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화
부엌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강상 식이 슬며시 말했다.
“형님하고는 이야기해 봤어?”
이야기라는 말에 강진이 홀을 힐끗 보았다. 문지나의 옆엔 문 지혁이 서서 그녀가 차를 마시는 것을 보고 있었다.
“형 오고 저 계속 같이 있었는 데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나요. 이따가 형수 눈치 봐서 제가 이
야기해 볼게요. 아니면 형 이人} 오고 난 후에 저승식당 영업시간 에 이야기해도 되고요.”
“음…… 하긴, 저승식당 영업시 간에 이야기하는 게 더 낫겠다.”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현신한 상 태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 이 야기가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강진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 금하기는 했지만, 강상식은 물어 보지 않았다.
자신이 알아도 될 일이라면 강 진이 이야기를 해 줄 것이고, 몰 라야 하는 것이라면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안에서 이야기를 나 눌 때, 문지나의 목소리가 들렸 다.
“거기서 둘이 무슨 작당모의 하 는 거예요?”
문지나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홀로 나왔다.
“작당모의라니요.”
“나 험담한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웃으며 강상식이 강진을 보았 다.
“이제 가자.”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찻잔들을 주방에 옮기고는 말했다.
“가시죠.”
강상식이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올라타자, 문지나가 그 옆 에 올라탔다.
그에 강진이 뒷좌석 문을 열고 는 옆으로 물러나자, 이혜미와 배용수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 다.
직원들이 모두 타자 강진이 뒤 를 이어 차에 오르며 말했다.
“그런데 차가 보던 것이 아니네 요?”
오늘 강상식이 타고 온 차는 강 진의 차와 같은 모델인 국산 차 였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웃 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나 타고 다니는 차가 너무 눈 에 띈다고 해서 국산으로 하나 가져왔어.”
“눈에 띈다고요?”
강진의 물음에 문지나가 웃으며 말했다.
“전에 상식 씨가 나 데려다주는 데 차 보고 사람들이 물어봐서 요. 그래서 다른 차 없냐고 하니 까 이거 가지고 나오더라고요.”
“다른 아파트도 있고 다른 차도 있나 보네요.”
“이건 중고로 하나 가져온 거 야. 나중에 지나 씨 결혼하면 이 거 타게 하려고.”
“당신은 좋은 외제차 타고 나는 중고차나 타라는 거예요?”
문지나의 말에 강상식이 웃었 다.
“아니면 지나 씨가 내 차 타던 가요.”
“됐어요. 그런데 나 운전 못 하 는데.”
말을 하면서 문지나가 차를 손
으로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자신 의 차라고 하니 느낌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차 깨끗한 거죠?”
“그럼요. 사고 한 번 안 나고 깨끗해요.”
“근데 왜 중고로 샀어요?”
“새 차는 출고 기간이 며칠 걸 린다고 해서 바로 가져올 수 있 는 중고로 가져온 거예요.”
“그렇게 급하게 안 해도 되는 데.”
“급하게 해야죠. 지나 씨가 한 말인데.”
웃으며 강상식이 말했다.
“운전 연수는 전문가 붙여 줄게 요.”
“상식 씨가 알려 주면 되잖아 요?”
문지나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저었다.
“들어 보니까 부부끼리 운전 연 습시켜 주는 거 아니래요.”
“하긴, 나도 그 이야기는 들어 봤어요. 남자친구가 운전 알려주 는데 대판 싸웠다고.”
“그래서 전문가 붙여 주려고요. 잘한다고 하니까. 며칠 하다 보 면 익숙해질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서 울 외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 * *
서울 외곽에 한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좋은가구 센터〉
“여기야?”
강상식이 차에서 내리며 묻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여기서 제가 땀을 많이 흘렸죠.”
강상식이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구들이 무겁잖아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센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물 안에는 손님들이 진열된 가구들을 구경하며 걷고 있었다.
“와…… 되게 커요.”
문지나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가구가 크잖아요. 그래서 매장
도 크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주위에 있는 가구들을 보다가 말했다.
“무겁고 크고…… 너 고생했겠 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요. 가구 중에 정말 크고 무거운 건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 해서 진열하거든요. 물론 분해한 다고 그 무게가 어디 가는 건 아 니지만요.”
웃으며 답한 강진은 주위를 둘
러보았다. 직원들 몇이 일을 하 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아는 얼 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은 물건 사러 가셨나?’
주위를 둘러보던 강진은 입맛을 다셨다. 전에 일할 때는 몰랐지 만, 역시 저승식당 사장이 돼서 와 보니 센터에도 귀신들이 있는 게 보이는 것이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럿 귀신들이 돌아다니거나 가 구에 앉아 있었다.
‘가구에 묶인 지박령들이시네.’
강진이 그들을 볼 때, 지박령들 도 의아한 듯 그를 보고 있었다. 강진 일행에 귀신이 셋이나 끼어 있으니 말이다.
“특이한 조합이네.”
“그러게. 손님으로 오는 사람들 은 보통 귀신 하나 달고 오는데. 저쪽은 무슨 삼 대 삼 짝 맞춰서 왔네.”
“근데 저 총각 우리 보는 것 같 지 않아?”
귀신들이 대화하는 것을 지켜보 던 강진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 다. 귀신들의 대화가 뭔가 이상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대화 를 한다기보다는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의아하다는 듯 귀신을 보던 강 진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은 각자 붙어 있는 가구 에 올라가 있거나 근처에 있었 다.
그리고 이 가구 센터는 엄청 큰
곳이라 떨어져 있는 귀신들과 이 야기를 나누려면 크게 소리를 질 러야 했다.
귀신이라고 멀리 있는 귀신에게 목소리를 전하는 방법이 달리 없 으니 서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 다.
‘먹을 것 좀 가져올 걸 그랬 나?’
귀신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머물 렀을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 상식이 말했다.
“저쪽에 침대들 있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은 귀신들을 보다가 침대가 있는 곳으로 걸음 을 옮겼다.
“이쪽은 중고로 들어온 것들이 에요. 깨끗하게 손질한 거라 중 고 같지 않지만, 아무래도 신혼 침대인데 남이 쓰던 거 쓰는 건 좀 그렇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스 상품은?”
“이리 오세요.”
강진이 한쪽으로 걸음을 옮기 자,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침대 보러 오셨어요?”
“네.”
“여기 있는 이 침대 어떠세요? 매트리스도 좋고, 나무도 좋은 거라서 인테리어에도 좋아요.”
직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저 여기에서 오래 아르바이트
해서 여기 시스템은 알아요. 제 가 보고 고를게요.”
“아! 여기서 아르바이트하셨어 요?”
직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 안 보이시네 요?”
“물건 받으러 가셨어요.”
“아직도 본인이 직접 가시나 보 네요.”
강진이 사장님을 아는 것 같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물건 싸게 사야……
“비싸게 팔 수 있다.”
강진이 웃으며 뒷말을 잇자, 직 원이 웃었다.
“그렇죠. 그럼 물건 보세요.”
사장님의 입버릇을 아는 것을 보고 정말 여기에서 일을 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럼 마음에 드는
건 제가 표시할게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편하 죠.”
직원이 다른 곳으로 걸어가자, 강진이 강상식과 침대가 놓여 있 는 곳으로 가며 말했다.
“여기 있는 침대들이 기스 상품 들이에요.”
그러고는 강진이 침대 한쪽에 있는 붉은 스티커를 가리켰다.
“기스가 난 자국은 이렇게 색깔 스티커로 표시해 놨어요.”
“양심적이네. 기스를 이렇게 표 시해 놓고.”
고객이 흠집을 직접 찾는 것이 아니라 업체 쪽에서 표시를 해 놓는 것이 양심적으로 보였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작게 속 삭였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달아 놓는 거예요.”
강상식이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스마다 다 표시를 하지는 않
거든요. 그냥 눈에 딱 보이는 것 에 달아 놓는 거예요. 그래야 고 객들이 형처럼 여기 양심적이라 고 생각을 하죠.”
“아! 그럼 속이는 거야?”
“속이는 건 아니죠. 기스에 표 시를 해 놨으니까요……라고 우 리 사장님이 말했었습니다.”
강진은 웃으며 말을 했다.
“그래도 물건들 상태 좋아요. 우리 사장님이 물건은 또 기가 막히게 좋은 걸로 가격 후려쳐서
가져오거든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물건을 보다가 물었다.
“사장님 좋게 생각하는 모양이 네.”
“최저 시급보다 조금이라도 높 게 주시는 사장님은 저에게 좋은 분이죠. 게다가 월급도 밀리지 않게 주시고…… 가끔 고기도 사 주시고. 좋은 분이에요.”
“그리고 물건도 잘 사고 잘 팔 고?”
“맞아요. 가격 비싸지 않게 좋 은 물건 팔면 좋은 분이죠.”
강진의 말에 침대를 보던 강상 식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 강상 식을 보던 강진은 침대들을 살피 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으니 일반인보다는 침대를 보는 안목이 있었다.
강진이 침대를 이리저리 보고 있을 때, 배용수가 말을 걸었다.
“ 야.”
그에 강진이 쳐다보자, 배용수 가 한쪽을 가리켰다. 배용수가 가리킨 곳을 본 강진은 이혜미가 멍하니 뭔가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스탠드형 옷걸이였다. 옷을 걸어 놓고 스 팀다리미로 옷을 다리는 그런 옷 걸이 말이다.
“왜 그러시지?”
그냥 마음에 들어서 스탠드 옷 걸이를 보고 있다기엔 이혜미의 표정이 묘했다.
그에 강진이 강상식과 문지나를 보았다. 문지나는 강상식을 데리 고 다니면서 침대를 이리저리 확 인하며 눌러 보고 있었다.
알아서 잘 구경하는 것을 본 강 진은 몸을 돌려 이혜미에게 다가 갔다.
“무슨 생각 하세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스탠딩 옷걸이를 보다가 작게 웃었다.
“이거 보니 저 살아 있을 때 생 각나서요.”
스탠딩 옷걸이를 손으로 쓰다듬 은 이혜미가 옆에 놓인 스팀다리 미를 보았다.
“그……
뭔가 말을 하려던 이혜미가 입 을 다물었다. 그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멈추 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이혜미가 고개 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는 자취를 했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강진은 그녀가 자취했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녀를 살해한 범인은 혼자 자취하며 살 던 이십 대 여자들에게 주로 범 행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자취할 때 가장 귀찮은 것이 옷을 다리는 것이었어요.”
“옷요?”
“집에서 살 때는 학교 가려고 옷을 찾으면 깨끗하게 다려진 옷
이 옷장에 있어서 그걸 입고 나 가면 됐는데, 혼자 사니 빨래하 고 내일 입을 옷은 다려야 하더 라고요.”
“그렇죠.”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내가 입는 옷 하나하나가 다 엄마의 손길이 닿는 거구나. 엄마가 빨 고 다려둔 옷을 입고 나가기만 했구나.”
옷걸이를 만지던 이혜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한테 전 화를 했어요. 옷 좀 다려 주러 오면 안 되냐고요.”
“옷 다려 달라고 집에 와 달라 고요?”
강진이 황당하다는 듯 보자, 이 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나 입을 옷이 없어.
-왜 입을 옷이 없어? 너 빨래 안 해?
-빨래하는데 다려 입어야 하잖 아. 옷이 다 쭈글쭈글해. 엄마 우 리 집에 와서 옷 다려 주면 안 돼?
-애는 별소리를 다 하네. 그리 고 엄마 내일 바빠.
-알았어.
그때 엄마와 통화를 한 것을 떠 올리며 이혜미가 말을 이었다.
“그냥 쭈글쭈글한 옷을 보니 엄 마 목소리 듣고 싶고, 엄마 생각
나서 전화해서 그런 거예요. 그 냥 투정한 거죠.”
“그렇죠.”
“그런데 다음 날에 엄마한테 전 화가 왔어요.”
- 엄마.
-옷 못 다리겠어? 엄마가 가서 다려 줄까?
-그냥 해 본 말이야.
-엄마가 못 간 것이 마음에 걸
려서 그래. 엄마가 내일 가서 옷 다려 줄게.
-에이! 무슨 옷을 다려 주러 와. 그냥 해 본 말이라니까.
-아니야. 엄마가 가서 우리 딸 어떻게 사는지도 좀 보게 내일 가서 딸도 보고 옷도 다려 줄게.
엄마를 떠올리며 이혜미가 미소 를 지었다.
“엄마가 다음 날에 정말로 옷을 다려 주러 왔더라고요. 그때 이
걸 사 가지고 오셨어요. 이게 다 림질하기 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