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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11화 (809/1,050)

811 화

아침 햇살에 눈을 뜬 김이슬은 입맛을 다셨다. 입이 쩍쩍 마르 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주위를 둘러보던 김이슬은 고개 를 살짝 들어 소파에서 자고 있 는 황민성을 보았다.

“민…… 흠!”

목이 잠기는 것에 김이슬이 잠 시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민성…… 씨.”

김이슬의 부름에 자고 있던 황 민성이 벌떡 일어났다.

“어? 어!”

급히 다가오는 황민성의 모습에 김이슬이 웃었다. 자던 중에도 자신의 작은 목소리에 반응하는 황민성에 기분이 좋았다.

“ 괜찮아요?”

“괜찮아요. 근데 저 물 좀.”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한쪽에

있는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과 찬 물을 번갈아 받아서 가지고 왔 다.

“나 시원한 물 마시고 싶은데.”

살짝 김이 올라오는 물에 김이 슬이 중얼거리자, 황민성이 말했 다.

“보통 이럴 때는 찬물보다는 따 스한 물 마시는 것 같아서요. 이 따가 의사한테 물어봐서 찬물 줄 게요.”

황민성의 말에 김이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 다.

“천천히 마셔요.”

“네.”

물을 한 모금 마신 김이슬이 주 위를 보았다.

“아버지는요?”

“글쎄요. 어디 나가셨나?”

황민성이 주위를 둘러보자, 김 이슬이 물 컵을 내밀었다.

“잠시 나가셨나 보죠.”

그러고는 김이슬이 침대에 다시 눕자, 황민성이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더 자요.”

“당신 오늘 출근은요?”

“오늘 같은 날이야 당연히 쉬어 야죠.”

“그래도 괜찮겠어요?”

“나 없어도 회사 돌아가라고 직 원들을 뽑은 걸요.”

웃는 황민성을 보며 김이슬이 말했다.

“어머니에게 저 애 잘 낳았다고 연락했어요?”

“했어요. 이따 아홉 시 넘어서 오실 거예요. 너무 이르면 당신 피곤할 것 같아서 아홉 시 넘어 서 오시라고 했어요.”

“고마워요.”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어요.”

황민성의 말에 김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정말 힘들었어요.”

김이슬이 애교를 피우는 것에 황민성이 웃었다. 김이슬은 이런 애교를 피운 적이 한 번도 없었 던 것이다.

“그래요. 정말 많이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어요.”

두 사람이 그렇게 시간을 보낼 때,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김성수였다.

“아버님.”

황민성이 일어나자, 김성수가

고개를 저었다.

“앉아 있게.”

그러고는 김성수가 김이슬을 보 았다.

“아직 아침 안 먹었지?”

“네.”

“그럼 밥부터 먹자꾸나.”

“제가 주문하겠습니다.”

황민성이 인터폰을 잡으려 하자 김성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져왔네.”

김성수가 가져온 쇼핑백을 들어 보이자, 황민성이 침대에 있는 식탁을 잡아당겨 세웠다.

황민성이 식탁을 세우자 김성수 가 그 위에 쇼핑백을 올렸다. 그 것을 본 김이슬이 미소를 지었 다.

“밥 사러 나갔다 오신 거예요?”

김이슬의 말에 김성수는 말없이 쇼핑백에서 그릇들을 꺼내 놓았 다. 그가 반찬과 밥뚜껑을 여는 것을 보던 김이슬이 문득 말했 다.

“응? 이 계란말이

당근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계 란말이의 모습에 황민성이 말했 다.

“왜, 이상해요? 예쁜데?”

“그게 아니고 강진 씨네 계란말 이 같아서요.”

“그래요? 그냥 계란말이 같은 데?”

그 차이를 잘 모르는 황민성이 의아한 듯 계란말이를 보자 김이 슬이 말했다.

“강진 씨 가게에서 먹은 것 같 은데……

김이슬의 말에 김성수가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강진이 가게에서 가져온 거 다.”

“아버님 거기까지 가서 음식을 사 오신 거예요?”

황민성이 놀란 듯 보자, 김성수 가 말없이 보온 통을 꺼냈다.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하지.”

김성수는 쇼핑백에서 국그릇을 꺼내다가 말했다.

“뜨거운 물을 좀 가져오게나.”

“알겠습니다.”

황민성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 을 담아 오자, 김성수가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러고는 좌우로 몇 번 흔들더니 컵에다 물을 부었다.

그런 뒤 보온병 안에 있던 미역 국을 데워진 국그릇에 담았다.

주르륵!

미역과 국물이 따라지는 것에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세심하시네요.”

그릇이 차가워서 미역국이 식을 까 싶어 그릇을 따뜻하게 만들어 서 따르는 것이니 말이다.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게 먹어 야 하니까.”

그러고는 김성수가 미역국을 김 이슬 앞에 놓았다.

“수고했다.”

김성수의 말에 김이슬이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다는 한 마디가 무척 따스하고 기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김이슬은 아버지가 손수 따라준 미역국을 보았다.

“미역국이네요.”

“애 낳으면 미역국을 먹어야 지.”

“그렇죠.”

김이슬은 미역국을 보며 웃었 다.

“정말…… 애 낳고 미역국을 꼭 먹고 싶었어요.”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았다. 그냥 가볍게 하는 말 같 았지만 그 말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애를 가지지 못해서 가 졌던 고민과 걱정 말이다.

‘미안해요. 내가 못나서.’

황민성이 속으로 사과를 할 때,

김이슬이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 서 먹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 웃거렸다.

“ 응?”

“왜요?”

황민성이 의아한 듯 보자, 김이 슬이 다시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서 먹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맛이 강진 씨 손맛이 아닌데 요.”

“왜요? 맛 이상해요?”

“그게…… 살짝 싱거운데…… 강진 씨 간 잘 맞추는데……

“출산해서 음식을 좀 싱겁게 한 모양이죠.”

황민성의 말에 김이슬이 그런가 싶어 고개를 끄덕일 때, 김성수 가 말했다.

“미역국 내가…… 했다.”

김성수의 말에 김이슬이 그를 보았다.

“네?”

“미역국하고 밥…… 내가 했 다.”

“아버지가?”

김성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어떠니?”

김성수의 말에 김이슬은 놀람과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평생 주방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던 분이…… 미역국을 끓였단 다.

“미역국 끓이려고…… 나갔다 오신 거예요?”

김이슬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들을 가리켰다.

“내가 한 건…… 미역국과 밥이 고 나머지는 강진이가 챙겨 줬 다.”

김성수의 말에 김이슬이 미역국 과 밥을 보았다.

“밥도…… 하셨어요?”

“밥…… 괜찮게 됐다고 하던데. 혹시 이상하니?”

“아니요…… 밥 잘 됐어요.”

김이슬은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먹었다. 그러고는 미역국도 먹다가 문득 멈췄다. 잠시 미역 국을 보던 그녀는 김성수를 보았 다.

“혹시…… 이거 엄마가 알려 줬 어요?”

“엄마 손맛인데 기억이 나니?”

김성수의 말에 김이슬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역국을 보았다.

“엄마가 기름기를 싫어해서 그 냥 쌀뜨물만 넣고 미역국을 끓였

잖아요. 국간장하고 소금만 넣 고.”

김이슬의 말에 김성수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네 엄마가 어느 날 그러더구 나.”

김이슬이 보자, 김성수가 말을 이었다.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 지…… 어느 날 나한테 미역국 끓이는 것을 알려주더구나.”

“어머니가요?”

김이슬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말 그대로 옛날 사람이었다. 남자는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생각 을 가진 그런…….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주방 에 못 들어오게 했다. 물론 어머 니가 그러지 않아도 아버지는 주 방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미역 국을 끓이는 것을 알려 주었다 니…….

“네 엄마가 그러더구나. 나중에

이슬이 아이 낳으면 미역국은 꼭 내가 끓여 주라고.”

“ 엄마가요?”

“아마도 네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을 때 자기가 미역국을 못 끓여 주는 것이 걸렸나 보더구 나.”

“아……

김이슬이 작게 신음을 토하며 미역국을 보자, 김성수가 말했다.

“엄마가 해 준 것에 비하면…… 못 하겠지만 엄마가 해 줬다 생

각하고 맛있게 먹거라.”

김성수의 말에 김이슬이 작게 숨을 토했다.

“후우!”

잠시 미역국을 보던 김이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엄마…… 나 미역국도 못 먹을 까 봐 걱정을 한 거야?”

미소를 짓던 김이슬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또르르 홀러내 렸다.

톡! 톡! 톡!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 을 보던 김성수가 입을 열었다.

“네 엄마가 잘 알려 줬는데…… 그 맛이 제대로 나는지 모르겠 다.”

“아니야…… 엄마가 해 준 것처 럼 너무 맛있어. 고마워. 아빠.”

김이슬의 고맙다는 말에 김성수 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행이다. 많이 먹어.”

"응."

흐.

김이슬이 눈가를 닦으며 미역국 을 먹는 것에 황민성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김이슬이 먹는 것을 지켜보던 황민성은 문득 김 성수를 보았다.

‘장모님은  승천을 하신 건 가?’

혹시 수호령으로 남아 있다면, 강진의 가게에서 사위가 식사도 대접하고…… 한 번도 하지 못한 절도 드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귀신으로 남아 계신 것보단 승 천을 하신 것이 가장 좋겠지.’

그리고 김성수 옆에 장모님이 남아 계셨다면 강진이 이미 말을 해 줬을 것이었다.

황민성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톡톡톡!

노크 소리에 김이슬과 김성수가 문을 보자, 황민성이 말했다.

“의료진인 모양입니다. 들어오 세요.”

드르륵!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휠체 어를 탄 조순례와 장 여사였다. 의료진이 아니라 어머니인 것에 황민성이 급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 왜 이렇게 일찍 오셨 어요?”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홉 시 넘으면 밥이 늦잖아.”

말을 하며 조순례가 김성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셨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자 주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러 가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죄송은요. 제가 몸이 이래서 인사를 자주 못 드려서 죄송합니 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던 김성수 는 미소를 지으며 조순례를 보았 다.

“사돈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 아 다행입니다.”

전에 봤을 때는 자신을 알아보 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정신이 온 전해 보이니 말이다.

김성수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고개를 숙이다가 김이슬을 보았 다.

“밥 먹고 있었니?”

“네.”

“이런. 병원 밥 먹지 말고 집밥 먹으라고 미역국을 끓여 왔는

데.”

조순례의 말에 장 여사가 웃으 며 말했다.

“어머니가 새벽에 끓였어요.”

“어머니 피곤하실 텐데.”

“피곤하기는…… 병원 밥 먹지 말고 이거 먹으렴.”

조순례의 말에 장 여사가 보온 박스를 들고 오자, 황민성이 웃 으며 말했다.

“이거 병원 밥 아니에요.”

“응? 병원 밥이 아니야?”

“아버님이 직접 끓여 오셨어 요.”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김성수 를 보았다.

“사돈이 음식도 하셔요?”

“그게…… 아내가 죽기 전에 미 역국 끓이는 걸 알려주고 갔습니 다.”

“아......"

김성수의 말에 조순례가 미소를

지었다.

“안사돈께서 딸 해산하고 미역 국을 못 먹을까 걱정을 하셨나 보네요.”

김성수의 말에 안사돈의 마음을 바로 느낀 것이다.

“그런 듯합니다.”

말을 한 김성수가 조순례를 보 았다.

“이렇게 시어머니가 며느리 주 려고 미역국을 끓여 올 줄 알았 다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요.”

김성수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 렇게 자기 딸을 귀하게 생각하고 새벽에 미역국을 끓여 오는 시어 머니가 있는 줄 알았다면…… 아 내가 조금은 더 마음 편하게 갔 을 테니 말이다.

“내가 만든 미역국은 점심에 먹 어야겠다.”

조순례의 말에 김성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머니가 생각해서

만든 건데요. 그거 먹어야죠.”

“아니에요. 사돈이 만들었는데 그거 먹어야죠.”

“아닙니다. 우리 딸……

김성수는 미소를 지으며 김이슬 을 보았다.

“미역국 두 그릇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김성수의 말에 김이슬도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저 배고파서 미역국

세 그릇도 먹을 수 있어요.”

고생을 해서인지 입맛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자신을 생각해서 새 벽에 만든 미역국이었다.

그 마음을 생각한다면 두 그릇 이 아니라 세 그릇도 먹을 수 있 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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