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843화 (841/1,050)

843 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신 강진이 직원들을 보았다.

“책은 다 보셨어요?”

“어제 다 봤죠.”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나도 결국은 다 봤다.”

“ 결국은?”

다 봤으면 다 본 것이지, 결국 이라는 단어가 왜 들어가나 싶어 강진이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이야?”

“어제 너 올라가고 책을 보고 있었거든. 근데…… 내가 요리책 은 좀 봐도 이런 소설은 잘 보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보니 답 답하더라고. 그래서 TV 보려고 했거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아가씨 책 보는데 TV를 틀었 어? 안 혼났어?”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었다.

“리모컨 잡으려고 하기에 제가 말렸어요.”

“다행이네요. 형수 아니었으면 내 마누라 칼 맞을 뻔했네요.”

마누라라는 말에 이혜미가 작게 웃으며 말을 했다.

“제가 리모컨 잡고 눈치 주니까 핸드폰을 잡더라고요. 그때……

핸드폰을 쥐고 인터넷을 하려는 배용수의 귀에 김소희의 목소리 가 들렸다.

-자네는 한정식 요리사라고 했 던가.

김소희의 말에 배용수가 급히 일어나서는 답했다.

-운암정에서 요리를 배웠습니 다.

스륵!

김소희는 책장을 넘기며 말했 다.

-자네는 한식이 뭐라 생각을 하나?

-음…… 정성이라 생각을 합니 다.

-정성이라. 좋은 답이군. 그럼 자네는 정성이 뭐라 생각을 하 나?

-정성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요리를 하는 저에게 있어 정성이 란 음식을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라 생각을 합니다.

술술 답을 하는 배용수의 모습 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배용 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을 하 면 한마디 해 주려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네를 가르친 이가 잘 가르 쳤군.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배용수를 보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자네는 음식을 할 때도 그리 이것저것을 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은 하나를 할 때 끈기 있 게 해야 하는 법일세. 재능이 아 무리 좋은 자라도 끈기 있게 한 길을 가는 이를 이기지 못하는 법일세.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왜 자신 에게 이런 말을 하나 싶어 배용 수가 의아해할 때 이혜미가 그를 툭 쳤다.

그에 배용수가 보자 이혜미가 탁자에 놓인 책을 손가락으로 가 리켰다.

‘아……

그제야 김소희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 배용수가 고개를 숙 였다.

-제가 책을 잘 안 보는 편이라 서요.

-……책이 재미가 없나?

-그, 그럴 리가요. 정말 재밌습 니다.

-재미가 있어?

-그렇습니다.

배용수는 급히 자리에 앉아 책 을 펼쳤다.

-저 벌써 이만큼이나 봤습니다.

배용수가 자신이 본 만큼 페이 지를 넘기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사람이든 귀신이든 끈기가 있 어야 성공하는 것이네.

그러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리는 김소희의 모습에 배용수 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귀신이 성공을 하면…… 뭐가 되는 겁니까?’

고개를 저은 배용수가 책을 보 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 다 봤다.”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네.”

“나 학교 다닐 때도 완독한 게 거의 없는데…… 정말 내 인생에 요리책 빼고 완독한 책은 꽃 피 어나다가 처음인 것 같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책 재밌던데? 재미없었 어?”

“재미는 있었어.”

“그런데 왜 읽기가 힘들었어? 하긴, 책을 안 보던 사람이면 책 을 보는 것이 힘들기도 했겠다.”

“그게 아니라……

배용수는 입맛을 다시며 김소희 가 앉아 있던 곳을 보았다.

“아가씨 인생 이야기잖아. 보다 보니까…… 안쓰럽더라고. 그래 서 계속 보기가 그렇더라. 보면 볼수록 내가 다 힘들고 외로워지 는 느낌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책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러고는 강진이 김소희가 있던 테이블을 보았다.

“책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 어. 차라리 꽃이 안 피면 더 좋 을 것 같다는.”

“봉오리인 채로 말이지?”

“ 맞아.”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했다.

“봉오리 때는…… 참 행복하시 던데.”

글 초반에 있는 김소희의 유년 시절은 행복했다. 엄격하지만 자 상한 아버지, 인자하고 정이 깊 은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의지 가 되는 오라버니…… 그리고 자 신의 옆을 늘 지켜주는 언니 같 은 몸종 복실이까지…….

본인이 왈가닥인 것만 빼면 김 소희의 유년시절은 행복한 양반 가 규수의 일상 그 자체였다.

그런데 책을 읽고 봉오리가 피 어날수록 정든 이들과의 이별과 사랑하는 이들의 피가 늘어났다.

그래서 배용수는 읽기가 힘들었 다. 소설 속 김소희가 너무 고통 스러워하니 말이다.

배용수의 마음이 뭔지 안 강진 이 탁자에 놓인 책을 보다가 말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 우 리 아가씨 삶이 재미가 있으면 안 되는데…… 우리 아가씨 이렇 게 힘들고 괴로웠는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재밌더라고. 그래서 미

안하고 죄송하더라.”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아가 씨는 글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 었어요.”

“그래요?”

강진은 어제 자러 들어가서 김 소희가 책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보지 못한 것이다.

“재밌게 보셨는지는 모르겠지 만, 마음에 들어 하시며 가셨어

요.”

“그럼 다행이네요.”

이야기를 나눈 강진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시간을 보았다.

“점심 준비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강진은 문

지혁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변호사 한 분 오실 거예 요. 그분하고 이야기를 좀 하셔 야 합니다.”

“변호사? 그분도 귀신인가요?”

“귀신은 아니고…… 사람인데 저처럼 저승 일을 돕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네.”

고개를 끄덕이던 문지혁이 강진 을 보았다.

“그런데 그분이 왜?”

문지혁의 말에 강진은 그가 손 에 쥐고 대본을 보았다. 문지혁 은 가게에 오자마자 대본부터 챙 겼었다.

대본을 마음대로 쥐고 볼 수 있 는 시간은 그가 저승시간에 현신 을 한 지금만이 가능하니 말이 다.

하지만 문지혁은 대본을 볼 필 요가 없었다. 사실 일, 이 회는 아역 배우들이 나오는 만큼 문지 혁의 분량은 없었다.

물론 김소희 나이를 생각한다면 성인이 아닌 아역 배우가 해도 될 것 같지만, 김소희는 아역 배 우가 자신을 맡으면 싫어할 것이 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말 이다. 외모 상 성인보다 학생 정 도의 아역이 그녀와 더 잘 어울 릴 텐데도 말이다.

어쨌든 아역에서 성인으로 변하 는 과정도 김소희가 검을 휘두르 고 그 옆에서 복실이가 한숨을 쉬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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