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화
문지나가 그린 그림을 보며 마 음이 따뜻해진 강상식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황민성을 보았다.
“형이 여기 좀 봐 주세요.”
“너는?”
“저 지나 씨 좀 데려와야겠어 요.”
“데려와?”
“형 말대로 이사를 하는데 집
주인이 있어야죠.”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네가 데리러 가면 안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럴까요?”
“곧 그만둘 거기는 하지만 일하 는 곳이잖아. 조퇴시키려고 남자 친구가 오면…… 난 싫을 것 같 은데? 괜히 네 힘 빌리는 것 같 잖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안 가시 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가?”
“형 차도 국산으로 타고 오라고 하는 거 보면…… 형이 부끄러운 거죠.”
“뭐? 이게 죽으려고.”
“농담이에요.”
강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지 말아요. 이따가 조퇴해서
오시겠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지나의 그림을 보 았다. 가만히 그림을 보던 그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
“지나 씨…… 그림 공부해 보라 고 할까?”
“그림요?”
“이 그림 나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냐? 더 많이 그려서 많 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어.”
“그림을 잘 그리기는 했는데,
화가를 하기에는……
강진이 작게 하는 말에 강상식 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림 그려서 돈 벌라는 것이 아니고, 취미처럼 그림을 배우면 좋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야. 그러다가 실력 늘면 우리끼리 작 게 그림 걸어서 파티도 하고.”
“그렇다면야 괜찮네요.”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이 태교 에도 좋을 것 같고.”
“태교?”
강상식의 말에 강진과 황민성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형수 임신하셨어요?”
“제수씨 임신했어?”
두 사람이 놀라 보는 것에 강상 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저도 책임감이라는 것이 있는 사람이에요. 결혼하기도 전 에 임신시키고 그러지 않아요.”
“왜요? 속도위반이라고 해도 결 혼을 할 사이면 양심에 걸릴 것 이 없죠.”
“그렇기는 한데……
강상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 다.
“나는 결혼하고 아기를 가지고 싶어."
그는 건물에 올라가는 짐을 보 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 결혼식도 못 하 고 혼인신고마저 못 했잖아. 그 러니 엄마가 못 해 본 혼인신고 도 하고 결혼식도 할 거야. 그리 고 아이는 결혼식 하고 가질 거
야.”
강상식의 말에 강진과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을 수 있으면 결혼하고 아이 가지는 것이 가장 좋죠.”
“그래서 열심히 참고 있다.”
강상식이 웃으며 말을 하고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결혼식 하면 정말 열심히 장어 도 먹고 마늘도 먹으면서 아이 가질 거야. 그리고 진짜 열심히 노력할 거야. 매일매일!”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 노력, 아기를 가지겠다는 마음뿐이에요? 다른 의도도 있는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웃었다.
“물론 다른 의도도 있기는 한 데…… 일단 아이가 먼저다.”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후딱후딱 애들 낳아라. 내년에 애들 낳으면 우리 투희하 고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투희?”
“희, 소희. 둘이 합쳐서 투희. 애칭이야.”
“투희…… 부르기는 쉽네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애들은 형도 있고, 누나 도 있고 좋네요. 이거 형만 아이 둘이 한 번에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 애들도 형과 누나가 한 번 에 생긴 거네요.”
“우리 애들도 동생이 생기는 거
니 좋지. 특히 소희는 더 좋겠 다. 몇 분 차이로 동생이 됐는 데, 새로 동생이 생기니까.”
이야기를 나누며 이삿짐이 올라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시간을 보고는 말했다.
“저 장사 준비할게요.”
“그래.”
“그리고 일하시는 분들 점심 저 희 가게에서 드시라고 하세요.”
“알았어. 한 12시 반쯤 가면 되 나?”
“일단 전화주세요.”
“알았어.”
이야기를 마친 강진은 가게 안 으로 들어갔다. 이제 곧 손님들 올 시간이니 강진도 음식 준비를 해야 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 이사 직 원들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 다.
“식사 맛있게 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여기 참 맛집이네요.”
직원들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이사 깔끔하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아닙니다.”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 를 나섰다. 두 명이 사는 살림이 라 이사가 오전에 다 끝난 것이 다.
직원들을 보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강상식은 고무장갑들이 두둥실 떠서 그릇들을 주방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다.
강상식과 황민성 둘 다 저승식 당에 대해 알고 있으니 귀신 직 원들이 그릇들을 정리하기 시작 한 것이다.
강상식이 그릇이 떠다니는 걸 살짝 놀란 눈으로 볼 때, 황민성 이 웃으며 말했다.
“신기하지?”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환상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 해요.”
웃으며 강진이 가게 문을 잠갔 다.
달칵!
“왜 문을 잠그나 했더니…… 이
것 때문이었구나.”
가끔 낮 시간에 왔을 때 문이 잠겨 있던 것을 떠올린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시간 아닐 때는 저희 직원 들이 홀에서 핸드폰도 하면서 쉬 거든요. 문 안 잠가 놓고 있다가 사람들이 들어와서 저런 모습 보 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허공에 떠다니는 그릇과 고무장 갑들을 보던 강상식이 물었다.
“그…… 용수도 핸드폰으로 나
한테 문자 보내고 하던데, 그럼 여기 직원들은 가족이나 다른 사 람에게는 연락 안 해?”
“귀신들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룰이 있어요.”
“그래?”
“가족이나 자신을 아는 사람들 에게 연락을 할 때는 대가를 지 불해야 해요.”
“대가?”
강상식이 보자, 강진이 잠시 있 다가 말했다.
“일단 죽은 자식을 다시 기억에 서 꺼냈을 때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기쁘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슬픔도 크 겠죠. 그리고 나아가던 상처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고요.”
“그리고…… 귀신이기도 하고.”
황민성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가족들이나 지인들한테 연락하지 않아요.”
“그렇구나.”
강상식은 안쓰럽다는 듯 허공에 떠다니는 고무장갑을 보았다.
“핸드폰이 있는데 연락을 못 하 는구나.”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들을 보았다.
‘확실히 그러네요. 핸드폰이 있 어도 전화를 못 하고.. 문자로
안부를 묻지도 못하고.’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게 직원들이었다.
잠시 직원들을 보던 강진이 강
상식을 보았다.
“이사 잘 됐어요?”
강상식과 황민성은 이사가 끝난 집을 봤지만, 강진은 일을 하고 있어서 안을 보지 못했다.
“청소까지 깔끔하게 잘 해 주고 가셨어.”
“요즘 이사가 정말 편해.”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게 다 돈 써서 그런 거예요. 저 고시원에 살 때는 얼마 되지
도 않는 짐 끙끙거리며 옮기고 청소했었는데 엄청 힘들어요.”
“그래?”
“그럼요. 그 작은 고시원에 살 면서도 짐이 왜 이리 많이 생기 는지. 가방 하나면 되겠다 싶은 데도 막상 옮길 때 되면 가방 두 개는 있어야 하더라고요.”
“지나 씨 자취방도 그렇더라. 짐 얼마 되지도 않을 것 같았는 데 엄청 나오더라.”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간을 보았다.
“이제 센터에서 산 물건들만 오 면 되네요.”
“이사할 때 같이 오면 한 번에 다 됐을 텐데.”
“며칠 전에 예약을 하면 일정을 잡아 주는데 저희는 이틀 전에 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가게 문이 작게 흔들렸다.
띠링! 띠링!
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강진이 직원들을 보았다. 직원들은 이미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직원들이 모두 주방에 들어가 자, 강진이 가게 문을 열었다. 가 게 앞에는 문지나가 상자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조퇴 성공하셨나 보네요.”
강진이 웃으며 상자를 건네받다 가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상 자 안에는 사무용품들이 들어 있 었다.
“이건 뭐예요? 쓰던 것 같은 데?”
“조퇴가 아니라 오늘부로 퇴사 예요.”
“ 오늘요?”
“오늘 출근하니까 저 대신할 사 람 출근했더라고요.”
“갑자기요?”
“부장님 조카래요.”
“그럼 조카를 꽂은 거예요?”
강진의 말에 문지나가 옷었다.
“저희 회사처럼 작은 곳에서 꽂 는 것이 어디 있어요. 그냥 조카 가 지금 쉬고 있으니 와서 일하 라는 거죠. 마침 자리도 생겼고. 한 몇 달 일하다가 그만두고 다 른 회사 갈 거예요.”
“몇 달 일하고 그만두면 사람 다시 구해야 하잖아요.”
“그거야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 죠. 그리고 저야 대신 일해 줄 사람 빨리 구해줘서 다행이죠.”
“그래도 말도 없이 사람 데려오 는 건 너무했네요. 준비할 시간
은 줘야지.”
강진의 말에 문지나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아요. 나는 오히려 속이 시원한 걸요.”
문지나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시원하면 된 거죠. 식사 안 했죠?”
“네. 배고파요.”
“강진아.”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지나를 보았다.
“음식 어떻게 해 드릴까요?”
“라면 먹고 싶어요.”
“ 라면요?”
“전에 해 준 해물라면 맛있더라 고요.”
“알겠습니다.”
주문을 마친 문지나가 강상식을 보았다.
“이사는 잘 됐어요?”
“센터에서 물건 오면 다 된 건 데…… 일단 가서 볼래요?”
“그러세요. 라면 다 끓을 때쯤 전화할게요.”
강진의 말에 문지나가 상자를 들려 하자, 강상식이 대신 그것 을 들었다.
“내가 들게요.”
강상식은 상자를 든 채 밖으로 나가려다가 황민성을 보았다.
“형도 같이 가실래요?”
“아니야. 둘이 가서 봐.”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지나를 데리고 가 게를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가자, 황민성이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용수야.”
“네.”
황민성의 부름에 배용수가 홀로 나왔다.
“용수 형 옆에 있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주방 쪽
을 보며 말했다.
“가서 문지혁 씨 좀 데리고 와 라.”
“지혁 씨요?”
배용수의 말을 강진이 대신 해 주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인사 는 제대로 하게 모시고 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에 게 말했다.
“상식 형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어서 가라. 너 아직 초대 안 받 아서 못 들어가.”
“아…… 알았어.”
배용수가 서둘러 가게를 나서 자,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형 JS 사탕 하나 주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에 서 사탕을 꺼내 식칼로 두들겼 다.
툭툭툭!
사탕이 쪼개진 걸 감촉으로 확
인한 강진이 그것을 들고는 나왔 다.
“많이 드시지 말고 한 조각만 꺼내서 드세요.”
“알았어.”
황민성은 비닐을 뜯어 작은 사 탕 조각을 꺼내 입에 넣었다. 그 리고 우물거릴 때, 배용수가 문 지혁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왔 다.
“거리는 좀 어떤 것 같아요.”
“거리요?”
“지나 씨와 멀리 못 떨어지니까 요. 가게 한 번 돌아보세요.”
강진의 말에 문지혁이 가게를 한 바퀴 돌다가 한쪽에서 멈췄 다.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문지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희 가게 안에는 들어오 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앞으로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자주 오세요. 상식 형이 그러라 고 여기로 이사 온 거니까요.”
“저 밥 먹으라고 이사까지 여기 로 오고 정말 고맙네요. 제가 매 제를 잘 얻은 것 같습니다.”
문지혁은 기분 좋게 웃으며 가 게를 보았다. 이제 앞으로 이곳 에 자주 올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