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화
1층으로 내려온 강진은 자리에 앉아 있는 김성수와 낯선 중년 남성을 볼 수 있었다.
‘비서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주위 를 보았다.
“그 귀신 둘은 안 따라왔더라.”
뭘 찾는지 안 배용수가 말을 해 주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성수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강진의 부름에 김성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 는데…… 어디 갔다 왔나?”
“이 층에서 잠시 세수 좀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어 떻게…… 혹시 형수한테 무슨 일 이라도?”
“아닐세.
그러고는 김성수가 주방 쪽을 보았다. 주방에서 나는 미역국 향에 김성수가 강진을 보았다.
“이슬이 먹을 미역국을 끓이는 건가?”
“네.”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잠 못 잤을 텐데 고맙 군.”
김성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배용수를 보았다. 그가
받아야 할 칭찬을 자신이 받았으 니 말이다.
그 모습에 배용수가 웃으며 강 진의 어깨를 두들겼다.
“괜찮아. 누가 했든 형수가 잘 먹으면 되는 거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성수를 보았다.
“형수는 좀 어떠세요?”
“푸욱 자는 거 보고 나왔네.”
“다행이네요. 그런데 혹시 식사
하러 오셨어요?”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저으며 주방을 보다가 말했다.
“애를 낳으면…… 역시 미역국 을 먹어야 하지.”
“그래서 끓이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끓여도 되겠나.”
“어르신이요?”
강진의 물음에 김성수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쇼핑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내가 끓여 주고 싶어서 왔네.”
“아……
강진은 쇼핑백을 보다가 손을 내밀어 그 안을 보았다. 안엔 마 른 미역이 들어 있었다.
“미역 좋다.”
옆에서 같이 안을 보던 배용수 가 미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곽도 미역이네.”
“곽도 미역?”
강진이 중얼거리자 김성수가 고 개를 끄덕였다.
“재료를 볼 줄 아는군.”
“아......" 네.”
“곽도 미역이 아주 좋다고 해서 이걸로 준비했네.”
그러고는 김성수가 강진을 보았 다.
“그래서 내가 미역국을 끓여도 되겠나?”
김성수의 말에 강진이 힐끗 배 용수를 보았다. 이미 미역국을 배용수가 끓였으니 말이다.
그에 배용수가 웃었다.
“내가 끓인 것보다 아버지가 끓 여 준 미역국이 더 좋지. 일단 아버지가 직접 끓인 미역국이잖 아.”
서운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 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김성 수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미역국 끓
이실 줄 아세요?”
“알고 있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강진이 주방으로 안내하자, 김 성수가 주방에 들어왔다. 그는 한쪽에 끓어오르고 있는 미역국 을 보고는 말했다.
“자네가 끓인 건 미안하지만 다 음에 줘야겠군.”
“괜찮습니다. 형수님도 제가 한 미역국보다 아버지가 끓여준 미 역국을 더 맛있어하실 겁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 성수가 쇼핑백에서 미역을 꺼내 들고는 강진을 보았다.
“미역 불릴 그릇 하나 주게.”
강진이 그릇을 주자, 김성수가 미역을 그 안에 넣고는 물을 틀 었다.
“저게 곽도 미역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저게 진짜 좋은 미역이거든.”
“ 비싸?”
강진이 작게 입모양으로 말하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건 백만 원도 넘 지.”
백만 원이라는 말에 강진이 놀 란 눈을 하자, 배용수가 말했다.
“물 좋고 조류가 빠른 곳에서 자라서 질이 아주 좋아. 그리고 돈이 있어도 수량 없으면 못 사.”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미역을
보았다.
사실 강진의 눈에는 그냥 일반 미역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는 데, 그렇게 좋다고 하니…… 색 이 조금 더 밝고 맑아 보였다.
미역을 물에 담근 김성수가 쇼 핑백에서 봉지를 하나 꺼냈다. 그 봉지를 풀자 쌀이 모습을 드 러냈다.
“쌀도 가져오셨어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 성수가 통에 쌀을 붓고는 물을
틀고 씻었다. 그러다 뽀얀 쌀뜨 물을 버린 김성수가 한 번 더 쌀 을 씻고는 그 물을 따로 받았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물을 담은 김성수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강진을 보았다.
“미역을 볶을 때 참기름을 넣 나, 들기름을 넣나?”
“들기름을 넣고 볶습니다.”
“아! 맞아. 들기름이었어.”
고개를 끄덕인 김성수가 미역을 보았다. 미역이 불기를 기다리는
김성수를 보던 강진은 힐끗 끓고 있는 미역국을 보았다.
배용수가 끓이던 미역국은 다 된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미역 국을 그릇에 담았다.
‘조개 미역국이네.’
조개 미역국을 한 그릇 담은 강 진이 김성수에게 내밀었다.
“서서 드시라고 하기는 그렇지 만 조금 드셔 보시죠. 따뜻해서 속에 좋을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미역국을
받았다. 그러더니 후후 불어서는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맛이 좋군.”
미역국을 한 번 더 마신 김성수 가 강진을 보았다.
“조개 미역국이라 기름지지도 않고 개운하군.”
“힘 쏟아서 힘드실 텐데 소고기 미역국은 속에 안 좋을 것 같아 서 조개 미역국으로 했습니다.”
배용수가 하는 말을 강진이 그
대로 읊자, 김성수가 미소를 지 었다.
“마음 써 줘서 고맙군.”
그러고는 김성수가 불고 있는 미역을 손으로 휘저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음식을 좀 하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성수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음 식이…… 미역국이네.”
말을 한 김성수가 작게 웃으며 미역을 손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물론…… 해 본 것은 몇 번 안 되지만.”
미역을 손으로 흔들던 김성수가 강진을 보았다.
“이슬이가 자네 이야기를 자주 했었네.”
“좋은 이야기였겠죠?”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야기였네. 자네를 알게 되고…… 좋았다고 했네. 자네는 따뜻한 음식을 해 준다고 하더 군.”
“맛있는 음식도 하고 있습니 다.”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미역국 먹으니 맛있군.”
김성수는 부풀어 오른 미역을 집어 그릇에 담으려다가 강진을 보았다.
“지금…… 된 건가?”
김성수의 물음에 강진이 미역을 보다가 말했다.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 다.”
“아……
김성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 시 미역을 물에 담갔다.
“그런데…… 정말 해 보신 적이
별로 없으신가 보네요.”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잠시 미
역을 보다가 말했다.
“아내가 죽기 전에 알려줬네. 나중에 이슬이 아이 낳으면…… 나 대신 미역국을 꼭 끓여 주라 고.”
“그렇군요.”
“내가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면 조금이라도 더 잘 끓여 줬을 텐 데…… 지금은 아내가 알려 준 레시피가 잘 기억이 안 나는군.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끓여 볼 것을 그랬어.”
김성수는 작게 웃으며 배용수가 끓인 미역국을 후루룩 한 모금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미안한데 우리 강 비서한테 밥 좀 차려 주겠나?”
“알겠습니다.”
김성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 그릇에 담은 뒤 미역국과 밥까지 챙겨 홀로 나왔다.
그러고는 입구에 서 있는 중년 인에게 말했다.
“여기 와서 식사 좀 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어르신이 비서님 식사 챙겨 드 리라고 하시던데요.”
강진의 말에 중년인이 더는 말 을 하지 않고 식탁에 앉았다. 그 에 강진이 음식을 깔고는 말했 다.
“국이나 밥 부족하시면 말씀하 세요.”
“감사합니다.”
중년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김성수는 미역을 손으로 휘젓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말 했다.
“이제 다 된 것 같습니다.”
김성수가 미역을 건져 내자, 강 진이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 고는 그 옆에 들기름을 놓았다.
그 사이 미역을 털어 물기를 없 앤 김성수가 냄비에 그것을 부었 다.
‘으.. ’
원래라면 들기름을 먼저 두르고 그 위에 미역을 넣어야겠지 만…… 강진은 말을 하지 않았 다.
이건 요리사가 하는 미역국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는 미역국이 니 말이다.
가스 불을 켠 김성수가 주걱으 로 미역을 휘저었다. 그렇게 어 느 정도 미역을 볶은 김성수가 강진을 보았다.
“이 정도면 될까?”
“조금 더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요.”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미역을 마저 볶았다. 그리고 다시 보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김성수가 받아 놓은 쌀뜨물을 부 었다.
촤아악
쌀뜨물을 넣고 미역국을 끓이는 건 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기 에 그저 말없이 지켜보던 강진은
문득 물었다.
“어르신……
“어르신 말고 아버님이라고 부 르게나. 이슬이가 자네를 동생처 럼 여기니 말이네.”
“아버님 근데 고기나 조개 뭐 안 넣으세요?”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저었다.
“먼저 간 아내가 그냥 쌀뜨물만 넣고 간해서 푸욱 끓여 주라고 하더군.”
잠시 말을 멈춘 김성수가 미역 국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슬기는…… 이거 좋아한다고.”
김성수의 말에 강진이 미역국을 보았다.
부글부글!
쌀뜨물을 넣고 끓이는 미역국은 마치 사골을 끓인 것처럼 뽀얀 국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 던 김성수가 주위를 보다가 한쪽 에 있는 간장을 집었다.
“아!”
강진이 놀란 듯 탄식을 토하자, 김성수가 그를 보았다.
“왜 그러나?”
“그거…… 국간장이 아닌데요.”
“옹?”
“국물 요리에는 이 국간장을 쓰
셔야 합니다.”
“아……
김성수는 자신이 들고 있는 간 장을 보다가 그것을 놓고는 강진 이 주는 국간장을 받아서는 끓고
있는 미역국에 조금씩 넣었다.
그러면서 얼마나 더 넣어야 하 냐는 시선을 보내는 김성수를 보 며 강진이 조금 더 넣으라는 시 늉을 하고는 말했다.
“그…… 몇 번 해 보셨다고.”
“버렸지.”
“아.. ”
“못 먹겠더라고.”
입맛을 다신 김성수는 간장을 넣고 잠시 있다가 말했다.
“천일염이……
어디 있나 찾는 듯한 소리였지 만, 가져오라는 의미였다.
그에 강진이 굵은소금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김성수가 소금을 수저로 조금 퍼서는 미역 국에 넣었다.
그리고 몇 번 휘젓고는 간을 보 았다. 좀 싱거운지 그는 소금을 더 넣으려 했다. 그 모습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끓어오르는 중이니 조금 있다
가 간을 보시고 넣으시죠.”
“그런가?”
“끓으면서 간이 바뀌니까요.”
강진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역국을 보았다.
“음…… 맛있었으면 좋겠군.”
“형수님 입에는 맛이 있을 겁니 다.”
“그랬으면 좋겠군.”
김성수의 말에 강진이 미역국을 보다가 말했다.
“어머니께서 형수님 걱정을 많 이 하셨나 보네요.”
“자식 남기고 가는 부모 심정이 야…… 흠……
작게 한숨을 쉰 김성수가 말했 다.
“마누라가 그러더군. 자기가 못 해 주니 이슬이 애기 낳으면 꼭 내가 해 주라고.”
잠시 미역국을 보던 김성수가 말했다.
“자네 운암정 아나?”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거기에 부탁을 했네. 나 혼자 미역국을 만드는 건 아 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서 김 숙 수 도움을 받으려고 말이야.”
강진이 보자 김성수가 말을 이 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 이 슬이가 자네 음식을 자주 먹었으 니, 자네가 있는 곳에서 하는 것 이 더 나을 것 같더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형수
님 입맛을 잘 알거든요.”
강진은 씻어 놓은 쌀을 보았다.
“그럼 밥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요?”
“아! 그렇지.”
강진은 김성수에게 밥하는 방법 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 그대로 김성수가 밥을 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