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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73화 (871/1,050)

873화

최광현의 집은 신림의 빌라 단 지에 위치해 있었다. 빌라 단지 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강진이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아까 여기에 경찰 귀신 한 명 내려 줬는데.”

“경찰 귀신요?”

“천안에 사는 의경인데 집이 멀 어서 못 온다고 해서 제가 불러 서 데려왔어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천안 의경? 혹시 장대방?”

“아세요?”

“얼굴 본 적은 없지만, 천안에 갔을 때 호철 형이 소개를 시켜 줘서 인사는 했지.”

“맞아요. 그 장대방.”

“이 동네에 살고 있는지는 몰랐 네. 알았으면 집 소식이라도 알 아봐 줄걸.”

“귀신들하고 사적인 대화는 잘 안 하나 봐요?”

강진의 물음에 최광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말을 해도, 상대는 일일 이 글로 적어야 하잖아. 게다가 가면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있는데 그분들 이야기를 필담으로 다 들으려면 너무 느리 니까. 그래서 호철 형하고는 이 런저런 이야기 필담으로 나누는 데 다른 분들하고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만 하게 되더라.”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JS 연필을 잡고 글을 적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했 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최광현을 보았다.

“연필은 어디 있어요?”

“맞다. 너한테 그 말 하려고 했 는데.”

최광현이 글러브 박스를 가리켰

다.

“거기 다이어리 있어. 꺼내 봐.”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글러브 박스를 열고는 그 안에서 다이어 리를 꺼냈다. 다이어리는 속 내 용이 빠지지 말라고 가죽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거 풀어 봐.”

강진이 가죽 끈을 풀자 그 안에 끼어 있던 종이들과 연필이 살짝 삐져나왔다.

“연필이 너무 닳아서 말이지.

새로 하나 사 줘야겠어.”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연필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 연필은 상 당히 닳아 거의 엄지손가락만 했 다.

요즘 아이들은 연필을 이렇게 쓰지도 않을 것이다. 중간에 잃 어버리거나, 반 정도 크기로 줄 어들면 아예 새로 사니 말이다.

연필을 보던 강진이 문득 그것 을 잡아 보았다.

‘이건 생각을 못 했네.’

귀신들은 이승에 글을 남기려면 그에 따른 돈을 내야 한다.

‘그럼 경찰 귀신들이 글을 쓸 때마다 돈이 나가는 건가?’

그동안 강진은 경찰 귀신들이 모은 정보를 최광현에게 전달해 주면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 했다. 이승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흔 적이 남지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이렇게 연필로 직 접 써서 정보를 넘기니…….

“이건 또 어떻게 되는 거지?”

“뭐가?”

“아니에요.”

고개를 저은 강진이 연필을 그 에게 내밀었다.

“다음에 올 때 연필 人} 올게 요.”

“그래.”

최광현은 연필을 노트 안에 끼 워 넣고는 글러브 박스에 넣었 다.

‘아무래도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겠어. 이것도 좀 알아봐 야겠다.’

그동안은 이 일에 대해 생각하 지 않고 강두치에게도 묻지 않았 다.

저승 시스템상 그럴 일은 없겠 지만 혹시라도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저승에서 모르고 있는데 괜 히 물었다가 돈을 걷어갈까 봐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판이 너무 커졌 다. 글 쓰는 귀신들이 너무 많아

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좋은 일 을 하려고 글을 적는 건데, 그게 다 돈이 드는 일이라 내야 한다 면…….

‘최대한 빨리 알아봐야겠다.’

속으로 중얼거릴 때, 빌라에 도 착을 한 최광현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내렸다.

“여기야.”

“빌라 좋네요.”

“발품 좀 팔았지.”

말을 하며 최광현이 빌라로 들 어섰다. 빌라 4층에 있는 집에 들어간 강진은 거실에 방 하나로 이뤄진 내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귀신도.

강진은 집안에 있는 젊은 아가 씨 귀신을 보았다. 그녀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아 사고로 죽은 것 같았다.

강진이 아가씨 귀신을 볼 때, 그녀가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는 의아한 듯 말했다.

“어쩐 일로 사람을 데리고 왔 네. 어? 귀신도 있네.”

아가씨 귀신이 배용수를 보고는 눈을 찡그렸다.

“어디서 온 귀신인진 몰라도 여 긴 내 구역이니까 들어오지 마! 귀신 붙으면 여기 집주인 몸 안 좋단 말이야.”

눈을 부라리며 배용수에게 화를 내는 아가씨 귀신의 모습에 강진 이 말했다.

“여기는 여기 우리 광현 형 구

역이죠.”

강진의 말에 아가씨 귀신이 그 를 보았다. 그러다가 강진이 자 신을 정확하게 보는 것을 알아채 고는 깜짝 놀란 듯 뒤로 물러났 다.

“아! 깜짝아!”

그런 그녀를 보던 강진이 최광 현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강진 이 허공을 보며 말을 하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여자 귀신 한 분 계시네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그를 보 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러냐?”

“많이 안 놀라네요?”

“귀신하고 일 자주 하는데…… 집에 귀신 하나 있는 게 뭐 대수 롭겠냐.”

최광현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목을 주물렀다.

“어쩐지 몸이 안 좋다 하더니 집에 귀신이……

중얼거리던 최광현은 문득 말을 멈췄다가 놀란 눈으로 허공을 보 았다.

“내 방에 들어왔어요?”

최광현이 놀라 하는 말에 여자 귀신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들 을 보았다.

“지금 이거 뭐야?”

강진뿐만 아니라 최광현도 귀신 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으니 정작

귀신인 그녀가 더 놀라는 것이 다.

다른 귀신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용수 출동.”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 들어오려다가 멈칫했다.

“형이 나 초대 안 했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집 안에 들어온 자신들과 달리 배용수는 아직 입구에 있었

다. 배용수 말대로 최광현이 그 를 초대하지 않아서 못 들어오는 것이다.

“형, 용수 들어오라고 초대해 줘야 해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뒤를 보 았다.

“용수야 들어와라.”

최광현의 말에 배용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여자 귀신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어렸다.

“뭐야? 이거 뭐야?”

여자 귀신은 당황한 얼굴로 뒤 로 물러나다가 놀라 말했다.

“혹시 무당? 나 쫓아내려고 온 거야?”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무당이 아가씨 본 적 있어요?”

“ 없어.”

“그런데 무슨 무당이 아가씨를 쫓아내러 와요?”

“그건…… 드라마에서 그러잖 아. 귀신들린 집에 무당이 와서 퇴마하고 굿하고.”

“일단 저는 그런 무당 아니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무당도 아닌데 귀신을 어떻게 봐?”

강진이 답하려던 찰나, 최광현 이 급히 말했다.

“그래서 내 방에 들어왔어요, 안 들어왔어요? 아니, 나 집에 있을 때 내 방에 들어왔어요?”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왜요?”

“여자 귀신이라며.”

최광현의 말에 강진은 다시 여 자 귀신을 보았다.

“광현 형이 아가씨가 자기 방에 들어가는지 궁금해하네요.”

“냄새나는 남자 방에 내가 왜 들어가. 안 들어갔어.”

“안 들어갔대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방에 뭐가 있기에 그래요?”

“있기는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어.”

살짝 당황한 듯 얼버무리는 최 광현을 보던 강진이 여자 귀신을 보았다.

“용수가 별 반응 안 보이는 것

을 보면 처녀 귀신은 아닌 것 같 은데 지박령이세요?”

“그래.”

“그렇구나. 근데…… 우리 서로 존대하면 어때요?”

“존대는 무슨. 내가 귀신으로 산 생활이 얼마인데. 내가 이래 보여도……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집을 보다가 말했다.

“형, 여기 지은 지 얼마 안 된 거죠?”

“한 사 년 됐지.”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여자 귀 신을 보았다.

“여기 지박령이시면 사 년은 안 되신 것 같은데요?”

“그건......"

당황해하는 여자 귀신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보아하니 돌아가셨을 때 저보 다 나이 많으셨을 것 같으니 말 놓고 싶으면 편하게 놓으세요. 한 서른에 죽으신 건가?”

“무슨 소리야. 나 스물다섯에 죽어서 귀신 나이로 쳐도 스물일 곱……

말을 하던 여자 귀신이 눈을 찡 그렸다. 서른이라는 말에 발끈해 서 자기도 모르게 나이를 밝힌 것이다.

“그럼 스물일곱이시네요.”

“귀신이 나이를 따져서 뭐해.”

투덜거리는 여자 귀신을 보며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그 말도 맞죠.”

여자 귀신은 입맛을 다시다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귀신을 봐?”

강진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걸 생각을 못 한 것이다. 그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용수 2차 출동.”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한 숨을 내뱉고는 여자 귀신에게 다 가갔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최 광현을 보았다.

“용수가 설명하는 동안 집 구경 시켜 주세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을 가리켰다.

“여기가 내 집이다.”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집에 귀신이 있는데 안 무서워요?”

“귀신하고 어디 한두 번 일하 나.”

최광현은 아까 강진이 보던 방 향을 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네가 해결해 줄 거 아 니야?”

“해 드려야 하는데…… 지박령 은 한이 풀리지 않으면 그곳을 떠나지 않아서요.”

“그럼 나 앞으로 귀신하고 같이 살아야 해?”

최광현은 자신의 눈가를 가리켰 다.

“이 다크서클 봐. 귀신하고 같

이 있으면 몸이 안 좋다며.”

“이사를 가는 것도 한 방법이 죠.”

“그건......"

최광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 했다.

“나 이사 가면 다른 사람도 똑 같이 겪을 거 아니냐.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귀신 들린 집에 들 어오게 할 수는 없지.”

“오!”

강진이 감탄을 한 듯 보자, 최 광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학교하고 가깝고 집 깨끗 한데 이런 방 구하기 쉽지 않아. 그리고 월세가 다른 곳보다 십만 원이나 싸다.”

“십만 원이나요?”

“아마…… 집 주인이 여기 뭔가 문제가 있는 줄 알았나 보다.”

“혹시 여기에서 사람 죽었대 요?”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화나네?”

“그러게요. 집에서 사람이 죽었 으면 이사 오는 사람한테 고지해 야 할 의무도 있을 텐데.”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그를 보 았다.

“그래‘?”

“예전에 부동산에서 알바할 때 그런 이야기 들었던 기억이 있어 요. 근데…… 보통은 이야기 안 하죠. 문제 삼으면 그때 미안하 다고 하지.”

말을 하던 강진이 최광현을 보 았다.

“아까는 많이 당황하고 놀란 것 같던데?”

“그건......"

최광현은 입맛을 다시며 한쪽에 있는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 러자 조금은 지저분한 방 내부가 보였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둘둘 말려 있었고, 베개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책상에는 컴퓨터

가 놓여 있었다.

짐이 많지 않음에도 다소 지저 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남자 냄새가 많이 나는 방이었다.

“환기 좀 해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웃었다.

“남자 혼자 살면 다 그런 거 야.”

말을 하면서 최광현이 창문을 열었다.

“남향이라 햇살이 잘 들어와.

그리고 살짝 언덕 쪽에 있어서 경치도 나쁘지 않아. 그래서 어 지간하면 이사 안 가고 싶다. 네 가 잘 다독여서 승천시켜 드려.”

최광현이 창문을 열자 그가 말 했던 확 트인 경치가 보였다.

“승천을 제 마음대로 시켜 드릴 수 있으면 호철 형하고 우리 직 원들이 아직 여기 있겠어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입맛을 다셨다.

“그 말이 맞네

강진은 방을 둘러보다가 컴퓨터 를 보았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 견하곤 피식 웃었다. 최광현이 왜 당황하고 놀랐는지 이해가 간 것이다.

‘하긴…… 그동안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하셨으니 혼자만의 시 간이 없기는 하셨겠네.’

강진은 그가 이해되었다. 자신 도 2층 방에는 귀신 직원들 못 들어오게 하니 말이다.

남자라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 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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