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화
“저 귀신 봐요.”
강진이 장난으로 말하는 게 아 닌 것 같자…… 강상식이 굳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잠시 그러 고 있던 강상식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진심이지?”
“네.”
강진의 답에 강상식이 잠시 있
다가 말을 했다.
“그러니까…… 네가 귀신을 본 다는 거지?”
“네.”
“그럼…… 민성 형도 귀신을 보 는 거냐?”
황민성도 혼잣말을 할 때가 있 으니 말이다.
“민성 형은…… 귀신을 보기는 하는데 제가 뭔가를 줘야 볼 수 있어요.”
“뭔가? 그게 뭔데?”
“귀신들이 먹는 음식이 있어 요.”
“귀신들 먹는 음식?”
“그거 먹으면 잠깐 동안은 귀신 을 볼 수 있어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런 강상식의 모 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 다.
“좀 혼란스럽죠?”
“응? 응.”
“그런데 제 말을 믿으시네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잠시 있 다가 커피를 보았다.
“나 좀 먹자.”
“냉커피로 드릴까요?”
“아니야.”
강진이 잔을 밀자, 강상식이 그 것을 받아들고는 한 모금 마셨 다.
그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 싶
어서 마시는 게 아니었다. 뭔가 생각을 하기 위해 마시는 거였 다. 뭔가 생각을 해야 하거나 할 말을 떠올릴 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행위가 시간을 벌어 주니 말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상식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민성 형도 귀신을 본다고 하고 너도 본다고 하면……
강상식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 었다.
“그럼…… 믿어야지. 내가 좋아 하는 사람 둘이 동시에 같은 것 을 보고 있다는데. 근데…… 황 당하게도 이성적으로는 믿음이 가거든.”
“이성적으로요?”
“민성 형한테 물어봐야 알겠지 만, 네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 지는 않을 거야. 그럼 민성 형도 귀신을 본다는 거고. 그럼…… 이성적으로는 귀신이 있다는 게 맞지. 너나 민성 형이 미친 것도 아니니까.”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귀신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성적으로는 믿음이 안 갈 것이 다. 귀신이라는 건 판타지이니 말이다.
물론 강진에게는 현실이지 만…….
그러니 귀신을 본다고 하면 이 성적으로 말이 안 된다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지금 강상식은 반대로 이성적으로는 믿음을 가 지고 있었다.
강상식이 말을 한 대로 자신이 믿고 좋아하는 두 사람이 귀신을 본다고 하니 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 감정적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 이성적 으로 생각해 감정적으로 굴지 않 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강상식 은 반대였다.
혼란스러워하던 강상식은 아까 강진이 옆 테이블에 놓아둔 커피 들을 보았다.
꿀꺽!
‘그럼 저 커피잔 앞에 다 귀신? 귀신이 한둘이 아니야? 대체 귀 신이 몇이나 있는 거야? 넷?’
침을 삼키는 강상식의 모습에 강진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는 슬며시 말했다.
“형.”
“응? 응?”
“일단 좀 많이 놀랐죠?”
“ o 9 o ”
흐 으 흐.
“그런데 형 귀신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그…… 그래?”
“그럼요. 그냥 사람이 죽어서 된 것이 귀신일 뿐이에요. 그러 니 무서워하실 필요 없어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게…… 무서운 거야. 죽은 사 람이 니까.’
사람이 죽어서 무서운 것이다. 그냥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봐 도 무서운데, 그 죽은 사람이 귀
신이 돼 나타나다니…… 공포 그 자체였다.
여전히 표정이 안 좋은 강상식 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형 저 무서워요?”
“내가 너를? 안 무섭지.”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도 똑같아요. 그냥 제 친 구고 직원들일 뿐이에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슬쩍 빈
자리들을 보았다.
“직원‘들’……이면…… 귀신
이…… 여러 분이신 거지?”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자리를 가리켰다.
“이쪽은 이혜미 씨, 강선영 씨, 임정숙 씨. 그리고……
강진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 다.
“여기가 형이 그렇게 보고 싶고 인사하고 싶어 하던 배용수. 내 마누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 그렸다.
“이런 순간에도 장난을 하고 싶 냐.”
“장난은. 진심이지.”
배용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 지만, 강상식은 당황스러운 눈으 로 빈자리를 보았다.
자신의 긴장을 풀어 주려고 농 담을 한 거겠지만, 그런 농담보 단 자신이 귀신과 합석을 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용, 용수 씨가…… 귀신이었 어?”
“네.”
“그…… 그……
뭔가 말을 할 듯하던 강상식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그는 한 숨을 쉬고는 말했다.
“근데…… 정말 귀신이 있
는…… 거지?”
‘거야?’라고 하려다가 ‘거지?’로 끝내는 강상식의 모습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주방에서
고무장갑을 가지고 나왔다.
“이제 이 고무장갑이 허공에 뜰 거예요.”
“고무장갑이 뜬다고?”
“물론 그냥 뜨는 것이 아니라 용수가 잡고 드는 거죠. 그런데 형 눈에는 용수가 안 보이니 허 공에 뜬 것으로 보일 거예요. 눈 으로 직접 보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보세요.”
미리 설명을 한 강진은 강상식 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
었다. 잠시간 고무장갑을 보던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에 강진이 고무장갑을 배용수 에게 내밀었다.
“이제 받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무장갑 을 받았다.
스르륵!
허공에 뜬 고무장갑의 모습에 강상식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
다.
“ 떴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안 정시키기 위해 말을 했다.
“이제 용수가 여기 있다는 거 믿으시겠죠.”
강상식은 멍하니 허공에 뜬 고 무장갑을 보았다. 그런 강상식에 게 강진이 말했다.
“귀신이라고 무서워하지 마시 고…… 그냥 형하고 같은 시간대 에 만나지 못한 좋은 동생들이라
생각을 해 주세요.”
“좋은 동생들?”
“그래요. 그리고 그동안 형이 용수가 해 준 밥을 먹은 것이 몇 끼인데 이제 와 무서워하면 베]가 욕하지 않겠어요?”
강진은 편안하게 웃어 주며 말 했다.
“지금은 처음이라 무섭고 당황 스러운 거지, 알고 지내면 좋은 동생들이에요. 형 친한 동생 만 드는 거 좋아하잖아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배용수가 있는 곳을 보았다. 자신을 보는 시선, 아니 정확히는 고무장갑을 보는 강상식의 시선에 배용수가 일어났다.
흠칫!
고무장갑이 위로 붕 뜨는 것에 강상식이 흠칫할 때, 고무장갑이 주방에 들어갔다.
흔들흔들!
배용수의 손짓에 따라 고무장갑 이 앞뒤로 흔들리며 주방에 들어
가자 강상식이 뒤늦게 말했다.
“용수 씨 주방 들어간 것 같은 데 화난 거 아니지?”
“ 화요?”
“그…… 내가 불편해하니까.”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주방을 보았다.
“글쎄요.”
강진도 배용수가 왜 주방에 들 어갔는지는 모르니 말이다.
강진이 주방을 볼 때, 배용수가
비닐장갑과 태블릿을 들고 나왔 다. 허공에 비닐장갑과 태블릿이 떠서 오는 것에 강상식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저걸 왜?’
강상식이 의아한 듯 볼 때, 배 용수가 태블릿을 그 앞에 두고는 펜을 꺼내 화면에 글을 적었다.
〈늘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이렇 게 인사를 드리게 됐네요. 안녕 하세요. 저는 배용수입니다.〉
태블릿 펜이 움직이며 글자가 써지는 것을 강상식이 멍하니 보 았다.
‘귀신이…… 태블릿을 쓰네?’
스륵!
글을 다 쓴 배용수가 화면을 돌 려 그가 잘 볼 수 있게 해 주었 다.
“배용수…… 씨?”
강상식이 작게 중얼거리자, 배
용수가 웃으며 글을 적었다.
〈용수라고 불러 주세요. 강진이 형이면 저에게도 형이죠. 앞으로 동생처럼 여기시고 편하게 해 주 세요. 저도 앞으로 형님으로 모 시겠습니다.〉
배용수가 쓴 글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그래요. 용수라고 불러 보세요. 앞으로 자주 보고 친해져야 할
텐데.”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잠시 글 을 보다가 작게 웃었다.
“귀신하고 친구라……
그런 강상식의 모습에 강진은 속으로 안도를 했다. 표정을 보 니 조금 긴장과 거리감이 줄어든 모양이었다.
배용수가 직접 글을 쓰는 것을 보니 귀신에 대해 믿음이 가고, 자신에게 형이라고 하는 것을 보 고 거리감도 줄어든 것 같았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강상 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비닐장갑을 낀 배용수를 향해 손 을 내밀었다.
“방금 전에 내가 한 말 마음에 두지 마. 많이 놀라서 그런 거니 까. 그래. 네 말대로 강진이 친구 면 나한테는 동생이지. 앞으로 잘 지내보자.”
바로 편하게 말을 놓는 강상식 의 모습에 배용수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자신의 손에 잡히는 비닐장갑과
그 안에 느껴지는 손의 감촉에 강상식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
‘이게 귀신의 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생각을 했지만, 막상 악수를 하니 조 금…… 무섭단 생각이 다시 드는 것이다.
한편, 악수하는 둘을 지켜보던 강진이 속으로 웃었다.
‘하여튼 형이라는 소리 정말 좋 아한다니까.’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옆
에 있던 이혜미가 주방에 가서 비닐장갑을 들고 와서는 배용수 가 적은 글 밑에 글을 적었다.
스르륵! 스르륵!
펜이 글을 적어 가는 것에 강상 식이 화면을 보았다.
‘여자?’
강상식은 방금 전 배용수가 적 은 것과 달리 조금은 둥글둥글한 필체로 적힌 글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혜미예요. 가게에서 자주 뵙는데 저도 이렇 게 인사를 드리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그 밑으로 강선영과 임정숙도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글을 보는 강상식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귀신이라고 해도 자신을 반갑고 친근하게 대하니…… 정에 굶주 린 강상식으로서는 그 정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 험!”
강상식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 강 상…… 아, 제가 누군지는 다들 아시죠. 음…… 제가 좀 당황스 럽기는 하지만……
말을 하던 강상식이 웃었다.
“용수가 여기 적은 대로 귀신이 면 어떻습니까. 강진이 친구면 저한테는 동생인 거죠.”
강상식은 옆에 빈 테이블을 보
며 말했다.
“여직원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아! 많이 친해지면 오빠라고도 해 주세요. 제가 여동생이 없어서 여동생 생 겼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네요. 앞으로 오빠라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 주세요.”
강상식의 말에 태블릿에 글자가 새로 쓰였다.
〈그럼 저희하고 톡 교환하시
죠.〉
배용수가 적은 글자에 강상식이 웃었다.
“톡도 있어요?”
〈그럼요. 저는 민성 형하고 가 끔 톡으로 대화도 하고 그래요.〉
배용수가 자신의 아이디를 적어 놓은 것을 보고 강상식이 웃었
다. 귀신하고 이렇게 아이디를 교환하고 있다는 것이 황당한 것 이다.
그리고 그 황당함에 귀신에 대 한 거리감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 다. 그냥 강진이처럼 좋은 동생 을 만난 느낌이었다.
자신이 생각을 해도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처음과 달 리 두려움이나 거리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럼 저희하고도 해요. 이건 제 거, 이건 선영 언니 거, 이건 정숙이 거.〉
배용수가 적은 글 밑으로 새로 운 글들이 적히는 것에 강상식이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귀신하고…… 톡 친구까지 될 줄이야.’
오늘 참으로 황당한 일을 많이 겪는 강상식이었다. 강상식이 작 게 웃는 것에 강진이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상식 형이 그래도 잘 받아들였 네.’
혹시라도 기절하면 허연욱을 불 러야 하나 하는 걱정까지 하고 있었는데…… 강상식이 의외로 상황을 잘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건 강상식의 가족 상 황이 좀 특별해서였다.
강상식은 강진과 황민성, 그리 고 문지나가 아닌 사람에게 정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귀신이라도 자신에게 정 을 주는 이는…… 고마울 뿐이었 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강 진과 친한 귀신이라면 말이다.
강상식을 보던 강진은 그가 좀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이 제 귀신에 대해 알았으니 이쪽 세상에 대해 알아두면 좋을 것을 말해줘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