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8화
눈가를 닦는 정인섭을 보던 강 진이 말했다.
“오늘 생일이지?”
“네.”
정인섭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말했다.
“그 말은 오늘 네 엄마가 너를 낳은 날이라는 거야.”
“그야 그렇죠.”
“그리고 엄마가 애를 낳으면 미 역국 먹는 거 알지?”
강진의 말에 정인섭이 자신의 앞에 놓인 미역국을 보았다.
“엄마들은 애를 낳고 미역국을 먹어. 아마 그날이 엄마가 되고 처음으로 먹는 ‘남이 끓여주는’ 미역국일 거야. 그리고 그 후에 는 자신이 아닌 그날 자신이 낳 은 아이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 지.”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미역국을 보았다.
“이건…… 형이 했지만 네가 했 다 생각하고 어머니와 같이 식사 를 해.”
말을 하며 강진이 자리에서 일 어나자, 정인섭이 그를 보았다.
“형.”
정인섭의 부름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어머니가 들으실 거야. 그러니 까 엄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해.”
강진은 정인섭의 어깨를 손으로
두들겼다.
“그리고…… 그동안 못 했던 엄 마라는 말 많이 해 드려.”
그렇게 말을 하며 강진은 정인 섭의 앞에 있는 홍진주를 보고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홍진주에게 미소로 답한 강진의 옆으로 최고 진이 다가왔다.
“이 사장은 좋은 사람이야.”
그러고는 최고진이 가게를 나가 자, 강진이 웃으며 그 뒤를 따라 나왔다. 홍진주가 아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주는 것이다.
가게를 나온 강진은 가게 벽에 등을 대고 쭈그려 앉아 있는 최 동해와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강진이 나오자 최동해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래요?”
강진은 대답하는 대신 그 옆에
쭈그려 앉으며 벽에 등을 기댔 다. 조금 처량한 모습이었지만 등을 벽에 대고 있으니 편했다.
“동해 미역국 끓일 줄 아냐?”
“미역국? 모르는데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최창수와 다른 애들을 보았다.
“너희들은?”
강진의 물음에 최창수가 말했 다.
“그냥…… 미역 물에 담가 놨다
가 국그릇에 넣고 볶다가 물 넣 고 간 맞추면 되는 거 아니에 요?”
최창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방법은 아네. 해 본 적 있어?”
“끓여 본 적은 없지만…… 드라 마에서 하는 거 몇 번 본 적은 있죠.”
최창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그런 거야?”
“제가 미역국을 끓일 일이 있나 요. 그래도 드라마 보니까 그리 어렵지 않던데.”
최창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저었다.
“오늘 형 집에서 자고 내일 아 침에 다들 일찍 일어나라. 형이 미역국 끓이는 방법 알려 줄게.”
“미역국요?”
“배워 놨다가 어머니 생신 때 끓여 드려.”
강진은 동생들을 보며 말을 이
었다.
“너희들 생일 때는 어머니가 미 역국 끓여 주시는데…… 어머니 생신 때는 너희가 끓여 드리냐?”
“그건......"
최창수와 동생들이 입맛을 다시 며 말을 하지 않자, 강진이 말을 했다.
“그래. 보통은 어머니가 직접 끓여서 드시지.”
말을 하던 강진은 최동해를 보 았다.
“동해 어머님은 생신 언제이 셔?”
“어머니 생일요?”
“그래.”
“그게......"
최동해가 순간 당황해서 답을 하지 못하자, 강진이 그의 머리 를 손으로 툭 쳤다.
“4개 국어를 하면서 그 안에 어 머니 생신 숫자 몇 개를 안 넣고 다니냐.”
“아! 기억났어요. 6502**……
주민번호를 말하는 최동해의 모 습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그렇게 외워?”
“그러게요.”
최동해가 입맛을 다시자, 강진 이 다른 동생들을 보았다. 동생 들은 머리를 굴리며 어머니 생일 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 동생들의 모습에 강진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부모님 생신 챙겨 드릴 수 있 을 때 잘 챙겨 드려. 나중에
말을 하려던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챙겨 드리고 싶어도 못 챙겨 드려.’
눈물이 살짝 나오는 것에 강진 이 손으로 눈가를 살짝 닦고는 말했다.
“앞으로도 부모님 생일은 매년 다가올 것 같지만…… 그렇게 많
지 않아. 그러니 감사한 마음으 로 부모님 생신 챙겨 드려라. 그 거 못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챙 겨 줄 수 있는 것도 복이다.”
강진의 말에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강진이 벽에 등을 댄 채 하늘을 보았다.
‘부모님 생일이.…’
하늘을 보던 강진이 작게 한숨 을 쉬었다.
‘제삿날만 기억이 나네. 엄마 아 빠한테 미안해지는걸. 숫자 몇 개인데……
최동해에게 훈수를 둘 입장이 아닌 것이다. 자신도 부모님 생 일을 못 외우고 있었으니 말이 다.
기억나는 건 제삿날 날짜뿐이었 다. 그것도 챙기지 못한 지 꽤 오래된…….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최 강찬이 슬며시 말했다.
“저기 형.”
“응?”
강진이 보자 최강찬이 가게를 보며 말했다.
“인섭이 괜찮아요?”
최강찬이 걱정스럽게 보자, 강 진이 말했다.
“그냥…… 애가 착해서 그래.”
“네?”
“애가 착하고 마음이 여려서 그 래.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
“그래요?”
“걱정 많이 했어?”
“생일인데 얼굴이 많이 안 좋더 라고요.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아니라고만 하고……
“그냥 사람한테는 다 사정이라 는 것이 있으니까.”
그러고는 강진이 최강찬을 보았 다.
“그럴 때는 그냥 옆에 있어줘. 말을 하면 들어 주고, 술 마시자 고 하면 같이 한잔하고. 그게 친
구야.”
“ 옆에요?”
최강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살다 보면 여러 일들이 있어. 부모님한테 말하기 힘든 일 들…… 직장이나 여자 문제 같은 거 말이야. 그런 일이 있을 때 옆에 있어줘. 그럼 네가 힘들 때 인섭이가 네 옆에 있어 줄 거야. 그게 친구야. 기쁘고 놀 때 옆에 있는 것보다 힘들고 외로울 때 옆에 있어 주는 것 말이야.”
“네.”
최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동 해가 말했다.
“형 오늘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시네요.”
“형 소리만 들으라고 형이겠냐? 동생보다 내가 몇 살 더 많고 그 만큼 더 살았으니 좋은 이야기 해 주는 거 지 •”
강진의 중얼거림에 최동해가 물 었다.
“그런데 인섭이 안에서 뭐해
요?”
“미역국 먹어.”
“혼자서 요?”
“아니. 둘이서.”
“둘? 안에 누구 있어요?”
최동해가 가게를 보았다.
“용수 형하고 같이 밥 먹어요?”
“용수가 너하고도 밥을 안 먹었
는데 인섭이하고 먹겠냐?”
“그럼 누구하고 밥을 먹어요?”
“인섭이 아끼는 분.”
허공을 보던 강진은 문득 동생 들을 보았다.
“그런데 너희는 담배 안 피우 냐?”
“안 피우는데요.”
‘‘다‘?’’
“에이, 저희야 소방관 될 사람 인데 담배를 피우겠어요? 소방관 되면 연기를 그렇게 먹을 텐데.”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담배 피우지 마라. 몸에 나쁘다.”
“필 생각 없어요.”
동생들의 답에 강진이 하늘을 보았다.
“엄마한테 전화 한 통씩들 해 라.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 고.”
“네.”
강진의 말에 동생들이 핸드폰을
꺼내 집에다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도 핸드폰 을 꺼냈다. 그러고는 잠시 전화 목록을 보았다.
‘나도 전화할 수 있으면 좋겠 다.’
엄마와 아빠한테 늦게 들어간다 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 었다. 그리고 술 많이 먹지 말라 는 잔소리도 듣고 싶었다.
핸드폰을 보던 강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용수가 나 술 줄이라고 해서 줄이고 있어. 걱정하지 마. 아들 잘 지내고 있으니까.’
강진이 나가고 정인섭은 멍하니 미역국을 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뭔가 말을 할 듯 입을 연 정인
섭은 입맛을 다시다가 앞에 놓인 수저를 들었다. 그러고는 슬며시 밥그릇에 그것을 꽂았다.
“큰이모…… 아니, 엄마.”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것이 조 금 어색한 듯 잠시 있던 정인섭 이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지금 앞에 있는지 없는 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할게 요. 제삿날에 외할아버지하고 외 할머니도 말을 하니까요.”
정인섭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꽂 은 밥그릇을 홍진주의 앞에 가져 다 두고는, 그녀의 앞에 있던 밥 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제사상에는 밥에 이렇게 놓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정인섭을 보던 홍 진주가 눈물을 흘렸다.
엄마라는 말을…… 그에게서 처 음 듣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홍진주를 정인섭 이 보았다. 물론 홍진주를 보지
못하고 허공만을 보는 거지 만…….
마치 홍진주를 보는 것처럼 허 공을 보고 있던 정인섭이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들 거기 더러워. 왜 무릎 올…… 아.”
말을 하던 홍진주가 입을 막았 다. 정인섭은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절을 하고 있었다.
두 번 절을 한 정인섭이 빈자리
를 보다가 말했다.
“엄마…… 그동안 서러웠지? 아 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를 큰 이모라고 부르고. 때로는 큰이모 제삿날에 내가 왜 가야 하나 투 정도 부리고……
“아니야. 엄마는 괜찮아. 아들은 몰랐잖아. 그리고 바닥 차. 어서 올라와.”
홍진주가 안절부절못하며 바닥 에 무릎 꿇고 있는 아들을 잡아 일으키려 했지만, 손은 그저 허 공을 지나갈 뿐이었다.
“아들 발 아파. 어서 올라와. 응? 그리고 아들이 왜 미안해. 내가 먼저 죽……
“사랑해요.”
말을 하던 홍진주는 정인섭의 이어진 말에 멍하니 그를 보았 다. 그렇게 잠시간 아들을 보던 홍진주가 미소를 지었다.
“엄마도 아들 너무 사랑해. 그 러니까 어서 앉아. 엄마 배고파.”
멍하니 미역국을 보던 정인섭이 눈가를 손으로 닦고는 자리에 앉
았다.
“엄마 식사하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끓인 건 아니지만, 앞 으로 생일마다 미역국 끓여서 드 릴게요.”
“그래. 너무 좋네. 식기 전에 어 서 먹어.”
그녀의 말을 들은 것처럼, 정인 섭은 수저를 들어서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그시 보던 홍진주가 밥그릇에 꽂혀 있던 숟가락과 젓
가락을 집었다.
화아악! 화아악!
희미해진 숟가락과 젓가락이 손 에 들리자 홍진주는 정인섭처럼 미역국에 밥을 말았다.
“엄마 소리 너무 좋다. 진해가 부러웠는데…… 이제 안 부러 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