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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42화 (840/1,050)

842화

강진은 쇼핑백을 하나 들고 JS 금융에 들어서고 있었다. JS 금 융 창구 앞에는 오늘도 귀신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 귀신들을 안쓰럽다는 듯 보 던 강진에게 직원 한 명이 다가 왔다.

“이강진 씨.”

직원의 부름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전에 본 적이 있는 인턴이

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인사하자 인턴이 웃으며 말했다.

“저 인턴 끝났습니다. 이제 정 직원이에요.”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축하까지는요. 그래도

아직 말단 사원인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인턴의 얼 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인턴이

끝난 것이 정말 기분이 좋은 모 양이었다.

“강두치 대리님 보러 오신 거 죠?”

“네.”

“이쪽으로 오세요.”

인턴, 아니 이제는 정직원인 된 이를 따라 귀신으로 가득한 곳을 지난 강진은 아주 한가한 창구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쪽은 수천 명의 귀신이 하나 의 창구 앞에서 줄을 서다가 한

명의 직원에게 일을 본다면, 이 쪽은 수십의 직원이 손님을 기다 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창구들에 다가 오는 손님은 강진이 유일했다.

강두치가 있는 창구로 걷던 강 진은 길게 늘어선 귀신들을 보았 다.

‘이만큼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이 적다는 건가?’

귀신들이 바글바글한 곳과 이 한가한 곳을 번갈아볼 때, 강진

이 다가오던 것을 보던 강두치가 손을 들었다.

“강진 씨 여기예요.”

강두치의 손짓에 강진이 그 앞 으로 가서는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창구에서 일하시나 보 네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으며 귀신들을 상대하는 직원을 보았 다.

귀신들이 장시간 줄을 서서 순 서를 기다리는 만큼, 그들을 상

대하는 직원도 고생이었다. 수천 의 귀신을 혼자 상대해야 하니 말이다.

“저쪽으로만 가지 않으면 여기 만큼 꿀 보직도 없죠. 보세요. 얼 마나 한가해요.”

“정말 많이 한가하네요.”

강진이 한가하다 못해 손님 하 나 없는 창구를 둘러보자, 강두 치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만 있으면 이 직업도 할 만할 텐데…… 제 꿈이 바로 월

급 도둑 아니겠습니까.”

“월급 도둑이라

꿈이죠.”

직장인들의

웃으며 강진은 일하는 보다가

말했다.

직원을

“두치

요?”

씨도 저쪽에서

일하세

“이삼

니다.”

년에 한 번 가서

일을 합

“그래도 자주는 아니네요?”

“제가 신입일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했어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도 짬에 따라 힘든 일을 더 하나 보네.’

어디든 짬이 딸리는 막내들이 힘든 일을 더 하는 법이니 말이 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업무를 도 와드릴까요?”

웃으며 앞자리를 가리킨 강두치 가 음료와 과자가 담겨 있는 쟁

반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음료 캔 뚜껑을 따서 내밀자, 강진이 그것을 잡으며 말했다.

“오늘 온 건 물어볼 것이 있어 서예요.”

“아직까지는 궁금한 것이 있을 시기죠.”

강두치는 태블릿을 꺼내 들었 다.

“자! 그럼 우리 사장님께서 어 떤 것이 궁금하실까요.”

“다른 것이 아니라 귀신이 음성

녹음을 해서……

강진이 강두치에게 묻고 싶은 건 이것이었다. 문지혁이 대본을 읽으면 그것을 드라마에서 쓸 수 있을지 말이다.

전에 L전자에서 음성을 조합해 서 고인의 음성을 만들었지만, 조금 감정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 다.

아무래도 음성을 컴퓨터로 조합 해서 만드는 거라 조금 어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승식당 시간에 문지혁 의 음성을 녹음하고 그걸 드라마 에 사용하면 어떨까 싶었다.

일전에 VR로 자식들을 보았던 부모님들이야 목소리가 조금 어 색해도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겠 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 어색함을 발연기로 볼 것이 다.

그래서 연기하는 문지혁의 음성 을 직접 녹음해서 방송에 내보내 고 싶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잠시 그

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렇게 물어보러 와 주셔 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진이 보자 강두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에 소희 아가씨가 VR에 아 이들 음성을 실었을 때 저희 일 이 좀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두치 씨한테 먼저 물어 보려고 왔습니다. 근데…… 그때 이야기를 하신다는 건 녹음이 안 된다는 건가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말을 했다.

“저승에서 통하는 건 딱 하나입 니다. 바로 돈이죠.”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는 강두치 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 이야기는 자주 들었죠.”

“그게 정답이라서 그렇습니다. 저승은…… 돈만 있으면 부활도 할 수 있습니다.”

“ 부활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보자, 강두 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겁니다. 죽은 사람도 부활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게…… 말이 되나요?”

“됩니다. 다만…… 그 정도로 돈을 버는 건 정말 어렵죠.”

“부활하는 데 들어가는 액수가 엄청 큰가 보군요.”

“엄청 크죠. 그렇지 않으면 어 지간한 VIP들은 다 부활하려고

할 텐데…… 그럼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강두치는 손가락을 하나 들었 다.

“일 조.”

“일 조?”

“부활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아 마 일 조 정도 할 겁니다.”

강진은 놀란 눈으로 강두치를 보았다.

“저승 돈으로 일 조?”

놀람에 찬 강진을 보며 강두치 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천만 원만 모아도 저희 세상 에서는 VIP 로 분류가 되니 일 조가 얼마나 큰돈인지 아실 겁니 다.”

“아……

강진이 말을 잇지 못하자, 강두 치가 웃으며 말을 했다.

“부활에 대해 이야기를 한 건 어디까지나 저승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

려고 한 겁니다.”

그러고는 강두치가 입맛을 다셨 다.

“일 조.. 어마어마한 돈이

죠.”

자기가 말을 한 금액임에도 너 무 큰 금액이라 본인이 놀란 것 이다.

“이승이든 저승이든 일 조면 엄 청 큰돈이네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저었다.

“이승보다 저승에서 더 크죠. 이승에서는 그래도 사람들 눈도 있고, 법망도 있지만…… 저승은 그런 제약이 하나도 없는 걸요. 그냥 돈이면 끝이에요.”

강두치가 웃으며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그 정도로까지 돈을 모 으신 분들은 돈이 많아도 딱히 자기 위해서 쓰지는 않더라고 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겠죠.”

저승에서 돈이 많다는 건 살아 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남을 위 해 자신의 시간을 썼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사람들이 저승에 와서 부 자가 됐다고 이승 부자들처럼 돈 을 흥청망청 쓰고 갑질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강진은 문득 강두치를 보았다.

“그런 VIP분들은 저승에서 뭐하

고 지내세요?”

“여행도 다니시고, 만나고 싶었 던 연예인들 있으면 그분들 만나 서 이야기도 하고…… 음식 봉사 도 하세요.”

“음식 봉사요?”

“전에 아이 한 명 승천했을 때 지장보살께서 돈 보내주셨잖습니 까. 기억나세요?”

강두치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죠. 저희 식당에서 처음

으로 승천한 손님인데요.”

제육볶음을 먹고 승천을 했던 아이를 떠올리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두치가 말했다.

“지장보살께서는 어린 영혼들을 돌보는 재단과 지옥에 떨어진 불 쌍한 이들을 돕는 재단 두 개를 운영하십니다. VIP 많은 분들이 그런 재단에서 일도 하고 기부도 하면서 지내십니다.”

“그런 복지 재단이 많은가 보네 요?”

“올라오시면 재단에 들어가서 일을 하시기도 하고, 가고 싶은 복지 재단이 없으면 만드시기도 하고…… 그래서 재단이 참 많아 요.”

그러고는 강두치가 고개를 저었 다.

“지옥에 밥차 봉사하시는 분들 도 있습니다.”

“지옥에요?”

“배고프라고 넣어 놓은 지옥인 데…… 뭘 거기까지 봉사들을 하

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 는 강두치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분들은 저승에서도 좋은 일들을 하시는군요.”

“그런 분들을 이승에서는 천사 라고 하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며 물었다.

“그럼 되기는 한다는 거군요?”

“이야기가 길었지만 결론은 됩 니다. 대신…… 가격이 조금 나 갈 겁니다.”

“그래요?”

“귀신이 이승에 영향을 끼치는 거니까요.”

“음성 정도뿐인데도?”

“제가 드라마에서 봤는데 거기 좋은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라는 대사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그럼 돈을 지불하면 된다는 거 군요.”

“맞습니다. 다만 그 돈을 지불 하면 문지혁 씨 저승 생활이 조 금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문지 혁 씨가 좋은 일을 해서 돈은 좀 모으셨지만 펑펑 쓸 정도는 아니 거든요.”

“그렇군요.”

잠시 강진을 보던 강두치가 입 맛을 다셨다.

w 으  하

그는 주위를 슥 훑어보고는 종 이에 작게 글을 적어서는 슬며시 내밀었다.

그러고는 살짝 눈짓을 하는 것 에, 강진은 종이를 받아 펼치려 다가 손을 밑으로 내려서는 내용 을 보았다.

〈신수호하고 상의를 하십시오.〉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강 진이 쳐다보자, 강두치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변호사가 일을 잘하면 벌금도 적게 내는 법이죠.”

“아…… 감사합니다.”

“원래 이런 것 알려드리고 하면 안 되는 겁니다. 특별대우예요. 아! 그리고 비밀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아.” 하더니 들고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거 드릴게요.”

“이거 뭔데요?”

웃으며 쇼핑백을 열어 본 강두 치는 그 안에서 책을 꺼냈다.

“책이네요? 꽃 피어나다?”

“소희 아가씨 이야기로 만든 책 입니다.”

“어‘?”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놀란 듯 그를 보다가 책을 펼쳤다. 그러

고는 책 안에 김소희의 이름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아가씨 이야기군요.”

“아가씨가 주인공이니까요. 문 지혁 씨가 출연하기로 한 배역도 이 안에 있는 검둥이라는 캐릭터 예요.”

“아…… 그렇군요.”

강두치가 책을 천천히 훑어보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 책을 이렇게 해서 촤르륵 하시면 꽃이 피어나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책을 말 았다가 끝부분을 놓았다. 그러자 여러 장이 빠르게 넘어가며 모서 리에 있는 봉우리가 활짝 피어났 다. 그에 강두치가 미소를 지었 다.

“좋군요.”

“그렇죠?”

강두치는 책을 내려놓고는 말했 다.

“누님이 책을 보고 참 좋아하셨 겠습니다.”

“좋아하셨어요.”

“읽어 보고 누님한테 사인이라 도 받아야겠네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 * *

가게로 돌아온 강진은 신수호에 게 문자를 보냈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예전엔 가게 안에서 허공에 대 고 ‘잠시 이야기 좀 하게요.’라고 말하기만 하면 신수호에게서 연 락이 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 수호가 가게를 살피지 않으니 말 을 한다고 해서 그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자를 보낸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수호에게서 온 문자에 강진이 글을 적었다.

<……그래서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장문의 문자를 적어서 보내자, 잠시 후 답신이 왔다.

〈지금은 재판이 있으니 갈 수 없습니다. 저녁 저승식당 시간에 가도록 하지요.〉

〈도와주시는 겁니까?〉

〈소희 아가씨의 드라마입니다. 잘 되면 좋겠습니다.〉

신수호의 문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신수호는 문지혁을 돕기 보다는 김소희를 돕는다는 마음 으로 돕겠다고 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걸로 문자를 끝낸 강진이 홀 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돈만 내면 된대.”

“역시 돈이 들어가는구먼.”

“그러게 말이다. 저승은 다 돈 이더라고.”

“그래서 얼마나 든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조금 들지는 않을 것 같더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하긴, 귀신이 이승에서 영향을 끼치는 거니 돈이 많이 들기는 하겠다.”

“신수호 씨와 상담을 해 보라고 두치 씨가 슬며시 이야기해 주더 라. 변호사가 잘 하면 벌금도 깎 아진다고.”

“오! 그런 비용도 변호사가 깎 아 줄 수 있는 거야?”

“그런 모양이야. 두치 씨가 직 원들 눈치 보면서 알려 주더라 고.”

“하긴, 그런 거 말해 주면 회사 차원에서는 손해기는 하겠다.”

JS 금융이 일종의 회사라고 치 면 강두치는 요금 할인 비법을 강진에게 알려 준 셈이었다. 그 래서 다른 직원들 몰래 말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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