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829화 (827/1,050)

829화

강진은 홀에서 손님들이 비운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다.

띠링!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 를 든 강진은 익숙한 얼굴을 발 견하곤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식당에 들어온 정학봉은 단골 중에 단골이었다. 저녁이면 거의

대부분 여기에서 식사를 하니 말 이다.

“오늘 음식이 매운가 봐요. 매 운 향이 확 나네.”

웃으며 정학봉이 자리에 앉자, 강진이 말했다.

“오늘 스트레스 많이 받은 청년 들이 있어서 매운 음식을 좀 했 어요. 스트레스 해소에는 또 매 운 거 먹고 땀 쫘악 빼는 것이 좋잖아요.”

강진의 말에 정학봉이 힐끗 최

동해 테이블을 보았다. 가게 안 에 청년이라 할 만한 손님은 그 쪽밖에 없으니 말이다.

“음식 어떻게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정학봉이 청년들 먹는 음식을 보다가 말했다.

“매운 음식 먹으면 일할 때 속 이 안 좋을 것 같네요. 다른 음 식도 됩니까?”

“그럼요. 아! 오늘 선지 해장국 을 좀 했는데 그거 드릴까요?”

“선지 해장국요?”

“저희 가게가 한때 이 근처에서 선지 해장국 맛집으로 유명했어 요.”

“그래요?”

“그럼요. 제가 선지 해장국 장 인에게 정말 열심히 배웠거든요. 정말 맛있습니다.”

“그럼 국밥 부탁합니다. 아! 계 란 프라이 하나도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펄펄 끓 고 있는 선지 해장국을 덜었다.

보통은 따로 덜어서 다시 끓여 내겠지만, 선지 해장국은 이렇게 계속 끓여야 더 진하고 맛이 좋 으니 계속 끓이고 있었다.

선지 해장국을 담고 계란 프라 이를 만든 강진이 음식들을 정학 봉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맛이라도 보시라고 쪽 갈비 조금 덜었습니다. 속 안 좋 다고 하실까 봐 그냥 두 조각만 놓았으니 혹시 더 드시고 싶으시 면 말씀하세요.’’

“메뉴를 이렇게 공짜로 주시

면……

“음식 장사 하면서 음식을 아끼 면 되겠어요. 그리고 두 조각밖 에 안 되잖아요. 너무 조금 드린 것 같아서 미안하기만 하네요.”

강진의 말에 정학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맛만 볼 건데 많이 주시면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합니 다. 고맙게 잘 먹을게요.”

그러고는 정학봉이 청년들을 보 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 일요?”

“스트레스 받은 젊은이들이라고 해서요.”

정학봉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을 했다.

“오늘 소방관 시험 봤거든요.”

“아! 공무원 시험 보셨구나. 그 래서 시험은 잘 보셨답니까?”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 있기 만을 바랄 뿐이에요.”

강진의 말에 정학봉이 다시 청 년들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공무원 직종도 많을 텐 데 굳이 왜 소방관을? 공무원 할 거면 동사무소 같은 곳이 더 나 을 텐데?”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좋은 청년들이니까요.”

“그렇군요.”

청년들을 보던 정학봉이 입맛을 다셨다.

“저런 고시 준비는 힘들겠죠?”

“인섭이 생각하세요?”

“서신대가 좋은 학교기는 하지 만…… 요즘 취업이 그리 힘들다 고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군 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 학교 졸업생들 대부분 다 취직하더라고요.”

“그래요?”

“그럼요. 괜히 서신대, 서신대 하겠어요? 게다가 인섭이는 토목 과라 취업이 더 잘 될 거예요.”

“그럼 다행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정학봉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럼 식사하세요.”

“잘 먹겠습니다.”

정학봉은 수저로 선지 해장국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으! 시원하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해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일반 가게에서 선지 해 장국이라고 파는 것과는 맛이 달 랐다. 원조 선지 해장국이라고 해도 맞을 정도의 맛이었다.

‘정말 잘하는 분에게 배웠나 보 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정학봉은 선지 해장국에 밥을 말다가 매운 쪽갈 비를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하나 집었다.

그러고는 그걸 입에 넣은 뒤 후 루룩 먹었다. 부드러운 살점과 함께 매운 양념이 입안에 들어오

자, 정학봉이 입가에 미소가 어 렸다.

‘맛있게 맵네. 이 양념에 김하고 참기름 넣고 밥 비벼 먹어도 맛 있겠다.’

맵기는 한데 개운하게 매운 맛 이었다. 정학봉은 다시 쪽갈비를 입에 넣다가 강진과 눈이 마주쳤 다.

“콩나물하고 같이 드시면 매운 맛이 금방 가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정학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콩나물과 함 께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콩나 물과 먹으니 입안에 남은 매운맛 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아주 맛이 좋습니다.”

정학봉이 웃으며 밥을 먹는 것 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손님 들에게 늘 듣는 소리지만…… 들 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소리였 다.

‘나도 요리사가 다 된 모양이네. 남의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걸 보 는 게 이리 기분 좋은 것을 보

면.’

작게 웃은 강진은 손님들 먹는 것을 살폈다.

식사를 마친 다른 손님들은 떠 나고, 남은 건 정학봉과 최동해 일행뿐이었다.

후루룩! 후루룩!

선지 해장국을 그릇째 마신 정 학봉이 기분 좋게 그릇을 내려놓 고는 티슈로 이마에 난 땀을 닦 았다.

“후우!”

기분 좋은 숨을 토하는 정학봉 의 앞에 차가운 매실차가 놓였 다.

“시원한 매실차예요.”

“고맙습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웃으며 매실차를 마신 정학봉이 물었다.

“선지 해장국 정말 맛있는데 왜 메뉴로 안 하세요? 이것만 단일 메뉴로 해도 손님들 많이 오실

것 같은데?”

“제가 이 년 전에 잠시 해 봤는 데…… 선지 해장국이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리더라고요. 육수도 밤새 끓여야 하고.”

“그래요?”

“그래서 혼자 하기는 힘들어서 지금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저희 손님 중 한 분이 드시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끓였습니 다.”

강진의 말에 정학봉이 웃었다.

“밤새 국물 내고 해야 하는 힘 든 요리를 손님을 위해 하셨군 요.”

“손님이 원하시면 음식을 만드 는 것이 요리사 아니겠어요?”

그러고는 강진이 그릇들을 보았 다. 모두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 다.

“다 드신 거 보니 기분이 좋네 요. 입에 맞으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정학봉은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 다.

“그 쪽갈비 2인분에…… 얼마나 합니까?”

“1인분에 칠천 원 정도 받으면 될 것 같으니 만 사천 원입니 다.”

“정해진 가격은 없나 보네요.”

“저희 가게 음식이 좀 그렇죠. 전문점이 아니라 손님이 원하는 음식들을 하는 편이라서요. 그래 도 비싸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한끼식당 음식이야 저렴하죠. 그럼 이 인분만 포장해 주시겠어 요?”

“집에 가져가시게요?”

“맛있는 거 먹으니 가족이 생각 나네요.”

웃으며 정학봉이 지갑을 꺼냈 다.

“그럼 제 밥값하고 해서 이만 원 나오겠네요?”

“잘 아시네요.”

“보통 그 정도 받으시니까요.”

말을 하며 정학봉이 이만 원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아크릴 통에 넣은 강진이 말했다.

“포장해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 리세요.”

주방에 들어가서 반찬 통에 쪽 갈비를 담은 강진은 그 위에 깨 를 솔솔 뿌렸다. 그리고 작은 통 에도 콩나물을 담아서는 쇼핑백 에 담아 나왔다.

“그런데 지금 일하시는 중 아니

세요?”

강진이 내미는 쇼핑백을 받은 정학봉이 안을 슬쩍 보고는 웃으 며 말했다.

“어차피 콜 많이 나오기엔 이른 시간이니 집에 갔다 오려고 합니 다.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야죠.”

웃으며 쇼핑백을 들고 나가려던 정학봉은 힐끗 청년들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아크릴 통에 넣었다.

“저기 청년들 음료수 값입니 다.”

정학봉이 작게 속삭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열심히 사는 청년들 보니 제 아들 보는 것 같아서 요.”

청년들을 보던 정학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밥값이라도 대 신 내 주고 싶지만…… 하루 벌

어서 하루 사는 형편이라 그건 어렵네요. 그럼 가겠습니다.”

오천 원 주면서 별 이야기를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정학봉 이 서둘러 가게를 나가자 강진이 그를 배웅했다.

“안전운전하세요.”

강진의 말에 정학봉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킥보드에 걸 어 놓은 헬멧을 쓴 뒤 도로로 나 와서는 출발했다.

그런 정학봉을 보던 강진은 가

게 안으로 들어와 아크릴 통 안 에 들어 있는 오천 원을 보았다.

오천 원이 큰돈은 아니다. 햄버 거 가게에서도 세트를 먹으면 오 천 원이 넘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학봉 같이 열심히 사 는 가장에게는 큰돈이었다. 어떤 가장에게는 하루 용돈일 수도 있 고 말이다.

오천 원을 보던 강진이 최동해 에게 다가갔다.

“음료수 뭐 마실래?”

“저는 음료수 안 마셔요.”

최동해가 양배추를 씹으며 말하 자 강진이 웃으며 그 어깨를 툭 툭 쳤다.

먹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 최동 해는 양배추를 먹으며 술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술도 못 마시고 안주도 못 먹는 사람에게, 특히 최동해처럼 식탐 이 많던 사람에겐 이 자리가 거 의 지옥처럼 견디기 힘들 텐데도 말이다.

“장하다.”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웃었다.

“저도 제가 장하네요.”

최동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다른 친구들을 보았다.

“음료 뭐로 드시겠어요?”

“저희도 괜찮은데요.”

“그러지 말고 드세요. 방금 저 쪽에서 식사하고 가신 분이 여러 분들 소방관 시험 봤다는 이야기 듣고 음료수라도 드시라고 돈을

주고 가셨어요.”

강진의 말에 청년들은 정학봉이 앉았던 자리를 보았다.

“저희한테 요?”

“아들 생각난다고요. 그 손님 아드님도 올해 대학 들어갔거든 요.”

“아.. ”

“그러니 감사한 마음 가지고 드 세요.”

강진의 말에 최창수가 그쪽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사이다 하나 콜라 하나 주네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제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그건 좀 더 친해지고 난 후에 해요.”

“그럼 자주 와야겠네요.”

“그럼 나야 좋죠.”

웃으며 답한 강진은 음료수를

두 병 가지고 와서는 놓았다.

“손님 없는 것 같은데 형도 같 이 한잔하세요.”

“그러고 싶은데 일단 일곱 시까 지는 손님들 언제 올지 몰라서 요. 일곱 시 넘으면 그때 같이 해요.”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정학봉이 앉아 있던 자리를 정리한 강진은 주방 으로 들어갔다. 강진이 들어오는 것에 배용수가 물었다.

“술 마시게?”

“왜?’’

“며칠 전에 술 많이 마시는 것 같지 않냐고 한 누가 생각나서.”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동생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봤는데 같이 한잔해 줘야지.”

“동해는 그렇다 쳐도 저 친구들 을 몇 번이나 봤다고.”

배용수가 불만스러운 듯 보자, 강진이 웃었다.

“아이구, 우리 마누라. 남편 술 많이 먹는다고 바가지 긁는 거 야?”

“닥치고…… 술은 조금만 해라. 몸에 아무리 좋은 거 백날 먹어 도 몸에 안 좋은 조금 하면 마이 너스인 거야.”

배용수가 걱정스럽게 보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분위기 살릴 정도만

마실게.”

대답하던 강진은 주방 한쪽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 소주를 마시 고 있는 최고진을 보았다.

“어떻게, 마음에 드세요?”

강진의 말에 최고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피식 웃었다.

“좋기는 한데…… 취하지를 않 는군. 그게 좀 그러네.”

최고진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저었다.

“귀신은 취하지 않으니까요.”

“취하지를 않으니…… 이거 참 쓰기만 하네.”

최고진은 마시던 소주를 쭉 들 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들 놈 먹는 거나 봐야겠어. 혼자 이렇게 먹으니 재미가 없 네.”

그러고는 최고진이 홀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꼭 돼야 할 텐데.”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 을 겁니다.”

“그래야지……

최고진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살아서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할 수 있게 뒷바 라지를 했어야 했는데……

그는 일찍 죽어서 아들의 뒷바 라지를 못하는 것이 미안한 모양 이었다. 그런 최고진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저씨 잘못은 아니죠.”

강진의 말에 최고진이 한숨을 쉬었다.

“아들 하고 싶은 거 돕는 게 아 빠가 해야 할 일인데……

죽어서도 아들 걱정을 하는 최 고진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살아서도 아버지고 죽어서도 아버지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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