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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19화 (817/1,050)

819화

문지나의 손을 잡은 채 쪽지를 보던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땡땡이야.”

“나도 땡땡이인걸요.”

“아! 그 과장 놈이 당신 반차 낸다고 하니 화 안 내?”

“화까지는 아니고 갑자기 이렇 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해서 오 늘 할 일 오전에 끝내면 되는 거

아니냐 하고 후다닥 일 처리하고 퇴근해 버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기면 어 떻게 해?”

“그거야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야지, 퇴근한 사람한테 말하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내 일은 다 해치우고 왔어요. 연락 이 오면 그건 내 일이 아니라 다 른 사람 일이겠죠.”

“그래도 연락 오면?”

퇴근하고 오는 연락은 안 받아

요.”

“그래도 되나?”

“마음에 안 들면 자르겠죠. 근 데 안 자를 거예요. 내가 일을 잘하거든요.”

“능력 있네, 우리 지나 씨.”

“그럼요. 그리고 제 철칙 중 하 나가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자.’ 예요.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키 우자 같은 말 하는데…… 내 회 사도 아닌데 회사 키우면 뭐 월 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문지나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따라주었다.

“그럼 오늘은 재밌게 놀자고.”

“그래요. 오늘 모처럼 낮술로 달려 보자고요.”

“그래. 오늘은 먹고 죽자.”

두 사람의 목소리에 강진이 웃 으며 냉장고에서 맥주와 소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래요. 오늘 매상 한 번 뽑아 주십시오.”

“암. 내가 오늘 우리 강진이 가 게 매상 한 번 제대로 올려 준 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은 웃으며 맥주잔을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맥주를 반 잔 정도 따라내더니 소주를 그 위에 올렸다.

오랜만에 폭탄주를 만드는 것이 다.

“오!”

맥주병과 주둥이를 맞댄 채 거 꾸로 선 소주병의 모습에 강상식

이 신기한 둣 중얼거리자, 강진 이 소주병을 내린 뒤 입구를 손 가락으로 막고는 흔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잔에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쫘아아악! 쫘아악!

폭탄주가 담긴 병이 잔에 하얀 거품을 뿜어내는 것을 보고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식당 특제 폭탄주예요. 거품이 아주 부드럽고 좋죠.”

강진은 폭탄주를 한 잔씩 강상

식과 문지나 앞에 두고 문지혁의 앞에도 놓았다.

“자,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과 문지나, 그리고 문지혁이 잔을 들어서는 단숨에 폭탄주를 마셨다.

“크으윽! 좋다!”

“너무 맛있어요.”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문지혁 을 보았다. 문지혁은 웃으며 즐 거워하는 강상식과 문지나를 보 고 있었다.

얼큰하게 취한 강상식은 자고 있는 문지나를 보고 있었다. 문 지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그런 문지나를 귀엽다는 듯 보 는 강상식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 다.

“형수가 피곤하셨나 보네요.”

문지나가 술 마시는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기에 강진도 그 녀가 술을 잘 마시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마셨다고 이렇게 뻗을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금방 취해 버린 걸 보고 그만큼 피곤했음을 짐작한 것이다.

“그렇겠지. 어제 형수 애 낳는 거 보고 새벽에 들어갔으니까.”

강상식의 말에 문지혁이 한숨을 쉬었다.

“반차 내려고 오늘 일을 너무 열심히 했습니다.”

문지혁의 말에 강상식이 강진을 보았다.

“아까 그 비닐장갑, 귀신이 끼 면 물건 만질 수 있는 것 같던 데.”

“맞아요.”

“그럼 그 장갑 좀 줄래?”

강상식의 말에 강진은 주방에서 비닐장갑을 가지고 왔다. 강진이 비닐장갑을 건네자, 강상식이 그

것을 받아서는 문지혁에게 내밀 었다.

“형님.”

“응?”

“이거 사용해 보신 적 있으세 요?”

강상식의 말에 문지혁이 비닐장 갑을 보았다.

“있지.”

“그럼…… 지나 좀 위층에 눕혀 주시겠어요?”

그러고는 강상식이 강진을 보았 다.

“너한테 양해부터 구해야 되는 데. 지나 위에서 좀 재워도 될 까?”

“그럼요. 그런데 집에서 재우는 것이 좋지 않아요?”

“아직 할 일이 좀 있어.”

“할 일요?”

“생각난 김에 오늘 하려고.”

강상식은 다시 문지혁을 보았

다.

“제가 업고 올라가야 하는데 저 도 술을 좀 마셔서 업고 가다가 넘어질 것 같아서요. 그리고 지 나 살짝 무겁기도 하고.”

강상식의 농에 문지혁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고맙기는요. 제가 하체가 부실 해서 죄송합니다.”

문지혁은 비닐장갑을 끼며 문지 나를 보았다.

강상식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몸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사람들하고 친분 다지려고 여러 운동을 하는 강상식이다 보니 오 히려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취했다고 해도 문지나를 업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만 강 상식은 문지혁이 동생을 안아볼 수 있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강상식이 무슨 마음인지 안 강 진은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주방 으로 들어갔다. 금세 다시 나온 강진의 손에는 고무장갑과 큰 봉

투가 들려 있었다.

“사람 몸이 얼마나 큰데 손으로 안고 가려 하세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문지나를 보다가 웃었다.

“그러네.”

비닐장갑은 손만 감싸니, 손으 로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안고 가려면 손 뿐만 아니라 팔, 그리고 어깨와 상체로 몸을 받쳐야 한다.

그에 문지혁은 비닐장갑을 벗고 는 고무장갑을 꼈다. 그렇게 하 면 팔꿈치까지는 커버가 되니 말 이다.

뒤이어 강진이 JS 편의점 비닐 봉지를 문지혁의 목에 걸어 주었 다.

“이렇게 하면 지탱이 되실 거예 요.”

모습이 우습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야 무게가 지탱이 될 것이었 다. 그렇지 않으면 문지혁의 몸 을 뚫고 문지나가 떨어질 테니

말이다.

JS 고무장갑과 JS 비닐봉지로 무장을 한 문지혁이 조심히 문지 나를 안아 들었다.

“끄응!”

작게 신음을 토하며 머리가 젖 혀지지 않게 조심히 문지나를 안 아 든 문지혁이 웃으며 강상식을 보았다.

“매제한테 이 무거운 짐을 맡기 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지나 씨 들으면 화낼 소리네

요.”

“결혼식 할 때 예쁜 드레스 입 으려면 술 좀 줄여야겠어요.”

웃으며 품에 안긴 문지나를 보 던 문지혁이 중얼거렸다.

“다시는 이렇게 제 동생 안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주량을 키워서 지나 씨 자주 뻗게 만들어 드릴게요. 그 럼 그때 종종 안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문지혁이 문지나를 조심히 안고 는 2층으로 걸음을 옮기자, 이혜 미가 나와서는 말했다.

“저 따라오세요.”

이혜미가 앞장서서 2층으로 올 라가자, 문지혁이 그 뒤를 따라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강상 식이 웃었다.

“우리 형님 힘 좋으시네.”

“그러게요. 술 취한 사람 업고 가는 거 엄청 힘든데.”

“오? 술 취한 여자 업어 봤어?”

“형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고 요. 술집에서 일할 때, 만취한 손 님들 택시 태울 때 한두 번 해 봤죠.”

“아이고. 고생했겠네.”

“진짜 힘들죠.”

고개를 저은 강진이 강상식을 보았다.

“그런데 일이라는 건 뭐예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숨을 크게 토하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 사람한테 받아야 할 것이 더 있더라고.”

“그 사람? 지혁 씨 그 사람요?”

아빠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불 편한 터라 강진과 강상식은 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고개를 끄덕인 강상식은 핸드폰 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신 호를 한참 기다리더니 핸드폰 화 면을 보며 작게 옷었다.

“어라? 안 받네?”

“안 받아요?”

“안 받네.”

강상식은 핸드폰을 몇 번 터치 해 문자 하나를 보냈다.

〈전화하세요. 소송 다시 하고 싶지 않으면.〉

문자가 발송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강상식의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고 문

지혁 씨 유품들 가지고 있죠? 없 다고요? 그럼 곤란한데……. 잘 생각해 보세요. 문제 만드는 거 저도 안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 번 일로 아실 겁니다. 저와 엮여 서 좋은 일 못 본다는 거. 사람 갈 겁니다. 고 문지혁 씨 유품 잘 정리해서 넘기세요. 아! 특히 고 문지혁 씨 통장도 잘 보내세 요. 버렸으면 쓰레기통이라도 뒤 지던가요. 변호사 대동하고 저 만나고 싶지 않으면 잘 찾아서 보내세요.”

그걸로 통화를 끝내는 강상식의

모습을 강진이 멍하니 보았다.

“왜?”

강상식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참…… 버릇없이 통화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피식 웃 으며 말했다.

“버릇이라는 것도 사람 봐 가면 서 해야 하는 거야. 이런 사람은 내가 조금만 좋게, 착하게 나가 면 바로 ‘너는 아비 어미도 없

냐! 너 나이가 몇이냐! 윗사람이 말하면 네 하고 해야지!’ 이런 말을 할 사람이야.”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가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 말 이다. 그리고 웃는 얼굴에 침 뱉 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고…….

“문지혁 씨 유품 찾으려고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보았다.

“형님이 지나 씨 결혼할 때 쓰

려고 적금을 넣었대. 그 통장을 찾아서 지나 씨 주고 싶어.”

“음…… 형수 그거 보면 좋아하 겠어요.”

“좋아한다기보다는 그걸 알았으 면 좋겠어. 아빠한테 사랑은 받 지 못했지만…… 오빠한테는 사 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걸.”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오빠뿐만 아니라 형한테도 많 은 사랑을 받으시죠.”

“난 더 큰 사랑을 줄 거야. 그 리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사랑 을 할 거다.”

“형수는 참 행복하시겠어요.”

웃으며 강상식을 보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형하고 지나 씨하고 관계 알아요?”

“알면 그것도 골치 아프지. 자 기가 장인이네 뭐네 하면서 접근 하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내가 오성화학 사장 장인이라고

하면서 사기를 치든가 할 사람이 니…… 지금은 몰라. 그리고 앞 으로도 모르게 할 거야.”

“그래도 나중에는 알 수도 있을 텐데.”

“모르게 해야지.”

강상식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람에게 가서 유품을 받아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문지나는 잠결에 누군가가 자신 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느꼈다.

스르륵! 스르륵!

부드러운 손길에 문지나의 입가 에 미소가 어렸다.

‘오빠?’

문지나는 누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도 손가락을 머리카락 속에 깊숙이 넣고 부드럽게 쓸어 주면 특히 기분이 좋았다.

그걸 아는 문지혁은 문지나가 잘 때 그렇게 머리를 쓸어주곤 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머리 카락을 누가 그렇게 쓸어 주고 있는 것이다.

‘기분 좋다.’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지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눈에 힘을 주며 일부러 잠을 더 청했다. 좋은 꿈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꾸고 싶으니 말이다.

미소를 지으며 자는 문지나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 주며 문지혁 은 웃었다.

“좋은 꿈을 꾸는 거니?”

작게 중얼거린 문지혁은 손에 낀 장갑을 보았다.

‘정말 신기한 곳이구나.’

귀신인 자신이 산 사람의 머리 를 쓰다듬으니 말이다. 그런 생 각을 하며 문지나의 머리를 쓰다 듬을 때, 강상식이 슬며시 방 안 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지나의 머리 위에 움직 이는 장갑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 다.

‘왜 안 내려오시나 했더니…… 지나 씨 자는 거 보고 계셨구 나.’

그는 혹여 문지나가 깰까 싶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탕 약효가 떨어져서 더 이상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강상식의 말에 문지혁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강상식이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귀 신을 봐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게 문지혁의 생각이었다.

강상식은 손에 들린 무언가를 문지혁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곳에 내밀었다.

“그리고 이거.”

강상식이 내미는 것을 본 문지 혁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그 건 통장이었다.

그 통장 밑에는 글자가 쓰여 있 었다.

〈내 동생 결혼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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