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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55화 (853/1,050)

854화

운암정에서 식사를 마치고 이야 기나 좀 하자며 한끼식당으로 온 강진과 일행들은 간단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미자차예요.”

강진이 차를 놓자, 황민성이 그 것을 마시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강진이 좋은 생각을 했어. 같이 산 지 오래됐 고 가족처럼 지내는데 생일 서로

챙겨 주면 좋지.”

“그러게요.”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 며시 말했다.

“참고로 제 생일은……

“9월 4일.”

황민성이 무심하게 중얼거리자, 강상식이 감동받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제 생일…… 알고 계셨어요?”

그런 강상식의 모습을 보던 황

민성은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용수 생일 알아보면서 겸사겸 사 알아봤지.”

“형……

겸사겸사라고 하지만, 어쨌든 자기 생일을 챙겨 주려 했다는 사실에 강상식이 감동을 한 표정 으로 보자, 황민성이 한숨을 쉬 었다.

“너는 이렇게 마음이 약한데 그 동안 갑질을 어떻게 하고 다닌 거냐?”

갑질이라는 말에 강상식이 민망 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좀 잊어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앞으로 베풀고 주위나 아랫사 람들한테 잘 하고 살……

말을 하던 황민성이 고개를 저 었다.

“내가 말실수했다. 세상에 아랫 사람이 어디 있겠냐. 네가 월급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은 너한테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기도 하

니까 서로 존중해야지. 그냥 사 람들한테 잘 해.”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런데 형도 사람들한테 잘 하 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말을 하며 강상식이 종이를 찢 는 시늉을 하자, 황민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내가 그들을 도와주는 거 야.”

“도와줘요?”

“되지도 않는 사업 계획서를 들 이밀고 투자해달라고 하는데, 그 게 말이 되나. 그래서 내가 찢어 버리는 거야. 그런 사업 할 거면 다른 사업을 하라고 말이야. 그 러니 그 사람들은 나한테 고맙다 고 해야지. 내가 그 사람들 망하 지 않게 도와주는 거니까.”

“계획서 찢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요?”

“강하게 안 하면 몇 번 더 찾아 와. 그럼 그 사람이나 나나 서로 시간 낭비고……

말을 하던 황민성이 입맛을 다 셨다.

“물론…… 내가 좀 심하다는 생 각을 하기는 하지만 사업은 전쟁 이야. 나는 앞으로도 찢을 거야.”

“확고하시네요.”

“일을 할 때는 확고해야지.”

오미자차를 마신 황민성이 강상 식을 보았다.

“그리고 갑질 이야기 나와서 하 는 말인데…… 그동안 너한테 갑 질 당한 사람들한테 사과도 해.”

“사과요?”

강상식이 입맛을 다시자, 황민 성이 말했다.

“사과 한마디 한다고 너한테 당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풀리지 않 겠지만, 한 분이라도 너한테 사 과받고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면 그걸로 된 거다.”

황민성은 재차 차를 한 모금 마 시고는 말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나쁜 놈들은 주인공한테 크게 당하고 패가망

신한 다음에 후회하면서 피해자 들한테 사과를 하잖아.”

“그렇죠.”

“네가 망할 일은 없겠지만…… 잘 나갈 때 사과를 해야 진심 같 잖아.”

“그것도 그러네요.”

잠시 생각을 하던 강상식은 주 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 고는 메모장 앱을 켜더니 글을 적기 시작했다.

“뭐 적는 거야?”

“제가 그동안 못 되게 한 분들 적고 있어요. 형 말대로 사과드 리려고요.”

황민성이 핸드폰을 보자, 강상 식이 슬며시 화면을 가렸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사과할 때 빈손으로 가지 말고 음료수라도 하나 가지고 가. 사 람들이 병문안이나 어디 인사하 러 갈 때 음료수 사 들고 가는 게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니까.”

“음료? 그럼 소갈비라도 사갈까

요?”

“그냥 음료수로 사 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상식이 핸드폰 에 마저 글을 적는 것을 보던 강 진이 물었다.

“결혼식 준비는 잘 되어가요?”

“펜션 예약했고 그날 관광버스 하나 불러서 그거 타고 가면 돼.”

“관광버스요?”

“다 같은 곳에 가는데 굳이 차 여러 대 움직일 필요 없잖아. 운 전도 피곤한데.”

“근데 청첩장은 왜 안 주세요?”

“다 아는데 청첩장을 왜 만들 어?”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청첩장도 추억인데 만들어야 죠.”

“그런가?”

“혜미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기다렸다 는 듯 말했다.

“당연히 있어야죠. 저는 청첩장 을 안 만든다는 말에 깜짝 놀랐 잖아요. 그렇죠?”

이혜미가 강선영과 임정숙을 보 자 그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놀랐어.”

“청첩장 디자인 고르는 것도 해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강상 식을 보는 강선영, 임정숙의 모 습을 확인한 이혜미가 말했다.

“봐요.”

“그럼 청첩장을 만들기는 하라 는 거네요?”

“그럼요. 아! 그리고 혼자 가서 뚝딱 하지 말고 지나 씨하고 상 의해서 하세요. 혼자 만들어서 스윽 꺼내곤 ‘우리 청첩장이야.’ 그런 이벤트 절대 하지 말아요.”

“그래요?”

강상식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이벤트를 생각했던 것 같아 이혜 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꼭 디자인 같이 생각해서 하세 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에 결혼식인데 청첩장이 바로 나오겠어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웃었 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거지. 그 리고 우리 회사 디자인 팀도 있

고, 인쇄소도 있는데 무슨 걱정 이냐.”

괜찮다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황민성이 몸 을 일으켰다.

“이제 가자.”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너 오늘 저녁은 우리 집 가서 먹자.”

“형 집에요?”

“가끔 너도 남이 해 주는 밥 먹 고 싶을 거라고 형수가 데리고 오래.”

황민성은 고개를 돌려 배용수를 보았다.

“형수가 너도 오늘 데려올 수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는데…… 오늘도 네 형수한테 나는 거짓말 을 해야겠네.”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황민성은 작게 고개를 젓고는

강진에게 손짓했다.

“ 가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럼 우리 희하고 소희 좀 보 러 갈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급히 말했다.

“아! 소희 부를 때는 꼭 작은 소희라고 해라.”

황민성이 강상식을 보았다.

“너도 꼭 명심해.”

“왜요?”

강상식이 묻자, 황민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희가 오줌 싸서 ‘우리 소희 오줌 쌌네.’ 했다가…… 소희 아 가씨를 봤다.”

침을 삼키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상식이 그를 보았다.

“형 저승 음식 집에서도 먹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 다.

“우리 소희 오줌 쌌네, 하니까 등골이 오싹하더라고. 그래서 옆 을 봤는데…… 소희 아가씨가 검 을 들고는 나를 보고 있더라. 와! 지금 생각해도 오줌 지릴 것 같다.”

그러다가 황민성이 급히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닦았다.

주르륵!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낸 황민성이 한숨을 쉬었다.

“봐라, 이 식은땀……

황민성의 중얼거림에 강상식이 물었다.

“소희 아가씨 사람들 있는데 모 습을 드러내신 거예요?”

강상식이 놀라 묻자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아마 민성 형 눈에만 보이게

하셨을 거예요.”

맞지 않느냐는 듯 강진이 보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본 모양이야. 어쨌든 작 은 소희…… 꼭 구별해서 말해 라. 형은 동생들과 이별하기 싫 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었지만 상당 히 진지한 말이기도 했다.

“저도 형하고 이별하기 싫어 요.”

“저도요.”

두 동생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 며 직원들을 보았다.

“여러분들도 괜찮으시면 같이 가시죠.”

“그럴까요? 저희도 희와 작은 소희 보고 싶네요.”

직원들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를 나가자, 강진 이 문을 잠그고는 그 뒤를 따라 나섰다.

*  * *

강진은 최동해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다른 애들은?”

[다행히 다른 애들도 합격했어 요.]

“다행이네.”

[그러게요.]

“면접까지 긴장 풀지 마.”

[그래야죠.]

“그럼 오늘 몇 시에 오는 거 야?”

[애들하고 영화도 좀 보고, 한 여섯 시쯤 갈게요.]

“인섭이하고 통화는 했고?”

[네.]

“그래. 그럼 이따 보자. 그리고

축하해.”

[고마워요.]

그렇게 통화를 마친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을 걸었다.

“동해 체력 시험 통과했대?”

“통과했대.”

“잘 됐네.”

배용수는 칼을 숫돌에 갈다가 날을 보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동해가 머리가 진짜 좋은가 보네. 다른 사람들은 몇 년씩 공부해도 어려워하는 시험 을 한 번에 통과했잖아.”

배용수가 대단하다는 듯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머리가 좋은 것도 있겠지만, 열심히 한 거지.”

“하긴, 머리가 좋아도 이런 시 험을 통과하는 건 쉽지 않지.”

숫돌에 갈던 식칼을 들어 보이 며 배용수가 말했다.

“어쨌든 대단하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재차 고 개를 끄덕였다. 강진이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소방관 시험을 준비한 지 일 년도 안 돼 서 여기까지 통과를 했으니 말이 다.

‘하긴, 살을 그렇게 뺀 녀석이니 하려고 하면 뭐를 못 하겠어.’

그리고 살을 뺐다는 것에 자신 감이 충만하기도 하니 더욱 열심 히 했을 것이다. 뭔가 큰일을 해 내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는 법이 니 말이다.

할 수 있다 해서 하는 것과 이 번에는 경험 삼아 해 보자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 었다.

“애들이 잘 됐다니 좋네.”

말을 하며 배용수가 날을 세운 식칼을 옆에 놓고는 다른 식칼을 꺼내 갈기 시작했다.

스르륵! 스르륵!

숫돌에 칼을 가는 배용수를 보 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네.’

피를 질질 흘리는 귀신이 식칼

을 갈고 있으니 말이다. 깜깜한 밤에 보면 강진도 깜짝 놀랄 만 한 비주얼이었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말 했다.

“점심 장사 시작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주방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놀란 듯 말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배용수는 칼과 숫돌을 치우고는 말했다.

“자! 오늘의 점심 오징어볶음! 갈치조림! 제육볶음! 시작하자.”

기분 좋아 보이는 배용수의 외 침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 다.

“네! 셰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 손질 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며 강진은 문을 보고 있었다.

‘인섭이가 심란하겠네.’

오늘 생일이니 출생에 관한 이 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아마 정 인섭은 오늘 자신의 모든 삶이 바뀌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로 알던 분이 자신의 이모 고, 이모로 알던 분이 생모이니 말이다.

게다가 아빠는 엄마의 여동생과

재혼을 해서 자신을 키운 것이 고…….

‘힘들겠네. 인섭이도 인섭 어머 니도……

정인섭과 홍진주 둘 다 마음이 안 좋겠다고 생각을 하며 강진이 문을 지그시 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배용수가 말했다.

“고민하지 마.”

“응?”

“네가 고민한다고 해도 인섭이 나 인섭 어머니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니야. 그냥 네가 할 수 있 는 최선의 요리를 해 드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그렇겠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칼을 갈았다. 그 모 습에 강진이 쭈그리고 앉아서는 그를 보았다.

“그런데 있잖아.”

“왜‘?”

“이 칼 언제까지 가는 거야? 너 이거 선물 받고 시간 날 때마다

칼 가는 거 알고 있냐?”

식칼 세트를 받은 지 며칠 됐는 데 배용수는 아직도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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