 글자에 더 의미가 있지. 기쁘게 살라는 의미로 아버님이 지어 주 셨어.”
“기쁘게 살라…… 부모님 입장 에서는 가장 좋은 의미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황민성을 보며 배용수가 물었다.
“그럼 둘째 이름은 정하셨어 요?”
“소희…… 황소희로 지었어.”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와 강진이 그를 보다가 웃었다.
“소희 아가씨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
“허락?”
허락이라는 말에 황민성이 잠시
당황스러운 듯 둘을 보다가 말했 다.
“허락…… 해 주지 않으실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야 당연히…… 기쁘게 허락 해 주실 겁니다.”
“그렇겠지?”
“그럼요. 자신의 이름을 딸에게 짓는다는 건 그만큼 아가씨를 존 경한다는 의미니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미소를
지으며 출산실을 보았다.
“아가씨처럼 강하면서도 자상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 었어.”
“아가씨처럼 자라면...... 정말 강하면서도 자상한 사람이 되겠 네요.”
“ 맞아.”
웃으며 말을 한 황민성이 출산 실을 볼 때, 김소희가 밖으로 걸 어 나왔다.
“둘째 나왔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형 축하해요. 둘째 나왔대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소희에게 물었다.
“제 아내는 어떻습니까.”
황민성이 자신을 보는 것에 김 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저승 음식을 먹은 겐가?”
“네.”
“많이 먹지 말게. 이승 사람이
많이 먹어서 좋을 일은 없으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네 아내는 건강 하네.”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와 거의 동 시에, 출산실 문이 열리며 의료 진이 나왔다.
“둘째 따님 건강하게 출산하셨 습니다.”
의료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황 민성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말
했다.
“들어가 봐도 되나요?”
황민성의 말에 의료진이 안을 보고는 말했다.
“내부가 아직 보기 좋지 않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의료진의 말에 황민성이 김성수 를 보았다.
“아버님.”
“그래. 같이 들어가 보세.”
김성수의 말에 의료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두 사람을 데리고 출산 실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을 보던 강진이 강상식을 보았 다.
“형,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 게요.”
“그래. 다녀와.”
강진은 배용수를 툭 치고는 걸 음을 옮겼다. 그에 배용수가 급
히 따르며 물었다.
“어디 가? 형 나오는 거 안 봐?”
“너는 나하고 민성 형 걱정거리 부터 해결하자.”
“걱정거리?”
“장인어른 따라다니는 귀신들이 누구인지 알아야지. 그리고 왜 따라다니는지도.”
“아......"
강진은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귀신이 없는 곳은 없지만, 특히 귀신이 많은 곳이 바로 병원이었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죽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말 그대로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병원이었다.
귀신들을 보며 걸음을 옮기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이제 시작해.”
“ 뭘?’’
“소리쳐. ‘전주에 사는 김성수 어른 따라온 분들!’ 이렇게 소리 쳐.”
사람인 강진이 외치면 다른 사 람들이 의아한 듯 쳐다볼 것이었 다. 하지만 배용수는 그렇게 외 쳐도 귀신들만 보고 사람들은 모 르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게 외쳤다.
“전주에 사는 김성수 어른 따라 온 분! 잠시 이야기 좀 하죠!”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도를 걸었다. 그렇 게 병원을 다니며 소리를 지를 때, 중년 귀신 둘이 슬며시 다가 왔다.
“저기……
그 두 귀신을 본 배용수가 물었 다.
“전주에서 오셨어요?”
“김성수 씨가 전주에서 오신 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런데 저희를 왜?”
귀신 둘이 의아한 듯 배용수를 보는 사이, 강진이 그 둘을 보았 다.
중년인 한 명은 정장 차림이었 고, 다른 한 명은 좀 후줄근한 차림이었다. 특히 후줄근한 차림 의 남자는 얼굴이 아주 마른 것 이 보기 좋지 않았다.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인사를 하자 두 귀신이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 강진을 보 고 놀라는 것이다.
‘역시나……
늘 같은 패턴에 강진이 배용수 를 보자, 그가 빠르게 상황을 설 명했다. 배용수도 이런 패턴을 자주 겪어봤기에 말하지 않아도 바로 진행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돼서 여기 강진이 는 두 분을 보고 말을 할 수 있 는 겁니다. 자! 설명 끝!”
랩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설명 을 마무리한 배용수가 그 둘을 보았다.
“더 궁금하신 점?”
“정말 귀신을……
“네. 귀신을 보고 듣고 이야기 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 문요? 아! 그리고 저승식당이라 는 것도 진짜입니다.”
배용수는 귀신들이 자주 했던 질문들을 떠올리며 다 듣지도 않 고 바로 답을 했다. 그런 배용수
를 보며 강진이 웃었다.
“다 진짜입니다. 그러니 제가 두 분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거 겠죠.”
“아……
강진의 말에 두 귀신은 이 상황 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그를 보았다.
“제가 두 분을 보고자 한 건…… 김성수 어르신과 함께 오 셨다고 하던데요.”
“아…… 그런데 그쪽은 어떻게
어르신을 아십니까?”
“황민성 씨가 저희 형입니다.”
“아! 황 사장 동생들이군요.” 말을 하던 귀신이 문득 배용수
를 보았다.
“ 그쪽은?”
“저도 민성 형 동생입니다.”
“설마? 황 사장도?”
“그건 아닙니다. 그냥 저희 쪽 에 대해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귀신들에 대해 아신다고요?”
“네.”
“허!”
황당한 듯 웃음을 터뜨린 귀신 이 강진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 다. 귀신들에게 밥을 해 준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는 게 뭔 대순 가 싶은 것이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왜 어르신의 옆에 계신 겁니까? 수호령은 아니신 것 같 은데?”
강진의 물음에 귀신 둘이 서로
를 보고는 쓰게 웃었다.
“저희는 수호령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어르신 따라다니세 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도 눈을 찡 그리며 말했다.
“귀신이 따라다니면 사람 몸에 안 좋은 건 아시죠?”
“압니다.”
답을 하던 정장 차림의 귀신이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괜찮습니다.”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았다. 무슨 의미냐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에 귀신이 웃으며 말했 다.
“어르신은 기가 강해서 그런지 귀신들이 접근을 못 하더군요.”
“접근을 못 해요?”
“네.”
“두 분은 가까이 있으셨다고 하 던데?”
“그냥 근처에 있었던 거지, 가 까이는 아닙니다. 한……
귀신은 강진을 바라본 채 뒤로 세 걸음 정도 떨어져서는 말했 다.
“이 거리 이내로는 못 다가갑니 다. 그래서 귀신들 기운에도 영 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요?”
말을 하며 강진이 배용수를 보 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고개 를 저었다.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
배용수의 말에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저희가 어르신 옆에 있 어도 괜찮습니다.”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들을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둘의 말을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김소희에게 물어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황민성처럼 귀신들에게 영향을 안 받는지 말 이다.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데 두 분은 왜 어르신 옆 에 있는 겁니까?”
강진의 말에 귀신 둘이 서로를 보고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저희 소개부터 하겠습니 다. 저는 이충만이고, 여기 있는 친구는 서성식입니다.”
“저는 이강진이고 여기 있는 친 구는 배용수입니다.”
강진이 자신과 배용수를 소개하 자, 이충만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갑습니 다.”
인사를 나눈 이충만은 작게 한 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저하고 성식이는…… 어르신에 게 은혜를 크게 받았습니다.”
“은혜요?”
“살아서는 몰랐다가 죽어서야 알게 됐습니다. 어르신이 저희에 게 많은 것을 해 주셨다는 것을 요.”
이충만의 말에 서성식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그래서 어르신에게 은혜를 갚 고 싶어서 옆에 있습니다.”
“은혜를 갚고 싶어도 두 분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나요?”
강진의 말에 이충만이 쓰게 웃 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은혜를 갚 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네 요.”
이충만이 고개를 젓는 것에 서 성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음에는…… 저희 같은 귀신 들한테서 어르신을 지켜드리려고 했습니다.”
“‘저희 같은 귀신’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서성식 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어르신에게 해코 지하려고 찾아갔거든요.”
“해코지?”
“그때는 어르신 때문에 제 인생 이 망했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강진이 보자 서성식이 작게 고 개를 저었다.
“저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었는 데, 급전이 필요한 찰나 은행에 서 대출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이 어떻게 아셨는지 저에 게 대출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 서 그걸로 부도 막고 사업이 잘 됐습니다. 뒤늦게나마 돈을 갚으 려고 했더니 나중에 더 잘 되면 갚고 지금은 이자나 내라고 하시 더군요.”
사업이 잘 됐다는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사업이 잘 된 공장 사장님 치고는 복장이 허름했다.
“그럼 잘 되신 건데…… 왜 인 생이 망했다 생각을 하셨어요?”
“ 그게......"
서성식이 한숨을 쉬자, 이충만 이 말했다.
“이 친구가 강원랜드에 발을 디 뎠거든요.”
“강원랜드요?”
강진이 눈을 찡그리자, 서성식
이 입맛을 다셨다.
“친구 녀석하고 강원도에 갔다 가 한 번 가 보자고 해서 갔는 데…… 하아!”
한숨을 쉰 서성식이 말을 이었 다.
“십만 원이 천만 원이 됐습니 다.”
“십만 원이 천만 원?”
강진이 놀라 보자 서성식이 고 개를 저었다.
“그냥 재미로 십만 원만 바꿔서 했는데…… 그게 불행의 시작이 었습니다.”
“초보자의 행운 같은 건데, 이 친구가 그걸 몰랐던 거죠.”
“맞습니다. 그걸…… 몰랐습니 다. 대신 돈 따는 재미를 알게 돼 버린 거죠. 바보처럼…… 제 가 돈을 따면 누군가는 돈을 잃 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겁니 다. 그런데 그때는 제 눈에 돈을 따는 사람들만 보이더군요.”
서성식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젓자 이충만이 말했다.
“그걸 모른 이 친구가 그거에 재미가 들려서 강원랜드에 가끔 씩 갔고, 그럴 때마다 돈을 날리 다 보니…… 패가망신한 겁니 다.”
“그런데 왜 그걸 어르신 탓으로 하신 건가요?”
“어르신이…… 제 공장을 강제 로 인수했거든요.”
“ 인수?”
“그때는 뺏겼다 생각을 했는
데…… 지금 생각을 해 보면 저 를 버리고 제 가족을 지켜 주신 겁니다.”
서성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도박에 미친 저라는 사람한테 서 제 가족들을 지켜 주신 겁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