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화
작게 입맛을 다신 최고진이 고 개를 저었다.
“우리 아들…… 이번이 마지 므]' 도전이야.”
“왜요?”
“자기 꿈만 보며 살기에는 집 형편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래 서 이번까지만 하려는 거지.”
최고진이 작게 한숨을 쉬며 홀
로 걸어가자, 강진이 그 뒷모습 을 보았다.
“어머니 혼자 버시는 모양이 야.”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야기 좀 해 봤는데, 아저씨 죽고 아주머니 혼자 벌어서 아들 공부 뒷바라지하는 모양이야.”
“아저씨가 없으니……
“그런 어머니 밑에서 용돈 받으 며 공부하니.. 그 마음이 편하
겠어?”
“불편하겠지.”
강진은 홀에 있는 최창수를 보 았다. 최창수는 기분 좋게 웃으 며 쪽갈비를 뜯고 있었다. 배용 수가 하는 말을 들으니 최창수의 저 웃음이 무척 진하게 느껴졌 다.
“그래서 고시 준비 이번까지만 할 모양이야.”
“이번까지만?”
“떨어지면 취직을 할 모양이
야.”
“이때까지 고생한 거 아까워서 어쩌냐.”
그러고는 강진이 최창수를 보았 다.
“공부한 거 아깝지 않게 이번에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다들 그런 마음이지. 그리 고…… 창수만 사연이 있겠어? 사연 없는 귀신 없듯 사연 없는 고시생은 없는 법이지. 동해만 해도 그렇게 살 빼서 하려는 것
이 소방관이잖아. 상황은 달라도 그 노력만큼은 최창수 못지않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의 종류가 다르기 는 하지만, 확실히 최동해의 노 력도 대단했다. 평생 뚱뚱하게 살아온 녀석이 정말 죽을 각오로 살을 뺐으니 말이다.
강진이 홀에 있는 청년들을 볼 때, 배용수가 냉장고를 열어서는 오징어를 한 마리 꺼냈다.
“오징어 숙회나 해 줘야겠다.
오징어는 다이어트에 좋으니까. 동해 먹으라고 해.”
그러고는 냄비에 물을 올리고 불을 키자, 강진이 오징어를 받 아 깨끗이 손질을 했다.
오징어 숙회를 접시에 담은 강 진이 홀로 나왔다.
“이건 다이어트에 괜찮은 거니 이거라도 먹어라.”
강진은 오징어 숙회를 내려놓으 며 시간을 보고는 자리에 앉았
다.
“저도 이제 합석 좀 하겠습니 다.”
강진의 말에 최창수가 웃으며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그에 강 진이 잔을 받자, 최창수가 소주 를 따르며 말했다.
“저는 최창수라고 합니다.”
“늦었지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강진입니다.”
최창수와 인사를 나눈 강진은 다른 두 친구와도 인사를 나눴
다. 인사를 마친 강진은 소주잔 을 새로 하나 가져다가 최창수에 게 내밀었다.
그가 잔을 받자 소주를 따라 준 강진은 다른 이들의 잔에도 술을 따라줬다.
“시험도 끝났는데 며칠 동안은 푹 쉬어야죠.”
강진이 가볍게 웃으며 하는 말 에 최창수가 쓰게 웃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요?”
강진의 물음에 최창수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 어머니가 혼자 일하면서 동생과 제 뒷바라지를 하세요.”
“아……
강진은 힐끗 최고진을 보았다. 그에 최고진이 입맛을 다셨다.
“작은 애가 지금 대학교 삼 학 년이야. 내가…… 죽지 말아야 했는데.”
입맛을 다시는 최고진을 볼 때, 최창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일 짐 챙겨서 집에 가서 일하려고요.”
“집은 서울이에요?”
“맞아요. 근데 노원 쪽이라 지 금은 고시원에서 먹고 자면서 공 부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 자리는 구했어요? 아니, 그보다……
강진은 다시 최창수를 보다가 말했다.
“이번에 소방관 합격하면 아르 바이트 못 할 텐데…… 단기 아
르바이트 구할 자리는 찾았어요? 결과 나오기 전까지만 할 아르바 이트는 구하기 쉽지 않을 텐데. 혹시 괜찮으면 내가 아르바이트 자리 좀 알아봐 줄까요?”
필기 합격자 발표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다음에 2차 시험은 또 언제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필기를 합격하면 2차 준 비를 해야 하니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정말 초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할 것 이다.
그래서 말한 것이었다. 예전에 했었던 아르바이트 중에 단기로 할 수 있는 것을 알아봐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일하시 던 공장이 있어요. 내일 저녁부 터 거기서 야간 근무하기로 했어 요.”
“그래도 일자리는 바로 구하셨 네요.”
“거기 공장장님이 저희 아버지 하고 많이 친하셨어요. 그래서 저 일자리 필요할 때는 거기서
아르바이트 자주 했어요.”
최창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말을 했다.
“저도 아르바이트 참 많이 했어 요.”
“그러세요?”
“일 년 일해서 다음 학년 학비 내고, 생활비 마련하고 그렇게 살았거든요.”
그러고는 강진이 최창수를 보았 다.
“창수 씨 상황이 안 좋기는 하 지만 최악은 아니에요.”
최창수가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나는 이렇게 힘든데 무슨 그런 말이 있나 싶겠지만…… 그 래도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잖아요. 저는 휴학하기 전부터 아는 분들에게 연락 돌려 서 아르바이트 자리 구해야 했거 든요. 운 좋으면 바로 일자리 구 했지만, 못 구하면 새벽 인력시 장 가서 일자리 구하고 그랬어
요.”
“그 부모님은?”
최창수가 말을 하고는 아차 싶 은 듯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 열여덟 살 때 사고로 돌아 가셨어요.”
“아, 형. 죄송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형이라 부르며 사과를 하는 최창수의 모습에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할 것은 없어요. 그냥 물 어볼 수 있는 거니까.”
그러고는 강진이 잔을 들자 청 년들이 모두 잔을 들었다. 최동 해도 물 컵을 들었고 말이다.
건배를 외치며 가볍게 잔을 맞 부딪힌 강진은 술을 쭈욱 마시려 다가 살짝 입만 가져다 대고는 잔을 내려놨다.
배용수가 조금만 마시라고 한 것이 방금 전인데…… 좋아하는 녀석이 자기 행동 때문에 마음 쓰는 건 싫으니 말이다.
‘마누라한테 예쁨까지는 몰라도 미움 받으면 안 되지.’
미움 받지 않는 가장 좋은 행동 은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는 것 이었다.
살짝 웃으며 잔을 만지작거린 강진이 청년들을 보며 말했다.
“저는 입만 댈게요. 11시에 단 체 손님이 예약되어 있어서요.”
“그럼요. 편하게 하세요.”
최창수의 말에 강진이 말을 이 었다.
“말하다 보니 말이 이상한 곳으 로 샜는데…… 안 좋게 생각하지 말고 좋게 생각했으면 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파이팅 하라는 의미기도 하고요.”
“고맙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네가 힘든 걸 아냐? 부모님이 주는 돈으로 공부만 하면 되는 너하고 나하고 같으냐고.’ 같은 말로 반박했겠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한 강진이라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해 주는 말이라는 것도 알겠고 말이다.
“자, 시원하게들 한 잔씩들 해 요.”
강진의 말에 청년들은 술을 마 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에 강진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 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대부분 연예인 이야기나 그동안 시험공부하면서 하지 못했던 것 에 대한 거라서 강진도 화제에 끼어들 수 있었다.
“요즘 날씨 좋으니 바다에 가 요.”
“아직 바다 들어가기에는 춥지 않아요?”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라 구경 하라는 거예요. 사람도 보고, 바 다도 보고…… 바다가 꼭 들어가 야 맛인가요? 보는 맛도 있는 거 예요. 산도 마찬가지예요. 산이라 고 하면 꼭 올라가야 한다 생각 을 하지만 산 밑에서 파전에 막 걸리 먹는 것도 재미예요.”
강진의 말에 청년들이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놀이공원도 가서 꼭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 건 아 니었다. 구경하는 맛도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청년이 나 강진이나 시험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 년 동안 열심히 노력 했고,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았 다. 그러니 결과를 기다리면 되 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걱정하거 나 기대를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건 그동안 겪은 몇 번의 실패로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먹고 갑니다.”
“다들 조심히 가고, 집에 있는 동안 부모님한테 잘 해요.”
“형 다음에는 저희가 꼭 돈 내 고 먹을게요.”
“그렇게 해 주면 저야 고맙죠. 다음에는 꼭! 돈 들고 와서 먹어 요.”
“네.”
웃으며 청년들이 지하철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최고진을 보았다. 그는 기분 좋 은 미소를 지은 채 최창수를 보 다가 강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 다.
“오늘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줘 서 고마워.”
“좋은 이야기는요. 그냥 저 아 르바이트하던 이야기들 해 준 건 데요.”
“그게 좋은 이야기지.”
웃으며 말을 한 최고진이 강진 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 우리 창수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우리 창수가 큰놈이라 형이 없는데 이 사장 같은 형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 아.”
말을 하던 최고진의 몸이 최창 수가 가는 방향으로 스르륵 딸려 갔다.
“그럼 또 올게.”
“잘 가세요.”
강진은 작게 손을 흔들어 주고 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에서는 여직원들이 홀을 정리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선 배용수가 TV 를 틀고 있었는데, 강진은 그 옆 에 앉으며 말했다.
“나 소주 한 잔으로 끝까지 버 텼다.”
강진이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잘 했다. 그리고 네 몸 생각하 라고 마시지 말라는 거야.”
“알지. 그래서 한 잔으로 버틴 거 아니겠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말했다.
“이따가 허 선생님 좀 불러서 진맥도 한 번 해.”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 데?”
“몸이 안 좋다 싶으면 확인을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네 몸은 본인이 아니라 의사가 가장 잘
아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허 선생님 이 따가 모셔서 진맥도 받고 침도 맞고 다 할게.”
“명의 옆에 두고……
배용수의 잔소리가 점점 길어지 는 것 같자, 강진이 웃으며 그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네 입을 막으려면…… 내 입술 이 필요한 거냐?”
강진이 입술을 쭈욱 내밀자, 배 용수가 오만상을 지으며 자신의
입을 막은 손가락을 손으로 쳐냈 다.
“그만한다, 그만해. 좀 그런 것 좀 하지 마. 너 더 미쳐가는 것 같아.”
“그건 맞지.”
강진은 배용수를 지그시 보았 다.
“너란 남자한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는 TV 채널을 돌렸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TV를 보
다가 문득 말했다.
“잠깐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채널을 돌리다가 그를 보았다.
“방금 전으로……
그에 배용수는 채널을 뒤로 돌 렸다.
“여기.”
강진이 진중해진 얼굴로 TV를 보자 배용수가 의아한 듯 TV를 보았다.
TV에는 ‘인간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조금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 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 램이었는데, 딴따라 당 딴따라 당이라는 리듬으로 유명한 프로 그램이었다.
[강섭 씨의 버스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내레이션과 함께 아주 젊은 청
년이 버스에서 내려서는 차를 살 피는 것이 보였다. 그가 난감하 다는 듯 머리를 긁는 순간 영상 이 멈추더니 전환되며 차회 예고 가 나왔다.
〈25살…… 그는 도로를 달린
다.〉
이러한 제목과 함께 끝나는 인 간 이야기를 보던 배용수가 강진 을 보았다.
“누구 아는 사람이야?”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은 광고 화면으로 바뀐 TV를 보다가 입 맛을 다셨다.
“큰아빠 아들. 나한테는 사촌동 생이지.”
“동생?”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광고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난 또 뭐라고. 동생 출세했네. TV도 나오고.”
배용수는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바로 채널을 돌렸다. 강진이 친 척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에 빨리 채널을 돌려 버린 것이 다.
다른 채널로 바뀐 TV를 보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출세했네.”
말을 하며 강진은 멍하니 TV를 보았다. 이미 프로는 끝났고 채 널도 돌아갔지만 화면에서 본 사 촌동생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25살이라……. 나이도 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