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875화 (873/1,050)

875 화

“그냥 같이 삽시다.”

최광현의 말에 라면을 먹던 아 가씨 귀신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런 그녀를 보지는 못 하지만, 최광현은 그녀에게 마저 말했다.

“지박령이라 여기에서 못 벗어 난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지 금까지도 같이 살면서 동거를 한 셈이고.”

“동거는 무슨!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깜짝 놀란 아가씨가 소리를 질 렀다. 하지만 최광현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니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가씨 말대로 내가 그 쪽 집에 밀고 들어온 격이고…… 그러니 집에 있어요. 아! 다음부 터는 저 밥 먹을 때 같이 먹어 요.”

“같이?”

“반찬은 딱히 없겠지만, 내가 밥 두 그릇 먹는다 생각하고 두 공기 떠 놓을 테니 같이 먹어요. 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적어 놓으세요. 아침에 적어 두면 집 에 올 때 재료 사 가지고 올게 요.”

“그건…… 아니, 내가 어떻게 글을 적어?”

아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귀신이 잡을 수 있는 연필이 있거든요.”

“정말?”

“그럼요.”

그러고는 강진이 최광현을 보았 다.

“그런데 형 괜찮겠어요?”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된 거 그냥 서로 방 빌려 쓴다 생각하 고 같이 살아야지.”

최광현은 강진이 바라보았던 곳 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디 가지도 못하시는

데 나 있다고 집 밖에 있으라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안 무서워요?”

처음에 귀신을 봤을 때는 그렇 게 무서워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귀신하고 같이 살자고 하니 말이 다.

“호철 형하고 다른 경찰 귀신들 하고 어울리다 보니까 이제 귀신 이라고 해도 좋은 형들 같아.”

최광현은 다시 아가씨 귀신이 있는 곳을 보았다.

“제 방에만 들어오지 마세요.”

“방에 뭐가 있길래? 무슨 금덩 이라도 숨겨 뒀어?”

강진이 말을 전해 주자, 최광현 이 당황한 듯 급히 말했다.

“그건…… 수사 자료가 있어서 그래요.”

“수자 자료?”

최광현은 주머니에서 목에 거는 신분증을 꺼냈다.

〈프로파일러 최광현

서울경찰청 특수 수사대〉

“제가 경찰에 몸을 담고 있거든 요.”

“아……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아가씨 귀신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마저 식사하세요.”

아가씨 귀신이 다시 라면을 먹 기 시작하자 그것을 보던 강진도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다 먹은 강진이 설거지 를 할 때, 최광현이 노트와 연필 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게 귀신이 잡을 수 있는 연 필이에요. 쥐어 보세요.”

최광현이 연필을 내밀자, 아가 씨 귀신이 손을 내밀어 연필을 쥐었다.

스르륵!

그에 연필이 허공에 떠오르자 아가씨 귀신이 놀란 눈으로 그것 을 보았다.

“세 상에……

그런 그녀에게 배용수가 말했 다.

“우리 가게 오면 좋을 텐데 지 박령이라 어렵겠네.”

“가게 가면 뭐 달라?”

“우리 가게 오면 많이 다르지. 귀신들 오는 식당인데 일반 식당 같겠어?”

배용수의 말에 의아한 듯 그를 보던 아가씨 귀신이 눈을 찡그렸 다.

“그런데 왜 나한테 반말해?”

“너도 반말하는데 내가 존대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그래. 너도 반말해.”

“이미 하고 있거든?”

피식 웃은 배용수가 아가씨를 보았다.

“그런데 교통사고면 밖에서 죽

었을 텐데 왜 여기에 묶여 있는 거야?”

“그걸 알면 내가 왜 여기에 있 겠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

둘이 대화하는 사이 설거지를 마친 강진이 아가씨 귀신을 보았 다.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세 요?”

“너도 말 편하게 놔.”

배용수와 한 말이 있어서인지 아가씨 귀신이 말을 놓으라고 하 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럴까? 나는 이강진이 고, 여기는……

“최광현이잖아.”

“아네?”

“택배하고 공과금 고지서 날아 오잖아.”

아가씨 귀신이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종이 하나 줘.”

아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최 호철이 들고 있는 다이어리를 받 아 밥상에 놓았다. 그에 아가씨 귀신이 연필을 쥐고는 글을 적었 다.

〈내 이름은 채송화야. 나라고 너하고 살고 싶어서 사는 거 아 니니까 기분 많이 나빠하지 마. 나도 네 말대로 어쩔 수 없으니 까. 그리고 같이 살자고 해 줘서 고마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

리고 씻고 나올 때 옷 좀 입고

나와. 더러워 죽겠어.〉

아가씨 귀신이 적은 글에 강진 은 피식 웃었고, 최광현은 얼굴 을 붉혔다. 자기 방만 생각을 했 지, 샤워하고 나왔을 때는 생각 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게…… 남자 혼자 사는데 누 가 옷을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나 와.”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혼자 사는데 누가 샤워하고 습기로 가 득 찬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는가.

보통은 알몸으로 나왔다가 물기 가 좀 사라지고 난 뒤 옷을 갈아 입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광현은 앞으로 화장실에서 옷을 입고 나 와야 할 것이었다.

“알았어. 나올 때 옷을 꼭 입고 나올게.”

최광현의 말에 채송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은 비빔 라면을 먹

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가 있는 학교 주차장 에서 강진은 최광현에게 향수를 꺼내 주었다.

“혹시 모르니까 형이 아침마다 한 번씩 뿌려 주세요.”

“내가?”

“송화 씨 성격 보니 어디로 어 떻게 튈지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사람이 있는 곳에서 연필이나 향 수 들고 다니면 안 되니까요.”

“우리 집에 사람만 안 들이면 상관없겠지.”

“그런데 자취하면 여자친구 집 에 들이고도 싶을 텐데 정말 괜 찮겠어요?”

“여친 없으니……

말을 하던 최광현이 입맛을 다 셨다.

“괜찮은데 괜히 슬프네.”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라에서 월급 받는 직장 인인데 여자친구도 생길 거예 요.”

“그래야지.”

“그런데 월급은 얼마나 나와 요?”

강진이 궁금한 듯 묻자, 최광현 이 웃었다.

“꽤 나와.”

“그래요?”

“거기에 사건 하나 해결할 때마

다 성과금도 나와서…… 후! 어 지간한 대기업 직장인 부럽지 않 아. 저번 달에는 사건 여럿 해결 해서 보너스도 받았다.”

“그럼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입 사하지 그래요?”

“그건 좀 보고. 나중에 더 좋은 기회 올지도 모르잖아.”

“하긴, 형은 능력 있으니까요.”

“능력은 무슨…… 호철 형 덕 보는 거지.”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다시 한 번 괜찮겠냐고 묻는 강 진을 보며 최광현이 잠시 있다가 피식 웃었다.

“원래는 내보내려고 했어. 남자 귀신도 아니고 여자 귀신하고 같 이 사는 거니까.”

최광현은 주차장을 오가는 학생 중 여학생들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송화가 맛있게 먹는다 는 말을 들으니 안쓰럽더라고.”

“그래요?”

“그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 텐데…… 비빔 라면이지만 그것 도 맛있게 먹는다는 말을 들으니 내보낼 수가 없더라. 귀신도 사 람하고 같잖아. 그리고 그 여자 도 집에 있고 싶어서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보내.”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셨어요.”

“빨리 승천하기를 바라야지.”

이야기를 나눈 최광현이 강진을 보았다.

“그럼 가라. 형 집에 가서 할 일 있다.”

“집에서 뭐 하시게요?”

“송화 심심할 거 아니야. 내 방 에 있는 TV 거실로 옮기려고. 하루 종일 할 것도 없을 텐데 TV라도 틀어 놓으면 그거라도 보고 있겠지.”

“거실로 옮기면 형은요?”

“나야 핸드폰도 있고 컴퓨터도

있잖아.”

그러고는 최광현이 자신의 차에 타며 말했다.

“토요일은 한가하지?”

“평소보단 그렇죠.”

“그럼 형이 토요일에 송화 씨 먹을 음식 사러 갈게.”

“전날에 송화 씨한테 먹고 싶은 음식 물어봐 주세요. 그걸로 준 비할게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 시동을 걸었다.

곧이어 최광현의 차가 주차장을 나가는 것을 보던 배용수가 웃으 며 말했다.

“광현 형 착하네. 귀신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해도 귀신하고 같 은 집에서 사는 거 쉬운 결정은 아닐 텐데.”

“쉬운 결정 아니지. 그래서 좋 은 형이고.”

웃으며 강진이 최광현의 차를 보았다.

“잔정이 많은 형이야. 그래서 후배들도 많이 따르지.”

“그러게. 살아서 봤으면 좋았을 사람들이 네 주위에는 많다.”

“다 내가 착하게 살아서 그런 것 아니겠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으며 차에 탔다.

“ 가자.”

배용수가 차 문을 뚫고 들어가 앉는 것을 보며 강진도 차에 올 라탔다.

“오늘 저녁은 뭐로 할 거야?”

“비빔국수를 좀 준비해 볼까? 아까 비빔라면 맛있던데.”

“날씨도 더워지니까 시원하게 후루룩 먹으면 맛있겠다.”

저녁에는 손님들이 먹고 싶은 걸로 주문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메뉴 하나 정도는 준비를 해 놓 는다. 선택을 잘 못하는 손님들 도 은근 많아서 주인 추천 메뉴 를 따로 준비해 두는 것이다.

“그럼 오늘 저녁은 새콤하게 비

빔국수로 하자.”

강진은 오늘 저녁 메뉴를 생각 하며 한끼식당이 있는 곳으로 차 를 움직였다.

덜컥!

강진은 푸드 트럭 운전석 문을

열고는 내렸다.

“왔어?”

자동차 지붕 위에 있던 최호철 이 웃으며 반기자, 강진이 고개 를 끄덕이고는 차를 살폈다.

“별일 없었죠?”

“별일이랄 것이 있나? 그저 지 나가던 귀신들이 우리 몰려 있는 거 보고 신기해서 좀 다가왔다가 갔어.”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들을 불렀다.

“배용수, 배용수, 배용수.”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

내자, 강진이 조립 문을 꺼내 바 닥에 펼쳐 놓고는 말했다.

“내가 물건 넣어주면 잘 받아.”

“알았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으로 넘 어갔다. 문을 열어 둔 채로 넘어 간 강진은 옆에 있는 다른 JS 문 을 열고 자신의 가게로 돌아왔 다.

가게 안엔 아이스박스와 술 박 스가 여럿 놓여 있었다. 그것을 JS 안으로 밀어 넣은 강진이 문

을 닫았다.

그리고 아직 열려 있는 조립 문 을 향해 아이스박스들을 밀어 넣 었다.

그에 배용수와 최호철이 비닐장 갑을 끼고는 아이스박스들을 받 아 옆에 놓았다. 그렇게 아이스 박스와 술 상자들을 모두 옮긴 강진이 조립 문을 넘어왔다.

강진이 조립 문을 다시 분해를 하는 것을 보던 배용수는 아이스 박스들을 푸드 트럭에 넣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는 하지

만, 그들이 이곳을 볼 걱정은 하 지 않았다.

직원들은 향수를 둘러서 귀기가 없지만, 향수를 안 쓴 귀신들이 더 많으니 사람들이 이곳을 볼 일은 없었다.

“다 넣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차 내부 를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자, 그럼 출발하죠.”

오늘도 들러야 할 곳이 많으니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천안에서 밑으로 내려오며 들른 각 도시에서 경찰 귀신들을 만난 강진은 10시가 넘어서야 남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둡지만 가로등이 있는 공터에 자리를 잡은 강진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공터라서 내일 저녁까지 세워 놔도 되겠다.”

남원도 도시이기는 하지만 서울

처럼 북적거리는 곳이 아니라서 차를 세울 공터 정도는 충분했 다.

공터에 차를 세운 강진이 주위 를 둘러볼 때, 푸드 트럭 위에서 경찰 귀신들이 하나둘씩 내려오 기 시작했다.

좁은 푸드 트럭 지붕에서 내려 오는 경찰 귀신들은 열댓 명이 넘었다.

이들은 오늘 남원에서 모여 있 기로 한 경찰 귀신들이었다. 만 나기로 했던 장소가 길가다 보니

주차 문제가 있어 일단 그들을 태워서 인적 없는 공터로 온 것 이었다.

다행히 경찰 귀신 중 하나가 여 기 토박이라 그의 안내로 이곳으 로 올 수 있었다.

‘장사하기 딱 좋네.’

가로등 빛이 좀 약하기는 해도 이 정도면 장사하기 좋은 곳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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