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815화 (813/1,050)

815화

강상식은 엄마가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아파 했을지 생각을 하니 지난 나날들 이 후회되었다.

엄마가 자신의 옆에 있었다 니…… 엄마한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멋진 어른으로, 조금은 더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으로 있 었어야 했는데…….

‘난……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던 강상식 이 한숨을 쉬며 소주잔을 들었 다.

꿀꺽!

그런 강상식을 보며 강진이 말 했다.

“그래도 어머니 가실 때는 웃으 며 가셨어요.”

“웃으면서?”

“형이 보육원에 다니고 사람들 돕는 거 보면서 기분 좋아하셨어 요.”

“그래?”

“그럼요. 그때 어머니가 도련님 이 어릴 때는 무척 착하셨다고, 이게 우리 도련님이라고 그러셨 어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미소를 짓다가 그를 보았다.

“어머니가 나를 도련님이라고 하셨어?”

“아, 그게…… 네.”

“하아……. 무슨 죽어서까지 도 련님이야. 그냥 아들하고 부르지.

바보같이.”

한숨을 쉰 강상식이 강진을 보 았다.

“그래서…… 언제 가셨어?”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승천하셨 어요.”

“장례식장에서?”

“그날 형이 어머니한테 밥상 차 려 줬잖아요.”

“ 밥상?”

강상식은 잠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내가 먹던 거 드시 고…… 가신 거야?”

“형이 말을 했던 대로…… 어머 니에게 형이 차려 준 첫 번째 밥 상이잖아요.”

“그건…… 아니잖아. 그건 너무 아니잖아.”

제대로 밥상을 차린 것도 아니 었다. 그저 자신이 먹던 음식들 을 옆에 두고 수저와 젓가락을 놓았을 뿐인데 그것을 먹고 가셨

다니…….

“조금 더 있다가…… 지나 씨도 보고…… 우리 애도 보면 얼마나 좋아.”

강상식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를 보다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했다.

“귀신의 삶은 무척 외로워요.”

강상식이 보자 강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짝사랑 해 보셨어요?”

“짝사랑?”

“바로 옆에 있는데 사랑하는 사 람은 자신을 보지 않는 거죠. 수 호령도 그래요. 형 옆에 있지만, 형이 바라봐 주지 않죠. 그 냥…… 수호령은 형을 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귀신의 삶 은…… 무척 외롭고 쓸쓸해요. 외사랑을 하고 있으니까요.”

잠시 강상식을 보던 강진이 말 을 이었다.

“어머니가 지나 씨도 보고, 형 아이도 봤으면 정말 기쁘고 행복

하셨겠지만…… 승천은 조금이라 도 더 빨리 하시는 것이 가장 좋 은 일이에요.”

“그래도…… 아쉽다.”

말을 하던 강상식이 강진을 보 았다.

“조금만 일찍 말을…… 해 주 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강진이 원 망스러웠다. 일찍 말을 해 줬다 면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사랑한다고, 정말 사랑하고 미 안하고 감사하다고.

그런 강상식을 보며 강진이 재 차 한숨을 쉬었다.

“귀신에 대한 건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무슨 마음인지 알아. 하지만 너무…… 그렇다.”

뭐가 그렇다는 것인지 말은 하 지 않았지만 강진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강상식과 같을 것이

다.

“그날 저희 앞으로 술 같이 먹 기로 했었잖아요. 편하게.”

강상식이 보자, 강진이 그날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그날 아들이 주는 밥 을 먹고, 아들 친구들의 인사를 받아서 기쁘셨나 봐요. 그리고 형 친구 생긴 것 보고 안심을 하 셨고. 그래서 가신 것 같아요. 형 옆에 좋은 친구가 생겨서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 친구......"

잠시 있던 강상식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우리 엄마…… 그래도 내가 좋 아하는 친구는 보고 가셨네.”

“그래요. 저하고 민성 형이 앞 으로 편하게 술 마시자고 했을 때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어 요.”

“그래?”

“정말 좋아하셨어요. 얼마나 환 하게 웃으시던지……

“내가 그동안 만난 친구들 은…… 좀 아니기는 했지.”

자기가 돈을 쓰면서 놀 때만 친 구인 녀석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쓰게 웃는 강상식을 보던 강진 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걸 어갔다. 그러고는 카운터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앨범 같 은 것이 있었다.

그 앨범을 펼치자 쪽지와 수표

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그 동안 승천한 이들에게 받은 것이 었다.

강진은 수표를 하나씩 JS 금융 에 입금을 했지만, 간혹 마음이 가는 귀신의 수표는 입금을 하지 않고 이렇게 가지고 있었다.

입금이야 나중에라도 할 수 있 지만, 이 마음은 입금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장은옥의 쪽지 도 있었다. 쪽지를 보던 강진이 그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이걸 형이 볼 수 있 나?’

쪽지와 수표는 강진의 눈에만 보인다.

JS 물건들이라 해도 강진이 이 승에 들고 오면 사람들이 볼 수 있지만, 쪽지와 수표는 이때까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쪽지와 수표는 하늘에서, 혹 은 천장에서 떨어져 강진의 손에 쥐어졌다. 그때 당시 주위에 있 던 사람들은 그것을 본 척을 하 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물론 강진이 그것을 손에 쥐자 마자 바로 주머니에 넣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게 사람의 눈에 보이 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쪽지를 꺼내 손에 쥔 강진이 강상식의 앞에 가서 앉았다.

“이거 보여요?”

강진이 쪽지를 든 손을 앞으로 내밀자 강상식이 의아한 듯 그쪽 을 보았다.

“뭐?”

“안 보여요?”

“뭐 들고 있어?”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잠시 있 다가 쪽지를 펼치며 말했다.

“이건 어머니가 승천하실 때 저 에게 남긴 편지예요.”

“편지?”

“형이 봤으면 좋겠는데…… 아 마 이건 사람이 볼 수 없는 건가 봐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그의 손

을 보았다.

“거기에 엄마가 쓴 편지가 있 어?”

“네.”

그러고 강진이 입을 열려는 순 간 배용수가 말했다.

“잠깐.”

배용수의 목소리에 강진이 주방 쪽을 보았다. 주방에서 배용수가 장갑을 낀 채 나오고 있었다.

“왜?”

“저승 사탕 좀 드시게 하자.”

“지금?”

“이왕이면…… 네가 읽지 말고 직접 보시게 하자. 내 눈에는 보 이는 거 보면 저승 음식 먹으면 상식 형도 볼 수 있을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손에 쥔 종이를 보다가 그와 여자 직원들 을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웃었다.

“무슨 생각인지 알아. 상식 형 오줌 쌀까 싶은 거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너희들이 너무 무섭게 생겨서 저승 음식을 못 먹이겠다 고 말을 하기는 그러니 말이다.

“우리는 주방에 가 있을게. 사 탕 몇 번만 빨고 뱉게 하면 쪽지 읽을 정도만 영향이 있을 거야.”

배용수의 말에 여자 직원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왕이면 어머니가 쓴 거 직접 보는 것이 좋죠.”

“알았어요.”

한편, 강상식은 허공에 대고 대 화를 나누는 강진을 의아한 듯 보았다.

귀신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서 무슨 대화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 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허공에 떠 있던 비닐장 갑 중 하나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가 나오더니 뭔가를 강진에게 내 밀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장 갑을 낀 귀신들이 모두 주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어디 가는 거야?”

“이거 때문에요.”

강진은 배용수에게 받은 사탕을 내밀었다. 그에 강상식이 그것을 받아 쥐었다.

〈서천꽃사탕〉

“서천꽃사탕?”

“저승에 서천꽃밭이라는 곳이 있대요. 거기에 나는 꽃들에서

채취한 꿀로 만든 사탕이에요.”

“그럼 이거 귀신이 먹는 음식?”

“맞아요.”

강진은 사탕을 보며 말했다.

“제 손에는 어머님이 쓴 쪽지가 있는데…… 용수가 이건 형이 직 접 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요.”

“이걸 먹으면 어머니가 쓴 쪽지 를 볼 수 있어?”

“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사탕 봉 지를 뜯었다.

스르륵!

부드럽게 찢기는 봉지 안에는 살짝 핑크색이 도는 사탕이 들어 있었다.

“깨물어 먹지 말고 입에 넣고 살살 녹여 드세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살살 사탕 을 빨던 강상식이 놀란 듯 말했 다.

“이거…… 맛있네.”

지금 상황에서 맛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정말…… 말을 하지 않을 수 없 을 만큼 맛있고 행복한 맛이었 다.

“저승 음식들이 맛이 좋아요.”

그러고는 강진이 탁자에 내려놓 은 쪽지를 가리켰다.

“보이세요?”

“아니. 안 보여.”

강상식은 강진이 가리킨 곳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진짜 있는 거 맞……

말을 하던 강상식이 손을 내밀 었다.

스르륵!

그러자 강상식의 손에 종이가 잡혔다. 손에 잡힌 종이를 보던 강상식은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천천히 그것을 펼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진은 슬 며시 일어나서는 주방으로 들어

갔다.

곱게 접혀 있는 종이를 펼친 강 상식의 눈에 조금은 눈에 익은 필체가 보였다.

〈사장님…… 아니, 강진아.

아들과 친한 동생이니 내가 너 를 강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아들의 친구는 나에게도 아들이 니까. 그래서 강진이라고 부를게. 괜찮지?〉

“글로는…… 아들이라고 했네.”

웃으며 글을 보던 강상식이 입 맛을 다셨다. 글에서 망설임이 느껴진 탓이었다.

‘아들’이라는 단어와 전 단어 사 이에 미묘한 필체 차이가 느껴지 는 것이 한 번에 쓴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멈췄다가 쓴 것 같았 다.

“글로 쓰는데도 아들이라고 말 하는 것이 망설여지고 힘들었어

요? 그냥…… 편하게 부르면 되 는 건데.”

작게 중얼거린 강상식이 글을 마저 읽었다.

〈나는 강진이가 우리 아들 옆에 있어서 너무 좋고 안심이 도fl. 앞 으로도 우리 아들하고 친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

이건 민성이하고 맛있는 거 사 먹어.

그리고 우리 상식이하고 친하게

지내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

어머니가 쓴 글을 읽은 강상식 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아악!”

정말 깊고 깊게 숨을 토해내며 강상식은 눈을 감았다. 글에서 강진이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느 껴졌다.

친구들이 다른 친구네 엄마한테 맛있는 거 人} 먹으라고 오백 원, 천 원 받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게 무슨 마음인가 싶었는 데…… 지금 이 글을 보니 그런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친구가 아들과 잘 지내기를 바 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 친구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 그래서 귀신으로 남아서 내 옆에 있던 거야?”

쪽지에 쓰인 글씨를 손으로 쓰 다듬던 강상식은 한 자 한 자 글 을 눌러 쓰는 엄마의 모습을 떠 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그렇게 좋았던 거야? 그 래서 간 거야? 나 친구도 생기고 형도 생겨서?”

말을 하던 강상식이 다시 숨을 크게 토해냈다.

“하아아악!”

숨을 토하는 강상식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 러내렸다.

“엄마…… 살아 있을 때 엄마라 고 한 번도 불러주지 못해서 너 무 미안해. 그리고…… 너무 사

랑하고 또 사랑해.”

강상식이 한숨을 쉴 때, 강진이 냄비를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슬며시 강상식의 앞에 냄비를 놓 았다.

“어머니가 주문해 놓은 육개장 국수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은 앞에 놓 인 육개장 국수를 보았다. 배용 수가 준비하고 있던 안주가…… 육개장 국수였던 것이다.

강상식은 육개장 국수를 보다가

젓가락을 들었다.

아드득! 아드득!

그가 사탕을 씹어서 삼키는 것 에 강진이 아차 싶었다.

‘저거 뱉어야 했는데.’

사탕 정도면 한두 시간 이상은 영향이 갈 거란 생각에 작게 한 숨을 쉰 강진이 몸을 돌렸다.

강상식이 어머니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