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3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노 크 소리가 들리고는 문이 열렸 다. 곧이어 음식이 실린 카트가 안으로 들어왔다.
직원들이 음식들을 식탁에 하나 씩 옮기고는 빈자리에도 음식들 을 서빙했다. 그렇게 사람이 있 는 곳에도, 없는 곳에도 모든 음 식들을 서빙한 직원이 한쪽에 서 서는 말했다.
“음식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지만 괜찮다고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음식을 설명하려는 직원에게 웃으며 말 했다.
“설명은 괜찮습니다.”
“뒤에서 음식 부족한 거 계속 살펴 주시니까 저희끼리 편하게 먹겠다고 해. 안 그러면 안 나가 셔.”
직원들이 안 나가면 귀신들이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를 하지 못
하니 말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 진이 직원에게 말했다.
“저희끼리 편하게 먹겠습니다.”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배용수가 웃으며 일어났다.
“자! 그럼 저희 운암정에 오신 것을 감사드리면서 음식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 차례 목을 가다듬은 배용수 가 말을 이었다.
“저희 운암정은 직원들 생일을 일일이 다 챙겨 줄 수는 없습니 다. 일하는 직원들이 워낙 많으 니 생일을 일일이 다 챙기려면 매일 생일상을 차려야 하거든 요.”
배용수의 말에 강진과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암정은 일반 음식점 규모를 넘어서 회사 수준 이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숙수들부터 홀 직원, 청소 인원 등을 합치면 거 의 백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있
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일은 월초에 하루 잡 아서 점심을 먹습니다. 직원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받아서 그걸 해서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 일상마다 음식들이 조금 다르기 는 한데, 공통으로 나오는 건 바 로 여기 있는 소고기 미역국과 보쌈입니다.”
배용수가 미역국을 가리켰다.
“미역국은 저희 직원들만 먹는 특별식입니다.”
“특별식?”
황민성이 미역국을 보자, 배용 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소고기를 덩어리로 받 아 와서 직접 손질을 합니다. 이 미역국은 고기 손질하고 나온 잡 부위로 끓인 겁니다. 그래서 고 기들마다 조금씩 식감도 다르고 맛도 다릅니다. 어떤 건 꼬들꼬 들하고 어떤 건 부드러운 식감이 있죠. 그리고 국물은 구수합니 다.”
배용수의 설명에 강상식이 물었
다.
“잡고기면 강진이가 육개장 끓 일 때 넣는 고기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잡고기가 맛은 좋은 데 모양이나 명칭이 좀 그래서 손님 상에는 내지 않고 저희 식 구들이 국 끓일 때 넣어 먹고 있 습니다. 근데 이 잡고기가 정말 맛이 좋아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보쌈을 가리 켰다.
“보쌈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복
을 기원하는 음식입니다. 배추 안에 복을 담듯이 음식들을 담아 서 한 번에 먹는 거죠. 숙수님께 서 생일인 사람들과 직원들 복 많이 받으라고 보쌈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두 음식은 숙수님이 직접 하시는 겁니다.”
배용수가 웃으며 음식을 보았 다.
‘저 가자미 식혜는 강태가 좋아 하던 건데. 아, 강태가 이번 달 생일이구나. 녀석 지금쯤이면 국 물 파티로 넘어갔으려나?’
자신이 있을 때 막내였던 후배 를 떠올리던 배용수가 다른 음식 들을 보았다.
식탁에 놓인 음식들은 운암정 정식 메뉴가 아니었다. 이번 달 생일을 맞이한 식구들이 먹고 싶 어 한 음식들로 메뉴를 구성한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이번 달 생일상을 그대 로 만들어 온 모양이었다.
‘저건 경미 이모가 좋아하는 오 징어숙회고, 저건 홀 정희 씨가 좋아하는 오이무침이네. 아직도
오이무침을 좋아하나?’
음식들을 보며 그 음식을 좋아 하던 직원들을 떠올리자, 그들과 함께 생일을 맞이하던 날들이 떠 올랐다. 배용수가 흐뭇한 얼굴로 음식들을 보는 것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자, 그럼 식사들 하시죠. 소고 기미역국은 식으면 기름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다.
“잠깐! 생일에는 선물이 빠지면 안 되지.”
말을 하며 황민성이 들고 온 쇼 핑백을 배용수가 있는 곳으로 내 밀었다.
“생일 축하한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뭘 이 런 걸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쇼 핑백을 보았다. 그때 강진이 주 머니에서 비닐장갑을 꺼내 내밀 었다.
그에 배용수가 비닐장갑을 끼고 는 쇼핑백을 받았다.
“그리고 이건 내 거.”
강상식도 쇼핑백을 내밀자, 배 용수가 그것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쇼핑 백을 내밀었다.
“이건 내 거.”
“뭘 이런 걸 다.”
세 사람이 선물을 꺼내자 귀신 들이 머뭇거렸다.
“미안해요. 우리는 이런 자리인 줄 몰라서……
서프라이즈로 온 자리였던 만큼 직원들은 배용수가 오늘 생일인 줄 몰랐으니 말이다.
이혜미가 미안한 듯 말하자, 배 용수가 웃었다.
“에이! 우리끼리 무슨 그런 말 을 하세요. 저는 그냥 이 자리에 여러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생일 선물이에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 생일날은 제가 거하
게 밥을 해 드릴게요. 완전 잔칫 상으로 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기대할게요.”
“기대 많이들 하세요.”
직원들이 웃으며 하는 말에 배 용수가 기분 좋게 웃자, 황민성 이 말했다.
“선물 어서 열어 봐라.”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쇼핑백을 열었다. 쇼핑백 안에는
검은 가죽이 둘둘 말려 있는 뭉 치가 있었다.
“와!”
“어?”
검은 가죽 뭉치를 본 배용수는 이게 뭔지 아는 듯 탄성을 토했 고, 강상식은 당황 섞인 탄성을 토했다.
“왜 그러세요?”
배용수가 의아한 듯 보자, 강상 식이 입맛을 다셨다.
“이거 참…… 민성 형이 나하고 같은 생각을 했네.”
“설마?”
배용수는 강상식이 가지고 온 쇼핑백을 열었다. 그러자 황민성 의 쇼핑백에서 나온 가죽 뭉치와 같은 것이 나왔다.
그것을 본 황민성도 의아한 둣 강상식을 보았다.
“너 이거 강원도에서?”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도 운암정에서 쓰는 칼 어디 서 구하는지 알아봐서 사신 거예 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 다.
“이거 참…… 사람 생각이 크게 다르지가 않아.”
“그러게요.”
요리사인 배용수에게 어떤 선물 을 해 줄까 생각을 하다가, 운암 정에서 사용하던 칼을 구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 사람 다
칼을 준비한 것이다.
그것도 운암정에서 숙수들에게 주는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 장인 에게 직접 부탁해서 말이다. 같 은 대장장이에게 운암정 식칼을 주문하니 같은 제품이 온 것이 다.
두 사람이 난감해하는 것에 강 진이 웃었다.
“이야! 우리 마누라 칼 부자네.”
“그러게. 나 칼 엄청 많다.”
검은 가죽 가방을 손으로 쓰다
듬던 배용수가 웃었다.
“이것 봐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가 가 리키는 곳을 보았다.
가죽 뭉치를 감싸고 있는 가죽 끈과 연결이 된 곳에 멋들어지게 영어로 용수라고 쓰여 있었다.
두 개가 다 같은 곳에 같은 영 어 글씨가 쓰여 있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강상식을 보았다.
“한문하고 한글 그리고 영어 세 모델로 각인해 준다고 하던
데…… 너도 영어로 했냐?”
“가죽에 영어 이니셜이 멋져 보 이더라고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너하고 같은 생각을 했다 는 것에…… 살짝 자괴감이 든 다.”
“저는 자신감이 넘치는데요.”
황민성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에 강상식은 기분이 좋아 보였 다. 그런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
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너는 주문 언제 했어?”
“저 5일 전에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눈을 찡그렸다.
“같은 상품을 주문한 사람이 둘 이 있고 이름도 같으면 말 좀 해 주지.”
“설마 같은 사람한테 할 선물이 라고 생각했겠어요. 그런데 형은 언제 주문하셨는데요?”
“나는 4일 전……
“형이 저보다 늦게 하셨네요.”
강상식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하 는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배용수를 보았다.
“칼이 두 세트나 있어서 어쩌 냐?”
“어쩌기는요.”
배용수는 가죽끈을 풀어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여러 종류 의 칼이 가죽에 둘둘 말려 있었 다.
“하나는 육류 다듬을 때 쓰고, 하나는 물고기 다듬을 때 쓰면 되죠.”
웃으며 가방을 보던 배용수가 식칼들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두툼한 칼등을 가진 무쇠 칼을 보며 웃은 배용수가 칼을 휘두르 는 시늉을 했다.
“아니면 이렇게 양손으로 잡고 재료 다질 때 써도 좋죠.”
음식을 다지는 시늉을 해 보인 배용수가 식칼을 가죽에 넣고는 돌돌 말았다.
“어서 가서 칼 손질 하고 싶네 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거 새 칼인데 손질을 해야 해?”
“새 칼이니 길을 들여야죠. 그 리고…… 천천히 오래 저하고 같 이 가는 거예요.”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 셨다.
“내 칼은 잘 있으려나.”
“네 칼?”
“내가 살아서 쓰던 칼 말이야. 그것도 이런 종류였어.”
“운암정에서 보관하려나?”
“보통은 가게 나갈 때 들고 가 는데 나는 그게 아니니까. 아마 숙수님이 따로 챙겨 놓았을 거 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그거 달라고 해 볼까?”
직접 사용하던 칼이니, 그것을 돌려받으면 배용수가 무척 좋아 할 것 같았다.
“안 주실걸. 요리사한테 칼은 분신인 것처럼 숙수님한테는 내 식칼이 내 분신이니까. 제자 분 신을 함부로 남에게 주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말이 맞네.”
아무리 배용수의 친구라 해도 제자 물건을 주지는 않을 것이
다.
아쉽지만 배용수가 쓰던 칼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강진 이 자신의 쇼핑백을 내밀었다.
“내 것도 열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쇼핑백을 열고는 피식 웃었다. 강진이 선물을 하려고 가져온 것 도 칼이었다.
〈검수림 식칼 세트〉
JS 포장지에 싸여 있던 검수림 식칼은 중식도, 식칼, 과도 총 세 자루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너도 칼이네.”
“너 칼 좋아하니 준비했는 데……
강진이 칼들을 보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칼 부자가 되어 버렸네.”
“그런데 이렇게 칼이 많아서 어
쩌냐?”
강진이 칼을 보며 하는 말에 황 민성이 말했다.
“가끔 마음 가는 대로 칼도 바 꿔 쓰고 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꽃 피어나다 작가 사무실에 가 봤는데 한쪽에 키보드들을 여럿 진열해 놓고 있더라고.”
“키보드는 하나면 있으면 되지 않아요?”
“키보드를 진열해 놓고 있기에 ‘좋은 키보드인가 봐요?’하고 물
으니까 좋은 것도 있고 싼 것도 있다면서 가끔 기분 전환하고 싶 을 때 키보드를 바꿔서 쓴대.”
“기분 전환을 키보드로 해요?”
“그런 셈이지. 말 들어 보니 키 보드마다 키감도 다르고 타이핑 소리도 달라서 경쾌한 거 치고 싶을 때는 그걸로 하고, 조용하 고 싶을 때는 조용한 걸로 하 고…… 그렇다더라고.”
그러고는 황민성이 배용수를 보 았다.
“같은 곳에서 나온 식칼이라도 써는 감각은 다르겠지.”
“맞아요. 같은 칼이라도 느낌이 좀 달라요. 어떨 때는 묵직하게 썰고 싶고 어떨 때는 타타탓! 가 볍게 썰고 싶고.”
배용수가 식칼을 보며 웃다가 그것을 쇼핑백에 넣고는 말했다.
“선물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 은혜는 맛있는 음식으로 꼭 갚겠 습니다.”
“그럼 좋지.”
“그럼 이제 식사들 하시죠. 음 식 식겠어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구들을 보았다.
“자, 식사들 하시게요.”
그에 사람들과 귀신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 다.
“음. 미역국 맛있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형은 미역국 질릴 때가 된 것 같은데?”
김이슬이 아기를 낳고 난 뒤 황 민성도 아침에는 늘 미역국을 먹 고 있었다.
산모가 아니니 다른 국을 먹어 도 되겠지만, 아내가 먹으니 황 민성도 같이 미역국을 먹는 것이 다.
“조금 질리기도 하는데 이거 맛 있네. 소고기가 들어갔는데도 기 름이 막 새고 그러지가 않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왜 기름지지 않은지 설명 안 해 주는 거야?”
“오늘은 그냥 맛있게 먹으세요. 자! 드세요.”
배용수의 말에 사람들과 귀신들 이 음식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 했다. 강진의 손맛이 담기지 않 아서 조금 밍밍했지만, 그래도 귀신들은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배용수의 생일날에 먹던 운암정 음식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