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871화 (869/1,050)

870화

미소를 짓는 아가씨를 보며 강 진이 음식을 놓으려다가 물었다.

“혹시 평소 음식 놓는 위치가 있을까요?”

“위치요?”

“음식을 어디에 둬야 드시기 편 할지 몰라서요.”

“그냥 두시고 어디에 뭐가 있는 지만 알려 주세요.”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음식을 놓으려다가 문득 김치찌개를 보 았다. 김치찌개는 양은 냄비가 아니라 도자기로 된 국그릇에 담 겨 있었다.

그것을 본 강진이 피식 웃었다.

“어? 왜 웃으세요?”

살짝 당황한 듯한 아가씨의 말 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때문에 웃은 건 아니고 요. 저희 주방장의 배려에 살짝 감동해서요.”

“배려요?”

아가씨가 의아해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 손 좀 잡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허공을 보다가 손을 살며시 내밀었다. 강진은 그 손을 김치찌개가 담긴 도자기 그릇으로 이끌었다.

“뜨겁지 않고 따스하죠?”

“네.”

“저희 식당은 김치찌개를 양은

냄비에 담아서 내거든요. 그런데 저희 주방장이 손님 손 데일까 봐 도자기 그릇에 찌개를 담았네 요. 저도 생각을 못 했는데 말이 죠.”

눈이 불편한 사람은 손이 곧 눈 이다. 그런 손이 뜨거운 양은 냄 비에 닿아 다칠까 싶어 도자기 그릇에 찌개를 담은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주방을 보았다.

‘감사는 우리 마누라한테 해야 죠.’

강진은 고개를 돌려 반찬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작게 웃 었다.

•이 배려심 넘치는 놈.”

반찬들 역시 다른 손님들에게 나가는 것과 조금 달랐다. 칼로 한 번 더 손을 댔는지 크기가 크 지 않았다.

손님들이야 크기가 크거나 하면 베어 물거나, 찢어서 먹지만 아

가씨는 눈이 불편하니 한 입에 먹기 편하도록 손질을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건 좀 보기 흉한 고등어구이입니다.”

“보기 흉한 고등어구이요?”

“저희 주방장이 보기 흉하게 고 등어를 이리저리 갈라 놨네요.”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미소를 지었다. 강진이 한 말이 무슨 의 미인지 안 것이다.

“하지만 먹기는 좋은 고등어겠

네요.”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이 보기 흉하다고 표현하기 는 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보기 에 좋았다. 가시를 발라내서 살 들만 한쪽에 가지런히 놓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등어는 흰 살과 등살 이 따로 놓여 있었다.

고등어는 흰 살만 좋아하는 사 람도 있고, 고등어 껍질과 갈색

의 등살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 다. 물론 그냥 다 좋아하는 사람 들도 있지만 말이다.

“이쪽은 흰 살 부위입니다. 그 리고 이쪽은 고등어 등살과 껍질 이 같이 붙어 있는 곳입니다.”

손에 젓가락을 쥐여 주고는 위 치를 알려주자, 아가씨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먹기 좋게 된 보기 흉한 고등어네요.”

“그러게요. 그리고 여기는 김치,

여기는 오징어젓갈, 여기는 와사 비 간장, 여기는……

강진이 반찬들 위치를 하나씩 이야기해 주자, 아가씨가 젓가락 을 움직였다.

“한 번 더 설명해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익숙해서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네.”

몸을 돌리던 강진이 아차 해서 는 아가씨를 보았다.

“아! 그리고 음식 두 개를 다 못 드실 것 같아서 양은 조금씩 줄였습니다. 그리고 양을 줄인 만큼 가격도 줄였으니 부담 없이 드세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부족하시면 돈 더 받고 다시 내어 드릴게요. 요즘 음식 쓰레 기 줄이는 추세잖아요.”

부담 갖지 않게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몸을 돌렸다. 그에 아가 씨가 소리가 들린 곳을 한 번 보 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그녀는 김치찌개를 떠먹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힐끗 주방 을 보았다. 주방에선 아저씨 귀 신이 웃으며 딸을 보고 있었다.

“우리 딸 참 잘 먹지?”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작 게 고개를 끄덕였다.

“먹는 걸 좋아하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 귀신이 미 소를 지었다.

“내 생각이 나면…… 맛집을 찾 아다녀.”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입 맛을 다시며 그를 보았다.

‘갑자기 훅 들어오시네.’

감동적이거나 슬픈 이야기 같은

건좀 분위기 따라 홀러나오기 마련인데, 아저씨 귀신이 훅 들 어온 것이다.

“아내 죽고, 나하고 딸이 둘이 살았어. 초등학교 이 학년 여름 에 애가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인 다고 하는 거야.”

“어디 병이라도?”

“그렇다고 하더라고. 시각이 어 쩌고저쩌고하는 거라는데... 그

래도 다행이지. 그때 병원 데려 가서 눈이 그리될 것을 미리 알 았으니 맹인 됐을 때를 대비해서

연습을 하고 배울 수 있었으니 까.”

아저씨 귀신이 웃었다.

“갑자기 사고로 눈이 안 보였어 봐. 그럼 얼마나 갑갑하겠어? 연 습도 못 한 상태로 실전에 투입 된 거니까 말이야. 그래도 우리 딸은 몇 년 눈이 안 보일 것을 대비해서 연습하고, 마음의 준비 도 하고 그랬으니 다행이지.”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 를 보았다.

‘성격이……

속으로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딸 눈이 안 보이는 불행에도 아저씨는 애써 위안을 삼고 있었다.

갑자기가 아닌 몇 년이라는 시 간이 생긴 것에 말이다.

이건 사람이 낙천적이라기보다 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싶어 서인 것 같았다. 불행에 슬퍼하 기보다는 위안을 삼고 나아가려 고 말이다.

‘강한 아버지이시구나.’

“그 진단 받고 딸하고 자주 여 러 곳 다니면서 일출도 보고, 새 해 종 치는 것도 보고, 많이도 놀러 다녔지.”

“눈 안 보이기 전에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나 보네요.”

“맞아. 여행 다니면서 각 지역 에 있는 맛있고 예쁜 음식들도 먹으러 맛집들도 참 많이 다녔 어. 눈이 안 보이기 전에 더 많 은 것과 맛있는 것 보여 주고 먹 여 주고 싶었거든. 그래야 나중

에 눈이 안 보이더라도 그게 뭔 지 알 거 아니겠어?”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 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버지네요.”

“좋기는. 애 아픈 줄도 몰랐는 데……

아저씨는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말했다.

“애가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 을 때 안경점이 아니라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한숨을 쉰 아저씨 귀신은 딸을 쳐다보았다. 그런 아저씨를 보던 배용수가 큐브 스테이크를 작은 접시들에 담아 쟁반에 올렸다.

“강진아, 서비스 양이 조금씩 달라. 많은 건 4인과 3인 테이블 에 드리고 적은 건 한두 분 있는 곳에 드려.”

강진은 접시에 담긴 큐브 스테 이크를 보았다. 배용수의 말대로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 양이 조금 씩 달랐다.

“섬세하네.”

“따뜻할 때 드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쟁반을 들고는 홀로 나왔다.

“오늘 제가 기분이 좋아서 서비 스 음식을 조금 했습니다. 서비 스니 양 적다고 서운해하지 마시 고 맛있게 드세요.”

강진은 손님들 테이블마다 한 접시씩 음식을 놓았다.

“맛있겠다.”

“색 예쁘네요

“이거 오색 찹 스테이크죠? 단 톡으로만 봤는데 이걸 이렇게 먹 네요.”

“저녁에 오시면 메뉴 선택이 되 니 맛있으면 저녁에 오세요.”

“알았어요.”

여자 손님 몇이 웃으며 오색

스테이크를 보았다. 오색

테이크는 점심 메뉴로는 하지

고 있었다.

그래서 점심에 오는 직 장인

님들은 이 메뉴를 단톡 사진으로

만 보았지, 직접 먹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손님들에게 찹 스테이크를 서빙 한 강진이 아가씨에게 남은 접시 를 들고 왔다.

“저희 가게 여성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메뉴인 오색 찹 스테 이크입니다.”

“서비스라고 하시던데……

“제가 오늘 좋은 손님들을 만나 서 기분이 좋아서요.”

“저 그렇게 좋은 손님 아닌

데……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는 좋은 손님이세요. 그 리고 저희 가게에 오신 다른 손 님들도 좋은 손님들이고요. 그래 서 오늘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지 만, 강진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모든 손님들이 눈이 불편한 한 그녀를 위해 양해를 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럼 편히 식사하세요.”

“네.”

아가씨가 마저 음식을 먹자, 강 진이 그것을 보고는 뒤로 물러났 다. 그러면서 강진은 다른 손님 들의 음식을 살폈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하나둘씩 나가고, 어느새 식당에는 이상섭 과 아가씨만이 남았다. 이상섭도 서둘러 밥을 먹고는 자리에서 일 어났다.

“강진아, 잘 먹고 간다.”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다가왔다.

“형 너무 빨리 먹는 것 아니에 요? 무슨 오 분 컷이에요?”

“왜, 식탁 회전 빨리 되고 좋 지.”

“그건 그런데…… 식사를 너무 빨리 하니까요. 정말 후다닥이잖 아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웃으며 입을 티슈로 닦았다.

“인턴 할 때 너도 그렇게 먹었 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그런 이야 기를 하냐.”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직장 생 활 중 유일한 낙이기도 하면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보통 직장인들은 점심을 빨리 먹는다. 빨리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밥을 빨리 먹고 잠 시 휴식을 취하려고 말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든, 잠시 낮잠을 자든, 아니면 사적 인 일을 보든…… 개인적인 시간 을 위해 점심을 빨리 먹는 것이 다.

그러나 점심을 빨리 먹으면 먹 을수록 위에 안 좋은 법이니 강 진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상섭이 피식 웃으며 물을 마 시고는 말했다.

“그래도 영양가 있는 맛집이 가 까이 있으니 여기 근처 직장인들 은 행복한 거지.”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

고요.”

“아니. 진짜로 네가 식당 해서 난 정말 좋아. 여기 알기 전에는 ‘오늘 점심은 뭐 먹지?’를 출근 하면서부터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침에 단톡방 보고 ‘오! 오늘은 이거네.’ 하고 점심 기다리다가 오면 되잖아.”

“그런데 가끔 마음에 안 드는 메뉴도 있지 않아요?”

“나는 입이 대중적이라 따지는 거 없어서 그런지 다 맛있더라.”

이상섭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 다.

“네가 우리 회사 입사했으면 어 쩔 뻔했냐.”

“식사 못 하니까요?”

“마음 잘 맞고 친한 후배는 구 할 수 있지만, 한끼식당처럼 맛 있고 메뉴 다양하고 가격도 싼 식당 구하는 건 쉽지 않잖아.”

“이거 서운하다고 해야 하나,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칭찬이지. 그럼 간다.”

이상섭이 식당을 나가자 강진이 그를 배웅해 주었다.

“가세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손을 흔 들고는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을 보며 가게로 들어온 강진 은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에 이혜미가 말했다.

“가게 문 잠그고 저희하고 같이 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아가씨 눈 안 보이시니 우리가 같이 해도 되지 않겠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직원들에게 말 을 하지만 않는다면, 아가씨가 알 수 없을 것이다.

강진이 가게 문을 잠그자, 직원 들이 나와서는 식탁에 있는 그릇 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함께 정리한 그릇들을 주방에 가지고 들어간 직원들이 설거지 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아저씨 귀 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배용수가 준 JS 소시지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맛있죠?”

“아주 맛이 좋네.”

아저씨 귀신이 홀을 보며 말했 다.

“우리 딸도 이거 좀 줘.”

“딸하고 나눠 드시고 싶으세 요?”

“맛있는 거 먹으면 부모는 다 자식 생각이 나는 법이지.”

웃으며 아저씨 귀신이 소시지를 집어 입에 넣었다.

“내가 정말 맛있는 거 많이 먹 어 봤는데 이렇게 맛있는 소시지 는 처음이야. 그냥 이대로 통으 로 내놓고 팔아도 3스타 가게 정 식 못지않겠어.”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 으며 소시지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이건 귀신들 먹는 음식

이라 사람은 먹으면 안 돼요.”

“그래?”

“저승에서 파는 건데, 제가 저 희 가게 직원들 먹으라고 사 온 거라서요.”

“아......"

아저씨 귀신이 아쉽다는 듯 소 시지를 보다가 입에 넣고는 고개 를 끄덕였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

8 기화

맛있게 먹는 아저씨 귀신을 보 던 강진이 말했다.

“저승 가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들 많아요. 그러니 아저씨도 좋은 날에 승천하세요.”

승천하라는 말에 아저씨 귀신이 쓰게 웃으며 홀을 보았다. 그러 고는 잠시 있다가 말했다.

“내가 걱정이 있어.”

걱정이 있다는 말에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또 훅 들어오시려는 건가?’

강진이 보자, 아저씨 귀신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순이 몇 살 같아?”

강진이 순이를 보자, 아저씨 귀 신이 말을 이었다.

“우리 애 사 학년 때 내가 데리 고 왔어. 애 맹인 교육하는데 안 내견이 좋아 보이더라고.”

아저씨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보여서 사 줬다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고.”

“알고 있습니다.”

“안내견 도움을 받는 분들이 안 내견을 많이 의지하고 정말 가족 처럼 지내더라고. 그리고 안내견 들도 주인을 많이 도와주고……. 그걸 보니 우리 딸 동생도 없는 데 같이 의지하고 지내면 좋겠다 싶어서 입양을 했어.”

아저씨 귀신이 순이를 보며 말

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순이랑 딸애랑 나, 이렇게 셋이 같이 학 원 다니면서 배웠지.”

아저씨 귀신은 순이를 보며 미 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딸이 둘이야. 지민이와 지순이.”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순 이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순이가 나이가 많겠네 요.”

“올해 열세 살이지.”

아저씨 귀신의 걱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강진은 알 수 있었다. 순이가 아주 고령인 것이었다.

“강아지 나이 곱하기 육이나 칠 하면 인간 나이하고 비슷하다고 하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인 셈이지.”

아저씨 귀신이 입맛을 다셨다.

“걱정이야. 순이가 무지개다리 건너면 우리 딸……

한숨을 쉬는 아저씨 귀신의 모

습에 강진이 순이를 보았다.

순이는 헥헥거리며 주위를 오가 는 귀신들을 보고 있었다. 순이 도 귀신들을 보는 것이다.

“그래도 건강해 보이니 오래 살 거예요.”

“그래야지. 순이도 지민이 두고 가려면 발이 얼마나 안 떨어지겠 어.”

말을 하며 딸과 순이를 번갈아 보던 아저씨 귀신이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혹시 자네는 동물 귀신 을 본 적이 있나?”

“동물 귀신요?”

“나도 딸이 걱정이 되어서 이렇 게 귀신이 됐지만…… 순이는 잘 승천해서 나하고 딸을 무지개다 리에서 기다려 줬으면 해서 말이 야.”

“아저씨는 동물 귀신 본 적 없 으세요?”

“나는 없어.”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

를 보다가 말했다.

“저는 두 번 본 적이 있어요.”

“그래? 그럼 그 둘은?”

“다 승천했어요.”

“다행이네.”

입맛을 다신 아저씨 귀신이 순 이를 보며 물었다.

“혹시 그 두 녀석 주인의 곁에 있던가?”

“하나는 그랬는데 다른 하나

말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하나라고 표현하니 좀 그러네 요. 물건 같고 그렇다고 한 개라 고 하기도 그렇고.”

“그것도 그러네.”

피식 웃는 아저씨 귀신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냥 한 명이라고 말을 할게 요. 저한테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애들이니까요. 한 명은 주인하고 같이 승천했고, 다른 한 명

O.. ”

강진이 순이를 보았다. 흰둥이 와 덩치도 색도 전혀 닮지 않았 지만, 착해 보이는 눈망울은 무 척 닮아 있었다.

“주인의 아이와 잘 놀고 숭천했 어요.”

“다행이구먼.”

고개를 끄덕인 아저씨 귀신이 순이를 보았다.

“정말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건강해 보이니 오래 살 거예 요.”

“그러면 가장 좋지.”

말을 하는 아저씨의 얼굴은 어 주웠다. 아무래도 지순이 나이가 많다 보니 건강해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아차, 저는 이강진입니다.”

강진이 자신을 소개하자 아저씨 귀신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오종철이네.”

“앞으로 자주 오세요.”

“나야 그러고 싶지.”

웃으며 아저씨 귀신이 딸을 보 았다.

“우리 딸이 가게에 피해 줄까 봐 한 번 간 곳은 잘 안 가.”

“한 번 간 곳은 안 가세요?”

“순이 데리고 가면 가게에 피해 를 줄까 싶어서 한 번 갔다 온 뒤론 안 가더라고.”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잘 말을 해서 자주 오시 게 해야겠네요.”

“부탁해.”

강진은 아가씨를 보았다. 그녀 는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여 반찬 을 먹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이면 참 불편한 것 이 많구나. 하긴, 손가락만 다쳐 도 정말 불편한데.’

손가락만 조금 다쳐도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물건을 잡을 때

도 아프고, 타자를 치거나 할 때 도 불편하다.

그리고 비단 손가락만이 아니 다. 발가락, 입술, 혀…… 신체 어디 부위든 괜찮을 때는 소중함 을 모르다가 조금 다치면 그제야 자기가 이렇게 너한테 소중한 존 재라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다.

강진이 아가씨를 볼 때, 식사를 마친 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는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입을 닦았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입을 닦는 아가씨를 보며 아저씨 귀신 이 말했다.

“눈이 안 보이니 자기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몰라. 그래서 최 대한 꼼꼼하게 닦는 거야.”

그러고는 아저씨 귀신이 강진을 보았다.

“딸이 사진 좀 찍어 달라고 할 거야.”

“사진요?”

“비어 있는 그릇 사진.”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의 아한 듯 식탁 쪽을 보았다.

“음식 사진을 찍을 거면 먹기 전에 찍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는 음식 을 찍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그 런 사람들은 먹기 전에 사진을 찍지, 다 먹은 빈 그릇을 찍지는 않았다.

“이렇게 밖에서 밥을 먹고 나면 자신이 다 먹은 사진을 찍어서 나한테 보여줘. 나 없어도 자기 잘 먹고 다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야.”

“아……

“보여주지 않아도, 내가 이렇게 보는데 말이지.”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 를 보았다.

“아빠는 자식 걱정하고, 자식은 아빠 걱정하고…… 서로 걱정하 시네요.”

“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건 당연 한 건데 저 녀석은 내 걱정을 많 이 했어.”

아저씨 귀신은 딸을 지그시 보 며 한숨을 쉬었다.

“자기 걱정을 많이 하는 아빠가 걱정이 된 거지. 되도록 딸 앞에 서는 밝게 웃으며 말하려고 했는 데도…… 내 마음을 다 알아.”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아가씨 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다 먹었나 보구먼.”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홀 로 나왔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네. 아주 잘 먹었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한 아가씨 가 슬며시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 었다. 핸드폰은 전에 본 적이 있 는 L전자의 시각 장애인용 점자 핸드폰이 었다.

“저 죄송한데 제가 먹은 자리 사진 한 장 찍어 주실 수 있을까 요?”

“그럼요.”

강진은 웃으며 핸드폰을 받아 카메라 앱을 켰다. 그러고는 빈

그릇들 앞에 있는 아가씨를 찍었 다.

찰칵!

사진을 찍은 강진이 핸드폰을 아가씨에게 내밀었다.

“여기 핸드폰요.”

아가씨가 손을 들자 강진이 그 손에 핸드폰을 올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돌려받은 그녀가 조심 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진이 말

했다.

“저희 가게 음식 어떠셨어요?”

“아주 맛이 좋았어요.”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아가씨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저희 가게 단톡방에 계시면 저 희 가게 음식 스타일은 아시죠?”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에는 정해진 음식을 하고, 저녁에는 손님이 원하는 음식 해

주는 거 말이죠?”

“네.”

“그 글 보고 정말 와 보고 싶었

어요.”

“그래서 오셨네요.”

웃으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혹시 드시고 싶었던 음식 있으 셨어요?”

“먹고 싶었던 음식요?”

“저희 가게에서 그동안 만들어 서 올린 음식 말고도, 아가씨가

드시고 싶었던 음식 있으면 말씀 해 보세요.”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잠시 있 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 김치요.”

“생김치?”

“전에 사람들이 댓글로 생김치 너무 맛있다고 한 게 떠올라서 요. 갓 지은 밥 위에 김치 올려 서 먹으면 정말 맛있을 것 같아 요.”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드시러 오세요.”

“ 네‘?”

“내일 아가씨 맛있게 드시게 제 가 김치를 좀 담글게요. 내일 점 심에 꼭 드시러 오세요.”

“아니, 저……

거절을 하려는 아가씨를 보며 강진이 빠르게 말했다.

“그럼 예약하신 거예요? 내일

두 명으로 예약 잡을게요.”

“두 명요?”

“아가씨하고 여기 조금은 귀여 운 아가씨 순이요.”

강진은 손을 내밀어 순이의 머 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기 분이 좋은 듯 순이가 머리를 문 댔다.

그런 순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 다듬은 강진이 말했다.

“내일 두 분 예약해 놓을게요. 내일 꼭 오세요. 맛있는 음식 해

드릴게요.”

“저......"

잠시 말이 없던 아가씨가 고개 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손님들이 많을까 싶어서 오기 불편하시면, 한 시 쯤에 오세요.”

“한 시요?”

“저희 가게가 직장인들이 많아 서요. 한 시쯤 되면 손님들 거의

없어요.”

“고맙습니다. 그럼 내일 한 시 에 올게요.”

“기다리겠습니다.”

“가격 얼마 드려야 해요?”

“칠천 원입니다.”

“조금 안 받으셔도 돼요.”

“조금 받기는요. 정가대로 받은 겁니다. 김치찌개, 고등어 정식이 오천 원씩. 그런데 혼자 드셔서 양을 조금 했으니 칠천 원입니

다. 아! 그리고 찹 스테이크는 서비스니 무료고요.”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현금 드려야 하는데…… 제가 현금을 잘 안 써서요.”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현금 쓰는 분들 많이 없 죠. 괜찮습니다.”

카드를 받아 계산을 한 강진이 그것을 내밀었다.

“칠천 원 계산됐습니다. 카드하 고 영수증입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는 순이 목줄을 잡았다.

“순이야 가자.”

아가씨의 말에 순이가 아저씨 귀신을 보았다. 그에 아저씨 귀 신이 웃으며 앞장서서 걸어가자, 순이가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에 목줄을 잡고 있던 아가씨 가 순이의 움직임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은

서둘러 카운터에서 나와 가게 문 을 열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가 나가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 예약 펑크 내지 마시고 꼭 오세요.”

강진의 말에 아가씨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일 올게요.”

아가씨가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아저씨 귀신을 보 았다. 그는 앞에서 걸어가는 두 명의 딸을 보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아가씨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는 순이를 보던 아저씨 귀신이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나 살아 있을 때 딸한 테 가끔 심부름을 시켰어.”

“심부름요?”

“그때 내가 죽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나이 먹으면 내가 죽지 않겠어? 평생

살면 가장 좋지만, 그게 안 되니 까.”

아저씨 귀신은 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 있을 때 동 네 심부름도…… 버스 타고 가야 하는 심부름도 시켰어. 나 없을 때 우리 딸 혼자서라도 세상에 나가서 씩씩하게 잘 살라고 말이 야.”

아저씨 귀신이 미소를 지었다.

“애를 보내고 나면 이렇게 뒤를

따라갔지.”

“걱정이 돼서 따라가셨군요.”

“그렇지. 눈도 안 보이는데 혼 자 잘 가는지 걱정이 되니까. 가 다가 발 잘못 디뎌서 갑자기 넘 어지면 쫓아가서 일으켜 주고 싶 은데……

아저씨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가 없잖아. 나중에는 내가 일으켜 줄 수 없으니까. 그 래서 주먹을 쥐고 애가 알아서 일어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

어.”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멀어지는 딸을 보던 아저씨 귀신이 강진을 보았다.

“우리 딸 반갑게 맞이해 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아저씨 귀신의 목소리에는 진심 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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