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화
강상식의 얼굴에 드러난 두려움 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걱정하신 거예요?”
“가끔 너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 는 거 보면 좀 그래. 그리고 너 가끔씩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척 하면서 말하기도 하잖아.”
“어?”
강진은 놀란 듯 그를 보았다.
가끔 배용수와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핸드 폰을 꺼내 통화를 하는 척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강상식이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형이 안 물어보려고 했는 데…… 오늘 민성 형도 그러는 거 보니 이젠 물어봐야 할 것 같 았어.”
강상식의 말에 그를 보던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형수 애기 낳은 좋은 날이니…… 그 이야기는 내일 해 드릴게요.”
“그럼 뭔가 있기는 하다는 거 네.”
“내일 다 이야기해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그를 보 다가 물었다.
“나쁘거나 한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조 금…… 황당한 일이에요.”
“ 황당?”
“내일 이야기해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씻었다. 그런
강상식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형 좋아하는 소설 있어요?”
“소설?”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 소설 같
은 거요.”
“형 그런 소설 안 보는데.”
“안 봐요? 어릴 때도 안 보셨어
요? 보통 중고등학생 때 조금씩 은 보는데?”
“나는 그때…… ‘전쟁과 평화’나
‘백 년의 시’ 그런 거 읽었지.”
“오! 전쟁과 평화도 보셨어요?”
“형 세계 문학 많이 읽었어.”
말을 하던 강상식이 피식 웃었 다.
“러시아 소설이 읽기 정말 힘들 었는데.”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이름 때문에?”
“너도 그랬어?”
“저도 그랬어요. 무슨 놈의 이 름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어.”
강진의 말에 강상식도 동감이라 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름 외우는 것이 공식 외우는 것 같더라.”
웃으며 맞장구치던 강상식은 강 진을 데리고 산부인과 회복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VIP 회복실이라 그런지 무척 아늑하게 보이는 곳에 김이슬이 초췌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황민성이 그녀 의 손을 잡고 있었고, 김성수는 웃으며 딸을 보고 있었다.
방에 강진과 강상식이 들어오자 황민성이 그 둘을 보고는 말했 다.
“강진이 어디 갔다 왔어?”
“아는 분을 만나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김이슬에게 다 가갔다.
“형수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 다.”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렇게 늦게 까지 있어서 어떡해요. 내일 일 어떻게 하려고요.”
“잠이야 나중에 푸욱 자면 되니 괜찮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다.
“젊어서 자는 잠이야 줄이면 되 니 걱정하지 말아요.”
황민성의 말에 미리 와 있던 문 지나가 말했다.
“그럼 두 사람 얼굴 봤으니 언 니는 좀 쉬세요. 저희 갈게요.”
“벌써 가게?”
얼굴 보자마자 간다는 말에 김 이슬이 묻자, 문지나가 웃었다.
“언니 쉬어야죠.”
그러고는 문지나가 옆에 와 눈 짓을 하자, 강상식이 고개를 끄 덕였다.
“형수님 순산 축하드립니다. 그 리고 지나 말대로 형수 쉬어야 죠. 며칠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강상식의 말에 김이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좀 더 있다 가라고 하고 싶지 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미 안해요.”
“미안하기는요. 형수 고생 많으
셨습니다.”
한 사람씩 인사를 마치고 나자 황민성이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 로 나왔다.
“지나 씨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웃으며 문지나가 강상식의 손을 잡았다.
“그럼 우리 갈게요. 우리가 빨 리 가야 민성 씨도 언니하고 편 히 쉬죠. 다음에 봬요.”
문지나가 바로 걸음을 옮기자, 그녀와 손을 맞잡고 있던 강상식 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걸음 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축하 인사라도 몇 마디 더 해 주고 싶었는 데…… 문지나의 말이 맞았다. 자신들이 일찍 가야 형수도 황민 성도 편히 쉴 수 있었다.
“형 내일 전화 주세요.”
“그래. 오늘 고맙다.”
황민성이 손을 흔들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형 순산 축하해요.”
“그래. 고맙다.”
강진이 강상식의 뒤를 따라가 자, 배용수가 그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형 순산 축하해요.”
배용수의 외침에 황민성이 웃으 며 손을 들었다.
“ 고맙다.”
“아침에 사람 보내세요. 형수
드실 미역국 진하게 끓여서 준비 할게요.”
“그래!”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던 황민 성은 강진과 배용수의 모습이 사 라지자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은 황민성은 어느새 잠 이 든 김이슬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김성 수를 보며 살며시 말했다.
“아버님, 집에 가서 좀 쉬시지 요.”
황민성의 말에 김성수가 잠시 김이슬을 보다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에서 자고 싶군.”
“불편하실 텐데요.”
“지금은 우리 딸 옆에 있고 싶 어.”
“알겠습니다.”
황민성은 김이슬을 잠시 보다가 소파로 가서는 앉았다. 마음 같 아서는 김이슬 손을 잡고 그 옆 에 앉아 있고 싶지만…….
‘지금은 아버님의 시간이지.’ 속으로 중얼거린 황민성이 눈을
감았다.
회복실을 나온 강진은 강상식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충으로 내려왔다.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 터 앞에 서 있는 김소희를 볼 수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던 건 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강상
식을 보았다.
“형은 택시 타고 가실 거예요?”
“그래야지. 너도 같이 타. 가는 길에 내려 주든지, 아니면…… 나하고 지나 씨 내리면 너 그거 타고 가.”
“형도 집에는…… 아.”
강진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두 분 타고 먼 저 가세요. 저 여기 화장실 좀 들렀다가 갈게요.”
“같이 가지.”
“아뇨. 먼저 가세요. 긴장이 풀 려서 그런지 아래도 풀리네요.”
강진이 웃으며 배를 문지르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 이따가 점심 좀 지나 서 가게 갈게. 그때 이야기하자.”
“그래요.”
강상식이 문지나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아마도 오늘 강상식은 문지나의 집에서 자고 출근을 할
모양이었다.
“부럽다.”
강상식과 문지나의 뒷모습을 보 던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회복실에는 안 계시던데 아기 들 보러 가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일찍 나와서 그런지 좀 작더군.”
“ 건강하겠죠?”
“건강하라고 내 축복을 내렸으 니 술 담배만 안 즐긴다면 건강 하게 살 것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무신의 축복도 술 담배는 못 이기나 보네요.”
“나 자신을 죽이는 칼을 입에 달고 사는데 건강하게 살 수 있 겠나.”
잠시 말을 멈췄던 김소희가 말 을 이었다.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고 해도 먹물 한 방울에 탁해지는 법일 세.”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가시죠.”
“먼저 가게. 나는 며칠 아기들 옆에 있을 생각이네.”
“알겠습니다. 형수님하고 아이 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손으로 눌렀다. 그대로 버튼이 눌리는 것에 강진이 슬쩍 주위를 보았다.
‘엘리베이터 귀신이라는 것이 사실 소희 아가씨 이야기 아니 야?’
아무도 없는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힌다는 도시 전설 과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던 강진 은 돌연 김소희를 불렀다.
“저 아가씨.”
“뭔가?’’
“아까 위에서 본 김성수 어른도 혹시 민성 형처럼 귀신의 영향을 안 받고 그러는 체질인가요?”
“그렇더군.”
“그래요?”
“황민성 체질은…… 사실 나로 인해 생긴 영향이 크네. 내가 주 시하는 자이니 일반 귀신들의 영 향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 지. 하지만 김성수는 다르네. 그 는 큰 사람이라 일반 귀신들이 영향을 줄 수 없네.”
“큰 사람은 귀신이 영향을 못 주는군요.”
사람의 체격이 커서 큰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큰 사람이라 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큰 사람들은 귀신에게 영향을 받지 않네. 대통령처럼 말이네.”
“하긴, 대통령 같은 사람이 귀 신에게 영향을 받아서 아프거나 하면 큰일이기는 하겠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맞네. 그리고…… 그런 사람에 게 영향을 줄 정도로 심한 원한 령 같은 경우는 나 같은 이들이 나서기도 하지.”
‘귀신계의 경찰 역할도 하시는 구나.’
강진이 웃으며 보는 것에 김소 희가 말했다.
“더 물을 것이 있나?”
“조카들하고 좋은 시간 보내세 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 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곧 혼자 닫히는 엘리 베이터 문을 보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목적지까지 부디 혼자 잘 올라 가세요.’
김소희가 탄 엘리베이터에 부디 다른 환자나 사람이 타지 않기를 바라며 강진은 몸을 돌렸다.
김성수는 김이슬을 보고 있었 다. 뒤에서는 어느새 잠든 황민 성이 작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리 고 있었고 말이다.
‘너희 엄마가 너 애 낳은 거 보 면…… 정말 기뻐했을 텐데.’
김성수는 김이슬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 듬었다.
“ O 으. ”
머리를 쓰다듬던 김성수는 김이
슬이 작게 신음을 토하는 것에 급히 손을 떼어냈다. 김이슬이 깨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말이
다.
가만히 김이슬을 보던 김성수는 시계를 보았다. 그러다가 몸을 일으켜서는 조용히 회복실을 나 섰다.
회복실을 나온 김성수가 주위를 둘러보자 복도 한쪽에서 정장을 입은 중년인이 서둘러 다가와 고 개를 숙였다.
“운암정에 이야기했나?”
“숙수님께서 기다리겠다고 하셨
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김성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회복실 을 보았다.
“김 숙수에게 전화 좀 걸게.”
김성수의 말에 중년인이 핸드폰 을 꺼내 김봉남에게 전화를 걸고 는 내밀었다.
“김 숙수, 날세. 나 때문에 밤잠 설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그 래. 쌍둥이는 잘 낳았네. 그리
고.. 미안한데 오늘 가기로 한
거 다음으로 해야겠네. 따로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 말이네. 그 래. 편히 쉬고 애 몸 좀 나아지 면 한번 데리고 가겠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김성수가 핸드폰을 내밀자, 중년인이 그것 을 받았다.
“한끼식당으로 가세.”
“알겠습니다.”
왜 가는지 같은 건 묻지 않은 중년인이 앞장을 서자, 김성수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잠을 자고 있던 강진은 누군가 자신을 흔드는 것에 눈을 떴다.
“옹? 뭐야?”
자신을 흔드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졸린 눈을 비빌 때, 그가 말했다.
“밑에 어르신 와 있어.”
“어르신? 누구?”
“형수 아버님.”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멍한 눈 으로 그를 보았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는 눈이었다.
툭툭툭!
배용수가 몸을 가볍게 때리자 강진은 이게 생시라는 것을 알고 는 급히 일어났다.
“그럼 밖에 있으셔?”
“아니. 내가 문을 열어 줬어. 아 직 새벽에는 추워.”
강진이 급히 일어나 방을 나서 는 것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부엌에서 내가 미역국 끓이던 중이라서 아마 너 잠시 위에 올 라갔다 온 줄 아실 거야.”
“그래?”
“눈곱은 떼고 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가볍게 세수를 하고는 밑 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