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화
라면을 먹는 청년들 옆 테이블 에서 강진과 최동해가 앉아서 이 야기를 나눴다.
“형은 안 드세요?”
“나도 아까 좀 먹었어.”
강진은 라면을 그릇에 덜고 있 는 사람들을 보다가 말했다.
“체력 시험은 할만할 것 같 아?”
“그럼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많이 했는데요. 문제없어 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시험 잘 통과해서 면접을 보게 되면, 네 장점을 잘 부각시켜서 말을 해.”
“제 장점요?”
“이를 테면…… 살을 얼마를 뺐 다는 것과 영어, 중국어, 스페인 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 말이
야.”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런 생각 했어요.”
소방관이 되려고 살을 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살을 뺐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끈기 하나는 알 아봐 줄 것이다.
거기에 최동해는 영어를 유창하 게 구사하고, 중국어는 회화 정
도 가능하고, 스페인어는 듣는 것과 읽고 쓰는 것 정도는 가능 했다.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소방 관이기에 외국어가 반드시 필요 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한 국에서 재난을 당한 외국인을 도 울 일이 있을 경우에는 최동해의 외국어 실력이 도움이 될 것이 다.
이러한 점을 보아 소방 당국에 서 최동해는 꼭 뽑아야 할 인재 중 하나였다.
“제가 뚱뚱할 때는 면접을 보면 떨어졌겠지만…… 지금은 아니잖 아요. 면접 잘 볼 자신이 있어 요.”
최동해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살 을 빼고 나서 겉으로 보기 좋아 진 것도 있지만, 더 좋아진 것은 바로 이 자신감이었다.
평생 못 뺄 것이라 생각을 했던 살을 빼서인지 최동해는 자신감 이 있었다. 게다가 예전에는 약 간 음침한 구석이 있었는데, 지
금은 그런 것도 사라졌다.
옛날의 최동해라면 정인섭에게 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 다. 그런데 지금은 먼저 말을 걸 고 웃으며 대화를 했다.
겉이 변한 만큼 내면도 정말 좋 아진 것이다.
‘확실히 살을 빼고 나니 보기가 좋아졌어.’
그동안 강진은 여러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길 해줬지만, 제일 잘한 일은 최동해에게 살을 빼라
고 말한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 이 다시 태어났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최동해의 시선 이 라면에 고정이 되어 있는 것 에 강진이 웃었다.
“먹고 싶은가 보네.”
“한 젓가락 정말 크게 집어서 후루룩! 했으면……
최동해가 입맛을 다시는 것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다이어트를 평생 할 수는 없으 니 이제 조금씩 먹으면서 관리하
는 것이 좋지 않아?”
“사탄은 물러가라.”
갑자기 자신을 보며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최동해의 모습 에 강진이 웃었다.
“사탄?”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웃으며 말했다.
“유혹하지 마세요. 한 입이 두 입 되고, 두 입이 세 입 되는 거 예요.”
최동해가 자신의 배를 손으로 잡았다. 뱃살이 없어 보이지만, 잡고 당기자 살이 늘어났다.
지금 최동해의 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부가 많이 늘어난 상 태니 말이다.
그 피부를 잡고 흔들며 최동해 가 고개를 저었다.
“이 속에 다시 바람 차기 시작 하면 큰일 나요. 일단 오 킬로 더 빼고 난 후에 먹을지 말지 생 각할 거예요.”
“근데 소방학교 가면 다이어트 식은 못 먹을 텐데 괜찮겠어?”
“그게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먹 는 거 조절하면서 해야죠. 소방 학교라서 훈련이나 그런 것이 힘 들 테니 먹는 것만 잘 조절하면 요요는 오지 않을 거예요.”
“하긴, 소방학교면 체력 많이 필요할 테니 다이어트식만으로는 교육받기 힘들 수도 있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 이 라면을 다 먹은 사람들이 물 을 마셨다.
“와! 잘 먹었다.”
배가 부른 듯 의자에 등을 기대 는 사람들을 보며 강진이 웃었 다.
“잘 먹었어?”
“오늘 술도 많이 마시고, 음식 도 많이 먹고…… 너무 좋네요.”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최동해가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 형도 쉬 려면 우리가 어서 가야겠다.”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좀 쉬다 가지 그래?”
“아니에요. 형도 쉬어야죠.”
말을 하며 최동해가 지갑을 꺼 냈다.
“라면 얼마예요?”
“됐어. 라면은 형이 서비스할 게.”
“그래도……
“ 괜찮아.”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웃으며 지갑을 다시 넣었다. 그때 최강 찬이 웃으며 말했다.
“형들 5월 1일에 뭐하세요?”
“5월 1일?”
“인섭이 그날 생일이거든요. 혹 시 괜찮으시면 같이 놀까 해서 요.”
최강찬의 말에 최동해가 웃었 다.
“생일날 친구들하고 안 놀아?”
“형들하고 노는 것이 더 재밌던 데요.”
최강찬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쯤이면 우리 체력 시험도 끝나고 결과 기다리고 있을 때라 괜찮겠네. 너흰 어때?”
친구들을 보며 의사를 묻던 최 동해는 문득 정인섭을 보고는 고 개를 갸웃거렸다. 정인섭의 얼굴 이 살짝 굳어져 있는 것을 본 것 이다.
“인섭이 생일에 따로 뭐 있어?”
“네? 아…… 아니에요.”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아! 혹 시 그날 다른 거 할 거면 우리는 괜찮아.”
정인섭이 생일에 자신들을 만나 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 최 동해가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 을 했다. 그 말에 정인섭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딱히 할 일 없 어요.”
“근데 표정이 안 좋던데?”
최동해의 말에 정인섭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제 생일 이틀 후가 큰이모 돌 아가신 날이거든요.”
“큰이모?”
“그래서 엄마하고 아빠가 좀 슬 퍼 해요.”
“아버지가 큰이모하고 친하셨나 보네?”
“그러신 모양이에요. 그래
서…… 제 생일은 좀 묘해요. 제 생일 축하하면서도 큰이모 제사 도 챙기는 그런 분위기예요. 그 리고……
정인섭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
“왜?”
강진의 물음에 정인섭이 쓰게 웃었다.
“이상하게 저를 안쓰럽게 보시 는 것 같아요.”
정인섭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옆을 보았다. 옆에서는
홍진주가 한숨을 쉬며 아들을 보 고 있었다.
‘인섭이 낳고 얼마 안 돼서 죽 었다고 하시더니... 그게 이틀
이었습니까?’
강진은 안쓰러운 듯 그녀를 보 았다. 그러던 강진의 머릿속에 아이 생일에 죽을 수 없다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분은 퇴원하셨겠지?’
강진이 홍진주를 볼 때, 정인섭
이 웃으며 형들을 보았다.
“그럼 제 생일에 형들 시간 되 시면 여기서 만나기로 해요.”
“집에서 생일상 안 받아도 되겠 어?”
“생일상은 아침에 받잖아요.”
정인섭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됐네. 우리 체력 시험 끝나고 한 번 놀기는 해야 하니 까 그때 같이 놀면 되겠다. 그럼 그날 보•자.”
“그리고 저 케이크 안 좋아하니 케이크 사 오거나 하지 마세요.”
정인섭의 말에 최동해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케이크? 에이, 남자들끼리 초 에 불붙일 일 있어? 그냥 술이나 마시는 거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네.”
최동해의 말에 정인섭이 웃었 다.
“그러게요. 제가 쓸데없는 소리 를 했네요.”
“그럼 그만 가자. 형, 우리 갈게 요.”
“그래. 다치지 않게 운동 조심 히 해. 체력 시험 볼 때 다쳐서 못 보지 말고.”
“알았어요.”
최동해와 친구들이 인사를 하고 는 가게를 나가자, 강진이 홍진 주를 보았다.
“인섭이 생일엔 분위기가 안 좋 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홍진주가 잠시 있
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 다.
“인섭이 태어나고 이틀 후에 제 가 죽었으니까요. 집안 분위기가 좀 무겁죠.”
“지금도요?”
강진의 말에 홍진주는 재차 한 숨을 쉬며 아들이 나간 문을 보 았다.
“남편이나 진해 둘 다 인섭이 생일 축하해 주고 밝게 있으려고 하지만…… 무거움이 있어요.”
“그렇겠죠. 특히 애들은 눈치가 빠르잖아요.”
애들은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만, 어리고 힘이 없어서인지 아 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남편한테는 제가 죽은 날이고, 진해한테는 언니인 내가 죽은 날 이 며칠 후니까요.”
작게 고개를 저은 홍진주가 급 히 말을 했다.
“그래도 남편이나 진해 둘 다 인섭이 생일날 미역국도 끓이고
케이크하고 선물도 사고 즐겁게 보내려고 해요.”
잠시 머뭇거린 홍진주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슬퍼하 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홍진주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섭이 음식 뭐 좋아해요? 생 일에 해 줄게요.”
“인섭이는……
홍진주가 정인섭이 좋아하는 메 뉴들을 말해주자, 강진이 그것을 메모장에 적다가 고개를 들었다.
홍진주가 빨려 나가듯이 문을 뚫고 사라지고 있었다. 아마도 정인섭이 택시를 탄 모양이었다.
그에 강진이 급히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런 그의 눈에 택시 뒤 를 따라 빨려가는 홍진주의 모습 이 보였다.
“또 올게요!”
홍진주가 크게 손을 혼들며 소
리치자, 강진이 웃으며 마주 손 을 혼들었다. 그렇게 홍진주가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생일은 즐거워야 하는 건데.”
“그러게 말이다.”
자신의 옆에 어느새 다가온 배 용수가 중얼거리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말을 하던 강진이 입을 다물었 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닏나. 들어가자.”
강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입맛을 다셨다.
‘용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 네.’
생각을 해 보니 배용수의 생일 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언제인지 몰라 챙겨주지도 못했 고 말이다.
그의 생일이 8월 이후라면 재작 년, 작년 생일을 두 번이나 그냥
지나친 것이다.
물론 강진도 자신의 생일을 챙 기지는 않았다. 부모님 돌아가시 고 난 후 유일하게 챙긴 생일은 보육원에서 맞이한 19번째 생일 이었다.
그리고 보육원을 나온 후에는 자신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생일이라는 건 남이 챙겨 줘야 기분이 좋지, 자기가 챙기는 건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서글 프니 말이다.
그래서 스물이 되고 난 후 강진
은 자신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 다.
‘내 마누라 생일인데 내가 챙겨 줘야지. 그럼 용수 생일부터 찾 아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은 주방 으로 향했다.
* * *
황민성은 사무실에서 강진과 통
화를 하고 있었다.
“용수 생일?”
[생각을 해 보니 용수 생일을 한 번도 챙겨 준 적이 없어서 요.]
강진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황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올해부터라도 챙겨 주려고요. 형이 좀 알아봐 주세요.]
“알았어.”
그걸로 통화를 끝낸 황민성은 핸드폰을 잠시 보다가 탁자 위에 있는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잠시 들어오세요.”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오 실장이 들어왔다. 그에 황민성이 메모지 에 글을 적어서는 내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생일 좀 알 아봐 주세요.”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메모 지를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운암정 출신 요리사 배용수.
연쇄살인마 피해자 이혜미, 강 선영, 임정숙.
이강진, 강상식.〉
메모장에 적힌 이름들을 확인한 오 실장은 살짝 의아함이 어린 눈으로 그를 보다가 말없이 고개 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강진과 강상식의 생일을 알아보 려는 건 이해가 되었다. 배용수 도 그렇고 말이다.
배용수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 만, 사장님이 좋아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것은 알고 있 으니 말이다.
그런데 연쇄 살인마 피해자들
잠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 리던 오 실장은 작게 고개를 젓 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는 황민성이 시키는 모든 일 을 하는 사람이었다.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오 실장은 평소 이런 일을 주로 도맡아 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 다.
그렇게 오 실장이 자신의 일을 하는 사이, 황민성은 볼펜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들기며 입맛을 다셨다.
‘형이 되어서 동생들 생일 한 번 못 챙겨 줬네.’
생각을 해 보니 미안했다. 황민 성도 자신의 생일을 그리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자신도 아침 에 미역국이 올라와야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할 뿐이었다.
그래도 강진이나 배용수, 그리 고 강상식 생일은 챙겨주고 싶었 다. 자신의 생일은 그렇다 쳐도 좋아하는 동생들의 생일은 웃으 면서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