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6화
“형, 여기 술값 우리가 낼게요.”
최동해의 말에 정인섭이 급히 말했다.
“아니요. 저희가 낼게요.”
오늘 처음 본 사람들에게 얻어 먹기 그런지 정인섭이 만류하자 최동해가 말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인섭 학생 아버지가 우리 자식 같다고 음료
수를 사 줬잖아요. 그럼 우리에 게는 인섭 학생이 동생 같은 거 지. 술집에서 우연히 동생 만나 면 형들이 술값 한 번 내 주는 것이 멋 아니겠어요? 그리고
최동해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강진 형님이 이런 내 멋 진 마음을 아시니 술값 많이 안 받을 거예요. 아! 알죠? 여기 가 격 저렴한 거.”
“그건 알죠.”
“그러니 다음에 비싼 술집에서 우리 보면 모른 척해 줘요.”
즉, 가격이 싼 곳에서 만났으니 생색 한 번 낸다는 말이었다. 최 동해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자 정 인섭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동네 동생들이다 생각하 고 편하게 말 놓아 주세요.”
“오늘 처음 봤는데 그건 다음 에.. ”
“동생한테 말 높이는 형이 어디 에 있어요. 그럼 술값 저희가 낼
래요.”
정인섭의 말에 최창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형 노릇 하려고 했으면 동생도 동생 노릇 해야 지.”
그러고는 최창수가 정인섭을 보 았다.
“나는 최창수고 이쪽은 최동해, 그리고 이쪽은 유성기.”
“저는 정인섭이고요. 여기는 최 강찬입니다.”
정인섭의 말에 최창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런데…… 몇 학년이에요?”
“올해 신입생입니다. 그리고 말 편하게 해 주세요, 형.”
정인섭이 형이라고 하자, 최동 해가 웃었다.
“동생이 붙임성이 있네.”
최동해는 형이라고 부르는 소리 가 듣기 좋은 것 같았다. 만족스 레 웃은 그는 정인섭을 보았다.
“그러지 말고 우리하고 합석하 자.”
“합석요?”
“형 동생 하기로 했는데 떨어져 서 앉기도 그렇잖아. 같이 앉자.”
“그럼 그럴까요?”
정인섭의 말에 최동해가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쪽 테이블에 의자 하나만 붙
이면 되겠어.”
최동해는 옆에 있던 의자를 정
인섭 테이블 근처에 놓고 친구들 을 보았다. 그에 친구 둘도 정인 섭 테이블 쪽으로 와서는 빈자리 에 앉았다.
그에 정인섭이 급히 일어나서는 잔들을 가지고 와서 놓았고, 최 강찬은 수저를 놓았다.
“역시 술은 동생들하고 먹어야 편해.”
최창수의 말에 최동해가 그를 보았다.
“너는 동생들하고 술 많이 먹어
봤어?”
“그렇지. 너는 없어?”
“나는…… 없네.”
최동해가 씁쓸하게 하는 말에 최창수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 다.
“대학교 때도 없었어? 과 후배 나 동아리 후배 있지 않아?”
“그게…… 내가 좀 아웃사이더 였거든.”
“네가?”
“왜, 아닌 것 같아?”
“너 사람한테 말 잘 걸잖아. 나 한테도 네가 먼저 말 걸었었고.”
최창수가 의아한 듯 보자, 최동 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살이 좀 빠지고 나서 외 향적으로 변했어.”
학교 다닐 때 최동해는 친구들 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어릴 때는 놀림을 당했고, 대학 에 와서도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이 그를 멀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식탐이 같이 먹던 일행을 질색하게 만드는 것이었 다. 그래서 술자리 같은 곳에 초 대를 받지 못했었다.
지금이야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 탐을 부리지 않지만…… 그 당시 최동해라면 사실 누구도 같이 술 을 먹거나 밥을 먹고 싶지 않았 을 것이다.
그래서 최동해는 오늘 처음 본 동생들이지만, 이렇게 동생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가 기분이 좋았
다.
“너 살 얼마나 뺐다고 했지?”
최창수가 묻자 최동해가 웃으며 말했다.
“오십 킬로 정도 뺐어.”
“오십 킬로?’’
깜짝 놀라 보는 최창수를 보며 최동해가 재차 웃었다.
“앞으로 오 킬로 정도 더 뺄 거 야.”
“왜? 지금 충분히 좋아 보이는
데?”
“아니야. 내 목표가 있어.”
최동해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살을 그렇게 빼니까 인생이 확 변하더라. 어쩐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고. 사람 볼 때도 내가 꿇릴 게 뭐가 있나 싶고.”
“하긴. 살을 그 정도 뺐으면 자 신감 가득할 만하다. 정말 대단 하다.”
최창수가 대단하다는 듯 보자 최동해가 웃으며 자리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최 씨가 셋 이나 있네.”
“그러게요. 우연히 만났는데 최 씨가 셋이나 같이 모인 것도 신 기하네요.”
최강찬도 신기한 듯 웃으며 말 하자 최동해가 웃으며 맥주잔을 잡았다.
“신기한 마음은 집어넣고 일단
다들 한 잔씩 받자.”
최동해는 맥주병을 들고는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쪼르륵! 화아악!
거품이 올라오는 걸 보는 것만 으로 최동해는 입에 침이 나올 것 같았다.
시원한 맥주와 부드러운 거품까 지…….
꿀꺽!
자신이 따르는 맥주를 보던 최
동해는 자신의 잔에도 맥주를 따 랐다.
딱 3분의 1 정도……. 그것도 거품이 반이니 겨우 잔 바닥을 채운 정도로 맥주를 따른 최동해 가 잔을 들었다.
“우리 참 고생했고, 체력 시험 도 잘 보자.”
“그래. 파이팅하자!”
“자! 먹자!”
가볍게 잔을 맞부딪친 사람들이 술을 마셨다. 최동해도 조금 따
라진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는 입맛을 다시며 잔을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목구멍을 열고 맥주를 원샷하고 싶었다. 물론 방금도 원샷은 원샷인데…… 들 어가다 만 느낌이었다.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속이 시 원해진 최동해가 잔을 내려놓자 정인섭이 그를 보았다.
“형은 술 못 하세요?”
정인섭의 물음에 최동해가 웃었 다.
“형 술 잘 먹어.”
“그럼 왜 그것만 드세요?”
“형 다이어트 중이야. 그래서 자제해야 해.”
그러고는 최동해가 웃으며 잔을 보았다. 바닥이 드러난 잔을 보 며 입맛을 다시는 최동해의 모습 에 최창수가 웃으며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하다. 난 너처럼 못 살 거야.”
“나도 나처럼 살기 싫다.”
고개를 저은 최동해가 정인섭을 보았다.
“형들 소방관 필기 합격했다.”
“오! 형 축하드려요!”
정인섭과 최강찬이 웃으며 축하 를 해 주자, 최동해가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 고맙다.”
“그럼 소방관 되시는 거예요?”
“소방관이 머리만 좋다고 되는 거면 얼마나 좋겠어. 일단 불 속
에 뛰어들어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체력도 봐야 하고, 그 인성 도 봐야 하고…… 앞으로 몇 개 더 봐야 해.”
“잘 되시기를 기도할게요.”
“그러면 너무 좋지.”
“그런데 형들은 왜 소방관이 되 려고 하세요?”
정인섭이 궁금한 듯 보자, 최동 해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사람들 돕는 것이 멋 지고 보람 있어 보여서. 그리고
돈도 벌 수 있고.”
말을 하던 최동해는 친구들을 보았다.
“얼마나 좋냐. 사람 도우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최고의 직업이 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최동해와 친구들의 모습에 정인 섭이 그들을 보다가 말했다.
“정말 멋진 직업이네요.”
같은 시각, 강진은 주방에서 제 육볶음을 만들고 있었다. 소주 안주로는 조금 양념이 강한 게 좋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참치김치찌개 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고기 안주도 좋지만,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이 같이 있으면 좋으 니 말이다.
“역시 사람이 친해지는 데에는 술과 형 동생만한 것이 없지.”
음식을 만들던 강진은 최고진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
다. 주방 입구에 서 있는 그는 홀에서 음식을 먹는 이들을 보고 있었다.
“술이 몸을 나쁘게 하기는 하지 만, 마음을 위로해 주고 친분을 쌓기에 그만한 것도 없기는 하 죠. 물론 술을 깨고 나면 전날 있었던 일에 이불킥을 할 수도 있지만요.”
강진의 말에 최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킥도 젊을 때나 하는 거 지, 나이 먹으면 이불킥을 하고
싶어도 이런저런 것들이 걸려서 할 일도 만들지 않아.”
젊을 때야 술김에 일을 저지르 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아 무리 술에 취했다 해도 뭔가 하 기에는 걸리는 것이 많다.
일단 가족이라는 무게가 어깨에 걸려 있으니 말이다.
“젊을 때 술 먹고 실수 한두 번 하는 것이 좋아.”
최고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아 요?”
“사람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 어. 그게 빠르냐, 늦냐의 차이지. 그러면 차라리 젊을 때 실수하는 것이 좋아.”
최고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주식하고 같네요.”
“주식?”
“주식도 젊고 돈 없을 때 해야 돈을 잃어도 조금 잃잖아요. 근
데 나이 먹어서 하면 젊을 때 돈 하고 단위가 달라지니 실패를 하 면 크게 잃죠. 그러니 주식도 어 렸을 때 해서 실패해 봐야 나이 먹고 주식에 손을 안 대죠. 주식 해서 돈 버는 사람은 거의 없어 요.”
“요리사 중에 주식해서 돈 버는 분들 몇 있었는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은 따겠지. 근데 한 번 단 맛을 봤으니 또 하려고 할 거
야. 그럼 단위가 더 커지겠지? 전에 백만 원 해서 십 프로 먹었 으면, 천만 원 넣어서 십 프로 먹으면 백만 원 버는 거니까.”
“그렇겠지?”
“근데…… 돈을 따는 사람이 있 으면 잃는 사람도 있어. 잃는 사 람이 있어야 돈을 따는 것이 주 식이니까. 그렇게 판이 커지다가 어느 날 내가 돈을 잃게 되면, 이때까지 번 돈도 순식간이야.”
“그렇구나.”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너는 요리를 해서 다행이다.”
“응? 왜?”
“아니야.”
강진은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최고진을 보았다.
“아저씨 말이 맞아요. 실수 안 하고 잘못 안 하고 살면 가장 좋 지만, 어디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요. 사람 해치는 것만 아니라면 실수도 젊을 때 하는 것이 가장
좋죠. 그게 또 경험이 되어 다음 에는 자제를 하게 되니까요.”
“좋은 말씀이네요.”
홍진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말이기는 한데, 요즘은 이런 말 하고 다니면 꼰대라고 해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
“왜? 딱 꼰대 소리 듣기 좋은 말을 했는데.”
“꼰대는……
잠시 생각을 하던 배용수가 말 을 이었다.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놈들이지. 요즘 어린 꼰대도 있다잖아.”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재차 고개 를 저었다.
“자기가 나서서 힘든 일을 하면 서 꼰대 짓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질로 일 시키면서 ‘나 때 는 이랬는데.’ 하지.”
“운암정에 그런 꼰대가 있었 어?”
“무슨…… 운암정에는 그런 사 람 없어. 숙수님도 김장할 때는 무채도 직접 손질하셔.”
그러고는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 다.
“운암정에 오기 전에 다니던 한 정식 주방장이 그랬어. 자기 때
는 양파 몇 박스를 눈물 질질 흘 리면서 깠다느니, 한겨울에 설거 지를 찬물로 해 봤다느니……. 일 안 할 거면 입이나 닥치고 있 지, 옆에서 그리 주절거리면서 반찬이나 집어먹고 있고.”
배용수가 치를 떨자, 최고진이 웃었다.
“아랫사람한테 존경을 받으려면 입은 무겁고, 지갑이 가벼워야 한다는 걸 그 사람이 몰랐구먼.”
“그러게요. 아니면 옆에서 조금 이라도 도와주던가.”
귀신들이 갑자기 화제가 된 꼰 대라는 걸로 잡담을 나누는 것을 보던 강진은 참치김치찌개와 제 육볶음을 홀로 가지고 나갔다.
“안주 나왔다.”
“국물 냄새만 맡아도 소주 두 병은 마실 것 같네요.”
“많이 먹어.”
강진은 탁자에 음식들을 놓고는 최동해의 앞에는 당근과 오이, 그리고 방울토마토가 담긴 그릇 을 놓았다.
“자, 여물 먹자.”
여물이라는 말에 최동해가 웃으 며 당근을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당근을 먹으며 최동해가 말했 다.
“형도 앉아서 한잔하시죠.”
“형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술 좀 줄이고 있어.”
“어디 안 좋으세요?”
“안 좋은 건 아닌데 요즘 술을
많이 먹어서 말이야. 어쨌든 잘 먹어.”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 가자, 최동해 일행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술잔을 나누기 시작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